'칼럼'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09.04.15 '꼬마 소크라테스'들에게 배워라 (2)
  2. 2009.04.13 악마의 터널_로타이 슈바거 석탄 광산
  3. 2009.04.13 박쥐에 대해 상상하기
  4. 2009.04.08 프랜차이즈에 저항하라 (1)
  5. 2009.03.19 아톰, 건담, 현실이 되다!
  6. 2009.03.17 인간의 아주 오래된 꿈, 오토마타(Automata)
  7. 2009.03.13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8. 2009.03.02 유인촌 장관, 정체를 밝히시지요
  9. 2009.02.21 칠레, 두 개의 9.11
  10. 2009.02.19 뻥튀기 장수 ‘꺼먹손’
2009.04.15 12:17

'꼬마 소크라테스'들에게 배워라

[편집자가 독자에게]신경민은 왜 뉴스데스크를 떠나는가
                                                                                                                                     안태호 편집장
신경민 앵커가 결국 교체됐습니다. 생각해보면 사회의 질서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너무 뻔뻔하고 나른하고 움직일 수 없는 괴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 신경민 앵커가 결국 교체됐습니다. 생각해보면 사회의 질서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너무 뻔뻔하고 나른하고 움직일 수 없는 괴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난 주말 모종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초등학생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게 됐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저도 모처럼 활짝 웃었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어른의 그것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이들은 편견에서 무척 자유롭습니다. 누구라도 일단 스스럼없이 대하고 대상이 어떻든 간에 왕성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접근하기 일쑤입니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도 있고 미디어나 각종 사회적 노출로 인한 사회화과정을 피할 수 없는 이상(현대사회에서 누구도 날것 그대로의 사람일 수는 없을테니까요) 어느 정도의 사회적 편견이나 인식이 자연스레 배어들었다고 봐야겠지만, 이미 수십 년 동안 각종 편견으로 찌들대로 찌든 어른들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아이들의 대화방식은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늘어놓는 것과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대방 어른이 그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야말로 '아웃오브 안중'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서 대단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분주하게 풀어놓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 소탈함이 자주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일상에 대해 선뜻 이야기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들의 즐거움을 이해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또 하나의 방식은 질문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질문의 대마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잠자리에 들기까지 질문의 연속, 이라기보다는 질문의 십자포화가 매순간 작렬합니다. 해는 왜 뜨는가, 고양이는 왜 야옹하고 우는가, 차 경적소리는 왜 빵빵거리는가 등등 현상의 이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부터 "분석이 뭐예요?" "저 아저씨를 왜 노숙자라고 불러요?" 등 개념에 대한 해설을 요구하는 경우, 좀 더 나아가면 관계에 대한 성찰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논리적 설명 등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얘는 별게 다 궁금하대'라며 그냥 웃어넘기거나 '쓸데 없는 거 물어보지 마라'며 윽박지르고 넘어가지 않는 이상 이 질문들에 성의 있는 답변을 하려고 시도하다 진땀 흘린 경험이 아마 다들 있으실 겁니다. 당연시 여기던 일들을 하나하나 개념화하려다보면 ‘내가 이 일을 정말 알고 있긴 하는 건가’라는 의문’에 자괴감마저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세상을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우리가 구태의연하게 받아들이던 세상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사회의 질서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너무 뻔뻔하고 나른하고 움직일 수 없는 괴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발하고도 발랄한 상상력을 유발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끔은 작가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노트를 들고 말을 채집하러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니까요. 평소 ‘꼬마 소크라테스’들에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 왔던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뉴스에 ‘클로징 멘트’를 넣는다는 구상 역시 구태의연한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발상이었습니다. 각종 정치적 고려나 광고수익, 다양한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중파 방송에서 뉴스 진행자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노출한다는 것은 퍽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TV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몇 마디 안되는 촌철살인의 어휘들은 사회의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들던 무기인 동시에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겨주던 노래였습니다.

신경민 앵커가 결국 교체됐습니다. 뉴스의 사회적 역할을 재구성해보려 했던 시도 중 하나가 이렇게 무산되는 걸까요. 사회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나 큰 허물이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이걸 어찌 설명해야 난감합니다. 요즘엔 초등학생들마저 우습게 보는 대통령 욕을 하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그 내부에서 옴싹달싹 못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부모가 아닌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마저 드네요. 물론, 이 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현명하기를 바라지만 그 전에 상식의 자리를 배제해버리는 사회적 관계들을 재배치하는 것이 먼저일겁니다. 당연하게도 지금 상황에선 그런 역관계가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추문이 되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의 존재를 증명해 줄 겁니다.

Trackback 0 Comment 2
2009.04.13 16:40

악마의 터널_로타이 슈바거 석탄 광산

[남미액션투어]④칠레 _ 콘셉시온
                                                                                                  김강 _ 프로젝트 스페이스 LAB39 디렉터
광부들은 지하갱도를 지옥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곳에는 악마의 터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갱도의 입구에는 1884년부터 1976년까지 영업했음을 알려주는 숫자가 쓰여 있다.
▲ 광부들은 지하갱도를 지옥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곳에는 악마의 터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갱도의 입구에는 1884년부터 1976년까지 영업했음을 알려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서남방향으로 500KM를 가면, 콘셉시온(Concepción) 시에 도착하는 데, 로타이 슈바거 광산(이하 로타 광산)은 이 도시의 바닷가에 자리한다. 콘셉시온은 70년대의 학생운동이 발발했던 곳이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인 지지를 획득했던 곳이다. 

『칠레의 모든 기록』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소를 방문하여 촬영하고자 했던 2006년, 잠깐의 시간을 내어 김윤환, SP38과 이 도시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약 6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콘셉시온은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읍내 같은 느낌을 풍겼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 인적은 드문 마을. 이 마을의 작은 호텔에 여정을 풀고 SP38과 우리는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읍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로타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분홍색 와이셔츠를 입은 멋쟁이 신사가 내릴 곳을 상세히 설명해 주더니 우리와 같이 내린다. 잠깐 머뭇머뭇 하더니만 우리에게 자신이 로타 광산의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한다. 감사! 언덕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아래로 내려오는데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광산은 언덕과 바다 그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태백이나 사북 등 산속 광산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바닷가 탄광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로타 광산이 있는 바닷가 마을 풍경


악마의 터널

로타 광산의 입구에는 <Chiflón del Diablo>라는 간판이 크게 쓰여 있다. 분홍 와이셔츠의 가이드는 ‘악마의 터널’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준다. 지하갱도를 이곳의 광부들은 지옥으로 여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는 것이다. 이 광산은 1884년에 개발되어 1976년까지 탄광으로 기능했다. 현재는 박물관처럼 만들어서 석탄을 캐던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고, 갱도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전문 가이드가 안내한다. 한 쪽 팔이 절단된 전직 광부 출신 가이드는 열심히 우리에게 이것저것 설명한다. 에스파뇰로... 그러면 분홍 와이셔츠의 아저씨는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을 한다. 그러면 나와 김윤환은 한국말로 서로 이해한 영어를 해석하면서 이 광산을 탐색했다. 3개 국어가 동시에 탄광 안을 맴돌았다.   

로타 광산 입구

로타 광산은 바다 밑으로 400M가량 들어가서 석탄을 캐는 탄광이다. 체험이 가능한 갱도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전등이 달린 헬멧을 착용했다. 약간 경사진 계단을 걸어 갱도 입구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입구의 햇빛이 멀어지자 우리는 헬멧에 달린 전등의 불빛만 의지해야 했다. 서로의 헬멧 전등 불빛에 의지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장면을 그린 황재형의 그림이 순간 떠올랐다. 머리가 닿을락말락한 갱도를 걸어서 지나가다 150M, 200M라는 간판을 보았다. 지상에서부터 내려온 지점의 표시이다. 더듬더듬 걸어가니 갑자기 수직 구멍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구멍에는 철제 사다리가 약 30M가량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이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바라만 봐도 아찔한 높이, 또한 사다리는 안전하게 고정되어 있는 거 같지 않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저 아래로는 도저히 못 내려가겠다고 버텼다. 가이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러면 모든 일행은 내려갈 테니 나는 혼자서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라고 한다. 헉~! 물론 이곳까지 온 길은 하나이다. 그냥 뒤를 돌아 걸어가면 입구에 도착하기야 하겠지만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갱도의 암흑은 고소공포증 따위는 순식간에 날려 버릴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가이드가 먼저 내려가고 내가 두 번째다. 아니나 다를까, 철재 사다리는 수직 터널에 잘 고정되어 있지 않아 사다리를 밟을 때 마다 덜커덩 거린다. 사다리를 내려가는 시간이 천금과도 같이 느껴지고, 이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녔을 광부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바다 밑 300M 이상 내려갔다.

사다리를 내려오니 300M라는 간판이 보인다. 우리가 땅 아래로 300M 이상 내려왔고, 이 곳은 바다 밑이라고 한다. 약간 경사진 갱도를 따라 내려가자니 이제는 머리위로 바람이 조금씩 느껴진다. 바다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 이 바람은 탄광이 활황이었을 때는 광부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바다 밑 천연가스가 바람을 통해 갱도로 유입되다가 순식간에 불이 붙기도 했다는 것이다. 천연가스+석탄, 왜 이곳을 ‘악마의 터널’이라고 하는 지 실감했다. 갱도의 중간 중간에는 이런 바람을 막기 위해 나무문이 설치되어 있다. 석탄을 실은 차가 이동하고 나면 이 문을 닫아서 천연가스가 갱도 전체로 퍼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문이라고 한다. 문 옆에 붙어 서서 문을 열고 닫고 하는 일은 모두 어린이들의 몫. 어른 한 사람이 채 허리를 펴기도 힘든 갱도에서 적당히 몸집이 작은 어린이들이 날렵하게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의 옆에는 쇠사슬이 매달려 있다. 문 관리 어린이가 달아나지 않도록 발에 쇠사슬을 채웠다고 전한다. 암흑천지의 갱도 안에서 희미한 전등에 의지한 10살이 채 안 된 어린이가 하루 종일 발에 쇠사슬을 달고 문을 여닫았다. 이 어린이들 중 대부분은 시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른들만의 장소라고 생각했던 탄광에서 어린이의 흔적을 느끼게 되다니... 지각적 현실과 감각적 현실의 차이를 실감했다.
 
