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스페이스'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03.26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2. 2009.03.18 풋풋한 어휘의 건강한 청춘영화
  3. 2009.02.26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4. 2009.02.05 인디다큐 새얼굴을 찾아라!
  5. 2009.01.13 진짜 삶을 담고 싶었던 다큐멘터리스트
  6. 2008.12.02 ‘잊혀질 모든 순간에 대한 기억’
  7. 2008.11.09 오! 원더풀, 인디스토리 10년 -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 10주년 영화제
  8. 2008.10.31 '여자 김기덕'의 냉혹하고 불편한 시선 - 이한나, 《슬리핑 뷰티》 (1)
  9. 2008.10.29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 ①]'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 김동원 감독 (1)
  10. 2008.10.02 사회는 우리를 패배자 혹은 노예라고 한다 - [영화소개]일본다큐멘터리특별전, 아와부치 히로키,《조난 프리타 遭難 フリーター》
2009.03.26 10:27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한독협,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개최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이주호 기자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주제로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26일 7시 명보아트홀에서 개막하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는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김경만, 2008), <잊지 않을 거야>(영, 2009), <철탑, 2008년 2월25일 박현상씨>(변해원, 2008) 등 단편 3편이 선정되었다.

이외 <워낭소리>의 고영재 PD가 제작을 맡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장편 다큐멘터리 <농민가>(윤덕현, 2008)와 기지촌의 새 이름인 아메리칸 앨리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아메리칸 앨리>(김동령, 2008)를 비롯한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 35편과 해외작 7편이 상영된다.

부대행사로는 3월 27일 금요일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6편의 영화를 연속 상영하는 심야상영회와 29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저녁 8시 30분 창고극장에서 감독들과 대화할 수 있는 <다큐로 이야기하기> 등이 준비되어 있다.

1회 관람료는 5,000원이며 상영일정을 비롯한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홈페이지(http://stunet.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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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8 08:24

풋풋한 어휘의 건강한 청춘영화

인디포럼 월례상영 두 번째, <푸른강은 흘러라>
                                                                                                                                         안태호 기자
영화가 우울과 절망을 담아내는 매체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푸른강은 흘러라]는 삶의 건강성을 푸릇푸릇하게 담아내는 독특한 청춘영화의 입지를 보여준다.
▲ 영화가 우울과 절망을 담아내는 매체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푸른강은 흘러라]는 삶의 건강성을 푸릇푸릇하게 담아내는 독특한 청춘영화의 입지를 보여준다.

매달 이야기가 있는 상영회를 통해 관객과 작가들을 위한 논의를 제공하는 인디포럼 월례상영회의 두 번째 순서가 3월 24일(화) 오후 8시 강미자 감독의 <푸른강은 흘러라>로 진행된다. 이번 상영회의 주제는 “우리의 어휘는 당신들의 풍요보다 아름답다”. 연변의 소년 소녀들을 주제로 한 이 청춘영화에서 발화되는 어휘와 대화톤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이곳의 관점에서 촌스러움으로 폄하되고 흔히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되기 일쑤인 이들의 언어생활은 그 풋풋함으로 인해 오히려 지워져버리고 잊혀져버린 가치들을 환기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연변의 작가인 량춘식과 김남현의 중단편 소설을 각색해 만들어진 영화는 연변 청춘군상들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을 포착해 낸다.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천진함이나 계몽적인 면모가 우스꽝스럽거나 답답해보일 수 있겠지만, 영화가 우울과 절망을 담아내는 매체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푸른강은 흘러라>는 삶의 건강성을 푸릇푸릇하게 담아내는 독특한 청춘영화의 입지를 보여준다.

진행은 양해훈 감독이 맡았으며 영화를 연출한 강미자 감독과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작가가 대담에 나선다. 상영관은 인디스페이스. 티켓 5,000원. 문의 02-720-6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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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6 09:18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13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김나라 기자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워낭소리>가 1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요즘, 국내외 관객과 평단이 열광한 아시아 각국의 독립영화를 미리 만나볼 기회가 온다.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Asia Cinema Fund, 이하 ACF)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ACF 쇼케이스에서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제작 활성화와 안정적 제작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작품 14편이 상영된다.

