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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4.09 삶과 예술이 결합된 공공미술 지원 사업
  3. 2009.04.06 은폐와 망각의 역사에 저항하는 예술
  4. 2009.03.24 21세기 유목민을 위한 작은 집
  5. 2009.03.16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6. 2009.03.13 리얼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는 없다!
  7. 2009.03.08 망루(望樓)는 망루(亡淚)다!
  8. 2009.03.04 발파라이소,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산동네
  9. 2009.03.02 보이지 않는 위협 (1)
  10. 2009.01.05 다시, 전위와 실천, 행동의 아방가르디즘을 위하여!
2009. 4. 15. 12:13

현실미학의 비판적 육성을 들어라!

[전시리뷰]이종구의 오지리 미학과 현실주의 의미론
                                                                                                  김종길 _ 미술평론가, 컬처뉴스 편집위원
이종구는 절망의 대지 위에 건강한 한우를 세웠다. 한우는 ‘삶’이라는 급박한 실존의 초상으로 새겨진 이 시대의 아버지며, 농민일 것이다. <검은대지, 질주>
▲ 이종구는 절망의 대지 위에 건강한 한우를 세웠다. 한우는 ‘삶’이라는 급박한 실존의 초상으로 새겨진 이 시대의 아버지며, 농민일 것이다. <검은대지, 질주>

지금, 갤러리 ‘학고재’에서 이종구의 <국토, 세 개의 풍경>이 열리고 있다.(1) 1976년 <이종구 습작전>이후 1982년 미술동인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의 창립동인으로 참여하고, 1986년 ‘그림마당 민’에서 <땅의 사람들>로 본격적인 민중미술을 발표해 온 그는, 그동안 1994년 ‘가나미술상’ 수상과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2005년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20여 년 동안 미학적 공간이었던 고향 오지리에서 나아가 ‘국토’ 연작을 시도하고, 민중미술의 시선을 세계적 지성으로 확장한 <주인을 찾습니다-이라크․이슬람 기행전>(2003), <두 개의 방: 대추리-바그다드>(2006) 등은 그의 현실주의 미학이 어떤 절정에 와 있음을 목도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선 농촌의 가장 당면한 문제로 부각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을 ‘한우의 초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검은대지’연작은 한층 농익은 화법과 언어로 새긴 시대의 암각화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그 외 ‘살림’과 ‘만월’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이 땅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만월’의 작품들이 풍경의 보석처럼 빛나는 것은 그곳들이 모두 ‘미륵’의 여명을 간직한 상징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참여했던 ‘임술년’과 오지리를 통해 완성한 ‘현실주의 미학’, 그리고 <국토, 세 개의 풍경>이 남기는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982년, 남한의 현실과 ‘임술년’의 출현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 ‘임술년’은 1982년을 말하고, ‘구만팔천구백구십이’는 1982년 당시 남한 국토의 총면적을 뜻한다. 2008년 기준 남한의 국토 면적은 10만32㎢이니 27년 전 남한의 국토는 지금 보다 작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하여, 임술년 간지(干支)와 면적이 상징하는 바는 ‘지금(1982년) 이곳(남한의 땅)’이라는 당대적 절실함 혹은 구체적 실존자각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다.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는 ‘임술년’(1982)이란 시대성과 ‘구만팔천구백구십이’(우리나라의 총면적수치)란 장소성, 그리고 ‘~에서’란 출발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다. 즉 “지금, 여기서”라는 소박한 발언인 것이다.  -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 창립선언문 중

1982년 10월,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이하 임술년)라는 다소 긴 이름의 미술동인은 관훈동의 덕수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이종구를 비롯해 박흥순, 송창, 이명복,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 등 중앙대 동문들 중심으로 결성된 7인의 이 동인은 1987년 해체를 선언하기까지 비판적 현실인식을 극명하게 표출해 냈다. 그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현실의 수용과 가치관의 성찰, 그리고 새로운 전통의 모색이 필연적”임을 강조하며, “우리가 갖고자 하는 시각은 이 시대의 노출된 현실이거나 감춰진 진실”이라 밝히고 있다. 선언문 내용에서 살필 수 있듯이 <임술년>동인들은 ‘현실’에 대한 미술적 모색이 주요한 미학적 테제였음을 인지할 수 있다.

<연혁-아버지>, 1984,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창립전이 끝나고 이듬해 봄, 이종구는 《중앙미술대전》에서 <장․3.25㎡상황>이란 작품으로 차석을 수상했는데, 그는 『중앙일보』(1983.5.7)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가 본 현실, 그리고 현실에 살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앞으로 더 현실적인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겠다”고 당차게 발언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현재적 시간만이 존재하는 추상공간이 아니라 그 시대와 민중적 삶이 역사적 사건으로 공존하는 체감공간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현실’은 대상화된 공간의 미의식을 벗고 완전히 그 대상으로 포복해 들어간 현실, 있는 그대로의 실체, 허구적 인식을 뛰어넘는 ‘앎’의 순수한 날것이어야 했다. 1983년의 <장․3.25㎡상황>이 1970년대의 회화적 이상으로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극사실주의 도시풍경이었다면, 1984년 <임술년>동인전에 출품한 <연혁(조부)>와 <연혁-아버지>는 비판적 현실주의의 사실성이 현실미학의 뿌리로 새롭게 영글기 시작한 내부혁명에 다름 아니었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작가 이종구는 그의 고향 ‘오지리’를 통해 현실미학의 테두리를 확장해 오면서 그만의 독특한 민중미술의 숲을 일궈냈다.

농촌의 현실이 응결된 오지리 미학 

1970년대 말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의 바람이 단색조 화풍의 시대를 흔들 때, 청년 작가들은 새로운 예감을 받아 들이 듯 하이퍼리얼리즘의 형식미학을 차용했고, 이종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삶과 예술이 분리되었던 것을 통합한 뒤 그것을 묶는 고리로 ‘현실’을 상정하고, 다시 그 ‘현실’을 미학적 화두로 깨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졌다. 통상적으로 형식과 내용을 작품 컨셉의 두 축으로 본다면, 이종구의 회화적 개념은 그의 고향 ‘오지리’에 집중 되었다. 단지 오지리의 풍경이 아니라 온갖 부조리한 모순의 실체로서, 나아가 이 세계의 구조적 해체-세계화의 폭력이 미치는 현장이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맨홀이고, 그래서 미적 표현의 형식조차도 오지리에서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임술년>의 이종구가 지향했던 미학은 ‘오지리 미학’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제3세계 국가의 마을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한의 작은 마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이 가장 끝지점에서 일렁이는 파고의 해안가였다. 이종구는 오지리를 통해 이 현실 세계의 이면을 갈파했던 것이다.

오지리 미학의 형식적 변화는 캔버스를 쌀부대로, 도시풍경을 오지리의 풍경과 인물로 바꾼 것에서 일차적으로 찾아진다. 1983년까지 그는 ‘캔버스에 유채’를 썼다. 그러나 오지리의 현실을 표현하기에는 캔버스가 부적절했다. 오지리의 현실은 오지리의 오브제에 의해 표현되어야만 했다. 오지리는 지극히 평범한 농촌이었고, 그의 뿌리는 농부였다. 그가 처음 오지리로 회귀한 뒤 선택한 주제는 ‘가족사’였는데, 농부의 가족사는 바로 그것, 즉 ‘쌀부대’에 그려져야만 했다.

내가 농부를 그리면서 미술재료인 캔버스나 고급종이 대신 헌 쌀부대를 화폭으로 사용한 것은, 검게 그을린 노동하는 농부의 진솔한 초상을 화려한 재료에 함부로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았거니와 농부의 삶과 유기적인 재료로써, 그리고 현대미술의 개념인 오브제가 가지는 상징성과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3)
 

오지리 김씨2, 비닐부대에 유채, 1986

대지를 일구는 농부들처럼 화가 이종구는 쌀부대에 ‘현실’이란 미학을 심고 가꿨다. 쌀부대에 그린 첫 작품 중의 하나인 <연혁-아버지>(1984)를 보자. 화폭이 된 쌀부대는 이미 회화의 대상이 된 ‘아버지’가 아니어도 당대의 시대성과 현실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적 인쇄 언어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쌀부대의 앞면 “정부양곡 찐보리쌀”과 단순하게 디자인 된 보리의 심볼은 25년이 흐른 지금, 과거 가난한 농촌의 상징으로 읽힌다. 뒷면에 인쇄된 “찐보리쌀의 특징”과 함께 “우리 모두 보리혼식으로 건강을 유지하자”는 표어는 깊게 패인 주름과 검게 그을린 피부,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아버지 초상과 대비를 이룬다. 이 대비적 상징과 은유의 맥놀이가 이종구의 새로운 미학적 테제였다. 화폭이 된 쌀부대는 더 이상 보리와 쌀을 담는 종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회화적 의미를 발산하게 되었으며, 거기에 덧붙인 회화적 장치들은 인쇄된 기호들과 ‘대구’를 이루며 의미파장의 진폭을 상승시켰다. 종이 부대와 달리 <오지리 김씨2>(1986)처럼 비닐 부대에 그린 회화도 다르지 않다. 녹색 활자로 인쇄된 “정부수매양곡” 양 옆으로 그려 놓은 ‘김씨’와 ‘소’는 정부의 수매를 믿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한 농군의 팍팍한 노동을 떠오르게 한다. 이 규격 부대 몇 개를 채워야 자식 공부며 가족 살림을 해 나갈 수 있을 런지…. 마른 논의 갈라진 흙처럼 쩍 터져버린 오지리 김씨의 주름과 어두운 낯빛이 비닐 부대의 씨줄날줄에 걸려 고심에 빠져있다. <워낭소리>의 소처럼 노동이 삶의 전부여야 했던 김씨의 소도 살팍진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이 쌀부대에는 당당히 ‘검’이라는 검인이 박혀있다. 김씨에게 있어 노동의 잉여가치란 쌀의 수매가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묵묵히 웅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이종구의 ‘쌀부대 회화’는 ‘쌀부대’라는 오브제의 생생한 육성과 함께 혼합되어 ‘현실’이란 리얼리티를 뚜렷하게 구현해 냈다.

국토-오지리에서,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꼴라쥬, 1988 

오지리 풍경과 인물에 대한 묘사는 오지리 내부로 수렴되지 않고, 당대 현실과 시대가 투영된 남한의 농촌으로 확장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칠레나 멕시코, 인도네시아와 몽골의 농촌풍경 또한 오지리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역적 특수성에 의한 상황의 시차적 관점은 다르겠지만, 거대 자본 권력의 신자유주의 망령은 내부의 합의와 저항조차도 무력화 시키면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로서 이데올로기 노선 투쟁과 탄압이 일상화 된 남한의 상황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그 어떤 것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민주적 삶을 지향하는 평범한 요구조차 ‘정치성’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오지리의 풍경은 정치적 풍경이라 할 수 있으며, 인물들도 그 정치적 시선에 의해서만 더 깊이 있게 이해될 수 있다. ‘농민화가’ 혹은 ‘농촌화가’로 곧잘 불리는 이종구의 예술적 정치성은 오지리에서 탄생한 것이지만, 그는 농촌과 농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응결된 현실의 언어로 시대의 풍경을 새긴 탁월한 현실주의 작가라 할 것이다. 농민 출신의 화가를 통상 ‘농민화가’라 부른다면, 이종구는 농민화가가 아니다. 오히려 “농촌 생활이나 문제 따위를 소재로 한 문학”을 ‘농촌문학’이라 할 때 그는 ‘농촌미술’의 범주에 들 것이다. 농촌미술가 이종구의 정치성이 잘 표현된 작품 중의 하나는 <국토-오지리에서>(1988)이다.