갱도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낡은 철재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태양 아래로 올라왔다. 낡은 엘리베이터는 당시 사용하던 것 그대로라고 한다.

또 하나의 작은 악마의 터널. 덜컹거리던 철제 사다리. 이곳을 통과해야 밖을 나가는 길이 있다.

천연 가스를 막아 주던 나무문에 쓰인 숫자. 이 문을 어린이들이 열고 닫았다.


광부들의 삶 재현

주변을 둘러보니 당시 광부들이 살았던 집을 복원한 건물이 눈에 띈다. 판자로 만들어진 2층집. 그곳에 위치한 가게에 들어가니 현대의 것이라는 느낌이 안드는 물건들이 놓여져 있다. 이 곳은 Marcelo Ferrari 감독이 2003년에 제작한 <Sub Terra>의 영화제작을 위하여 만든 세트다. 영화 제작이 끝나고도 세트를 유지하여, 방문객들이나 학생단체관람객에게 역사를 알리는 곳으로 기능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엽서를 보니 아까 타고 올라왔던 엘리베이터 앞에 8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같이 찍힌 사진이 있다. 그 어린이가 아마도 갱도 안에서 나무문을 여닫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시력을 잃었을 지 어떨지..... 그 아이는 쇠사슬을 풀고 탈출하고자 했을지 어떨지.... 그 아이의 평생의 삶이 이 탄광과 함께 했을지.... 그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했을지 어떨지....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Sub Terra 영화촬영을 위해 지어진 당시의 집들.


시를 존경하는 광부들 

<악마의 터널>이라는 별명이 붙은 로타 광산은 전통적으로 빈곤 때문에 소요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땅속에서 캐는 물질만 다를 뿐이지 당시 사기업에 의해 개발된 탄광이나 초석 광산들은 광부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빈곤 문제들을 언제나 야기한다. 네루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옌데 대통령 후보의 지지연설을 하러 로타 광산의 노동자들을 만났던 일화를 평생 잊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약 1만여 명의 광부가 참석한 로타 광장 집회에는 후텁지근한 정오의 대기와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광부들은 검은 모자와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연단에 올라선 네루다에게는 광부들의 검은 모자와 헬멧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자가 네루다의 이름과 그의 시「스탈린그라드에 바치는 새로운 찬가」를 소개하자 그 많은 광부들이 조용히 모자를 벗었다. 시를 낭독하겠다고 하니 모자를 벗었던 광부들의 모습을 네루다는 이렇게 묘사한다.

“잔잔한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난 듯 1만여 개의 모자가 일제히 파도를 일으키더니, 무언의 존경을 담은 검은색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사라져갔다.”(1)

시를 낭송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전쟁과 해방을 강조했다는 네루다. 네루다는 로타 광산 이외에도 초석 기업이 개발한 초석 광산에서의 일화도 소개한다. 영국인, 독일인을 비롯하여 각국의 침탈자들은 초석 광산을 독점하고 회사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의 왕국인 것이다. 광산 지역마다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했던 그곳은 특별 허가증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모든 종류의 집회를 금지했고, 정당활동이나 언론의 취재도 허용되지 않았다. 네루다는 어느 날 오후, 마리아 엘레나 초석 광산의 기계창에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대한 작업장의 바닥은 항상 물, 기름, 산(酸)이 고여 있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네루다는 웅덩이 위에 높이 널빤지를 밟고 다녔다. “이 널빤지 하나 놓으려고 파업을 열다섯 번 하고, 8년동안 줄기차게 회사와 씨름했습니다. 결국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죽은 노동자들이란 회사 경비원들이 끌고 나간 파업 지도자들이다.(2) 이렇듯 당시의 현실은 작은 것 하나라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비오비오 강. 광부들은 ‘석탄의 행진’으로 이강을 건넜다.

침탈자들의 왕국과도 같은 곳일지라도 로타 광산의 노동자들은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1958년 ‘석탄의 행진’이라고 알려진 운동이 로타 광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꺼먼 탄가루를 뒤집어 쓴 수천 명의 광부들이 빽빽이 모여 소리 없이 비오 비오 강 다리를 건넜을 때 콘셉시온 시는 온갖 깃발과 플래카드, 그리고 투쟁의 결의로 물결쳤고, 정부는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세브히오 브라보’라는 칠레 감독에 의해 <민중의 깃발(Banderas del pueblo)>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콘셉시온 시에 모인 군중들 사이에 아옌데가 있었는데, 아옌데의 선거 참모였던 미겔리틴 감독은 이때 아옌데가 모든 민중의 확고하고 결정적인 지지를 획득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중에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후 그가 처음으로 방문했던 곳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부들과 대화하기 위해 찾아간 ‘로타 광장’이었다.(3) 아옌데는 이 광산을 국유화하였는데, 이는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처음으로 시행했던 시책 중 하나이다.(4)

아옌데가 연설했던 로타 광장

광장 한켠에 아옌데 기념물이 서있다.


로타 광산 그리고 사북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 대부분의 태백, 사북의 탄광이 폐광되기 전까지 강원도 일대는 70 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검은 노다지’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칠레와 마찬가지로 광부의 삶은 석탄 산업의 활황과 상관없이 열악한 것이었다. 석탄을 캐는 막장은 30~40도의 고온과 높은 지압, 습도, 공기순환의 불량 속에 석탄가루를 마시며 일을 해야 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산업재해의 빈발과 진폐증 때문에 광부들은 언제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이 같은 목숨을 건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임금은 월평균 15만 5천원의 저임금으로 최저생계비에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열악한 현실은 1980년의 유혈폭동으로 이어졌다. 1980년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인 강원도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는 어용노조와 임금 소폭 인상에 항의해 광부들에 의해 유혈 폭동이 일어났다. 광부 및 그의 가족 약 6,000여명이 참여한 이 투쟁은 회사들이 광부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경찰을 개입시켜 경찰과 충돌하면서 유혈사태를 빚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숨지고 160여명의 경찰과 민간인이 부상을 당했다. 사태가 진정 된 후 당시 계엄사령부는 관련 인물 31명을 구속하고, 5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하였다. 이 사태는 경직된 노사관계와 광부들의 누적된 불만, 값싼 노동력 등이 빚어낸 참사로서, 이 사건 이후 전국 각지에서 노사분규가 잇따라 일어나는 등 1980년대 노사문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북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5) 

칠레의 탄광에서 우리나라의 광부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국가를 초월하여 막대한 이익이 생산되는 광산 및 탄광은 대부분 사적 소유이고 이러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단지 ‘일회용 사람’들일 뿐이다. 따라서 광부들이 자신들의  삶과 노동의 조건을 인간화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투쟁의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 곳이었다. 사북사태에 대한 내용이 MBC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약간 그려졌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그렸을 지는 보지 못해 알 수가 없지만 공중파의 한계도 드러내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폐허가 된 공터의 벽에서 프리다 칼로가 쳐다보고 있었다.


밤 거리에 붙은 프리다 칼로 

로타 광산을 나와 분홍색 와이셔츠를 입은 친절한 아저씨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해질녘이다. 로타 광장으로 나와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그 광장에서 연설했던 아옌데를 떠올려 보았다. 그 광장에는 아옌데의 기념비가 뜨거운 햇살과 텁텁한 바닷바람의 대기위에 서있다. 헤어졌던 SP38과 숙소에서 만나 비오비오(Bio Bio) 강가로 나섰다. ‘석탄의 행진’이 이 비오비오 강을 건넜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강가에는 초라한 집들이 무성하다. 강가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 거대한 벽화가 우리의 시선을 잡는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좌우로 그 스토리를 연결하며 그린 듯한 벽화.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담긴 이러한 벽화는 칠레의 어디를 가나 무수히 볼 수 있다. 퇴락한 도시의 부서진 담장 한 켠에 프리다 칼로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름 모를 예술가가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하여 붙여 놓은 작품. 그에게는 이 도시 전체가 자신의 전시장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작품을 보여 주고 싶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프리다 칼로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한국으로 가지고 와 집에다 걸어 두었다.

 

로타 광산이 있는 바닷가 마을 풍경

악마의 터널이란 글자가 보인다.

판자로 지은 광산의 입구는 박물관으로 되어 당시의 노동환경을 엿볼수 있도록 되어있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광부들의 생활상.

우리를 친절히 안내해 준 분홍 와이셔츠의 아저씨. 머리에 헬멧을 쓰고 우리는 갱도로 내려갔다.

갱도 위아래의 연락을 담당하던 당시의 전화.

광산 벽에 그려진 벽화

당시 광부들의 삶을 알 수 있게 재현되어 있다.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침실이 있는데 여러 가족이 함께 살았으며, 침대 하나에 여러 명이 번갈아 잤다.
그냥 나무바닥에 담요하나만 깔고 자기도 했다고 한다.

로타 광산에서 캔 석탄으로 만든 기념품들. 희한하게도 손에 석탄이 뭍어나지 않는다.
이런 가공 방법은 비밀이라고 한다.

로타 광장에 위치한 벽화

칠레의 어디를 가나 아옌데를 기념하는 기념물과 벽화를 볼수 있다.

밤거리에서 마주친 벽화

벽화의 부분들

벽화의 부분들

벽화의 부분들

벽화의 부분들

좀더 가까이 본 프리다 칼로.
지금은 내 방 침대 맡에 부착되어 있다.

20세기 초반의 광부들 모습.
엘리베이터 안 좌측에 어린이가 보인다.

로타 지역의 지도

------------------------------------------------------------------------------------ 


1.>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박병규 옮김, 민음사. 2008, pp.380-381
2> 같은 책, p.259 참고
3>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칠레의 모든 기록』조구호 옮김. 간디서원, 1989, pp. 106~107
4> 그러나 피노체트가 처음으로 시행한 것은 국유화된 광산을 다시 사유화한 것이다. 피노체트는 광산, 공동묘비, 기차, 항만을 비롯하여 쓰레기장까지 거의 모든 것을 사유화, 민영화하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칠레의 모든 기록』조구호 옮김. 간디서원, 1989, pp. 106~107 참조.
5> 유성재, 「사북사태」 국가 기록원, 2006, 참조


Trackback 0 Comment 0
2009.04.13 15:13

박쥐에 대해 상상하기

[박서방의 주절주절] 윤리적 박감독의 신작을 기대하며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

▲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




                                                박서방 _ 인터넷만담가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옳고 그름이 얽힌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뭐 대단한 선택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몇 해 전 겨울, 오전 10시15분 경 박서방은 늦은 출근 중이었다.(전날 과음했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바쁜 마음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하철 역 통로를 지나가는데 역한 냄새가 풍겼다. 돌아보니 통로 한 켠에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누워있었다. 노숙자로 볼 수도 있고 단순히 전날 술을 지나치게 마신 사람으로도 볼 수도 있는 어중간한 행색이었다. 그 사람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채 지나가는 이들에게 뭔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였고 그 사람의 옷차림은 날씨에 비해 지나치게 얇았다.