상영될 작품은 <똥파리>(양익준), <허수아비들의 땅>(노경태), <약탈자들>(손영성),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마리오), <샘터분식-그들도 우리처럼>(태준식), <농민가>(윤덕현), <태백 잉걸의 땅>(김영조) 등 국내 작품 7편과 <노인의 바다>(라제쉬 쉐라), <리버 피플>(허 지엔쥰), <멘탈>(소다 카즈히로), <개종자>(파누 아리), <유토피아>(왕 이런), <공성계>(지단), <우공이산>(조안나 바스케스 아롱) 등 중국, 태국, 인도, 일본 등의 아시아 각국의 독립영화 7편이다.

이번 상영작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특히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2009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프랑스 도빌영화제, 스위스 프리브룩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어 주목 받았다. 또 <허수아비들의 땅>은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베를린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 상영되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 두 작품은 오는 4월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피프메세나상, 2008년 두바이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다큐멘터리 1등상을 수상한 소다 카즈히로 감독의 <멘탈> 역시 올해 6월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은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를 가늠하고 아시아 독립영화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ACF 쇼케이스는 서울에서 열린 후 4월 21(화)일부터 26(일)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개최된다. 문의: 02-778-0366(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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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13:10

인디다큐 새얼굴을 찾아라!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지원사업 공모
▲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오는 3월 개막에 앞서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김나라 기자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오는 3월 개막에 앞서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다큐멘터리의 시대정신을 계승하고 다양한 관객과 소통하고자 2001년 시작된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다.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은 기존에 제작경력과 포트폴리오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했던 제작지원 제도에서 벗어나 제작 경험이 없어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날 선 시선을 갖고 있는 새 얼굴들을 발굴한다는 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사업으로 다큐멘터리의 다층적인 소재와 형식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게 한다.

지원 자격은 극장 개봉, 영화제, 방송 등에 상영된 작품이 2편 이하인 제작자이다. 주제 및 포맷은 제한이 없으며 최종 제작물의 상영길이는 40분 이내여야 한다.

선정된 감독들에게는 기존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기술 스탭들이 각 작품별로 멘토로 지정되어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함께 하는 ‘멘토 시스템’을 제공 받게 되며, 미디액트의 기자재 및 시설물을 무상 이용할 수 있는 ‘미디액트 머니’도 지원 받는다. 또한 영화제 입장료 수익의 일정 부분이 총 지원작에 균등 배분되어 현금으로 지급된다.

심사는 서류심사를 거쳐 영화제 기간 중 프리젠테이션 심사 후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폐막식을 통해 발표 및 시상한다. 최종 선정된 감독의 작품은 2009년 4월 13일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제작기간을 거쳐 2010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최종 상영할 예정이다.

공모에 지원하려면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공식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제출서류와 함께 서울 마포구 공덕동 법마을길 29 2층 (우)121-800로 기간 내에 방문 또는 우편 접수하면 된다. 문의: 02-334-3166(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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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1:19

진짜 삶을 담고 싶었던 다큐멘터리스트

사토마코토 회고전 인디스페이스에서 9일부터

사토 마코토 회고전이 1월 9일(금)부터 14일(수)까지 6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 사토 마코토 회고전이 1월 9일(금)부터 14일(수)까지 6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김나라 기자

사토 마코토 회고전이 1월 9일(금)부터 14일(수)까지 6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일본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사토 마코토는 수은 중독으로 고통 받는 아가노 강 주민들의 삶을 그린 <아가노 강에 살다>(1992)로 데뷔한 이후 지난 2007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기 전까지 방송 다큐멘터리와 극장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번 회고전에 상영될 작품은 <아가노 강에 살다>(1992), <이상한 나라의 예술가들>(1998), <SELF AND OTHERS>(2001), <하나코>(2001), <아가노의 기억>(2004), <아웃 오브 플레이스>(2005) 등 6작품이다.

<아가노 강에 살다>는 감독이 3년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만든 것으로 미나마타병에 걸린 주민들의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그들의 생생한 삶을 따뜻하게 담아내 호평 받았다. 사토 마코토 감독은 이 작품으로 스위스리용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선댄스영화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랑스벨포를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또 12년 만에 만들어진 <아가노 강에 살다>의 후속편 <아가노의 기억>은 10여 년 전 영화에 출연했던 주민들 대부분이 세상을 뜨고 난 후 그들이 남긴 흔적과 기억, 그리고 <아가노 강에 살다>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예술가들>과 <하나코>는 지적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을 다루었으며 <SELF AND OTHERS>는 일본 사진작가 ‘고초 시게오’의 사진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또 사토 마코토 감독의 마지막 작품 <아웃 오브 플레이스>는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영화다.