민주화의 들끓는 투쟁에 의해 19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해에 치러진 국민의 직접 선거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세력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고, 1988년 2월 25일 제 13대 대통령에 노태우가 취임하였다. 1988년에 제작된 <국토-오지리에서>는 찢겨진 대통령 선거 포스터가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화면 중심에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라는 당선사례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선거 얼마 뒤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종구는 쌀부대 종이 위에 실제 포스터와 세계의 이슈를 보여주는 잡지를 꼴라주 하였고, 화면 하단에 세 명의 오지리 어른들을 그려 넣었다. 어른들은 양지 바른 길가에 앉아 선거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벼를 수확했을 1987년의 가을과 겨울 동안 마을은 선거로 들썩였고, 마을 사람 몇몇은 선거에 휩쓸려 지지층 확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자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 와중에도 민주니 독재니 군사정부니 하는 따위의 정치적 관심보다도 더 살만한 세상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고, 농사의 댓가가 제대로 인정받는 세상을 소망했을 것이다. 선거에 동원된 온갖 미사여구의 정책들과 유토피아적 개발 약속이 아니라 ‘농자천하지대본’의 근본을 세워주길 바라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포스터는 찢겨지고 바래졌으며, 환한 낯짝으로 승리를 약속했던 후보들은 빠르게 뜯겨져 나간 자리의 흔적들처럼 잊혀졌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당장 배추 값 폭락과 수세폐지 문제였을 것이다. 농민들의 굵직한 투쟁사를 보면, 1988년 수세폐지 투쟁에서 1991년 미국쌀 수입반대 쌀값보장 투쟁, 1994년 UR협상 반대를 위한 삭발과 혈서 투쟁, 1999년 WTO 반대 농가부채 해결집회, 2001년 쌀수입 개방반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 등 ‘세금’ ‘부채’ ‘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 명의 오지리 어른들의 표정에 담긴 근심은 앞으로 닥쳐 올 그런 불안의 그림자와 무관하지 않다. 파탄지경으로 내 몰린 오늘날의 농촌은 이미 그의 회화에서 숱한 징조로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조부상, 캔버스에 유채, 1980 

소리, 캔버스에 유채, 1980  

쌀부대, 그리고 농촌 현실의 정치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오지리 미학 중의 하나는 회화적 완성도를 높이는 그리기 형식에 있다. 1980년의 <조부상>이나 <소리>, 1983년작 <경고>와 달리 1984년부터 제작된 오지리 회화들의 표현 형식은 마치 농부가 호미나 쟁기로 논밭을 갈 때의 느낌을 전달한다. 투박한 흙의 알갱이들이 두렁과 이랑을 만들어 낼 때의 그 느낌 혹은 싸리나무 빗자루로 쓸어 놓은 마당의 느낌이 회화적 질감을 형성하고 있단 얘기다. 옛 그림들처럼 이것을 준법이라 한다면 이는 ‘싸리준법’이나 ‘이랑준법’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붓질들처럼 면을 칠해 쌓아 올리는 식이 아니라 일정하게 그은 선들이 작은 두렁을 이루고, 그것들이 이랑으로 묶이면서 전체적인 형상을 구현해 낸다. 붓의 긋기는 싸리 빗질과 닮아 있으나 상징적으론 산하와 들이면서 대지를 이룬다. 이러한 준법은 최근 작품들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국토, 세 개의 풍경이 남긴 의미

세 개의 풍경은 ‘검은대지’, ‘살림’, ‘만월’로 표상되는 세 개의 상징을 뜻한다. 그가 제시한 세 개의 상징어는 지금여기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과거와 이어져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표상(마음 혹은 의식에 현전한다는 의미에서)’의 맥락을 가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세 개의 표상언어를 통해 이종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2008년에 제작된 ‘검은대지’의 작품 주제는 ‘한우’다. 한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과 맞물린다. 주지하듯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수입을 중단했던 한국 정부는 2006년 “30개월 미만, 뼈를 제거한 고기”를 조건으로 수입협상을 재개하였고, 그때부터 광우병에 대한 관심과 언론보도가 증가되었으며, 마침내 2008년 4월 18일에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부위를 포한함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이 체결되자 ‘광우병 논란’이 일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2008년 5월부터 12월까지 인터넷을 통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에 138만 명이 참여했고, 6월 10일에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를 통해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이 요구되었다.

검은대지-9805, 한지에 아크릴릭,2008

검은 대지-2123, 한지에 아크릴릭,2008

이종구의 ‘검은대지’는 한우의 눈빛으로 쇠고기 수입과 ‘맞짱’ 뜨려는 의도를 깔고 있는 듯하다. 이 ‘맞짱’의 회화적 힘은, 붓의 힘찬 긋기와 묘사로 완성한 한우의 당찬 맵시, 그리고 그 몸짓이 발산하는 의미에 있다. 또한 그의 한우들은 대부분 코뚜레를 한 일소들인데, 이 소들은 오직 살코기 제공만을 위해 사육되는 소들과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어떤 소는 화면 밖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어떤 소는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큰 소리로 울고, 어떤 소는 지축을 흔들며 질주하고 있다. 가령 <검은대지-9805>의 소는 핏발 선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꿈쩍 않고 당당히 서서 휘어진 뿔과 코뚜레를 내보이며 어둠 밖을 응시하는 이 소의 묵언은 투쟁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검은대지-무자년 여름>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컨티넨털(Continental) 항공사의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바퀴를 내리는 순간 앞의 소와 똑 닮은 누런 한우가 ‘음매’를 길게 내 뿜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하여 이 장면을 보면, 소의 울음이 피부로 파고들어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검은대지-질주>의 소는 ‘싸움소’다. 한바탕 투우를 치르고 있는 이 소가 질주하는 곳은 미국이나 캐나다일 것이다. 이마와 옆구리의 핏자국으로 보아 몇 번의 몸싸움이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이 소는 두 눈을 부릅뜨고 꼬리를 후려치며 거대한 몸짓으로 ‘무소의 뿔’을 내지르고 있다. ‘검은대지’의 속뜻은 시커멓게 타버린 농민의 마음이자 더 이상 땅의 희망을 상상할 수 없는 절망의 영토를 상징한다. 이종구는 이 절망의 대지 위에 국토의 빛깔로 그린 건강한 한우를 세웠다. 한우는 ‘희망’이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삶’이라는 급박한 실존의 초상으로 새겨진 이 시대의 아버지며, 농민일 것이다.

빨래1, 한지에 아크릴릭, 2008

‘살림’의 언어들은 ‘검은대지’와 많은 부분 중첩된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대추리의 기억>은 <검은대지-무자년 여름>의 경우처럼 인물과 비행기의 상징을 통해 강제 이주에 대한 오마주를 재현하고, <풍경-봄,여름,가을,겨울>처럼 대지는 델타항공이 뒤덮은 그림자에 의해 검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작품은 <빨래>연작이다. 일명 농부들의 유니폼인 몸뻬와 추리닝, 꽃무늬 셔츠에서 뚝뚝 떨어지는 옷의 눈물은 화면 귀퉁이에 붙여놓은 지적도와 토지대장에 의해 그 의미가 증폭되고 있다. 농토의 주인이 도회지 큰손들로 바뀌면서 농민들의 삶터가 붕괴직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빨래 연작은 농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상실과 실존을 은유하기에 색의 선명함이 더 강렬하게 부각되고 있다.         

만월1, 한지에 아크릴릭, 2003 

흰 보름달 아래 펼쳐진 검고 투명한 풍경 ‘만월’은 예지적 전망의 언어를 타전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만월’의 검은 대지는 소가 딛고 선 투쟁의 대지와는 사뭇 다르다. ‘만월’에 녹아 있는 풍경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곳은 두텁게 쌓인 유구의 역사와 신성한 기운을 간직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만월 아래에서 수천, 수만의 세월을 견디며 풍경의 영성을 이룬 이곳과 그래서 이 땅의 민중들이 곱게 새겨놓은 ‘모심’의 흔적들을 채굴했다.

삼존불,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8

<삼존불>을 보자. 이 삼존불은 서산마애삼존불이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이 삼존불은 서산시 운산면 강당골 계곡의 절벽에 있다. 가야산의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 위치한 큰 암벽을 안쪽으로 파내어 고부조로 새겼는데,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또한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삼존불의 발견과정에 대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이 보원사터 조사차 이곳에 왔다가 나무꾼에게 부처님이나 석탑 무너진 것을 본 일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무꾼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지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여래(如來)가 누군가. 그는 “진리에 따라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가. 삼존불 중앙의 여래는 석가모니 부처이며, 그 옆에 미래불인 미륵이 앉아 있다. 40여년 동안 보호각에 갇혀 있던 삼존불이 지난 2006년 보호각이 철거 되고 제 모습을 보였을 때, 여래의 미소는 세상으로 스미기 시작했다. <부여-잠자는 부처>에도 세월을 견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몇 아름으로 나무를 잴 수 있을까? 나무는 푸른 어둠으로 빛나는 신성을 내 보인다. 손장섭이 그린 나무들이 ‘신목’의 ‘빛울(光背)’을 발산하듯이 이 나무도 그런 기운을 내장하고 있다. 백제의 도시 부여는 웅혼하고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하여 백제불교의 문화적 정신은 현대인에게 문명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치유하는 영적 가치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이종구의 만월은 우리 풍경이 보여주는 그런 내적 치유의 장면들이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문명의 야만이 결코 뒤덮을 수 없는 장엄한 역사적․신화적 풍경들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역사의 무게 따위의 중압감이 아니라 나무꾼의 소박한 현실적 시선일 때 더 명징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가 국토풍경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낱 생명들의 모심과 ‘살림’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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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시기간은 2009년 3월 4일부터 4월 26일까지
2>『2008년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연차보고서』(국토해양부. 2008) 참조.
3> 이종구, 『땅의 정신 땅의 얼굴』, (한길아트, 2004), 70쪽
4>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자료 참조. 서산마애삼존불상의 소재지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이며,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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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9. 10:39

삶과 예술이 결합된 공공미술 지원 사업

문광부,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
이주호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 사업을 진행한다.
▲ 문화체육관광부는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 사업을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 뉴딜 프로젝트 일환인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사업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한다. 이 사업은 <우리동네 미술공간 만들기>와 <길섶미술로(路) 꾸미기> 두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선정절차를 거쳐 공공미술의 새로운 실험들을 지원한다.

<우리동네 미술공간 만들기>는 마을회관, 경로당, 주민자치센터 등 전국 12개소 공동체 공간을 미술공간으로, <길섶미술로(路) 꾸미기>는 가로변, 산책로 쉼터, 하천변 전국 12개 길섶을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그룹 및 단체는 누구나 공모 가능하며 공모 기간은 4월 27일부터 29일까지다.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홈페이지(www.maeulmisul.org)에서 공모 신청서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등기우편으로 제출해야 하며 결과는 5월 22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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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6. 08:57

은폐와 망각의 역사에 저항하는 예술

[I Love Automata]②제노사이드(Genocide)를 기억하기 위하여
                                                                                                                전승일 _ 독립애니메이션 감독

<오래된 추방> (전승일作_무한반복 애니메이션_2009)
▲ <오래된 추방> (전승일作_무한반복 애니메이션_2009)

제노사이드의 개념화와 유엔 협약

흔히 ‘국가권력(혹은 그에 준하는 권력체의 대리집단)이 특정 집단구성원을 절멸할 의도를 갖고 체계적인 계획 속에서 실행한 집단학살’로 정의되는 ‘제노사이드(Genocide)’는 인종이나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cide를 결합하여 만든 합성어로, 폴란드 출신 법학자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에 의해 1943년 처음으로 개념화되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를 목도한 렘킨은, 제노사이드는 “어떤 집단을 절멸할 목적에서 그 집단 구성원들의 생활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토대들을 파괴하기 위해 기도되는 다양한 행위들로 이루어진 공조 가능한 계획”을 뜻하며, 제노사이드의 목표는 “한 집단의 정치 제도와 사회 제도ㆍ문화ㆍ언어ㆍ민족 감정ㆍ종교ㆍ경제적 생존 기반을 해체하고, 개인적 안전ㆍ자유ㆍ건강ㆍ존엄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생명까지 파괴”하는데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였다.

유엔과 국제사회 속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반인도성을 확인하고, 그 범죄를 명령하고 집행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범죄를 조장하는 ‘철학’을 수립하고 가르친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여,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나라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집단책임까지도 물어야 한다는 렘킨의 제안과 주장은 1946년 유엔 총회에서 의제로 상정되었고, 결국 “정치적ㆍ종교적ㆍ인종적 혹은 어떤 다른 이유”에서 자행된 제노사이드 범죄를 비로소 국제법상의 범죄로 공인하는 인류 최초의 유엔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1946년의 제노사이드 결의안을 바탕으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이 92개국의 찬성으로 공식 채택되었다.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은 “①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② 집단 구성원에 대해 중대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등을 제노사이드 범죄 행위라고 적시하고, ‘제노사이드 범죄를 저지른 자ㆍ공모한 자ㆍ교사한 자ㆍ미수자ㆍ공범자’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국제 제노사이드 방지협회 웹사이트 (www.preventgenocide.org)


1948년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의 정신은 20세기 들어서 유난히 거세게 일기 시작한 집단학살의 야만적 물결을, 인류의 이름으로 이성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따라 저지함으로써 세계의 평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2005년 기준,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모두 137개국이며, 인도네시아ㆍ나이지리아ㆍ일본 등 50개 국가는 아직도 협약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이 채택된 후 무려 38년이 지난 1986년에 이르러서야 비준되었다.


은폐와 망각의 역사, 코리안 제노사이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한국 정부ㆍ미군에 의한 학살이 좌익보다 10배는 많다.”