인간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뭔가 도움을 줘야한다는 게 박서방의 윤리였다. 그러나 당장 떠오른 본능적인 감각은 '단지 저 앞에 냄새 풍기고 있는 저 물체를 치워버리고 싶다'는 혐오감과 사무실에 늦었다는 강박뿐이었다. 그렇게 그 이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은 채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자기혐오에 가까운 감정에 시달렸다. 윤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려운 사람을 방치했다는 것은 소극적 비윤리겠지만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통해 이렇게 전한 바 있다. “모래알이건, 바위덩어리건, 물에 가라앉기는 매한가지다.” 죄에는 본질적으로 경중이 없다는 섬뜩한 전언이다.

꼭 이 대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박찬욱 감독은 박서방을 꾸준히 자극해온 예술가 중 한명이다. 박서방은 예술은 편안한 관조가 아닌 살 떨리고 불편한 전율의 체험이라는, 소위 아도르노 식 예술론을 비교적 신봉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은 예술가라는 억지춘향격의 논리전개를 해보기도 한다. 그의 영화는 대단히 불편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는 점에서 뛰어난 대중예술가임에 틀림없다.

예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르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박서방이 생각하는 예술은 삶의 문제를 미학적으로 구상화하는 노동이라고 본다. 박찬욱 감독은 특히 윤리적 문제에 대한 천착이 강하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다소 이런 테마를 벗어나긴 했지만 <복수는 나의 것>에서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는, 소위 ‘복수’ 3부작은 인간의 운명에서 주어진 숙명적 원죄와 거기서 비롯되는 죄의식, 죄의식으로부터 재생산하는 죄의 증식 과정을 강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령 <친절한 금자씨>를 보라. 이금자는 모든 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백선생에게 복수함으로써 자신의 속죄를 완성하고자 하지만 죄를 씻기 위해 저지르는 그녀의 살육은 그녀의 영혼을 끝내 구원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와 죄의식에 대한 천착이라는 점에서 박찬욱은 스콜세즈와 비견할만 하지만 훨씬 유희적이거나 장식적 디테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예전에 시인 황지우가 자신의 산문에서 역시 시인 장석주를 묘사했던 것을 인용해서 박찬욱은 대단한 댄디다.

박찬욱의 이런 댄디한, 장식적 취향들은 자칫 그의 영화를 감상하면서 느낄 수도 있을 감상자의 불편함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식적 요소가 극히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어쩌면 그의 영화적 속살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을지도 모를 <복수는 나의 것>이 일부 관객들에게 극단적 혐오의 감정을 던져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박서방은 이 영화가 영화도 아닌 쓰레기라고 극언을 퍼붓는 친구와 새벽까지 소주를 마시며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최근 개봉을 앞둔 박 감독의 신작 <박쥐>를 상상하는 일이 매우 즐겁다. 제한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통해 보자면 신의 사명을 다하려는 도중에 괴물(뱀파이어)이 돼버린 어떤 성직자가 자신의 친구의 아내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영혼의 순결을 향한 갈구와 운명처럼 다가온 죄악, 피해갈수 없는 죄의식, 살인과 금지된 사랑. 이 모두가 그야말로 전형적인 박찬욱적 테마가 아닌가. 게다가 뱀파이어를 다룬 이야기라니! 다소 과장을 섞어서 뱀파이어는 현대 대중문화가 창조해낸 가장 매력적인 괴물이 아닐까 싶다. 피를 매개로 남의 생명력을 훔쳐내는 이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유럽 등지에서 전해내려 온 것이지만 이 괴물이 대중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은 소위 고딕호러 문학과 영화산업의 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대부분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창조해낸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와 영국 해머 스튜디오가 창조했던 크리스토퍼 리(<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의 이미지에서 기인한 것이다. 특히 박서방은 크리스토퍼 리의 드라큐라를 무서워한다. 브램 스토커의 원작 이미지와 외형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근엄한 권력자의 모습과 피에 굶주린 광인의 양면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뱀파이어의 본질적 속성을 가장 잘 형상화한 캐릭터라 할 만 하다. 그런 점에서 코폴라의 <드라큐라>는 실망스런 영화였다. 사랑 때문에 신을 버리고 괴물이 되었다니! 강력한 흑마력으로 범선을 조종하며 짙은 안개가 내린 템즈강을 타고 런던을 ‘정복’하러 오는 스토커의 드라큐라 묘사를 본 사람에게는 이런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드라큐라는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드라큐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현대 이전으로부터 온 침략자란 말이다.

물론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드라큐라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점점 다양해져왔다. 카밀라나 뱀피라 같은 여성 뱀파이어들은 피의 향연 내면에 감춰진 짙은 섹슈얼리티를 전면으로 이끌어냈으며 특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필두로 한 앤라이스의 ‘뱀파이어씨리즈’에서는 본질적으로 19세기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던 뱀파이어 캐릭터를 20세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이성에 의한 야만의 극복이라는 테마가 사라지고 비이성적 존재의 영원성 안에 담긴 중음신의 허무감을 감각적으로 묘사해낸 것이다. 그래서 앤라이스의 소설은 뱀파이어물임에도 불구하고 호러보다는 탐미적 픽션에 가깝다.

그렇다면 과연 <박쥐>의 뱀파이어는 어떨까? 본래 성직자였으며 인간을 구원하려다 뱀파이어가 됐다는 정보로 봐서 신에 대한 소명과 육체적 변화에 따른 본능의 갈구의 대립은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나 박서방이 지난 5년간 등장했던 여배우 중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김옥빈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의 요소 역시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너무 뻔한 예상들이다. 그러나 박찬욱이 선수 중의 선수라고 믿는 입장에서 이 정도로는 너무 약하다. 그는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 근처에 눈에 잘 안 띄는 더 무서운 질문을 던지는 특기를 보여왔다. <올드보이>의 이우진을 보라. 말 한마디로 자기 누나를 결국 죽게 만든 오대수를 감금하여 복수하려는 듯 보였지만 알고 보면 자기와 같은 동류로 만들어서 결국 심연에 깔린 자신의 죄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박찬욱은 십수년 전 자신의 영화칼럼집에서 샘 패킨파의 피비린내 나는 영화 <가르시아>가 죄로서 죄를 씻으려는 속죄의 영화이며 ‘보기 드물게 순수한 형태의 예술영화’라고 찬탄한 적이 있다.(어쩌면 <친절한금자씨>는 <가르시아>에 대한 박찬욱식 변주다.) 박찬욱이 뱀파이어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가지고 예술을 했는지 오락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피를 매개로 한 지독한 윤리적 게임을 벌였기를 기대해 본다. 모래알만한 죄악이 바위덩어리 같은 징벌이 되서 되돌아오는 지독한 악순환. 그 안에서 자유로운 자는 싸이코패스들 뿐이다.

 

Trackback 0 Comment 0
2009.04.08 09:58

프랜차이즈에 저항하라

[편집자가 독자에게]삶을 왜곡하는 획일화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다
안태호 편집장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어린이대공원에 종종 산책을 갑니다. 집이 근처인 탓도 있지만 서울시내에서 그만한 녹지를 누릴만한 곳이 넉넉치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주 가려고 부러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대공원은 전면 보수공사로 뒤숭숭합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과 각종 이름모를 장비들이 빈번하게 드나들며 누런 먼지를 풀풀 날리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 매우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지난 주 큰 맘 먹고 공원 산책을 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복판 새로 지은 건물에 패밀리마트가 들어섰더군요.

제게 공원 매점에 관한 각별한 추억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공원 내 상권이 뻔한 상황에서 구멍가게들과 패밀리마트가 경쟁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제겐 그 장면이 공공기관이 자본에게 자기의 자존심마저 내어 준 것처럼 굴욕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겐 물을 사먹는다는 행위가 편의점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국에선 물을 돈주고 먹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에 ‘설마 그럴리가’하던 반응을 보이던 이들이 스스럼없이 생수병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이미지는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힌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느낌입니다. 이제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비좁고 어둡고 어딘가 신뢰가 덜 가는 구질구질한 구멍가게 대신 쾌적하고 친절한데다가 없는 게 없을 그곳으로 몰리겠지요.

사실, 편의점 하나가 공원에 들어선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 프랜차이즈에 익숙해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사람들의 삶을 평균화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지요. 우리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서 와이드릴리즈로 개봉된 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 카트를 밀며 쇼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삶의 패턴에 진입해 있습니다. 동네 빵집들은 하나같이 파리바게뜨나 크라운 베이커리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기 시작했고 작은 슈퍼들도 점점 편의점의 화사한 ‘편의’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술집도, 커피숍도, 전자제품 가게도 서점도 모두 마찬가집니다. 작은 것들의 고군분투는 ‘규모의 경제’에 눈깜짝할 사이에 휩쓸리고 마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작지만 참신한 기술력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회사들이 어느 새 거대기업에 팔려 이름마저 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의 영업방식을 보면 왜 이리 재개발 방식과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산참사 이후로 각종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뉴타운 개발방식이 결국 원주민들이 다시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여러 매체와 통계를 통해 확인되고 있지요. 원주민들을 내쫓고, 다시 재개발 지역을 넓혀 그 지역의 주민들을 또 내쫓고 하는 이 악순환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순 없습니다. 프랜차이즈 영업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기업형 프랜차이즈는 소형점포 업주들에게 수많은 희생을 강요합니다. 결국 그 희생 위에서 프랜차이즈 업체는 더욱 몸집을 불리고 가입자를 늘려나가게 되지만, 이게 지속가능한 형태일 리 없지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랜차이즈의 범람 속에서 우리 생활이 어느 새 뉴타운 재개발과 한 치도 다름없는 방식으로 몰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원주민들이 점점 외곽으로 몰리고 다시 쫓겨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프랜차이즈의 대세화는 주민들의 경제와 생활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프랜차이즈의 물결은 삶의 방식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에서는 고객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만 있습니다. 주인과 단골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이전처럼 서로 삶의 결을 파악하고 나눌 수 있는 종류의 관계는 아니겠지요. 삶은 더욱 건조해지고 관계는 더욱 팍팍해집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더 비슷비슷해지겠지요.