사토 마코토 감독은 ‘미나마타병 환자’와 ‘지적장애인’의 삶을 다루며 매체에서 왜곡하기 쉬운 이미지가 아닌 생동력 넘치는 진짜 삶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 회고전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가장 뛰어난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였던 사토 마코토 감독을 기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자세한 상영일정은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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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6:05

‘잊혀질 모든 순간에 대한 기억’

김종관 감독 단편컬렉션 《연인들》12월 4일 개봉

단편 작품 11편을 옴니버스로 구성한《연인들》은 김종관 감독의 작품 세계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 단편 작품 11편을 옴니버스로 구성한《연인들》은 김종관 감독의 작품 세계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중학교 때 나는 학교 건물 5층에서도 운동장에 모여 있는 천여 명의 아이들 중 단 한 명만은 한눈에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아니, 그 중에 반이 남자였으니까 오백여 명의 똑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 아이들 중 단 한 명은. 그즈음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방송부원이었기 때문에 조례나 국민체조 같은 시간에 행진곡을 틀거나 마이크 볼륨을 조절하는 일 따위로 운동장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나는 학교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아이를 내려다보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행여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몇 십 미터 앞에서부터 귀까지 빨개져 도망가기 바빴지만, 그곳에서는 창틀에 턱을 괴고 마음껏 훔쳐볼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지루해 하는 모습도,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도.

김종관 감독의 단편컬렉션 《연인들》에는 그런 풋풋한 설렘이 있다. 숨 막힐 듯, 현기증 나는 두근거림. 통제가 안 되는 손발과 나중에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실수들. 김종관 감독은 그런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까지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과연 ‘독보적인 감성지기’라는 수식어가 괜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에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선 여자의 흔들리는 눈동자, 눈도 못 마주치는 수줍음, 너무 떨린 나머지 하는 말실수 등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감싸는 따뜻한 빛을 통해 순수하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예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연인들》에는 설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 사랑이 끝난 후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이야기도 있다. <모놀로그#1>의 여자는 사랑이 끝난 후의 허전함,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서글픔, 화도 났다 외롭기도 했다 미련도 생겼다가 하는 이별 후의 감정을 체념한 듯, 무심하게 뱉어낸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바닷가 쪼그려 앉은 여자의 작고 둥근 등이 한없이 추워 보인다.

처음 소개되는 김종관 감독의 최신작 3편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한형모 감독의 1956년 작 《자유부인》을 모티브로 한 <메모리즈>의 자막에서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관을 읽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지나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사라질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에 단편영화는 더욱 적절한 방법처럼 느껴진다.

또 《연인들》의 마지막에 상영되는 최신작 <올 가을의 트렌트>에는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와 공간들이 담겨 있다. 영화 속 깜짝 출연으로 감독의 팬들에게는 더욱 보는 즐거움을 줄 것 같다.

《연인들》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2008년 열두 번째 개봉지원작으로, 한 감독의 단편 작품을 묶어 개봉하는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 단편영화의 배급 경로라 하면 영화제를 통해 일회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보기 힘든 단편 작품 11편을 옴니버스로 구성한《연인들》은 김종관 감독의 작품 세계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2월을 겨냥해 쏟아지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첫사랑의 설렘을 마음속에서 꺼내 보고 싶은 관객은 중앙시네마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찾아보길 바란다. 12월 4일부터. 문의: 02-778-0366(인디스페이스), http://cafe.naver.com/indiespace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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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9 15:52

오! 원더풀, 인디스토리 10년 -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 10주년 영화제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오! 인디풀영화제’를 개최한다
▲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오! 인디풀영화제’를 개최한다