솟대 오토마타 제작을 위해 2D 애니메이션으로 미리 만들어 본 필자 작품 <오래된 추방> 속의 신문 기사(2006. 6. 23_경향신문)이다. 무한반복 애니메이션 <오래된 추방>은 크랭크 방식으로 작동하는 오토마타를 위한 사전 작품으로, 추후 연재될 예정인 <예산족 애니메이션 프로젝트>(2008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한국전쟁전후 한반도 남단에서는 무려 100만여 명의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90%는 대한민국 국군ㆍ경찰ㆍ우익단체 그리고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적인 집단학살이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보도연맹과 예비검속 학살 30만여 명, 형무소 수감자 학살 4∼5만 명, 유격대 토벌 관련 10만여 명, 부역자 색출 과정 희생자 10∼20만 명, 미군 폭격 희생자 10만여 명, 인민군과 좌익단체에 의한 학살 10만여 명 등이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는 무려 7,775건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 진실규명 신청되었는데, 이 가운데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은 19건(신청건수 903건 병합)에 불과하다.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 <망루전(亡淚戰)> (2009. 3. 11∼4. 28_평화박물관)
(왼쪽부터 성낙중ㆍ배인석ㆍ전미영 공동作 / 이윤엽作 / 나규환作)


독일의 전 대통령 바이츠체커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되어 버린다. 과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새로운 감염의 위협에 노출된다.”

불행히도 코리안 제노사이드는 2009년 1월 ‘용산’에서 다시 자행되었다. 그리고 망자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하고, 은폐와 망각의 역사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의 노력은 미술ㆍ연극ㆍ만화ㆍ음악ㆍ문학ㆍ공연ㆍ영상 등 다양한 장르에서 현재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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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일 _ 독립애니메이션 감독
스튜디오 미메시스(
www.mimesistv.co.kr) 대표감독으로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고, 최근 오토마타 블로그(www.iloveautomata.com)를 개설하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작품: <내일인간>(1994), <미메시스TV>(2000), <하늘나무>(2003), <Cold Blood>(2004), <오월상생>(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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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4. 09:20

21세기 유목민을 위한 작은 집

[전시리뷰]안규철 전 (3.11 - 4.26, 공간화랑)
                                                                                                  이선영 _ 미술평론가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2.6 평방미터의 집’이라는 부제로 열린 안규철 전은 개인이 홀로 칩거하고 이동하기에 적합한 크기와 형태를 지닌 집에 대한 아이디어들과 모형, 그리고 실제의 집에 근접한 입체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목재 합판 등으로 만들어진 1인용 집은 햇빛을 받아들이는 널찍한 천정 창과 열리면 바닥으로 연장되는 벽으로 되어 있고, 침대와 책걸상이 구비되어 있다. 자투리 공간에 책들이 꽂힌 미니 책꽂이 겸 침구 수납대가 설치되어 있어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설계한 흔적이 보인다. 이 작은 집은 자족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이 밖으로 펼쳐져 있을 때 햇빛과 별빛과 바람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문과 벽을 닫으면 박스 형태가 된다. 박스는 이 집이 완전 밀폐될 수 있다는 것과 이동가능성을 예시한다. 자동차에서 전형적이듯이, 밀폐와 이동은 서로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이 된다.

안규철의 작은 집은 머무름과 떠남이 이항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구조 속에서도 많이 할애된 기능은 독서와 수면을 위한 공간이다. 독서나 수면은 이동 가능한 이 집처럼 내면이나 무의식으로의 여행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드러난다. 이 집에는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전등 외에 콘센트가 필요한 도구는 없다. 홀로 있음을 무력화시키는 기계들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이 집은 거주할 수는 있지만, 캠핑카나 컨테이너 같은 실제 집의 축소판이기 보다는, 생산과 소비 활동으로 번잡한 속세와 거리를 둔 특화된 집에 가깝다. 단출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도 나는 그것들은 마치 시인이나 수도사의 방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물질적 풍요에 헛배 부른 현대인은 시간의 가난뱅이인 만큼이나 공간의 가난뱅이다. 이미 현대생활의 많은 부분이 비좁은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시원, 쪽방, 구루마, 망루, 천막, 자동차 등등. 대부분이 이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억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비좁은 것과 작은 것은 다르다. 이동 가능한 안규철의 작은 집은 머무름과 떠남이 이항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안규철이 고안한 집들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작가는 이미 자세한 시방서를 가지고 있을 듯싶다.

스케치는 실제 주거공간보다 자유롭게 작가의 발상을 펼쳐낸 것으로, 접고 펼칠 수 있는 집, 바퀴달린 집 등 1인용 포터블 하우스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매뉴얼로 구성된다. 작은 모형들은 접히는 지붕, 상자형태의 공간, 계단으로 연결된 3층 구조물 등으로, 실제로 3차원 상에서 구현될 수 있는 축소 모델들이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사람다리의 연결된 모형은 달팽이나 거북이, 소라 같은 동물들에서와 같은 몸-거주 복합체를 떠오르게 한다. 안규철이 고안한 집들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작가는 이미 자세한 시방서를 가지고 있을 듯싶다. 전시장에 구현된 3채의 집은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일부가 구현된 것에 불과하다.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집들은 기능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이다. 그것은 아기자기한 내부구조나 시설이 아니라, 한사람이 은거할 수 있는 집약된 형태를 강조한다.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집들은 상징적이다. 
한사람이 은거할 수 있는 집약된 형태를 강조한다.

야외에 서 있는 다각형 원뿔형 집은 공격과 방어와
연관된 보다 긴장된 형태를 구축한다.

한 구멍을 하나씩 차지하도록 되어 있는 그것은 차이가 있을 뿐, 지배적 사회가 그러하듯 차이가 위계로 변화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고립된 그것들이 미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전체주의적인 힘에 무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다각형으로 조립된 둥근 주거지 내부는 푹신하고, 개방된 윗부분은 우산이 뚜껑이다. 안에서 발을 구르면 굴러서 이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야외에 서 있는 다각형 원뿔형 집은 공격과 방어와 연관된 보다 긴장된 형태를 구축한다. 구조물은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상황과 표정이 있다. 일인용 이동 주거지는 이중적이다. 인생이 그렇듯이, 홀로 있다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떠날 수 있다고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고립과 유폐가 아니라 타자와 더 행복하게 만나기 위해 자신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된다. 때로 그것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점과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한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몸은 직접 접속하기도 한다.
몸은 세계의 상징적 중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과 연결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창틀에 놓인 작은 구조물에 나타난 것처럼, 기하학적 입방체와 몸은 직접 접속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몸은 세계의 상징적 중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과 연결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건축적 형식으로 구축된 공간 역시 추상적이거나 중성적이지 않다. 공간은 건조해 보이지만 거주자의 욕망과 꿈이 스며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이, 그리고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 있다. 그곳의 거주민인 유목민은 주어진 경계 안에 온전히 속해야 하는 동질화된 압력으로부터 도피하면서도, 그 경계의 부당함을 침해하는 위반을 꿈꾼다. 자크 아탈리는 [미로]와 [21세기 사전]에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폭력이 활개를 칠 21세기는 각 개인이 고독 속에 들어 앉아 유목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사막화된 세계를 횡단해야 하는 유목인들에게는 직선과 속도로 설정되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이들에게 세계는 미로이며, 이를 통과하기 위해 진리 대신에 지혜가, 이성 대신에 계시가 필요하다.

안규철은 2004년 로댕 갤러리에서 발표한 대작 [49개의 문이 있는 방]에서 미로의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커다란 가방처럼, 이 작은 집들은 미로로서의 세계와 역사를 통과하기 위한 유목 도구일수도 있다. 자크 아탈리에 의하면 유목민은 자기 집을 가지고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으며, 주요 오아시스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뿌리의 개념이 점차 희박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민이나 소비자 혹은 노동자가 되듯이 앞으로는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유목은 오늘날 소비적 관광, 종교적 순례, 경제적 이주 등 다양한 양태를 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유목은 이주, 망명, 여행 같은 실제적인 이동이라기보다는, 로지 브라이도티가 [유목적 주체]에서 언급하듯, 고착성에 대한 모든 관념, 욕망, 향수를 폐기해 버리는 종류의 주체를 형상화한다. 이점에서 그들은 진짜 유목민처럼 소수자에 속한다. 그들은 경계 안에 속하기 위해 대기 중인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다음번에 펼쳐질 사막을 가로지르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브라이도티)이다.

그의 집이 가지는 가동성은 축적을 위한 전유나 착취가 아니라, 이질적 타자와의
상징적 교환을 극대화하는 상호 주체성의 감각을 고양한다.

안규철의 포터블 하우스는 이러한 비판적 지식인 및 예술가로서의 유목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유목민은 정주민이 구축해 놓은 경계를 위반하고 침해하곤 한다. 자크 아탈리는 유목민이 사납다는 전설과는 반대로 그들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도 없다고 본다. 그는 땅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뿐이다. 유목민은 현대의 도시로 상징되는 바의 거대한 축적의 공간을 벗어나 타자들과 방랑의 장소를 공유한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개방과 연대에 인색하지 않다. 그의 집이 가지는 가동성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이끌어 왔던 동기인 축적을 위한 전유나 착취가 아니라, 연결망 즉 이질적 타자와의 상징적 교환을 극대화하는 상호 주체성의 감각을 고양한다. 그의 작품은 21세기가 좋은 의미든 아니든 유목의 시대이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종이나 나무판 따위로 구현된 그 작품은 번쩍거리는 미래주의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유목하는 인간의 필수품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독서는 가상적인 유목 생활을 상징한다. 책은 다른 정보기기와는 달리, 모든 것을 즉시 앞에 갖다 놓을 수 있다는 환상을 고무하는 진리를 향한 직선 도로가 아니라, 미로와 같은 우회로와 불투명성을 가진다. 미로는 ‘광명으로 향함과 동시에 의식 깊숙이 숨겨져 있는 지역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아탈리)이다. 아탈리는 미로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지혜는 이제 시간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우고 경험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살펴보는데 있다. 미로들은 물리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공간으로 변형된 시간이며, 이 한정된 공간 안에 무수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여유 있게 보내는 누군가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의 집들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전시문의 367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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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6. 14:03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남미액션투어]칠레 _ 이슬라네그라
                                                                                         김강 _ 남미액션투어 기획자, LAB39 디렉터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11월 4일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가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1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산티아고의 갤러리, 미술관, 거리, 공원과 칠레 남서부에 위치한 발디비아(Valdivia)의 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또한 12일-15일은 아르헨티나, 21일-23일은 우르과이에서 네트워크 형태의 예술행사가 개최된다. 이렇듯 칠레라는 한 나라에서도 2군데의 도시를 비롯해 남미의 여러 도시와 여러 장소에서 예술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예술가들의 작품발표의 재료이자 표현이 바로 그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발표(전시)를 위한 예술작품의 물질적 속성이 예술가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고, 발표의 형식 역시도 그의 신체에 기인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통이 동시에 가능하다. 삶과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자신의 신체와 표현을 위한 여러 소도구들이 구비되면 미술관이든 거리이든 어느 곳에서나 작품은 제작과 발표가 가능하다. 또한 퍼포먼스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관객은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예술가가 촬영 후 다른 곳에서의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퍼포먼스 등이 등장하고 있어서, 직접 예술가들의 행위가 실연되는 것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구분해서 부르는 경향도 나타난다. 남미의 퍼포먼스 행사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중심축을 이루고 몇 개의 비디오 퍼포먼스 상영, 비디오 아트 상영,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다.


씨앗, 물고기, 가루, 깃발, 네트워크

11월 5일 늦은 오후부터 한국 작가들은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신문사(Diario de Nacion)의 너른 공간과 그 주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손민아의 퍼포먼스. 남미의 각 나라명이 한눈에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었다.


남미의 각 나라명은 한눈에 쉽사리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어 관객에게 제시되었다. 눈의 각도 즉 몸을 움직여 텍스트를 보려하지 않으면 그 텍스트는 독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야만 한다. 손민아가 제작한 석회로 만들어진 이미지텍스트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자신의 눈을 바닥에 댄 관객을 맞이했다. 텍스트 독해에 빠진 관객들 주위를 돌며 손민아는 서서히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이 함께 분 입바람으로 그 국가들은 뿌연 석회가루로 흩어졌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강렬한 연분홍색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복장인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정정엽은 관객들에게 칠레 시장에서 구입한 다종다양한 씨앗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퍼포먼스 말미에 투명 유리병에 색깔대로 부어져 행사장에 전시되었다. 사실상 도시인들은 씨앗을 만질 기회도, 씨앗을 자세히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지구반대편에서부터 쓰개치마를 입고 외출한 한국여성이 ‘씨앗’으로 칠레인들과 교통한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팝송 ‘We are the world’ 가 흐르고, 4개의 어항은 각기 다른 색깔의 물로 변화된다. 서식환경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되는 것.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는 ‘We are the world'라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현대인이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던 작은 어항은 커다란 어항하나로 통합된다. 통합의 어항, 'We are the  world의 어항'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제네바에 위치한 WTO로 부쳐지는 소포상자로 변환되었다.