백무산 시인은 언젠가 명절날 한 자리에 둘러앉은 친척들이 밥상머리에서 정치를 주제로 쌈박질을 해대는 소란스러움을 견디는 것이 이 시대의 진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사장님도, 비정규직도, 농민도, 가정부도, 우파도, 친미파도, 붉은 머리띠를 매어본 이도 등장해 저마다 소란함을 보탭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치적 입장에서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소란을 증폭시키지만, 똑같은 물건들과 똑같은 서비스들을 소비하는 획일화된 삶의 방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요.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삶을 표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일 겁니다. 삶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요.

Trackback 0 Comment 1
2009.03.19 09:35

아톰, 건담, 현실이 되다!

일본로봇산업에 미친 로봇만화의 영향
김병수 _ 조선대 초빙교수, 우리만화연대 회원
건담 일러스트레이션.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이다.
▲ 건담 일러스트레이션.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이다.

1. 상상에서 현실로 : 로봇만화와 과학

지난 2007년 11월초 매우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일본 방위성에서 만화영화 ‘건담’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모빌슈트 로봇 ‘건담’을 현실에서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실제 기사를 잠깐 인용해 보겠다.  

[건담, 만화주인공 벗어나 현실에 나타나다]

일본 방위성의 방위성기술연구본부(이하 방위연)가 만화영화 주인공인 '건담'을 현실에서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일본 애니메이션 뉴스 사이트인 '아니메뉴스네트워크'가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방위연은 오는 7~8일 열리는 '방위기술 심포지엄'의 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건담의 실현을 위해'라는 제목의 지상 장비를 소개했다. '건담의 실현을 위해'라는 지상장비는 ‘선진화된 개인 장비’ 개발의 차원에서 계획된 것으로 나와 있을 뿐 상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건담은 1970년대부터 방영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사람의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모빌슈트'로 유명하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해 유명 만화영화 주인공들을 자주 이용해 왔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계획을 모병 또는 군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 미군이 현재 군사용으로 개발중인 로봇슈트(근력강화옷)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건담을 현실화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 여론이 술렁이자 일본 온라인뉴스사이트 '제이캐스트'는 1일 "방위성의 건담 개발 계획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방위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반인도 참가 가능한 심포지엄에는 실제 크기의 건담이 등장할 예정이며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는 '선진화된 개인 장비' 또한 공개된다고 제이캐스트는 전했다.

방위연의 아키야마 요시타카(秋山義孝)사업감리부장은 “최종적으로 건담과 같은 선진장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 라며 “그러나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1)

만화에서만 보던 로봇을 실제로 만든다고 하니 로봇만화의 열혈매니아라면 너도 나도 자위대에 입대하려고 줄을 설 것 같다. 건담의 실제 병기화 계획은 만화와 과학이 만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체계적인 지식 논리의 세계인 ‘과학’과 상상력의 세계인 ‘만화’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끊임없이 만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 왔고 궁극에는 ‘공상과학만화’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물론 최초의 공상과학은 문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로봇만화는 과학만화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장르가 아닌가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로봇만화가 미치는 과학적 성과에 관한 부분을 아톰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 로봇만화의 창조자 일본 : 로봇산업의 선두주자로

건담 병기화 이야기가 아니어도 일본은 로봇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보다 로봇 개발에서는 뒤졌지만 이를 상업화하는 데는 한발 앞서 성공했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산업용 로봇 보급시대에 일본은 전 세계 산업용 로봇시장을 주도했다. 자동차·전자·반도체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은 이를 토대로 정교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 국내외 시장에 출시해 큰 수익을 올렸다.

1999년 일본 소니사에서 발표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감성 지능형 완구 로봇 애완견 아이보.

현재 전 세계에 보급된 산업용 로봇 중 절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로봇기술(RT)을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등과 함께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하고 로봇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0년 5000억엔 수준에 불과했던 RT시장이 오는 2007년까지 약 8조엔(80조원)에 이르는 리딩산업(leading industry)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RT가 반도체 기술과 기계공학·전자공학·인공지능 등이 결합된 최첨단 기술의 총아이기 때문에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자동차 산업이 뛰어난 전후방 연관효과 때문에 일본을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는 그 자리를 로봇산업이 대신할 것이란 전망이다.(2)

특히 인간을 닮은 휴먼 로봇 분야에서는 일본은 가히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로봇산업 발전을 위해 2005년부터 `21세기 로봇 챌린지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산학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377억 달러 규모의 `휴먼로이드 로봇 프로젝트'(HRP)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런 일본 정부와 업체, 관련 연구기관들의 노력은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로봇, 그 중에서도 휴먼 로봇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3) 아시모, 큐리오, 파트너, 피모, 이사무 등 기라성 같은 일본의 휴먼로봇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휴먼로봇산업이 세계의 휴먼로봇 산업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3. 아톰세대 : 일본의 로봇과학자를 양산하다

왜 하필 일본은 ‘휴먼 로봇’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바로 ‘아톰’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여러분도 친숙하실 이름인 ‘아톰’은 인격화된 최초의 로봇이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산업의 견인차이기도 했다. 전자신문의 다음과 같은 기사는 아톰이 일본 로봇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 만화의 신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 2003판의 한장면

이러한 면에서 아톰을 ‘인간형 로봇의 원조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록 아톰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까지밖에 발전하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악을 느끼며 판별할 수 있는 ‘사이보그형 로봇’이다. 현재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혼다의 아시모를 포함해 이미 출시된 인간형 로봇들의 직접적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아톰이라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뿐만 아니라 복지, 경비, 도료작업, 용접공 로봇 등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축구시합이나 오케스트라 연주까지도 가능한 로봇도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로봇산업은 아톰 덕분에 철저하게 ‘인간과의 협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자키 마사모토 일본로봇공업회 회장은 최근 니혼코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구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괴물형체이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미지의 로봇
인 반면, 일본의 로봇은 인간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며 “아톰이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4)

아톰은 ‘일본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스카 오사무가 만든 로봇만화의 주인공이다. 1951년 월간 '소년'지 4월호부터 '아톰대사'란 이름으로 1년에 걸쳐 연재한 것이 시초이다. 아톰이 일본의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63년부터 193회에 걸쳐 4년간 TV에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부터이다(아톰은 최초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록도 세운다).

아톰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과학자가 대체 아들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녔지만 자라지 않는데 화가 난 박사는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아톰은 인간과 우주인들의 싸움 한가운데서 몸이 부서져라 인간을 위해 싸운다.

아톰은 신장 135㎝에 몸무게가 30㎏으로 만들어져 조그만 꼬마아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아톰은 원자력을 동력으로 로켓추진방식으로 하늘을 날며 자그마치 10만 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또 인간보다 1000배 이상의 청력을 지녔으며 60개에 달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그마한 체구로 거대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아톰의 당찬 모습은 2차 대전의 상처로 무기력해진 전후 일본인들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다. 데츠카 오사무는 로봇의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친구로서 웃음을 잃지 않는 아톰의 모습을 통해 2차대전의 패전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다시 일어섰고 아톰의 영향인지 어느 나라보다 먼저 로봇을 받아들여 산업화시켰다.
 
오늘날 일본의 로봇산업을 일구어낸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아톰세대’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아톰’을 보며 로봇과학자의 꿈을 꾸었고 그것이 오늘날 아톰과 같은 휴먼로봇을 만들어야한다는 집착을 가져왔던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일본 로봇산업의 최종 종착지는 ‘아톰’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 인격을 지닌 로봇을 만들라!

최초의 로봇만화가 인격을 지닌 로봇에 관한 것이라면 그 후 일본의 로봇만화는 보다 사실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1963년 처음 방영된 <철인 28호>는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기계'였다. 전투로봇의 상징이 된 1972년의 <마징가 Z> 역시 사람이 탄 비행기가 조종석에 결합되는 것이 다를 뿐 마찬가지였다.

<마징가 Z> 이후에는 로봇이 움직이는 무기로 격하됐다. 1979년 나온 <기동전사 건담>은 '모빌 슈츠', 즉 '움직이는 전투복'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실성에 중점을 둬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주로 다루다보니 로봇 자체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움직이는 기계로서의 로봇만화는 산업로봇이 활성화되던 시기와 겹친다. 7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은 ‘로봇’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동화 기계로 넘쳐 나게 된다.

인간은 전투로봇의 조종사 즉 관리, 감독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아톰에서 구현했던 인간과 로봇의 결합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다. 인간과 로봇의 결합을 1995년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조종간을 잡지 않고 로봇과 일종의 정신감응으로 로봇을 움직인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개념 설정으로 로봇의 인격화까지 이뤄냈다.(5) 재미있는 사실은 이듬해인 1996년 일본의 혼다사에서 최초의 자율형 2족 보행로봇 P2를 개발해 냈다는 점이다.

로봇만화에서 로봇이 단지 기계에 불과했던 시대를 접고 최초의 로봇만화 ‘아톰’이 구현했던 인격로봇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던 시기에 인간형 로봇의 개발이 함께 시작됐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실 마징가Z 시절만 하더라도 로봇만화의 세계는 다소 허황되고 과장된 세계였다.

<공상비과학대전>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증거(?)가 나온다. 마징가 제트의 키는 18m, 몸무게는 20t. 정말 거대한 로봇이다. 하지만 마징가Z의 키를 인간처럼 185㎝로 줄여놓으면 몸무게는 고작 22㎏에 불과하다. 마징가 제트는 초경량 로봇인 셈이다. 키는 큰데 몸무게가 적게 나가다보니 외부 충격에 약하다. 초속 15m의 바람에도 마징가Z는 쓰러져 버린다. 마징가 제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리케인은 산(酸)으로 상대 로봇을 녹여버리는 필살기. 그런데 금속을 가장 잘 녹이는 초산으로 철 1㎏을 녹이려면 5㎏이 필요하다. 상대 로봇의 체중이 마징가 제트와 같은 20t이라면 초산 100t이 필요하다. 20t에 불과한 마징가 제트가 100t의 초산을 어떻게 들고 다닐까.