2008년은 한국 독립영화계에 각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0년을 맞았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첫 돌을 맞았으며, 국내 유일한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탄생 1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라는 말조차 생소할 때, 더구나 ‘독립영화 시장’이라는 것조차 없던 때 홀로 독립영화 배급의 길을 뚫은 인디스토리가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오! 인디풀영화제’를 개최한다. 오는 11월 9일부터 20일까지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 상상마당, 미로스페이스 등 서울 시내 4개 극장에서 진행되는 인디풀영화제는 지난 10년의 독립영화 흐름을 짚어보고 독립영화의 미래를 그려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보다 깊이’, ‘보다 멀리’, ‘보다 자유롭게’라는 제목의 섹션으로 《송환》(김동원), 《은하해방전선》(윤성호),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남기웅) 등 장편 12편과 《아빠가 필요해》(장형윤),《굿 로맨스》(이송희일),《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김정구) 등 단편 28편, 총 40편의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상영작들은 영화감독, 평론가, 제작자 등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 10인의 추천으로 선정됐다.
 
또한 인디스토리에서 제작한 《지구에서 사는 법》, 《눈부신 하루》,《팔월의 일요일들》등 3편과 수입, 배급한 《달빛속삭임》, 《미안해》, 《애프터 미드나잇》 등 해외 독립영화 3편도 상영된다.

한편 인디풀영화제와 동시에 ‘존 카사베츠 어워드 영화제’가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함께 치러진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전설 존 카사베츠 감독의 이름을 딴 ‘존 카사베츠 어워드’는 세계적인 독립영화시상식 ‘필름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수상 부문 중 하나다.

존 카사베츠 어워드 영화제에서는《어거스트 이브닝》(크리스 에스카), 《네눈박이 괴물들》(에린 크럼리, 수잔 비스), 《열두 살의 기억들》(마이클 쿠에스타), 《컨벤셔니어즈》(모라 스티븐스), 《룸》(카일 헨리), 《브릭》(라이언 존슨) 등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최신 작품 6편이 상영된다. 영화제가 끝난 후에는 대구 동성아트홀, 광주극장,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11월 22일부터 12월 15일까지 후속 상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밖에 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11월 20일 ‘한국 저예산 영화의 제작 활성화와 제도적 지원 방향에 관한 포럼’도 마련되어 있다. 상영 일정 등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오! 인디풀영화제 공식 블로그 참조. 
 

                                                        


                                                       * 2008-11-06 오후 3:06:53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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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11:11