김윤환의 깃발 퍼포먼스. 전세계 모든 국기를 모은 세계국기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전 세계의 모든 국기를 하나로 모은 세계국기가 신문사를 나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깃발을 흔드는 그의 곁으로 경찰이 다가오고, 행사 주최 측의 몇 명이 경찰에게 귀띔을 한다. 대통령 궁에 꽂힌 칠레 깃발 위로 넓게 휘날리던 ‘세계깃발’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깃발 위로 관객 1명이 올라탄다. 김윤환의 ‘세계국기’는 관객을 그 위에 태우고 여러 번 바닥을 지나는 동안 구멍이 났다. 너덜너덜해진 깃발은 길게 찢어져서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거리 위에서 넘실댄다. 몇몇의 작가가 찢어진 깃발의 일부를 기념으로 가져갔다.   

김강.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가 신문사의 어두운 구석에 세워졌다. 그리고 반자본, 반가부장, 반국가에 동의하는 일단의 관객들이 캠프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들은 제안자와 몇 가지 행위를 한 후 퇴장한다. 저항하는 네트워크의 결성, 그 자체가 퍼포먼스로 등장했다.

밤 11시, 한국 작가를 비롯한 페루,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작가의 퍼포먼스가 모두 끝났다. 밤거리로 나온 일단의 무리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11월 7일 이른 아침. 지난밤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여성 6명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은 이슬라네그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산티아고로부터 약 82KM의 거리에 있는 이슬라네그라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_ 바다, 흙길, 물고기의 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을 네루다는 1939년 출판사의 도움으로 스페인 출신의 늙은 사회주의자 선장에게서 구입했다. 그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이슬라 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

이슬라 네그라 마을풍경. 네루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정치활동은 늘 천둥처럼 느닷없이 다가왔기에 집필을 중단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2) 네루다는 이 집에서 여러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1969년에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를 수락한다.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여러 당들이 연합대통령후보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아옌데 지지 연설을 다닌다.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3년 라모네다 궁에서 쿠테타 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옌데가 사망한 지 12일 만인 9월 23일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이슬라 네그라의 마을 풍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집은 현재 네루다재단에서 관리하는 박물관이다. 살아생전 그가 살았던 집은 칠레 초등학생들의 단체 답사처가 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한 날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조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의당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과자, 초콜렛 등을 파는 이동상점이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길다란 과자를 입에 문 김하를 데리고, 우리도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이동했다. 네루다 박물관의 관람은 개별 관람은 불가하고 소집단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 또한 박물관 내부는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발파라이소의 또 다른 네루다 박물관도 같은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유명인의 생가는 그의 사후에 박물관으로 변하고는 하는데, 네루다의 집만큼 ‘박물관’ 다운 ‘박물(博物)’의 면모를 가진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수집품은 앙드레 말로가 앙크로와트에서 훔치려 했던 국보급 유물이 아닌 생활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몇 종의 수집품 선반은 밖에서도 잘 볼 수 있게 진열되어 있다.

네루다가 모은 유리병들. 

유리병, 재떨이, 마스크, 뱃머리에 붙어 있던 선수상(船首像)들, 나비 박제, 그가 외교관으로서 머물렀던 미얀마 등 현지에서 수집한 것들과 그의 수집병을 아는 친구들이 보내준 많은 물품들은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물품들의 향연이다. 온 집안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수집품 중의 일부를 이미 그가 살아있을 때 칠레 대학 등에 기증했다고 하니 그의 수집병은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차근차근 정리되어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마치 여러 시대의 유물을 한꺼번에 대면하는 듯 진귀한 감정과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루다의 수집품만 본다면 그가 민중시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사취미가 느껴진다. 하여 생전의 네루다도 그의 정적으로부터 이러한 호사취미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그가 어떠한 비판을 받았든 간에, 그의 호사취미로 인해 후세대들은 그가 살았던 시기의 여러 생활물품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물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나도 그의 집을 둘러보며 세계 곳곳을 한 눈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이 현재와도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은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89년 이후이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는 자물쇠로 굳게 잠겼던 이곳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칠레인들과 외국인들이 독재자의 눈을 피해 찾아 왔던 순례지이기도 했다.

이슬라 네그라 언덕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시인의 집을 나와 비포장 흙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고삐도 매지 않은 말이 언덕 위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모녀는 우리에게  ‘올라(ola, 안녕)’하고 인사한다. 야트막한 언덕에선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동네는 조용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찾아 올 만큼 세계적인 유명세를 지닌 동네답지 않게 소란스러움이 없이 조용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시인 한명으로 인해 이 동네가 풍성하고, 칠레가 풍성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 생각은 다시 수정되어야만 했다. 네루다가 시어를 길어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칠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이 동네는 네루다로 인해 풍성해진 것이 아니니라. 자연과 대적하여 끈질기게 살아왔고, 식민과 독재에 저항하며 현재를 일구어온 칠레인들의 삶 그 자체가 네루다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3)고 고백하는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전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재에 떨어진 시는 지금 꽃으로 피어날까 혹은 탄환이 될까? 하는 생각이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맴돌았다.

 

이슬라네그라 동네 풍경.
네루다 박물관. 이 집에서 네루다가 거주했고, 현재는 그의 수집품이 빼곡하다.
돌기둥, 바다, 드로잉을 하고 있는 정정엽.
네루다는 이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집필실에서 시를 지었다.
네루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해안풍경.
수집된 선수상. 마치 바닷가의 선술집처럼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흙길 옆에 배를 닮은 집이 지어져 있다.
정원 한 복판에 위치한 네루다와 그의 부인 마틸다의 묘.
이슬라 네그라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철조조형작품으로 세워져 있다.


정정엽, 퍼포먼스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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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 역, 민음사, 2008년.  pp.214-215 참조
2> 같은 책, p. 498
3> 같은 책 p.496
4> 같은 책 pp.43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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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3. 11:03

리얼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는 없다!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 제1부 ; “망루전亡淚戰
                                                                                                                             김종길 _ 미술평론가
예술행동주의는 제도와 권력, 악의적 법이 실행하는 파괴적 문명화를 안티테제로 내재화하여 그 거름의 자양분으로 키운 실천의 나무이며, 꽃이다. 배인석 작가의 출품작.
▲ 예술행동주의는 제도와 권력, 악의적 법이 실행하는 파괴적 문명화를 안티테제로 내재화하여 그 거름의 자양분으로 키운 실천의 나무이며, 꽃이다. 배인석 작가의 출품작.

아수라의 ‘까쇠’들이여,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그대는 1991년 5월의 굿판을 기억하는가? 그해 김지하는 조선일보 확성기로 “젊은 벗들이여,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목청을 찢었다. 결기와 비장의 음율로 타전하는 그의 소리는 민주주의의 제단에 나부끼는 독재의 깃발보다 더 절망적으로 우리의 몸을 휘 감았다. 시대는 위선과 반역, 탐욕, 독선, 기만, 환멸의 정치로 치달아 갔고, 세계는 그것들이 살포한 위장 정의의 이름으로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 삶을 회복하거나 제 이름의 윤리학을 확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투쟁일 수밖에 없었으며, 미세하게 떨리는 주체의 자율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논리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

1987년 6월은 1991년 5월의 권력자들에게 단지 지나간 과거의 역사일 뿐 어떠한 양심적 정치의식을 견인해 주지 않았다. 그해, 청년들은 광막한 시대의 벼랑으로 달려가 예수가 광야에서 던진 씨알의 소리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소리쳤다. 그리고 몸을 불살랐다. 참된 정의와 민주주의에 중독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불의 시학을 그들은 온몸으로 새겨 넣었다. 그러나 불의 제단은 쉬 꺼지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참된 것들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듯 자꾸만 번져 갔다. 강경대가, 김귀정이, 박승희가 죽었다. 한홍구의 표현대로 정말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죽음의 의미는 죽임을 즐기는 자들에 의해 왜곡 과장되고 확대되었으며, 당시 조선일보는 최전선에서 이 죽음을 죽임의 논리로 바꾸어 선전했다.

김지하는 바로 그 확성기에 대고 소리친 꼴이 된 것이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그의 소리는 얼음보다 차가워서 일순간에 불의 제단을 침묵으로 바꿔 버렸다. 침묵하는 자에게 민주주의는 결코 오지 않는 봄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오직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꽃을 피위기 위해 불살랐던 그 모든 것들의 ‘잘못’으로 인해 1990년대는 1980년의 봄보다 더 짧은 시련과 더 긴 공허를 견뎌야 했다. 김지하의 외침은 그래서 폐부로 가 닿는 절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로부터 20여년이 되는 동안 하나의 사실을 간과했거나 부정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죽음의 찬미를 선동한 ‘까쇠Casseur’들의 정체는 청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 하여, 우리는 김지하의 ‘젊은 벗들이여’를 ‘탐욕의 까쇠들이여’로 바꿔 읽어야 한다.

김지하는 촛불의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일부 세력을 가리켜 프랑스어 ‘까쇠’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복면을 쓰고 끼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난장판을 만드는 자를 말하는 것”이며, “나는 이것을 약간 비틀어 ‘까부수고’(파괴), ‘까불고’(난동), ‘까발리는’(선동) 것을 본업으로 하는 쇠(마당쇠의 그 쇠)를 요약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다음 그는 낮은 목소리로 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한 숨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외친다. ‘아무개를 찢어 죽이자!’ 곁에서 한 여성이 외친다. ‘너나 죽여라!’ 내 곁에 있는 초등학생이 속삭이듯 외친다. ‘종이냐, 찢게?’” 이 이야기는 촛불의 내부에도 여전히 죽음의 굿판을 선동하는 자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인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바로 그 현장에서 까쇠들의 선동을 부정하는 여성과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여성과 아이들이 촛불의 주체였고 희망이었으며, 기억의 상실 저편에서 스스로 깨어 걸어 나온 민주주의의 실체임을 깨닫는다. 한데, MB정권은 그 많은 시대의 청년들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한 순간에 쓸어버리고, 촛불의 저 도도한 민중의지마저도 법적 테두리로 끌어 모아 ‘싸잡아’ 범죄화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용산참사에서 보여주듯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민중의 몸을 불사른다. 시대의 역행이 아니라 시대의 추락이며, 현실적 아수라에 다름 아니다.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은 이 시대에 충분히 예지적이다. 강경대의 절망이 그를 그토록 분노케 하였지만, 생명을 찬탈하려는 그 모든 까쇠들을 향해 우리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소리쳐야만 할 것이다.  


생태적 에스노그라피를 실천하라!

아수라의 힘은 다시 온 대지로 향하고 있다. 용산참사로 확연히 드러났듯이 민중을 향한 화염의 비수와 더불어 우리를 경악케 하는 세종로 1번지 까쇠들의 도시 재개발과 대운하 정책은 전국토의 전면적 개토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이래 가장 잔인하게 전개될 대지에 대한 학살일 터이다. 세계의 환경론자들은 문명의 쾌속 질주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돌출시켰으나 오히려 그러한 이성적 판단이 지속적인 개발정책의 자기이념으로 합리화 되었다는 게 근본 생태론자들의 주장이다. 자연에 대한 생태론적 사유에는 이성과 합리적 사유로는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생명성이 존재한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본뜻은 주체와 객체가 한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어떠한 인위적 가해 없이 그 스스로 존립되었고 형상화되었으며, 또한 그 기세와 흐름으로 앞으로도 영구할 것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박정희가 독일 아우토반의 무한 질주 개념을 흉내 내어 경부고속도로를 직선의 폭력으로 뚫어 버렸듯이 MB정부는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카르텔을 하나의 아비투스habitus로 형성시켜 토목국가를 위한 대중설교의 장으로 활용하면서, 박정희의 폭력을 내면화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MB정부의 그런 개념 활용을 알면 뒤로 넘어가겠지만, MB정부가 상상하는 에코토피아 대한민국에는 그래서 생태적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이 지닌 최소한의 공공성이나 역사적 기억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 대운하를 운운하며 “고구려, 신라, 백제, 마한이 융성했던 이 강의 생명력으로 국운을 일으키자”고 떠벌리는 것은 모순의 구토이다. 대운하를 위한 비밀조직을 운영하면서 양심선언 연구자를 징계하는 이들의 태도에는 사회적 합의나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적 책임보다 한 권력자의 탐욕만을 충족시키려는 복종의 패거리 의식만 엿보인다.