또 다른 마징가 제트의 무기인 브레스트 파이어는 가슴에서 빔을 쏘아 상대 로봇을 녹여버린다. 정확히 어떤 빔인지 알 수 없으나 레이저 광선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마징가Z의 에너지 출력은 4억 8000만w이므로 만약 20t 로봇을 녹이는 데는 45초가 걸린다. 하지만 TV에선 2, 3초도 안되는 시간에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아톰 역시 황당무계하기는 마찬가지다. 35㎝에 몸무게가 30㎏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여 하늘을 날고 10만 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인간보다 1000배 이상의 청력과 60개에 달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설정은 과학과는 거리가 한참 있다.
 

5.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

마징가 제트나 아톰이 비록 비과학적 설정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 개념이다.

개념은 전통적 논리학에 따르면, 한 무리의 개개(個個)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을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觀念). 일상적인 용어로는 한 인간이 어떤 사항에 관하여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는 경우, 그 인간은 그 사항에 대하여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 개념이 몇 가지 만들어지면 그 몇 가지 개념이 저마다 나타내는 성질을 통일하는 성질에 관한 개념도 만들 수 있다. 가령 개, 고양이, 새, 물고기, 벌레 등의 개념에서 동물의 개념을, 동물⋅식물의 개념에서 생물의 개념을 만들 수 있다.(6)

아톰이 있었기에 병기로서의 로봇에 대한 개념이 생겼고 철인28호, 마징가 제트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철인 28호와 마징가제트는 건담의 아버지가 됐으며, 이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이라는 인격화된 로봇이 출현하는데 밑바탕이 된다.

이러한 개념의 근저에는 만화적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 만화적 상상력은 로봇만화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었고, 만화 속 로봇은 현실에서의 로봇으로 승화되어 실재하는 ‘그 무엇으로’ 마침내 자리한다.

건담 모빌슈트의 병기화는 이런 점에서 로봇만화와 과학의 기념비적 이정표가 되고 있다. 만화를 통해 가꾸어진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장인 셈이다. 과학을 통해 지식을 수혈 받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입혀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며 과학이 그것을 다시 체계화, 논리화하여 현실화할 때 만화와 과학은 어쩌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 

*주

1>조선일보. 2007년 11월 1일
2>IT 다음은 RT-휴먼로봇산업 현주소와 미래성 | 현실경제  2005.1.8. 
3>같은 글
4>[e월드]일본-'돌아온 아톰'이 일본을 구한다! 전자신문|기사입력 2003.4.7.
5>아톰, 일본 로봇산업 이끌어 2000년 12월 28일 이영완 기자. 동아일보
6>네이버 백과사전

 

Trackback 0 Comment 0
2009.03.17 09:17

인간의 아주 오래된 꿈, 오토마타(Automata)

[전승일의 I Love Automata]①오토마타의 탄생과 자동물시계
[Against the idea of the War]展 (2003_이태리 로마)
▲ [Against the idea of the War]展 (2003_이태리 로마)

폭력에 반대하는 오토마타 예술가들

9.11사건의 배후자 색출을 명분으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시작되고, 작전명 ‘항구적 자유’라는 대테러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로마의 한 미술관에서는 캐나다ㆍ영국ㆍ일본ㆍ이태리ㆍ독일 등의 ‘오토마타(Automata)’ 예술가 16명이 참여한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Against the idea of the War>展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이태리 현대오토마타박물관의 제안으로 조직되었으며, 폴 스푸너ㆍ피터 마키ㆍ아키오 니시다ㆍ키스 뉴스테드 등 오토마타와 키네틱아트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 전시회에 모인 현대의 오토마타 예술가들은 위장군복으로 몸이 뒤덮인 채 날갯짓하는 비둘기, 자본주의의 병폐와 현대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노래했던 오든(W. H. Auden)의 시와 함께 오토마타로 표현한 권력자, 폭탄 속에 갇힌 상처받은 붉은 심장, 여러 개의 캠으로 작동되는 똑같은 모양의 ‘빈 라덴’들, 폭탄 위에 앉아 로데오 경기를 하는 아이 등 오토마타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비판하며 평화를 소망하는 예술적 메시지를 전했다.

<Against the idea of the War>展의 오토마타 작품들은 아래 주소에서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www.youtube.com/watch?v=dI_7KtOOLxo
www.youtube.com/watch?v=9MiSLfR8SBw


자동물시계와 오토마타

‘오토마타’는 자동기계장치를 뜻하는 ‘오토마톤(Automaton)’의 복수형으로, 예술 영역에서는 보통 ‘여러 가지 기계장치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나 조형물’을 지칭한다. 오늘날 로봇 메커니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오토마타가 과학의 원리와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현대에 들어서지만 기계장치 자동인형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중국 북송시대, 아랍제국시대의 오토마타 자동물시계 (왼쪽부터)

특히 오토마타의 형성과 발전은 물시계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기계장치 자동인형이 부착된 최초의 물시계는 BC 250년경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크테시비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자동물시계 ‘클렙시드라’로 알려져 있다. ‘클렙시드라’는 크테시비우스 자신이 고안한 톱니바퀴와 펌프장치 등을 활용하여 기존 물시계의 단점을 보완한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기계장치에 부착된 인형이 시간을 가리키는 오토마타 자동물시계였던 것이다.

11~12세기 중국 북송시대와 아랍제국에서도 자동기계장치에 의한 오토마타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북송시대 천문학자 소송(蘇頌)이 제작한 자동물시계 ‘수운의상대(水運儀象臺)’는 높이가 약 12m에 달하는 대규모의 시계탑으로 내부의 복잡한 기계장치와 연결되어 꼭대기의 위치한 인형들이 종과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구조였다. 또한 오늘날 기계공학의 초석을 닦은 아랍제국시대 과학자 알 자자리(Al Jazari)가 고안한 ‘코끼리 시계’를 포함한 다수의 자동시계들도 예외없이 오토마타였다.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된 조선시대 자격루

우리나라의 오토마타 자동물시계는 바로 조선 세종 16년(1434년) 장영실에 의해 제작된 자동물시계 자격루(自擊漏)이다.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마타 물시계로 기계장치와 연결된 12지신상 인형이 낮과 밤의 구별없이 시간을 알리도록 고안된 조선 전기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첨단 발명품이었다. 


예술로서의 오토마타를 꿈꾸며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그림이나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의 꿈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쉼없이 지속되어 왔다. 그것은 제례나 상례의 일부분이었으며, 때로는 놀이나 축제와 결합된 것이었다.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본 연재 <I Love Automata>는 앞으로 오토마타의 역사와 함께 키네틱아트․인형극을 포함하여 현대 오토마타 예술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살펴볼 예정이며, 필자 자신의 창작 오토마타도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본 연재가 아직 오토마타 작업이 제대로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예술적 상상력을 불어 넣는 작은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 

 

전승일 _ 독립애니메이션 감독
스튜디오 미메시스(
www.mimesistv.co.kr) 대표감독으로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고, 최근 오토마타 블로그(www.iloveautomata.com)를 개설하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작품: <내일인간>(1994), <미메시스TV>(2000), <하늘나무>(2003), <Cold Blood>(2004), <오월상생>(2007)


Trackback 0 Comment 0
2009.03.13 09:02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편집자가 독자에게]반공교육과 공작정치의 기억
                                                                                                                                     안태호 편집장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매우 도착적이면서도 오싹한 장면입니다.
▲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매우 도착적이면서도 오싹한 장면입니다.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어린 시절 웅변대회에 출전해 세뇌교육에 가까운 반공교육의 성과 한 자락을 우렁차게 늘어놓던 그 때. 저를 포함해 학교 대표로 나가기로 했던 친구들 몇몇은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선생님의 특별지도를 받곤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이웅평 씨를 소재로 했던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사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민방위본부에서는 공습경보를 발령하며 인천이 폭격당하고 있다고 “지금은 실제 상황입니다”를 연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는군요.

아무튼, 그 시절 반공교육의 끝자락도 어지간했습니다. 폭력성에 대해 꾸준히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영상물, 게임, 도서, 가요 등에 대해 지치지도 않는 검열을 해대는 나라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신체절단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하드고어한 영화를 무삭제판으로 보여주는 만행을 감행하기도 했지요. 네, 이승복 말입니다. 우리는 먼지 풀풀 나는 학교 강당에 줄지어 앉아 짐승같은 공산당이 어린아이의 연약한 입을 사정없이 잡아 찢는 끔찍한 장면을 도리 없이 지켜봐야했습니다. 마음약한 몇몇 여자아이들은 그 소름끼치는 폭력성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요. 심지어 몇 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게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거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저 역시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에 대해 조작 논란이 있지만, 사실 여부를 제쳐두고라도 교육을 빙자해 아이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영화를 강요한 건 국가차원의 범죄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김현희가 돌아왔습니다.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범이 ‘왜 자신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매우 도착적인 상황입니다. 그녀가 이제와 다시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며 KAL기 폭파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은 그녀가 이제 와 ‘좌파정권’의 핍박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나서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번 기자회견은 납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들여 성사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진행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짝짜꿍을 맞추었습니다. 김현희를 주연삼아 양국의 국민들에게 한바탕 쇼를 보여줄 요량인 듯합니다. 한류스타 못지 않은 김현희씨, 온갖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일 우파동맹의 결성이라고 규정하더군요.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가 매우 중요한 외교적 이슈임에도 이번 김현희의 기자회견에 대해 ‘닳고 닳은 수법’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도 냉소적인 시선들이 많습니다. 반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펄떡이는 분들도 물론 계시지요. 참 재밌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좌파정권’으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라지만, 그토록 혐오하며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던 북한이 길러낸 테러리스트를 옹호해야 하는 상황이 스스로도 아이러니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분들께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이항대립쌍만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마저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까닭은 더더욱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지난 정부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KAL기 폭파 사건이 '간첩' 김현희의 범행인 것을 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다만, 당시 조사의 결론에는 "당시 정부가 이를 노태우 후보가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에 급급해 국가로서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에 노력하기 보다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당시 정부 문건에는 안기부 주관 하에 내무, 국방, 문교, 문공, 상공, 교통, 서울시, 치안본부, 반공연맹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 설치 운영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부처가 총동원되어 사건을 적극 활용한 셈이지요.