이 땅은 그들이 언급했듯이 유사이래 한민족의 역사가 골골에 새겨진 거대한 생명이다. 이 땅 어디에도 그 숨결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 민족의 예술 미학은 그 근본부터 자연 미학의 본류를 흠모했고, 숱한 예술가들이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예술적 고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역사가들 또한 사기史記의 첫 페이지를 자연과 인간이 혼융된 신화적 판타지로 기록했던 것은 그 뿌리가 대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인간의 삶은 둘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압하거나 해서도 안 된다. 이 구도가 조금씩 붕괴된 것은 인간이 자연의 신성을 밀어내면서 획득한 근대에 있다. 인간의 발과 수레로 새겼던 실크로드는 1920년대 후반 일본에 의해 ‘국도’로 확장 개발되었고, 그 길은 침략과 약탈, 전쟁의 아우성을 실어 날랐다. 근대화 도시화 현대화에서 ‘도로’는 문명이라는 괴물을 성장시켜 온 최대의 공신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의 속도로 그들은 생명에 반하는 만행을 저지를 태세다. 유구무언. 그들은 역사 앞에 생명이니 숨결이니 환경이니 하는 따위의 미사여구를 내뱉을 자격이 없다. 이 땅은 반역자들의 영토가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이 하는 일이란 온갖 난개발을 통한 파괴의 정치뿐이다. 자본주의 도시문명의 확장을 위대한 선진화의 척도로 내세우면서 ‘생태도시’ ‘휴먼시아’ ‘명품도시’를 부르짖고, 녹색성장과 녹색뉴딜이 정권의 미래비전이라면서 토건국가의 유토피아를 설교해 온 것은 참여정부든 실용정부든 똑 같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새만금 간척사업, 서귀포 해군기지, 천성산 터널, 시화호, 행정복합도시에서 경인운하까지 지난 정부에서 현 정부까지 죽임의 정책과 집행은 계속되고 있지 아니한가!

예술행동주의는 제도와 권력, 악의적 법이 실행하는 파괴적 문명화를 안티테제로 내재화하여 그 거름의 자양분으로 키운 실천의 나무이며, 꽃이다. 우리는 이 예술의 이름으로 파괴의 문명을 생명의 문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미래세대를 위한 예지적 전망을 타전할 수 있다. 하여, 예술행동주의가 발산하는 미적 이미지와 에너지는 고정되거나 관념화되기 이전의 상태로서 개념 전야의 혼돈을 보여주는 역동과 ‘엇’의 미학이며, 분열과 통합이 어그러진 ‘개체-융합’의 마당 굿이다.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으로 치러질 <망루전亡淚戰>(제1부)과 <망루전望樓傳>(제2부)는 그 굿판의 서막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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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8. 11:35

망루(望樓)는 망루(亡淚)다!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 1부 망루전(亡淚戰), 3월 11일 평화공간서

용산참사의 현장을 다룬 예술작품들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용산참사의 현장을 다룬 예술작품들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기자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

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나온 망루의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올해 1월 20일 이후 이 개념은 수정되어야, 아니 최소한 새로운 뜻이 추가되어야 마땅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사람들이 쫓겨 가는 마지막 장소”라는 의미가 더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쩔 수 없이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속도전이 사회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생존의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탓이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망루전을 열겠다고 나섰다. 망루에 다시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진다. 망루전의 제목이 ‘亡淚戰’인 까닭이다. 평화공간space*peace(상임대표 김숙임)에서 3월과 4월 두 달 동안 개최될 전시는 1․20 용산참사의 폭력적 현실을 세계에 고발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유족과 더불어 그 슬픔을 연대하기 위해 게릴라 기획전이다. 3월 11일(수) 개막해 31일(수)까지 열리는 1부가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4월 열릴 계획인 망루전(望樓傳)은 강주룡이 1931년 5월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래 용산 망루투쟁까지를 다룬 망루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다.

1부 전시에는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예술가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과 시인, 활동가들의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된다.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때 사용된 대형 걸개그림, 다섯 분의 희생자를 걸개형식으로 표현한 초상화, 현장 목판화, 포스터, 전단지, 사진, 다큐멘터리 동영상이 출품된다. 시인들의 시는 오프닝 당일 퍼포먼스로 평화공간 골목에 ‘벽시’로 새겨지게 된다.

전시에는 전미영, 이윤엽, 노순택, 김천일, 성효숙, 최호철, 박은태, 김미혜 등 시각예술 작가들과 송경동, 손세실리아, 문동만, 백무산 등 문인을 포함해 30여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전미영은 평화공간 건물 옥상에 특별한 체험공간을 마련한다. 일종의 망루를 제작해 관람객에게 망루투쟁의 체험을 공유케 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 성효숙 작가는 주말을 이용해 일반관람객과  ‘용산참사’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전시장의 한 벽면은 주재환, 윤석남, 임옥상, 류연복 등 2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 기금마련 작품들로 채워진다.

전시문의 02)735-5811 주진우 평화박물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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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4. 08:35

발파라이소,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산동네

[남미액션투어 ②]칠레_발파라이소
                                                                                              김강 _ 남미액션투어 기획자, LAB39 디렉터
발파라이소 전경. 44개의 언덕꼭대기까지 빼곡히 집들이 들어찼다.
▲ 발파라이소 전경. 44개의 언덕꼭대기까지 빼곡히 집들이 들어찼다.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120KM를 가면 칠레의 주요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에 도착한다. 발파라이소와 산티아고 사이에는 황무지와 같은 산이 가로놓여 있다. 그 산에는 거대한 선인장들이 우뚝 솟아있다. 이 선인장을 보며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칠레의 북쪽은 사막이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북으로는 사막, 남으로는 남극과 연결되어 있는 칠레. 그 중간 지점에 산티아고가 있고, 바다를 면한 곳에 항구도시 발파라이소가 있다.

발파라이소로 가는 버스는 우리나라 우등 고속버스와도 같은 느낌이다. 초로의 노인이 2리터가 넘는 코카콜라 피티병에 입을 대고 마시고 있는 머리 위로 헐리우드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었다. 전 세계 도시 어디에서나 규격화된 삶의 모습이 진행된다. 버스 바깥으로 포도농장이 보인다. 어린이, 청년, 어른 모두가 자기 키 보다 조금 큰 포도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이 재배한 포도가 한국으로 온다.

11월 3일 12시. 2시간 남짓의 버스여행 후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발파라이소에는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정정엽은 남미에 와서 멈춰버린 손목시계의 건전지를 발파라이소에서 바꾸었다. 발파라이소는 2년 전에 방문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또한 1980년대에 제작된 미겔리틴의 영화속 풍경과도 다르지 않았고, 네루다가 1970년대에 작성하기 시작한 그의 자서전에서 묘사한 풍경과 비교해도 낯선 것이 없었다. 발파라이소는 미겔리틴, 네루다가 묘사한 그 시절 그대로 멈춰진 시계처럼 우리를 맞았다.  

발파라이소 산동네 풍경.
사진 출처 www.voyage-au-chili.com1

벼룩시장이 열린 2006년의 발파라이소. 구리광산의 나라답게 구리선을 조형화한 작품이 눈에 띈다. 

작은 선술집과도 같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관광객들이 아닌 발파라이소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이런 허름한 레스토랑이 적격이다. 주인장은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알지 못한다. 벽에 스페인어로 쓰여진 메뉴를 보고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일행 중 2명이 채식주의자인 까닭에 요리 선택을 잘 해야만 한다. 온갖 종류의 바디랭귀지가 작렬하고, 몇 번의 웃음이 흐르는데 요리의 결정은 전적으로 주인장, 주방장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의 눈빛만으로 소통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레스토랑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다면 그들의 요리를 보고 참고라도 할 텐데, 어두컴컴한 그곳엔 우리가 첫 손님이다. 일단 어디서도 실패할 확률이 없는 맥주를 먼저 시켰다. 까주엘라 드 아베(Cazuela de Ave) 아마도 이런 이름일 것이다. 국에 고기와 옥수수가 통째로 나오는, 약간은 니글거리는 국. 그래도 국물이 있으니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반갑다.

칠레 요리는 스페인 정복 이후 전통요리와 유럽식 요리가 혼합되어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음식을 시킬 때면 음료를 같이 주문해야 하고, 다 먹고 나면 디저트도 주문을 받는다. 물론, 음료와 디저트 모두 안 시키고 메인 요리만 먹어도 되지만, 대부분의 칠레인들은 콜라를 시키는 듯 했다. 우리는 언제나 맥주나 와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초로의 주인아줌마는 카메라 장비가 한 짐인 우리에게 연신 조심하라며 손짓발짓으로 안전에 유의하라고 한다. 남미 어디를 가나 선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아랫동네에서 바라본 산동네 풍경

천국과 같은 계곡이라는 뜻을 지닌 ‘발파라이소’는 판자와 함석으로 지은 집이 44개의 구릉을 뒤덮고 있다. 우리식으로 달동네라 불릴 수 있는 이 구릉위의 동네들은 마치 바다에서 해일이 밀려왔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문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다의 깊은 심연으로부터 솟아나와 뭍의 생활을 이어가는 듯한 발파라이소 사람들. 높게 솟은 언덕은 사람을 밀어 내지만, 사람들은 그 언덕의 벼랑에 매달려 말뚝을 박고 필사적으로 버틴다. 버팅김의 피곤함을 잊고 싶었던 것일까. 발파라이소 산동네의 색채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발파라이소 항구는 안데스 산맥에서 빠져나온 지맥과 바다 사이의 투쟁이다. 그러나 이 싸움의 승리자는 인간이었다. 풍요로운 바다와 언덕이 만나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이런 도시 특유의 통일성도 형성되었다. 군대 막사와 같은 통일성이 아니라 약동하는 봄철의 다채로운 색깔과 시끄러운 소리로 이루어진 통일성이다. 집은 갖가지 색깔이 되었다. 보라색과 노란색, 심홍색과 코발트색, 초록색과 자주색으로 어우러졌다. 이리하여 발파라이소는 진정한 항구가 되고, 육지에 좌초했으나 멀쩡한 선박이 되고, 바람에 깃발을 펄럭이는 배가 되었다. 이 깃발의 도시에 대양의 바람이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1)

색색깔의 컨테이너가 정박중인 발파라이소 항구

언덕 꼭대기를 집들이 넘어간다.

‘라 세바스티나’ 라는 이름이 붙은 발파라이소 산동네 집에 살았던 파블로 네루다는 이 동네를 이렇게 표현했다. 갖가지 색깔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산동네의 색채는 이호석작가를 자극했다. ‘아마도 이 색들은 어떤 기획자의 기획 아래 색을 분배한 것이 틀림없는 거 같아. 혹시 그 기획자 알고 있니?’ 그러나 약동하는 봄과도 같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만들어낸 통일성의 발파라이소의 색채는 누군가의 기획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파라이소의 좁은 골목과 하늘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계단과 누추한 담장에 칠해진 색채들은 그저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덜 팍팍하게 만들어 보고자 하는 개인 기획들의 집합일 것이다. 물론 이호석 작가가 진정으로 발파라이소를 ‘기획자’의 의도로 해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기획자’가 있었던 것처럼 통일성과 배색을 보여주는 발파라이소의 삶의 현장에 대한 경외감이었을 것이다.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동네 발파라이소.(2)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빈곤의 현실은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들에서도 만발한다. 가파른 계단참에서 잠시 남미의 햇살이 쉬어간다.

작은 골목에 있는 집들은 계단들로 서로 이어져 있다.
계단은 끝간데를 모르고 넓어졌다, 좁아졌다, 서로
포개지고, 나뉘어 지면서 산꼭대기로 이어진다. 

발파라이소의 색채가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호석 작가의 말대로 ‘기획자’에 의한 벽화거리도 있다. 현재 네루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라 세바스티나’ 를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열린 하늘 아래 미술관 Museo a cielo abierto>이 있다. 산동네의 벽화거리는 1969년 가톨릭 대학(Instituto de Arte de la Uiversidad Catolica)미대 학생들이 콘셉시옹(Concepcion) 지역에 벽화를 그리면서 시작된 벽화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1990년대에 네메시오 안톤(Nemesio Antunes)과 마리오 토랄(Mario Toral) 같은 작가들이 발파라이소 산동네의 벨라비스타(Bellavista) 지역의 벽화를 그렸다.

라세바스티나. 네루다 박물관 입구.

산동네 가파른 골목 어귀에 걸린 ‘열린 하늘 아래 미술관’ 의 간판

미술가들이 발파라이소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도시 재건운동이 시민들에 의해 발의되었기 때문이다. 발파라이소는 마젤란 해협에서 가까운 관계로 일찍부터 유럽 사람들이 많이 정착해서 살던 곳이었다. 스페인 뿐 아니라, 영국, 독일 등지에서도 발파라이소로 몰려와 자신의 나라 방식으로 건물을 짓고 생활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가 완공된 후 발파라이소의 중요성이 축소되고, 돈과 힘이 있는 사람들은 산티아고와 같은 대도시로 이주하자 발파라이소는 거의 버려진 도시처럼 여겨졌다. 황폐화된 도시를 다시 살려보자는 시민중심의 재건운동은 발파라이소의 벽화거리, 열린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 골목길이 미술관이다. 좌우의 작은 골목들에도 그림이 빼곡하다.

단 하나의 집 색깔 하나만으로도 강렬하다.

발파라이소는 색채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긴 역사를 품고 현재까지 운행되는 아센쏘르(Ascensores 야외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더욱 풍치가 아름답다. 100여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위 아래 두 개의 도르래로 운행되는 16개의 아센소르는 산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다리를 잠시나마 쉬게 해 주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바닥 사이로 레일이 보이기도 하고, 63.5°의 가파른 경사면을 150미터 이상 올라가기도 하지만, 아센소르는 산동네 꼭대기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통행수단이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들이 점증하자 발파라이소 시는 아센소르의 요금을 인상하였다. 이에 격분한 산동네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아센소르를 타지 말 것과 요금인상에 항의하는 행동에 동참하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가장 빠르게 연결시켜 주는 아센쏘르.
발파라이소는 아센쏘르와 함께 독특한 풍치를 지닌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아센쏘르가 발파라이소에 16개 이상이 있다. 그 중 몇기는 너무 낙후되어 운행을 못하기도 한다.

다종한 유럽 스타일의 집들, 색채가 깃발로 나부끼는 산동네, 대서양으로 열린 바다, 벽화거리미술관, 44개의 언덕, 16개의 아센쏘르가 조화를 이루는 발파라이소는 200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네루다가 사랑했던 도시이기도 하고, 칠레 현대사의 상징적인 두 인물 아옌데와 피노체트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아옌데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이 묻혔다고 추정되는 도시 역시 발파라이소다.

내다 걸린 빨래들 오른쪽 뒤편 위쪽으로 작게 벽화가 보인다.

발파라이소 산동네 마을에서는 여기저기 햇살아래 빨래를 널어놓은 집들이 많다.

발파라이소의 집들

발파라이소의 집들

발파라이소의 집들

네루다가 생전에 살았던 집에서 내려다 본 풍경

벽화들

벽화들

하늘로 이어지는 산동네 골목

벽화들

벽화들

벽화들

산동네에서 타일로 조형물을 만드는 젊은 작가를 만났다. 한국에서 온 예술가들이라고 하니
상당히 반가워 하는 눈빛이었다.

자신의 동네 풍경을 그려 넣은 벽화들

자신의 동네 풍경을 그려 넣은 벽화들

드럼통 미끌럼틀. 드럼통 몇 개를 이어서 예쁘게 색칠한 후에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낡아서
페인
트칠이 좀 벗겨지긴 했지만 동네 꼬마들에 대한 마음을 읽기에는 하나도 낡지 않았다.


다시 발파라이소의 벽화 몇 개들

다시 발파라이소의 벽화 몇 개들

흑백사진 시절의 발파라이소.
사진 출처 www.ciudaddevalparaiso.cl2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분주하게 오가고, 가파른 언덕을 곡예하듯이 질주하는 버스.



** 발파라이소의 벽화들을 더 많이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서 지도위에 표시된 번호를 누르면 사진과 설명(스페인어)를 볼 수 있다. 
http://www.ucv.cl/site/pags/museo/index.html#

** 아래 링크에서는 칠레의 다양한 벽화들을 볼 수 있다.
http://www.pbase.com/nvuillemin/murales&page=3

** 발파라이소 시청 홈피를 들어가도 발파라이소의 멋진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다.
 
http://www.ciudaddevalparaiso.cl/inicio/intro.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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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역, 민음사, 2008년. p. 98

2> 네루다.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산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무엇을 못 먹고 무엇을 못 입는지, 세상이 다 안다. 집집마다 내걸린 빨래 와 끊임없이 늘어나는 맨발의 아이들은 벌집 같은 판자촌에서도 사랑은 식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같은 책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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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 16:46

보이지 않는 위협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전(2.12--3.12, UNC 갤러리)
Lee Jae-Hoon_Unmonument-이것은 무엇입니까_190x102cm_fresco 기법_2008
▲ Lee Jae-Hoon_Unmonument-이것은 무엇입니까_190x102cm_fresco 기법_2008


                                                      이선영 _ 미술평론가

‘스타워즈 에피소드’전은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신진작가들을 소개하는 UNC 갤러리의 연례 기획전으로, 올해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는 부제로 열렸다. ‘보이지 않는 위협’은 현대 사회에 팽배한 폭력과 위협이 확연한 것인 동시에 미지의 것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하다는 것에 주목한다. 백화점에 분류된 물건들처럼 모든 것이 잘 정렬되어 있는 듯한 현대사회에서 작가들은 왜 불편을 느끼는 것일까. 폭력과 위험은 ‘후진국’ 같은, 저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가. 그러나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모델이 되어왔던 거대 제국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달로 모든 편리성이 갖추어진 현대사회는 동시에 위험도 높인다. 제국의 위기가 우리에게도 미치는 파장에서 감지되듯, 위험을 확대 재생산하는 매개 고리는 안팎을 촘촘히 연결 짓는 조직망들이다. 빈곤과 부의 명암을 극명하게 엇갈리게 하는 자본주의적 성장은 이 촘촘한 연결망을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 위협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또한 산업자본주의 시대처럼 선악의 역할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비가시적이다. 국민 경제에 한정지어지던 고전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세계화 과정은 각자 다른 상징적 우주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왔던 존재들을 평평한 곳으로 몰아넣고 경쟁시킨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판은 인류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본의 회전주기를 가속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떨어져 있던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지구화 시대에 위험과 위협은 의도되지 않은 우연성과 연관된다. 조직화라는 필연성이 높아질수록 우연(사건)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은 커진다. 조직화는 우연의 발생빈도를 줄이지만, 한 번 터지면 크게 터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시공간 압축의 강도는 사회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인적 영역에서도 과도한 순간성과 분절화라는 시공간 압축의 특성과 더불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후기 현대의 단계에서 주체와 객체의 위상은 변화한다.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는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서 국제적 공간 속을 순환하는 세 가지 자본형태--화폐, 생산자본, 상품--는 객체이며, 네 번째인 가변자본 또는 노동력을 주체라고 간주한다. 회로 속에서 객체와 주체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다양한 주체와 객체들은 점점 더 먼 거리를 순환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전자 네트워크가 증가하고 용량이 커지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순환한다. 시공간 압축의 한 결과는 주체와 객체의 가속화를 낳고, 이러한 경향은 객체와 주체 모두의 의미를 비워버린다. 아찔한 순환의 속도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위상 자체가 불분명하고 유동적이 된다. 보이지 않는 위협 전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의 작품에는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한 각자의 진단 결과물이 나타나 있다.

Kim Jin_Untitled0824_165X165cm_oil on canvas_2008

먼저 김진의 작품은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그려진 고풍스러운 서가의 모습이다. 그 위에 얹힌 수수께끼 같은 검은 선들은 작지만 단단하게 조직화되어 있는 상징적 우주에 균열을 만든다. 색깔별로 배열된 서가는 분류와 질서의 흔적들이다. 한편 책상에서 빼내어진 의자 위에도 어김없이 드리워진 선들은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활용해 왔던 이들의 보이지 않는 궤적을 암시하는 듯하다. 서가라는 상징적 우주 사이를 연결 짓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인간들이다. 그것은 구조와 인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서가에 분류된 책으로 암시되는 상징적 구조에 어떤 활력을 부여하는 인기척들은 인간이 구조의 산물이지만, 구조를 재구조화하는 것도 인간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상징적 질서는 언어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잠재력을 한계 짓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는 까닭이다.

Lee Rim_The Mess of Emotion No,3_oil on canvas_160x160cm_2008

이림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에 깔려있는 의미를 예시한다. 그림에는 온몸에 크림으로 범벅이 된 두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달콤한 초콜릿 케잌을 먹듯이 서로를 탐식한다. 인간 사이를 채우는 질척거리는 점액질의 양상은 인간 사이에 흐르는 욕망, 그것도 과도한 욕망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아와 구별되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기 보다는 자아의 연장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사랑은 궁극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이다. 자아의 연장이든 타자로의 함몰이든 이러한 범주의 용해는 근대의 신념인 개체의 자율적 속성을 부정한다. 탐식으로 표현되는 과도한 욕망은 궁극적으로 상대를 자기화하는 식인적인 환상을 연상시킨다. 이승민의 그림에서도 인간은 자율적이지 못하다. 여기에서 인간은 기계와 접속되어 있다. 아니, 접속되어 있다기보다는 기계가 인간의 가면을 둘러 쓴듯하다. 옆모습으로 표현된 사람은 기계가 가지는 분절화 된 구조들이 도면처럼 드러나 있다. 그들은 오로지 전면만을 주시한다.

Lee Seung-Min_적극가담자-방관자conspirator-bystander_112x194cm_oil on canvas_2008

그것은 앞을 향해 전속도로 주파해야 하는 기계-인간의 모습이다.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부여한 새로운 임무는 그들을 기계로 만든다. 그들은 스스로 기계가 되지 않으면 도태될 운명이 각인되어 있다. 이재훈은 프레스코라는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이시대의 기념비를 그린다. 그러나 그림 안에는 반(反)기념비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온 사회의 구성원의 소망이 담겨진 그것은 기념비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그림 안에 새겨진 또 다른 단어처럼 기원비(祈願碑)에 더욱 가깝다. 이 알레고리적인 구조물들은 최근에 세워졌으나 종교조차도 아닌 주술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어린 학생을 늑대들이 받치고 있는 이 기념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개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교육이,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새겨진 이재훈의 반 기념비는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힘의 역학관계가 드러나 있다.

폭력적 사회에 이에 대항하는 권력에의 의지를 주장한 니이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정의의 기원을 논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의무감이나 책임감, 죄의 기원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시적인 개인관계 속에, 즉 파는 자와 사는 자,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관계 속에 두고 있다. 값을 정하고 가치를 정하며 등가물을 생각해내며 교환하는 일들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사고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상에서의 모든 공정과 선의, 객관성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의 타협과 조정은 쉽지가 않다. 니이체적 세계관은 사회 계약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이념에는 민주주의가 아닌 피로 물든 폭력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그는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지적하며, 사회는 가학적 쾌락을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환시켰다고 말한다. 고통은 자본화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새로운 단계의 야만적 세계에서 각자는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고양시키며 활동할 것이 요구된다. 

D.Hwang_U2_92x118cm_oil glass steel on canvas_2009

디황의 그림에는 어둡고 유폐된 공간 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인간이 등장한다. 하염없이 늘어나 공간에 엿가락처럼 붙어 있는 사지는 빠져나가지 못한 비명의 메아리를 보여준다. 고통에 겨워 내지른 비명이 피드백 되어 어두운 공간 속 인간에게 다시금 타격을 가한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뭉크의 유명한 그림에서, 비명이 인물이 서있는 다리 위로 펼쳐진 하늘로 빠져 나가고 있다면, 미소한 크기의 타인의 그림자조차 없는 21세기의 비명은 더욱 절망적이다. 여기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마치 ‘실존’처럼 항시적인 조건처럼 보인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인은 고립된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맡아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어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여파가 자기에게도 돌아온다. 사회는 분업화, 도구화 되었지만, 사회적 규범의 취약성은 체제 자체가 내포한 폭력성을 결코 감소시키지 못한다.  (전시문의 733-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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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3.03 19:55 address edit & del reply

    싱그러운 3월입니다.
    행복한 일이 더 많읂 화사한 봄날되세요!
    추천 버튼 꾸욱 누르구 갑니다.

2009. 1. 5. 12:04

다시, 전위와 실천, 행동의 아방가르디즘을 위하여!

[2008 장르결산-④]시각예술
                                                                                                                      김종길 _ 미술평론가
미술가들이 게릴라식 기획전을 개최한 것은 예술적 연대의식의 발로겠으나, 미술이 행동으로 발언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티베트의 길, 자유의 길]오프닝 퍼포먼스.(사진제공 전미영)
▲ 미술가들이 게릴라식 기획전을 개최한 것은 예술적 연대의식의 발로겠으나, 미술이 행동으로 발언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티베트의 길, 자유의 길]오프닝 퍼포먼스.(사진제공 전미영)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비장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후기post식민주의가 아닌 탈脫식민주의는 일종의 ‘벗어나기’로서의 개념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벗어나기’는 식민으로부터의 기억상실이나 이탈, 해탈이 아니라 ‘극복’이다. ‘포스트post’를 ‘이후’나 ‘후기’가 아닌 ‘탈피’와 ‘극복’으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는, 반-식민저항을 통한 탈식민화의 실체를 보고자 했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나 응구기 와 씨옹오Ngugi wa Thiong'o,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등장한 탈식민주의 개념으로 보면, 일본에 대한 탈식민주의 담론이 깊어야 하는데, 오히려 팍스아메리카에 대한 탈식민 논쟁이 더 넓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정책이 물러간 자리에 빠르게 다른 형식으로 파고 든 미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식민정책 때문일 것이다. 하여, 탈식민주의는 친미정책으로 일관했던 군사정권과 맞물려 ‘반미反美’, ‘반정부’적 행태가 동시에 등장했으며, 이에 대한 극복의지로 ‘주체적 통일’과 ‘민중해방’이 표출되었다.