KAL기 폭파사건이나 아웅산 폭파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조작설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어디 이 두 사건 뿐일까요. 선거 때면 제갈공명이라도 초빙한 듯 불어오던 북풍도 그렇지요. 정부에 불리한 사건만 터지면 또 다른 대형 사건이 어느새 매스컴을 가득 채우던 일이 비일비재했더랬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 정부가 마치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이라도 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이용하는 자세를 보였던 탓에 음모론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쥐고 있는 이들이 진상규명은 제쳐두고 기다렸다는 듯이 공작정치를 펼치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없는 음모론도 솟아나지 않을까요. 언젠가 지인들과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아웅산 폭파사건 때 나라의 중요하고 유능한 분들이 한꺼번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을 나누었던 기억도 납니다.

반공교육과 공작정치가 지난 시절의 추억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웅산 폭파 사건이나 칼기 폭파 사건, 이승복 사건 등을 두고두고 우려먹었던 이전 정권들의 행태가 여전히 이 정부에서도 그대로 겹칩니다. 김현희의 귀환이 상기하는 어린시절의 씁쓸한 추억을 곱씹다가, 연쇄살인범을 활용해 용산참사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청와대를 생각하고 다시 오싹한 기분이 드는 건 저 뿐인가요?


Trackback 0 Comment 0
2009.03.02 09:00

유인촌 장관, 정체를 밝히시지요

[기자의 눈]당신은 예술지상주의자입니까, 시장만능주의자입니까
                                                                                                                                         안태호 기자
설 연휴,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 유인촌 장관.(사진 문화체육관광부)
▲ 설 연휴,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 유인촌 장관.(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자립은 말하기도 싫으며 국립극장은 돈을 버는데 신경 쓰지 말고 단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만 매진해 달라"(유인촌 장관, 2008년 3월 21일 국립극장 업무보고 중)

문화부는 3개월 간 공석으로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대우전자 사장 출신인 배순훈 씨를  임명했습니다. 배순훈 관장은 취임하자마자 ‘경제적 시각으로 미술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국립극장에 돈벌이 걱정은 하지 말고 예술성과 공공성에 힘써달라던 유인촌 장관과 전문 경영인을 미술관장으로 데려와 미술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유인촌 장관 사이의 간격입니다

사실, 이런 의문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공직에 나선 이후로 스스로도 헷갈릴 만한 질문이지요. 지금의 유인촌 장관은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며 유씨어터를 운영하고, 공연할 때마다 손해가 나도 예술을 위해 마구(馬具)를 걸치고 연기했던 홀쓰또메르의 유인촌과는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의 당신은 독립영화는 ‘될 놈을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할 입장이고, 미술관에 미술전문인이 아닌 기업 사장 출신이  와서 미술관을 '경영'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해야 할 형편이니까요.

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지원할 3천만 원을 행사 일주일 전에 취소해 버린 게 재정자립도의 문제였다는데 사실인가요? 엠넷 등의 케이블 방송을 끼고 하는 음악상에 비해 재정자립도가 낮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SM 노래방에 가서 한국의 그래미를 호언장담하며 음악산업 진흥에 힘쓰겠다던 순간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시네요.

재정자립도가 평가의 가장 큰 기준이 되어 각종 문제를 야기시켰던 국립중앙극장의 경우, 당신은 예술은 돈 걱정 없이 해야 한다며 기업형 책임운영기관에서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으로 변경하셨지요. 책임운영기관이 성공한 제도였다고 자화자찬해오던 문화부와 국립극장에서 이리도 쉽게 태도를 바꾸시니 조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예술계에서는 장관의 그 결정을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아직까지 그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립발레단ㆍ국립합창단ㆍ국립오페라단ㆍ서울예술단의 기타 공공기관 해제와 순수예술창작법인으로의 지위변경도 아마 재정자립도의 비중을 낮추고 이름 그대로 예술적 성취도를 제고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그 와중에도 '돈 걱정 없이' 7년간이나 부려먹던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해체를 해버리니 말입니다. 합창단원들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연습생 신분으로 30만원에서 70만원을 겨우 넘기는 대가를 받으며 일궈낸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럼에도 40여명 단원의 인건비 3억이 아까워 합창단을 해체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장관님 본인도 헷갈려서 이런 결과들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부의 정책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조금 가닥이 잡히는 것도 같습니다. 작년에 가수 인순이 씨가 예술의 전당에 대관신청이 불허되어 문제가 되고 대중가수들이 집단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대중가요 전용 콘서트홀을 지어주겠다며 달래기에 나서신 적 있지요? 물론, 가수들이 대중가요 전용공간에 대한 압박을 위해 부러 그런 활동들을 벌였을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분리에 대한 문제제기였기 때문에 살짝 동문서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워낭소리>가 ‘대박’을 터뜨리자 독립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지셨죠? 대통령의 워낭소리 관람에는 장관님의 역할이 있었을 거란 얘기도 있더군요. 주무부처 장관이시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상영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옆자리에 앉은 이충렬 감독에게 ‘배고프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부추기는 장면은 좀 코믹했습니다. <워낭소리>의 인기에 대통령과 장관이 ‘묻어가기’전략을 구사하시니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더군요. 지난 1년간 독립영화와 관련한 정책은 계속 뒷걸음질만 쳤는데 말입니다. 물론, 장관과 대통령께서 힘써주신 덕분에 후퇴하던 독립영화 정책이 그나마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건건마다 대중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일일히 반응하며 인기에 영합하는 걸 뭐라고 부르는 지 아시는지요? 그걸 바로 포퓰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정책의 장기적인 관점이나 전망 없이 그때그때 이벤트식으로 정책을 펴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쭤봅니다. 유인촌 장관님, 당신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만 매진’하는 것이 중요한 예술지상주의자입니까, 아니면 ‘문화예술에도 경영효율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시장만능주의자입니까. 혹시 당신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단편적인 정책들을 즉흥적으로 내어놓기 바쁜 포퓰리스트는 아니신지요?

 

Trackback 0 Comment 0
2009.02.21 13:30

칠레, 두 개의 9.11

[남미액션투어 ①]칠레_산티아고
                                                                                      김강 _ 프로젝트 스페이스<LAB39> 디렉터
역사는 미국의 9.11과 함께 73년 칠레의 9.11을 아프게 기억한다. 폭격받고 있는 라 모네다궁.
▲ 역사는 미국의 9.11과 함께 73년 칠레의 9.11을 아프게 기억한다. 폭격받고 있는 라 모네다궁.

<남미액션투어_A.G.I.S 프로젝트>는 남미와 한국의 동시대성을 액션(Action), 장소성(Geography), 기록*정보(information)의 체험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시스템(System)을 제안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 예술가 7인은 2008년 10월 31일 ~ 12월 6일까지 약 37일 간 칠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브라질 등 남미 4개국을 방문했다. 워크샵, 예술이벤트, 만남, 대화, 기록,  이동 등이 포함된 본 프로젝트는 한국과 남미의 기획자 5인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남미액션투어의 기억을 다시 잡아내 그 단편을 현재에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이는 본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10월 31일 저녁 7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홍콩,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브라질의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2박 3일 약 27시간 만에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DEFORMS>이 처음으로 열리는 도시가 산티아고이기 때문이다.

11월 2일 오전 11시 35분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2명의 젊은 예술가가 우리를 맞는다. 마중 나온 그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에 출국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살짝 긴장했던 것이 무색했다. 그도 그럴것이 7명의 예술가와 한명의 어린이, 한명의 할머니 총 9명의 동양인1>이 부대를 이룬 그룹은 그 공항 어디에도 우리밖에 없었다. 이는 남미를 이동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모여 있는 우리 그 자체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표식’이 되는 사회. 그 사회에 우리가 이제 막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공항을 나서자 눈이 부신 날(生)것의 산티아고 태양빛이 ‘남미’의 색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항을 나서자 눈이 부신 날(生)것의 산티아고 태양빛이 ‘남미’의 색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었으나, 우리와 정확하게 1분 1초도 안 틀리고 12시간 차이인 이곳은 늦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미의 태양은 남미의 색을 만들어 내었듯이 북반구 한국의 태양은 한국의 색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얼핏 오방색이 떠올랐으나 그 오방색은 현재의 ‘우리’와는 너무 멀어보였다. 그러나 남미의 색은 도시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현현되고 있었다. 2대의 승용차에 짐을 나누어 싣고, 우리는 구겨지고 포개져서 숙소로 이동했다. 2년 만에 다시 보는 산티아고는 그다지 변화된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한국산 자동차가 2년 전에 비해 도로를 많이 질주한다는 것 외에는... 2004년 4월 1일 발효된 한칠레 FTA의 구체적인 현장은 한국에서는 칠레 포도주로, 칠레에서는 한국의 자동차로 그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좁고 길게 생긴 나라, 칠레. 대서양을 면한 해안선 길이가 6,435Km에 이르는 칠레는 300년 이상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1810년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1812년 칠레 독립을 선포하였다. 300년 이상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인지 칠레 인민들은 백인계가 약 95%를 이룬다. 칠레에 대한 한국의 다큐 등에서는 마푸체 족 등 인디오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사실상 칠레는 백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을 일컫는 메스티조가 66%, 스페인계 25%, 기타 유럽계 4%, 마푸체 족 등 5%의 인디오로 인종이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인디언, 혹은 인디오로 부르는데, 이는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해서 그곳의 원주민들을 인디오(Indio:에스파냐어로 인도인이라는 뜻)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인디오’들이 사실은 ‘인도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도, 그들을 ‘아메리카 인디오’, ‘인디오’ 로 부르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식민화하기 쉬운 대상, 즉 타자화하기 쉬운 대상으로 그들을 지칭하던 관습이 굳어져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통칭인 ‘인디오’는 제국의 역사와 함께 현재까지 존속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웅장하게 달리고, 도심에는 마포초(Rio Mapocho)강이 흐른다. 대도시의 강치고는 물살이 빠른 마포초 강은 피노체트의 군사 쿠테타 이후 몇 개월 동안 쿠테타 군인들의 야간 습격에 의해 살해된 소외된 계층 사람들의 처참한 시체가 둥둥 떠내려가던 강이었다. 마포초강은 이제 그 역사를 빠르게 잊고 싶은 듯 유속이 급하기만 하다. 

카사크로마 _ Drawing by 정정엽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 _ 카사크로마


우리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카사크로마(CASACROMA)라는 복합예술공간이다. 일주일동안 우리가 머무르게 될 카사크로마는 산티아고의 다장르 젊은 예술가들 9명이 공동으로 임대하여 작업실로도 사용하고, 전시, 콘서트 등의 예술이벤트등도 하는 일종의 복합 공간이다. 카사크로마는 2008년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DEFORMS>를 준비하는 팀들이 우리에게 제공한 숙소이다. 행사 준비팀이 우리에게 호텔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조금은 불편할 듯도 한 이 공간을 선택했다. 우리가 낯선 지역의 삶의 모습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곳을 ‘구경’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나마 그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급히 공수해 온 것으로 보이는 매트리스와 침낭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집에서 우리는 한시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지낼 것이다. 다음날 태국 작가 바싼 씨티켓(Vasa Shittiket)이 이곳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아래 포도주와 맥주, 바비큐로 시작된 환영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한낮의 남미, 바비큐는 익어가고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이 파티를 위해 카사크로마로 모여든다.

도시와 몸 _ 국제퍼포먼스 비엔날레 2008

<국제퍼포먼스비엔날레 _ DEFORMS>는 2006년 처음으로 칠레에서 개최된 이래, 2008년에는 아르헨티나, 우르과이와 네트워크 행사로 기획되었다. 이 비엔날레는 20개국 200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국제 행사로써, ‘도시와 몸’이라는 주제로 전시회, 라이브 퍼포먼스, 워크샵, 컨퍼런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월 4일 이 행사의 오프닝이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의 전시장에서 진행되었다. 이쯤에서 밝혀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일행이 <남미액션투어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남미를 37일간이나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공식적으로는 이 행사의 참여이다. 이 행사의 참여를 위해 국제교류재단,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먼 나라에, 이 많은 숫자의 한국인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에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즉 남미액션투어는 퍼포먼스비엔날레 행사참여를 위해 국가로부터 기초 경비를 지원받아 그 내용을 자체적으로 구성한 좀 복잡한 성격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제2회 국제 퍼포먼스 비엔날레 포스터


 
탱크와 폭격기를 기억하는 라 모네다 궁(La Moneda)

다음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라 모네다’ 궁으로 향했다.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닌 라모네다궁의 1층 정원과 지하 문화센터(Centro Cultural Palacio de la Moneda)는 일반인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다. 문화센터에는 남미의 전통 문화 전시실, 현대미술전시실과 영화관 등이 있다. 커다란 로비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된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영정이 설치된 참배단이 눈에 띄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기리는 참배단. 아마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이들을 기념하는 무슨 날이었던가 싶다. 2006년에 왔을때는 보지 못했다.

대통령 궁 지하의 문화센터 로비에 작품이 설치된 모습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곳은 197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쿠테타 군에 의해 죽음을 맞은 곳이다. 세계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 인민연합의 대통령 아옌데. 토지개혁 및 구리광산의 국유화 등 분배위주의 사회주의 개혁정책은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가들과 우파정치인들, 정치군인들의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다.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를 필두로 한 쿠데타 군은 1973년 9월 11일 대통령 궁을 탱크로 둘러싸고 공군 폭격기는 폭격을 시작했다.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 대통령 궁의 폭격을 시작으로 칠레에서의 살육은 시작되었다. 피노체트는 라모네다 궁을 접수한 지 일주일 만에 약 3만 여명을 학살하였으며, 사회주의자들, 동조자들, 진보 진영 인사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집단 처형한다. 지난 73년부터 89년 까지 약 17년간의 군사통치기간 중 사망자 3천여명, 실종 1천여명, 고문 불구자 10만명, 국외 추방자들이 100만 여명에 이르렀다.


두 개의 9.11

우리는 2001년의 미국의 9.11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칠레 군부와 손잡고 민중의 대표자를 살해했던 73년의 9.11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2006년 칠레에 가기 전까지는 그 사실에 대해서 무지했었다. 칠레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칠레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와 김윤환은 28년의 시간차가 있는 두 개의 9.11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몸으로 말하고 싶었다. 쓰여진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의 역사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시와 노래로 쓰여진다. 2006년 비엔날레 기간 내내 참여 작가나 칠레 친구들에게 면봉으로 귀를 파고, 우리에게 달라고 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했지만 재밌는 게 벌어지나 보다 하면서 적극적으로 귀를 파고, 그 면봉을 우리에게 모아 주었다. 한 무더기 모아진 면봉은 칠레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두 개의 9.11로 상징화되었다. 50호짜리 캔버스에 굵은 9.11과 얇은 9.11이 부착되는 동안, 민중의 자유를 노래했다는 이유로 손목이 잘려 죽은 칠레 가수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의 노래가 작은 소리로 흘러나왔다. 그 노래가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바닥, 땅, 기둥, 벽, 관객들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 개의 9.11이 다 만들어 지고 나자, 나와 김윤환은 <민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술관을 나와 거리로 나갔다. 함께 거리로 나온 관중들은 산티아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2006년 칠레 국립 미술관에서의 벌인 두 개의 911 퍼포먼스 

두 개의 911. 미술과의 바닥, 관객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다. 남미의 소리를 듣기 위해. 

현재 라모네다 궁 앞에는 아옌데의 동상이 서있다. 폭격이 시작되기 전 망명을 받아주겠다던 미국과 피노체트의 제안을 뿌리치고 끝까지 총을 들고 궁에서 싸웠던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쿠테타 군에게 궁이 포위당한 상태에서 칠레인들에게 라디오 생방송으로 전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 중의 일부가 그 동상에 새겨져 있다.

조국의 노동자들, 나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승리하려는 이 암울하고 참담한 순간에서 결국은 또 다른 사람들은 떨치고 일어날 것입니다. 전진하십시오. 머지 않아 넓은 대로들이 다시 뚫리고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그 대로 위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2>

겨우 찾은 자유와 정의가 물거품이 되어가는 순간에 누군가가 이 아픈 기억을 이겨내고 우리가 꿈꿨던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아옌데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라모네다 궁 뒤편에 자리한 아옌데 동상. 동상 뒤편에 그의 마지막 연설이 새겨져 있다.

연설하는 생전의 아옌데.


어른들도 ‘만들기’ 하는 산티아고 도서관

퍼포먼스 행사의 오프닝은 산티아고 시립 도서관에서 열렸다. 산티아고 중앙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MAC)과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현대식 건물의 도서관은 일반적 도서관의 기능 이외에도, 현대 미술전시장 및 어린이 도서관 등이 함께 있다. 카페가 위치한 지하층의 열린 광장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 반 전체가 도서관으로 견학 및 소풍을 온 것 같았다. 나는 곱단이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 마치 책이 있는 놀이터와 같은 인상이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는 ‘만들기’ 어린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지 문의를 했고, 진행요원들이 흔쾌히 재료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재료를 2벌 주는 것이었다. 나와 곱단이가 각각 자신의 ‘만들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만들기를 하고 있는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은 아이의 작업을 도와주는 보조자가 아니라 자신의 창조성을 발현하는 ‘창작자’가 된다. 즉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자신의 창조성을 끄집어 내어 무언가를 만들면서 그 창조적 작업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곱단이와 할머니를 참여시키고, 비엔날레오프닝 준비를 했다. 산티아고 도서관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참여한 곱단이와 우리 엄마에게도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비엔날레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도 유익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도서관내의 어린이 프로그램. 어른들도 아이들을 돕기 보다 자신의 ‘만들기’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칠레 어린이와 어른들사이에서 만들기를 하고 있는 필자의 딸 곱단이.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약간 어벙해 했지만, ‘만들기’ 수업은 언어 소통 없이도 얼마든지 소통 가능!


붉은 포도주와 쪽!쪽!쪽! 

빅토 휴고 브라보(Victor Hugo Bravo)가 큐레이팅한 남미 작가들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에서 오프닝 퍼포먼스가 열렸다. 오프닝 파티는 정정엽 작가의 아는 분이 협찬한 포도주로 시작되었다. 붉은 포도주 한잔씩 받아든 작가 관객등 약 500여명은 약간의 들뜬 감정으로 비엔날레의 첫시작을 지켜보았다. 비엔날레 오프닝 이후 매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산티아고의 곳곳에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한국 작가들은 라모네다 궁 뒤편에 위치한 신문사 <Diario de Nacion> 의 내부 공간과 라모네다 궁 뒤쪽 마당에서 퍼포먼스를 하였다.

초여름의 초목이 신선한 공원의 곳곳에서 칠레의 젊은이들은 쪽!쪽!쪽! 하기에 바쁘다. 남미 사람들이라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태국작가 바싼은 비판적 시각이다. 유교사상이 내면에 깔려있는 동양에서 온 우리에게 이런 풍경은 낯뜨거운 것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바싼은 칠레의 젊은이들이 육체적 행위의 자유를 영위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성취로 착각할수도 있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말한다. 일견 그 비판이 타당해 보였지만, 대로변에서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50세가 훌쩍 넘은 바싼의 질투심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칠레는 한국과의 거리만큼이나 인종도, 문화도 많이 먼 듯이 느껴졌다. 그러나 식민지와 독재의 경험, 폭압과 그에 대한 저항의 시간들은 우리와 닮아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현재 메트로폴리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니폼화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한국도 거리에서 쪽!쪽!쪽! 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이 부디 오픈된 공간에서의 사랑의 행위만을 자유로 느끼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대통령 궁. 많지 않은 경찰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고, 잔디와 낮은 분수가 있다.

산티아고의 제일 큰 대로인 오이긴스 거리 한 복판에 위치한 라모네다 대통령궁. 1973년
쿠데타군에 의한 폭격을 목격했을 칠레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옌데는 이 궁안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죽음을 맞는다.

면봉으로 귀를 파고 있는 관객(싱가폴 예술가 LEE WEN)

두 개의 911 조형 작업을 마치고, 비엔날레 기획자에게 전달했다. 남은 면봉을 다시 입에 물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민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 오프닝 장면 이날 이후 이 행사는 18일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산티아고 지하철역의 대부분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내용은 주로 남미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들이다. 벽화의 형식도 페인팅에서 설치까지, 고전적인 방식에서 현대적인
방식까지 다양하다. 