1979년에 창립한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광자협)’와 ‘현실과발언(현발)’이 그 시원이 된 한국 민족민중미술은 탈식민주의 논쟁의 가장 극명한 예술적 사례로 볼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으로 광범위한 저항 미술운동이 된 ‘민족민중미술’은 이후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성격이 짙은 반정부․반미 운동을 통해 서구적 미술사 편승에 열을 올렸던 한국 현대미술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빌 애쉬크로프트Bill Ashcroft는 탈식민주의에 대해 “이주, 노예, 억압, 저항, 재현, 차이, 인종, 성, 장소와 제국주의가 영향을 끼친 역사․철학․언어학 같은 담론에 대한 반응,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은 말하기, 쓰기 등의 다양한 경험 내용을 토론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는데, 반정부․반미 운동을 넘어서서 1990년대와 2000년 이후의 미술적 상상을 현실화해 온 민족민중미술의 후예들은 애쉬크로프트가 언급한 주제어를 예술행동의 실천방식으로 새겨 넣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미약하고 일부에 한정되는 일이다. 최근의 공공미술과 현장미술이 과연 탈식민주의 논의를 갖게 하거나 혹은 1980년대의 민족민중미술의 씨알을 포태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재론이 필요하다. 이제 예술이 아니라 현장이, 민중이 스스로의 예술적 힘을 쏟아내고 있거니와 저항의 기제로서 미술은 그 현장적 에너지를 급격히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가 미술을 논하기 위해선 미술 본래의 속성이랄 수 있는 전위와 실천, 행동의 ‘아방가르디즘Avantgardism’을 함의하고 있을 때이다.

아! 2008년, 올해는 광자협과 현발이 탄생한지 30년이 된 해가 아닌가! 그리고 2009년, 내년이면 30주년이 된다. 30년의 회억을 재생하는 것은 차지하고, 아방가르디즘이 상실된 현 단계 미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나는 다시, 현발이 촛불을 피우며 창립을 도모했던 그 겨울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모멘텀momentum의 기운을 피워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체적 통일과 민중해방, 이주, 노예, 억압, 저항, 재현, 차이, 인종, 성, 장소의 담론은 지속되어야 하며, 그것은 현재형의 미술로서 끊임없이 발아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어 실용정부에서 조차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없고, 뿐만 아니라 이 정부는 대 의회전쟁을 선포하는 따위의 노골적 반민주 선언을 통해 자발적 식민화를 걷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고 있지 않은가!

2008년은 시장주도의 미술가치 생산이 얼마나 위험하며 부질없는 것인지, 그 실상이 만천하에 노출된 해이다. 2000년 이후 미술계는 참혹할 만큼 비평부재의 상황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옥션이 키운 ‘자본 가치 환원성’의 ‘분식작품’들은 고공행진을 달렸다. 무엇이, 누가 그들을 이토록 위험한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그런데 이 벼랑 끝 위험성의 진실이란 것이 너무도 허약하고 부실해서 과연 비평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필자 스스로 자괴감을 갖게 한다. 우선 분식작품을 양산해 내도록 부추긴 시장의 자본욕망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수십, 수백억원대의 기금 조성과 작품 사재기가 미술시장을 요동치게 했고, 많은 새내기 작가들이 이 욕망의 환타지에 중독되었다. 박수근 위작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이 돈을 먹어야 가치가 커지는 자본의 속성 때문이다. 박수근이란 신화조차도 이 블랙홀에선 빠져 나올 수 없다. 자본이 먹어치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박수근의 뼈가 아니라 탐욕의 찌꺼기다. 2008년은 이 찌꺼기들이 벼랑 끝에서 깃대 없이 흩날리고 있다.           

하여, 필자는 최소한의 잣대-전위와 실천, 행동의 아방가르디즘Avantgardism-로 2008년의 유의미한 전시와 작품들을 리뷰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에도 언급했듯이 다분히 주관적 판단에 의해 전시/작품들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이 전시/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술사적으로 혹은 미학적으로 따듯한 비평적 평가를 받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1. 제15회 4․3 미술제 <개토開土>展과 4.3미술제 아카이브 <평화․동행>展 _ 제주문화예술회관 및 space*peace _ 4월과 6월


제주 탐라미술인협회(탐미협)은 제주4․3 60주년인 올해 제15회 4․3미술제 <개토開土>展과 4.3미술제 15년간의 아카이브 <평화․동행>展을 4월과 6월에 개최했다. 1994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제주 4.3을 주제화한 탐미협의 4.3미술제는 올해로 15년을 맞이했다. 이들의 활동은 세계 미술사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예술가들의 창의적 아트워크artworks라 할 수 있다. 탐미협 회원들은 작품제작을 위해 매 년 4.3워크숍과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주제를 돌출하고, 그 주제와 상관하는 현장을 찾아 작품구상을 구체화했다. ‘4.3’의 거대담론 안에서 미시적 주제로 접근하는 노력을 통해 보다 현장감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4.3이후 세대로써 후체험의 경험은 직접적이며 직설적인 토로의 방식을 뛰어넘는 ‘승화’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미술사적으로도 이러한 경우는 많지 않다. 멕시코의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리베라, 오로츠코, 시케이로스와 피카소, 고야, 루쉰, 케테콜비츠 등의 예술가들이 있지만 집단적 활동은 아니었다.

고길천은 4.3미술제 10주년 자료집을 노암 촘스키에게 보낸 바 있다. 촘스키는 이 책을 받은 후 이메일을 통해 제주 방문을 희망했으며, 기회가 되면 꼭 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촘스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1940년대 후반 한국에서 발생한 미군정의 만행을 밝히 바 있다.

“미군이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한국에 상륙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지방 정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항일운동이 있었고, 그들은 북한과 남한 전역에 지방정부, 인민위원회 등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남한에 진주하자, 그 모든 것을 해체하고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미국은 친일파 한국인을 행정 요원으로 이용했고, 사실 일본 경찰 제도를 그대로 복구하여 이미 있던 민간 제도들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것은 남한에게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심한 충돌이 4~5년 동안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 노암 촘스키,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시대의 창, 2005), 99쪽.

올해는 제주 4.3 60주년임에도 우린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뿐만 아니라 그 실체의 흔적들이, 그 아픔의 삶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직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호흡할 수 있었기에 ‘4.3미술’은 가능했는지 모른다. 2007년, 역사는 다시 어둡고 음습한 곳에 버려진 주검을 발굴했다. 제주 정뜨르 공항의 개토開土는 4.3을 살림의 역사로 쓰게 하는 전환의 방향타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4.3미술제 15주년을 맞아 예술가들이 찾아야 할 예술언어도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대는 새로운 세대로 흘러야 하고, 그 기억은 새로운 언어로 쓰는 투쟁이 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4.3에서 얻는 깨달음은 슬픔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진보여야 한다. 4.3미술은 우리 민족이 겪는 ‘기억투쟁’의 한 사례라 할 것이다.

4.3의 빛은 반세기 가까이 군부독재 아래서 환하게 타오르지 못한 채 어둠에 갇혀 있었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조차 연좌제에 걸려 독배를 마셔야 했다. 4.3을 기억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운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탐미협의 15년 활동은 그래서 ‘산 역사의 생명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제주라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를 회복시키고자 한 일련의 움직임을 뜻한다. 탐미협의 4.3미술은 4.3항쟁을 통해 그들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고 또한 그들 자신이 그들 스스로를 해방하는 진정한 자기회복, 창조적 주체회복운동이다. 4.3미술은 누구보다 먼저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기해방, 자기회복운동인 셈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맥점이라 할 수 있다. 4.3은 그동안 죽은 역사의 죽임운동이었다.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의 언어이자 상처였다. 현기영이 북촌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쓴 「순이삼촌」을 통해 4.3을 알렸지만, 그 후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던 것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는 「순이삼촌」에서 “그 죄악은 30년 동안 여태 단 한 번도 고발 되어본 적이 없었다”고 적지 않았던가!

모호하고 결속력 없는 개념어들에 끼워 맞춘 수많은 전시들과 달리 이 전시는 작가분석과 개념어의 설정, 논리적 전개, 선명한 메시지의 타전 등 다양한 면에서 빼어났다. 


2. 2008 젊은 모색 <나는 작가다 I AM AN ARTIST>展 _ 국립현대미술관 _ 12월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제는 비평가나 미학자, 미술사가가 아닌 시장이 미술의 가치를 판단하고 확산시키는 시대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평과 미학, 미술사가 도대체 시장 주도의 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자괴적 화두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타 장르 예술과 달리 미술계의 화두는 이렇듯 선명하다. 비평부재라 토로했지만, 비평부재라기보다는 비평가의 부재라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할 터이다. 비평의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단문의 글들과 시장에 편승해 기름진 원고를 쏟아내는 비평가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나는 작가다>는 그런 의문 속에서도 여전히 아방가르디즘이 내장된 ‘위험한 미술’의 가능성과 그 미학의 생존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단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 전시의 기획자는 “최근의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표피적인 대중주의에 함몰되고, 물질가치 중심적인 예술의 야성을 깨우고, 예술의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젊은 작가들의 신념과 자유로운 상상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이들은 세상의 금기와 경직된 상식을 부정하고, 사고의 자유를 갈망한다. 이러한 정신은 길들여지지 않는 작가들의 신념과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대중적 인기와 물질 가치의 예술관에 함몰된 현대미술의 강력한 울타리를 넘어서는, 신념의 강조는 일견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순진한 외침일지 모른다. 그러나 표피적이며, 유한한 가치에의 경도는 작가 스스로 예술의 원초적인 야성을 포기하고 영원한 자유를 폐기해 버리는 행동이자, 일시적 욕망의 분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세속적 분류와 가치를 뛰어넘는 상상과 실천은 살아있는 작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힘이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물질화된 세상의 가치와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날것의 신선함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나는 작가다!’라고 당당히 선언하며, 예술의 소통 기능을 회복하고, 부조리하고 나른한 세상과 일상을 깨우기 위해 야수와 같이 달려들 것이다.”

국공립미술관의 전시에 대해 비평계와 미술 언론의 평가는 대부분 ‘평가절하’의 인식을 먼저 깔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사실상 대부분의 전시에 대해 본격 리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옳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획하는 전시에 뭐 그리 할 말이 있겠냐는 게 선험적 비평인식일지 모르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따지고 봐야 할 전시들 많다. <나는 작가다>는 시장의 평가가 낳은 작가들이 아니라 미술의 본성을 가진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단 점에서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전시다. 뿐만 아니라 전시구성과 연출면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한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전시는 또한 큐레이팅의 저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모호하고 결속력 없는 개념어들에 끼워 맞춘 수많은 전시들과 달리 이 전시는 작가분석과 개념어의 설정, 논리적 전개, 선명한 메시지의 타전 등 다양한 면에서 빼어났다.


3. 아트 인 부산 : <돌아와요 부산항에> _ 부산시립미술관 _ 5월 

이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 80년간의 미술”이란 대 주제로 기획한 전시다. 전시 기획자는 이 주제를 수행하기 위해 부산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을 찾아 나섰고, 의외의 성과를 길어 올렸다.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다녀갔거나 혹은 지금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 그려진 부산과 부산의 향취, 그리고 삶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보였다. 이 기획전의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지역 공립미술관들이 속속 개관하면서 매우 절실한 화두는 지역성과 지역미술을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많은 공립미술관들이 지역미술관으로서의 지역적 화두를 방기하거나 겉치레 형식으로 치루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일이다. 지역미술과 중앙미술이 따로 있을 수 없지만, 한국미술사라는 큰 테두리에서 한 지역이 차지하는 맥락을 재구성하고 재맥락화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4. 윤석남 <1,025 : 사람과 사람없이>展 _ 아르코미술관 _ 9월

윤석남은 5년 여 만에 개최한 이번 개인전을 통해 페미니즘 미술의 문맥을 확장시켰다. 권력과 제도, 관습 등 남성성의 규범과 현실에 맞서야 했던 현대 여성미술가들은 1986년 <반에서 하나로>라는 전시를 통해 처음 여성주의 미술을 꽃피웠다. 이후 여성해방시인들과 여성미술가들이 함께 <우리 봇물을 트자>를 기획했고, 1987년부터 민미협 산하 여성분과가 기획한 ‘여성과 현실’전은 여성주의 미술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었다. 1990년대는 문화 전반에 걸쳐 여성주의 논쟁이 불붙었고, 1999년 <팥쥐들의 행진>, 2000년 여성페미니스트 그룹 입김의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에 이르면 그 정점에 이른다. 윤석남은 이 흐름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페미니즘 미술은 정치, 사회, 문화적 상대자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추구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쾌속질주의 문명에 대한 생태적 대안을 발언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상실한 옛 것들, 주변의 것들, 하찮은 것들이 존재한다. 작은 공동체를 향한 ‘생명다움’의 가치들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그가 이번에 보여준 작품들은 길을 떠도는 유기견과 이 개들을 보살피는 한 노인이었다.      

윤석남의 페미니즘 미술은 정치, 사회, 문화적 상대자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추구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쾌속질주의 문명에 대한 생태적 대안을 발언한다.