지하철 역내 벽화들 상당한 수준의 벽화들을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쪽 쪽 쪽 정정엽의 드로잉

남미의 햇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티아고의 주택가 풍경

까사크로라마 젊은 작가들과 함께
산티아고 시내의 빅토르 하라 공연장. 그의 노래와 죽음을 기억하는 칠레인들은 피노체트가
물러나고 난 후 그를 기리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

* 각주

1> 본 프로젝트는 김강, 김윤환, 정정엽, 이호석, 손민아, 박지원, 백미라가 예술가로 참여했다. 김강, 김윤환의 자녀 김하(곱단이)와 김하의 할머니가 손녀를 돌보기 위해 함께 남미길에 올랐다.

2> 동상에 새겨진 원문은 < 전진하십시오. 머지 않아 넓은 대로들이 다시 뚫리고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그 대로 위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Mucho Mas temprano que tarde, de nuevo se abriran las grandes alamedas por donde pase el hombre libre para construir una sociedad mejor.>만 새겨져 있다. 스페인어 번역을 위해 마드리드에 사는 장경애씨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장경애씨는 아옌데의 연설문의 한 문단을 번역해서 보내주었다. 앞의 문장을 모른 상태에서 뒷 문장 하나만을 가지고는 아옌데의 마음을 알기 어려울 것이기에 문단 전체를 실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희의 귀환, 추억은 방울방울  (0) 2009.03.13
유인촌 장관, 정체를 밝히시지요  (0) 2009.03.02
칠레, 두 개의 9.11  (0) 2009.02.21
뻥튀기 장수 ‘꺼먹손’  (0) 2009.02.19
빅뱅을 지켜라!  (26) 2009.02.17
누가, 얼마나 바보인가  (0) 2009.02.12
Trackback 0 Comment 0
2009.02.19 11:03

뻥튀기 장수 ‘꺼먹손’

[기고]추억의 뻥튀기, 자본의 뻥튀기, 민중의 뻥튀기
                                                                                                        이민환 _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동네어귀에서 쌀이며 옥수수를 뻥뻥 튀겨주던 뻥튀기 아저씨는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동네어귀에서 쌀이며 옥수수를 뻥뻥 튀겨주던 뻥튀기 아저씨는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밑에 뻥튀기 장수가 우리 아파트 입구, 고가도로 아래에 있는 공터에서 곡물팽창사업(?)을 벌린다. 옛날 같으면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대목이라, 뻥튀기 장수들의 얼굴엔  화색이 가득했는데 요즘은 대형 사업장에 고객을 다 뺏기고 가난한 설을 맞이하려하니 떠돌이 뻥 장수의 얼굴엔 수심만 가득하다. 주문받아놓은 곡물들도 별반 보이지 않고 주위엔 구경꾼 하나 없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다가 한숨 같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마침내 부글부글 불가마를 터트린다. 그런데 웬일일까, ‘펑’ 하는 갑작스런 대포소리에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다. 강아지 한 마리만 뿌연 연기 속을 왔다 갔다 한다. 아! 뻥튀기 장수의 꿈은 이제 접어야겠구나. 늙기도 서러운데 객석이 텅 빈 차거운 무대에서 저토록 외로운 공연을 하다니! 

부곡동 시장언저리에 좀 특별한 뻥튀기 장수가 있었다. 손님들이 원하는 온갖 곡물들을 한꺼번에 섞어서 단박에 튀겨낸다. 특정한 곡물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다간 혼이 난다. 곡물들을 섞을 땐 그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방면에는 자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달인이라고 항상 큰소리를 쳤다. 튀겨진 곡물들을 곧장 기계로 빻아서 아주 고운 미숫가루로 만들어 준다. 율무, 검정콩, 조, 수수, 쌀, 보리 등으로 만들어진 뻥튀기 미숫가루는 양도 많고 칼로리도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론 그저 그만이다. 연신 자기자랑을 늘어놓으며 손님들에겐 고자세인 뻥튀기 노인을 바라보며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도 이 분 문하에 들어가서 창업수업이나 받아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토록 자기직업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뻥튀기 달인도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내 기억의 창고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뻥튀기 장수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꺼먹손’이라 불렀다. 초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이니까 벌써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나보다. 우리 동네 골목어귀에는 뻥튀기 튀밥장수가 한분 계셨다. 씻을 물도 없는데다 조개탄으로 불을 때다 보니 손만 쳐다보면 달아나고 싶었다. 튀밥장수 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손의 거칠기로 보아  험한 일을 하다가 튀밥장수로 눌러앉은 모양이다. 시커먼 손, 특히 손톱 밑에는 석탄가루가 끼어있어 더욱 흉측스러웠고 땀이 나면 그 손으로 이마나 볼을 문질러 얼굴전체가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그의 아들이 내 친구였으니 어림잡아 마흔 전이었을 것인데 예순 먹은 영감처럼 늙어보였다. 우리들은 그를 ‘꺼먹손’이라 불렀고 꺼먹손은 튀밥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다 만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은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쳐주고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면 그 시커먼 손으로 튀밥을 한 웅큼씩 집어준다. 그곳은 꺼먹손에겐 고단한 일터였지만 우리들에겐 즐거운 놀이터였다. 그가 튀밥을 튀기려고 하면 우리들은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코를 씰룩거리면서 눈을 질끈 눌러 감는다. 멀리 비키라고 소리를 질러도 가까이서 꿈쩍도 안한다. 터지는 즉시 철망 밖으로 튀어나온 튀밥을 주워 먹기 위해서다. 튀밥 이삭줍기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였다. 서로 많이 주웠다고 우긴다. 철망에 걸려있는 튀밥을 빼먹는 재미도 제법 솔솔하다. 아이들은 악어새처럼 철망에 달라붙어, 철망사이에 끼인 튀밥까지 먹어치운다,  

어느 한적한 날, 여느 때처럼 꺼먹손이 불가마를 돌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내가 말했다. “준기 아부지, 나도 한번 돌리보입시더.” “그래, 한번 돌리바라.” 나는 꺼먹손 자리에 앉아 불가마의 손잡이를 잡고 정성스럽게 돌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뜨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부러워할까, 어깨에도 바람이 들어가 우쭐대고 싶어진다. “준기 아부지, 백환짜리 넣으면 천환짜리 됩니꺼?” “넣어 바라, 타 뿌리지.” “동전은 예?“ “동전은 녹아뿌린다.” 하도 많이 받아본 질문이라 별 생각도 없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얼라도 집어넣으면 어른 됩니꺼?“ ”에라이 이놈아“ 머리위로 꿀밤이 떨어진다. 나는 ‘꺼먹손’이 점점 존경스러워졌다. 보리쌀 한 됫박을 한 말처럼 부풀릴 수 있는 재주를 가졌으니 가난한 시절에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준기 아부지, 나도 얼른 커서 튀밥장사 하고 싶습니더.“ ”머라카노 야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돈도 사람도 뻥튀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본가는 돈을 뻥 뻥 튀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노동자는 죽도록 일하고 한 됫박도 못 얻어먹는다. 악덕 자본가는 노동자 알기를 ‘이삭 줍는 여인’이나 ‘악어새’처럼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는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을 파는 돈튀기 장사꾼들이 기승을 부리더니, 자기들 배만 불리고는 끝내 쓰나미 앞에 무너지면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바다에 빠트리고 있다. 준기 아버지한테 걸리기만 한다면 이따위 자본팽창업자(?)들의 재물쯤이야 휴지처럼 태워버릴 텐데!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뻥튀기 계급장을 달고 나온다. 작년 2월, ㄴ유업의 회장 손자인 ㅇ군은 8개월 된 나이로 지분가치가 9억1천 만 원이나 되는 주식을 증여받아 한 살 미만 나이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미성년자로서 제일가는 주식부자는 ㅅ사장의 17세 된 딸, 민ㅇ 양으로 작년 말 현재 536억 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몇 억대의 부동산을 증여받고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난해 대기업 신규 임원 승진자의 평균 연령은 45세인데 총수들의 자녀들은 평균 31세에 임원이 되었다. 박정희는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후 3개월 마다 중장, 대장으로 진급했고 전두환 소장은 정권탈취 후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중장, 대장,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유권자들이 잘 속을 수 있는 뻥튀기 정책도 뻔뻔스럽게 내놓아야 한다. 747 점보기에 태워주겠다고 뻥을 치더니, 한강 낙동강에서도 유람선을 태워주겠다고 꼬드긴다.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창출되고 경제효과는 수 십 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가, 올 초에는 4대 강 정비 사업을 통해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토목공사를 삽질로만 하던 그 옛날이 그렇게도 그리운가! 최근에는 정부 여당이 방송관계법을 밀어붙이면서 2만 1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겨댄다. 취업에 목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선 일자리 부풀기가 최고의 약인가 보다.  

부풀면 터지게 마련인데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하다가 다섯 명이 불에 타 죽었다. 소위 명박악법이란 치졸한 법들을 만들어, 가진 자에겐 더 많이 얹어주고 저항하면 손발을 묶으려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난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뚜껑이 들썩들썩 한다. 반성하지 않는다면 온갖 잔머리를 굴리면서 찬물을 끼얹어도 때가 되면 펑 펑 터질 것이다. 그땐 물대포를 쏠 필요가 없다. 화염병을 던질 필요도 없다. 분연히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에 결국은 무릎을 꿇고 뒤늦게 후회할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니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가 보인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꺼먹손이 환하게 웃으며 앉아있던 자리를 비켜준다.

“준기 아부지, 촛불로 횃불 만들 수 있습니꺼?” “물론이지, 마이만 모으면 된다.”

“사람하고 돈하고 어느 게 먼점니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법하고 정의는 예?” “알면서 와 자꾸 묻노, 근데 니는 요새도 튀밥장사 하고 있나?”

“안합니더. 외로와서 못하겠어예. 나도 여기서 그냥 눌러앉으면 안됩니꺼?”

                   

용산 참사 희생자 넋을 위로하며. 2009년 2월  이 민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인촌 장관, 정체를 밝히시지요  (0) 2009.03.02
칠레, 두 개의 9.11  (0) 2009.02.21
뻥튀기 장수 ‘꺼먹손’  (0) 2009.02.19
빅뱅을 지켜라!  (26) 2009.02.17
누가, 얼마나 바보인가  (0) 2009.02.12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의 세상이 도래하다.  (4) 2009.02.06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