5. <티베트의 길, 자유의 길> _ 마음등불 _ 6월

지난 6월,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티베트의 길, 자유의 길>이란 전시가 파주 헤이리 문화공간 ‘마음등불’에서 열렸다. 전시 오픈과 함께 프리마켓, 오프닝 퍼포먼스, 마두금 연주, 티벳 가수 카락 펜빠의 공연 등의 행사도 진행됐다. 올해 중국의 사건 사고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티베트에서는 3월 14일 수도 라싸에서 시작된 독립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촉발됐다. 티베트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요구 시위대에 중국 경찰이 발포하면서 시위물결은 인근 쓰촨성, 칭하이성, 간쑤성 등지까지 확대됐고, 세계 각지에서 반중 여론이 일고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다.”(헤럴드 경제. 12.26)고 정리하고 있는데, 이 전시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무력진압에 항의하고, 티베트의 자유를 돕고자 기획된 것이다. 미술가들이 미술의 양심으로 이렇듯 게릴라식 기획전을 개최한 것은 일종의 예술적 연대의식의 발로겠으나, 중요한 점은 미술이 하나의 행동으로 발언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6. 최병수의 강정마을 예술행동 : 방사탑 솟대와 이지스함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우리는 예술의 진정성에 동참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생태 환경의 파탄에 목숨을 걸고 예술행동을 나서는 그는 작품이 아니라 몸으로 싸운다. 최근 몇 년간 그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강정마을로 달려가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펼쳤다. 방사탑 솟대와 이지스함을 세우며 현장미술의 상징을 세워 올렸다. 시인 손세실리아는 이런 최병수를 어떻게 기억할까?

전화를 걸었다. 태풍 ‘나리’에 뿌리 뽑혀 죽은 소나무를 깎아 ‘구름솟대’, ‘전복솟대’, ‘소라솟대’ 몇 구 해안에 세웠단다. 그런데 평소완 달리 기운이 없다. 껄껄! 웃음도 생략이다. 자꾸 캐물으니, 작업 도중 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단다. 지인들 걱정 할까봐 쉬쉬한다. 제작비를 걱정하는 내게 “장산곶매 몇 장 팔아야지 뭐”한다. 선생이 가난한 이유를 알겠다. 반면,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이며, 영혼 맑은 예술가라는 사실 또한 알겠다. 금간 갈비뼈 내색 않고 세운 솟대가 서귀포 강정마을의 평화를 수호하는 상징이 되길 간절히 염원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거짓말처럼, 뜬금없이, 멀쩡한 내 갈비뼈가 욱신거린다. 결린다.

현장미술가 최병수는 사람(person)과 인간(human being, Homo sapience)의 이중성격에서 오는 파탄적인 행태들을 즉각적으로 고민하면서 실천적 미의식을 표출해 왔다. 그래서 그는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거의 유일한 행동주의 미술가이자 도로시 스탕 수녀와 같은 자기희생의 나눔을 실천하는 실천가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행동한다. 세계의 분노가 모여드는 곳이 어느 곳이든 달려가 미술이라는 형식이 가질 수 있는 명쾌하고 파워 풀 한 이미지의 칼날을 던진다. 그 호소력 넘치는 작품들은 ‘파괴를 일삼는 암적인 존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시인에게, 전 세계 민중에게는 저항과 투쟁의 동질적 가치로 사랑을 받았다. 문제의 핵심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독성, 그리고 빼어난 상징과 은유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오만이 보여주는 죽음을 향한 저주의 증거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은 향기로운 꽃과 다름없다.

브라질에서(1992년. 리우환경회의에 <쓰레기들>전시), 미국에서(1995년. 뉴욕 유엔본부에 <9680>전시), 터키에서(1996년. 이스탄불 세계주거회의에서 <투명한 야만>제작 전시), 일본에서(1997년. 교토 제3차 세계 환경회의에 <펭귄이 녹고 있다>전시), 임진각에서(1998년. <장산곶매>전시), 아르헨티나에서(1998년. 브에노스 아이레스 COP4 참가 <지구반지> <문병의 끝>전시), 무주에서(1999. 어린이 환경캠프에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다>전시), 헤이그에서(2000년. 헤이그 COP6 참가 <펭귄이 녹고 있다>제작 설치), 그리고 새만금에서, 북한산에서, 뉴질랜드에서 보여준 환경미술의 행동을 기억해 보라!
그는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생태 환경의 위기를 고발했다. 주지하듯 오늘날 인류가 환경위기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음은 이제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지금까지 인류가 맞이해 온 모든 종류의 참사 가운데 환경재앙은 선택적인 것이거나 혹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어서, 이제 인류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마저 상실한 채 영원한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7. 임동식 <사유의 경치> _ 이화익갤러리 _ 5월

미의 영토엔 무엇이 있을까. 아키타입Archetype으로의 회귀(혹은 귀속) 상상을 벗는 본질의 마당에 무엇이 자라고 있으며, 그 향기는 무엇인가? 미는 예술의 몸을 지탱하는 뼈, 살, 피 그 모두를 포괄한다. 하여, 미와 몸은 하나라 할 수 있다.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는 가지에 달린 잎과 바람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역사는 이 몸의 진실을 알고자 했다. 화론 육법이 그렇고 서구 미학의 본류가 그렇다. 최한기는, 음양의 조화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생기를 지닌다고 하여 ‘생기론生氣論’을 주장했다. 이 ‘생기’는 ‘활기活氣’와 다르지 않다. 생명은 그것을 ‘위해’하려는 모든 것과 저항하며 자란다. 미도 이와 같아서 하나의 씨알처럼 꿈틀거린다. 임동식의 회화는 그가 그토록 엄격하게 추구했던 ‘자연미술’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다. 미술의 순수성을 자연에서 찾고자 했던 임동식 작업은 수행자적 면모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그러한 순수성을 ‘위해’하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과도 타협을 거부했던 그 자신의 ‘몸’을 그리고 있다. 그의 태도는 미의 영토를 상상케 하며, 회화의 활기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술의 신화를 긍정해야 한다면, 그의 회화를 탄생시킨 ‘몸의 적멸’을 먼저 이해해야할지 모른다.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하려는 그의 의지가 있었기에, 30여년에 이르는 작업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1981년, 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의 전신인 야외현장미술연구회의 창립 서문을 보면, 자연과의 신선한 접촉을 통해 야외미술을 연구하는 모임이라 밝히면서 자연에 대한 강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자연의) 순리적 변화, 무한한 넓이와 두께, 그 가운데의 모든 생명력을 예찬한다고 적고 있다. 이 글의 곳곳에는 그와 같은 ‘예찬’의 어휘들이 생생하다. 가령, “들에 핀 야생초와 같은 생명력”, “풀 한 포기의 떨림에서부터 여치의 울음, 개구리의 합창, 새, 물고기, 나뭇결에 스치는 바람소리, 밤하늘의 별빛, 봄의 꽃”, “스치는 바람결에 떨림의 춤을 추었던 초목”, “돌 항아리에 밤이슬을 받아 부어 흘려 놓은 듯 한 금강물” 등은 시어에 다름 아니다. 임동식이 쓴 이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1981년 7월 하순, 호박잎이 커질 무렵, 그 위에 떨어지는 밤 소나기를 들으며 구 공주여고 교실-작업장에서 쓰다” 그의 회화는 옹근 그때의 정신을 지키면서, 자연과 인간의 일여一如를 완성하려 한다. 그와 그의 몸, 회화는 그래서 이 사회에 대한 통 큰 저항이며, 메시지다.

세대는 새로운 세대로 흘러야 하고, 그 기억은 새로운 언어로 쓰는 투쟁이 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4.3에서 얻는 깨달음은 슬픔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진보여야 한다.
4.3미술은 우리 민족이 겪는 ‘기억투쟁’의 한 사례라 할 것이다. 


8. 이흥덕 _ 갤러리소현 _ 2008년 5월

이흥덕은 1980년대 이후의 한국 현실과 상황을 회화적 묘판으로 완성하고 있는 리얼리스트이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현실의 이면을 재현했기 때문에 더 강한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비현실과 초현실, 욕망과 판타지를 뒤섞어 현실보다 더 현실감 있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이란 공간지형 속에서 ‘카페’와 ‘지하철’ 이란 특정 장소를 지목해 그 시대의 현실적 미감을 발굴하고 채집해 나간 기묘한 현실 풍속도는 리얼리즘의 탁월한 성취라 하겠다. 그의 회화적 시선은 이제 갇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상승했으나 여전히 난망한 21세기 수도권의 비현실적 세계를 꿰뚫고 있다. 살인과 폭력, 죽음, 그리고 야만과 결탁의 도시풍경이 깃든 현실은 부조리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작가는 현기증 나는 이 히스테리한 현실에 과거와 현재, 즉 전통과 역사를 오버랩 시켜 거대한 만다라를 구성하려 한다.

카페와 에로스, 지하철, 그리고 <2006서울타워>를 거쳐 이제 그가 도달한 곳은 아시아다. 20세기 동북아시아는 혁명과 침략, 식민, 그리고 전쟁의 나날이었다. 비슷한 중세를 겪었음에도 20세기 동북아시아는 전제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길을 실험했다. 아시아는 본래 그리스인들이 그들 나라의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 ‘아수(masu)’라는 아시리아어에서 유래하며, 북쪽 시베리아 첼류스킨곶(串)에서 남쪽 싱가포르 피아이곶까지, 그리고 서쪽 터키의 바바곶에서 북동쪽 시베리아의 데즈네프곶까지 걸쳐있는 이 땅은 수 천 년 동안 문화혼합의 통섭을 이어왔다. 이제 이흥덕이 주목하는 것은 이 아시아의 풍경이고, 그 첫 번째는 동북아시아 삼국의 현실이다. <2006서울타워>의 형식이 지속되고 있는 이 풍경의 내장은 전통, 역사, 혁명, 그리고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9. 정현 _ 학고재 _ 9월

정현의 1999년 작품 <Untitled>에 철근이 등장한다. 무작위로 엉킨 그것들 위에 한 인물이 추상으로 기립해 있다. 이때 철근은 인물의 삶, 뿌리, 역사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2004년, 오래된 양옥 작업실을 떠나기 전 그는 많은 양의 콜타르 드로잉 작품을 제작했다. 머리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는 기이한 형국의 이 드로잉들은 그가 지속적으로 탐색했던 인간과 그 근원적 본질성에 대한 경구들이라 할 수 있다. 경전의 잠언들처럼 이 드로잉은 그의 조각 작품을 해제하는 시어(詩語)로 작동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의 시어들은 몸의 활기(活氣)를 받아 골격의 풍화를 거쳐 탄생한 씨알들로 비쳐진다. 단지 삐죽거리거나 어떤 치기로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몸이 대지로 육화된 미학적 상징을 머리로 표현한 뒤 거기서 힘찬 싹을 틔우고 있단 얘기다. 몇 개의 드로잉에선 실제로 푸른 싹들이 그 골격에 뿌리 내리고 있다. 대지를 뒤덮고 있는 길의 껍데기 콜타르가 역설적이게도 대지의 뼈를 응축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석고, 돌, 침목, 콜타르에 이르기까지 그가 주목한 조각적 재질들은 하나같이 대지의 시간이 잉태한 단단한 뼈들이다. 그는 그 안에서 퇴적된 인간의 몸을 발굴하기 위해 도끼와 전기톱, 그라인더를 동원해 왔다. 마치 우주의 숨결이 신목으로 자라 거대한 신화를 형성하듯 그는 육신에 깃든 에고(ego)의 신화를 채굴하려 했던 것이다. (당신이) 때때로 그에게서 도끼를 든 무당의 환영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정현이란 조각가의 실체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그는 불의 씨알로 들어간 듯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사유의 수순이 아닐까 하는데, 최근에 주로 사용한 침목이나 콜타르는 그 자체로 불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우리 존재를 불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긴장 속에서 항상 생동하고 있어서 올라가고 내려가며 빛나거나 어두워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그는 불의 솟구침을 포착하고 불에 참여하면서 존재 자체가 불처럼 용솟음친다고 말했다. 정현은 철근을 불로 녹여서 솟구침의 현상들을 조형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머리 없이 대지에서 곧장 솟아올랐다. 머리가 몸의 상징어이듯이 몸은 대지의 상징어이니 이제 그 뿌리는 대지로 돌아가고, 잘 자란 철근의 싹들이 영글고 있다 할 것이다. 정현 작품의 리얼리티는 이처럼 존재의 실존을 끝없이 파헤친 자리에서 피어올린 불의 몸이며, 불의 뼈라 할 터이다. “불은 부동의 것이 아니다. 불은 잠잘 때도 살아 움직인다. 꿈꾸는 사람에게 불의 이미지는 강렬함을 전달하는 하나의 학파와도 같은 것”이라고 바슐라르가 얘기했을 때 정현의 불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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