'여자 김기덕'의 냉혹하고 불편한 시선 - 이한나, 《슬리핑 뷰티》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참으로 냉정한 영화다. 감독의 고운 얼굴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 앳된 모습과 도저히 어울리지않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냉혹한 시선이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폭력은 세상에 가득하고 그것은 세대를 통해 반복될 뿐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 돌고 돈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비범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도처에 편재하는 폭력을 바라보는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다. 영화에는 인물들의 지극히 내밀한 곳까지 파고들어가는 농밀한 직접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폭력을 응시하는 냉정한 객관성이 공존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인물들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훔쳐보는 자의 외설스런 호기심과 함께, 절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도록 강요된 자들의 당혹감이 혼재한다. 이 영화를 절대로 편안하게 볼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에 경련을 일으키는 이들은 약하고 자기방어력이 없는 존재, 특히 여성들이다. 이들이 다양한 얼굴을 한 폭력을 겪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성장 포물선을 그린다. 어린 시절 소녀가 경험한 첫 섹스의 느낌, 의붓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성의 섹스 경험, 그리고 불모가 된 자신의 몸으로 치매 걸린 아버지의 자위를 도와야 하는 나이 든 딸의 경험. 각 여성들이 겪는 섹스는 성과 폭력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면서 성적인 호기심이 폭력에 대한 고통과 절망으로 변질되고 나아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에 둔감해지는 불감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 소녀에서 가임기 여성으로, 그리고 생산력이 제거된 세 여성을 연결하며 드러내는 성과 폭력으로 뒤엉킨 트라우마는 그녀들의 세대적 경험의 전형으로 제시되는 동시에 한 여성의 인생유전을 서로 다른 나이대의 세 여성의 이미지로 나눠놓은 것으로 읽게 한다. 그녀들에게 이성과의 접촉은 곧 폭력의 경험이다.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제시되는 이 ‘성/폭력’의 연관성은 그녀들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구조화된 폭력의 알레고리로 제시된다. 그래서 영화는 다시 한 번 불편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겪는 성과 폭력의 트라우마가 그 가공할 폭력성 속에서도 때로는 기이하리만치 탐미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성/폭력 경험은 순백의 옷이나 천 위에 꽃잎처럼 번져가는 선홍색 피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래서 소녀는 사촌오빠의 흰 옷에 붉게 스며드는 피를 보며 “예쁘다”고 중얼거리고 아버지의 아이를 가진 젊은 여성은 기묘한 가족 관계로 꼬인 남학생의 피묻은 교복에서 묘한 설렘을 경험한다. 백색 위에 번져가는 핏빛은 순수의 상실을 드러내는 일종의 얼룩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탐미적으로 제시됨으로써 폭력의 공포와 성적 흥분을 모호하게 뒤섞는 도착적인 미적 체험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사촌> <겨울잠>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소제목이 붙은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소녀, 젊은 여성, 중년여성 세 여성이 등장한다. 세 개의 이야기를 이어붙이면서 영화는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상화된 성/폭력이라는 테마와, 한 여성의 성장과정에서 통과의례처럼 겪는 성/폭력을 통해 폭력의 연쇄적 경험으로서의 성장이라는 테마를 교묘하게 포개놓는다. <나의 사촌>에서 생기발랄한 소녀의 표정과 삶에 지친 무표정한 소녀 엄마의 얼굴은 뚜렷이 비교된다. 과거를 회상하는 엄마를 통해 우리는 아마도 과거의 그녀는 지금 그녀의 딸만큼이나 생기 넘치고 호기심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피로한 얼굴로 바꾸어 놓았을까? <겨울잠>에서 치매 아버지를 돌보며 기르던 오리떼를 살처분하는 중년여성 이례의 망연자실한 얼굴은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들고 꼿꼿이 발기한 늙은 아버지의 자위까지 도와주어야하는 그녀의 끔찍한 현실에 이르면 그 참혹함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만삭의 배 아래로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면서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수진의 모습에서는 아예 할 말을 잃고 만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그녀들이 허공을 향해 던지는 이 무섭도록 텅 빈 표정은 당연히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쯤에서 영화의 불공정함에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 여성들은 폭력과 섹스(性)의 분리불가능한 교접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걸까? 침묵하는 육체에 폭력의 상흔을 아로새김으로써만 그녀들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 수 있는 걸까? 여러모로 영화는 관객을 힘겹고 고통스럽게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관객에게 폭력의 죄의식을 전이시킴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폭력에 떨고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외설스럽게 만드는 도처에 존재하는 거북한 시선들. 그리고 그녀들을 비추는 거울들. 이 모든 응시는 우리의 관음증을 책망하며 그녀들의 고통 속에서 시각적 쾌락을 느끼는 관객을 단죄한다. 그녀들의 고통에서 우리는 구조화된 도착적 쾌락에 빠지지만 그녀들이 관객에게 응시를 돌려보내는 순간 우리는 죄의식과 함께 불편, 불쾌함을 느껴야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그녀들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로 한 이상 감당해야할 도착성이다. 반복하건대 영화는 지독히 불편하고 불쾌하다. 이 영화에서 모종의 죄의식 없이 그저 불쾌감만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절반만 본 것인지도 모른다.


* 이한나 감독의 《슬리핑 뷰티》는 현재 홍익대 인근 시네마 상상마당, 서울 중구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3관), 파주씨너스 이채에서 상영 중이다.

- 이 원고는 한독협 내 비평분과 창작물로 인디스페이스 소식지와 <컬처뉴스>에 동시 게재 됩니다.


 * 맹수진은 고려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전주국제영화제 비평가 위원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본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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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15:35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 ①]'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 김동원 감독

10월 23일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 10월 23일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10주년을 맞았다. 한때 생소하기만 했던 ‘독립영화’라는 존재의 정체성 확립과 자리매김의 역사는 한독협의 10년 역사와 나란히 놓여져 있다. 영화인들이 자본과 검열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의미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까지 한독협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다. 컬처뉴스는 한독협 탄생 10년을 맞아 독립영화계의 1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대 한독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감독, 배우, 활동가, 제작자 등 독립영화인들 10명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번 기획은 한독협 사무국과 팀블로그 필름온이 함께해 이루어졌다.

첫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다. 여러모로 한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동원 감독은 한독협의 초기 모습과 현재의 지점을 역사적인 맥락에 위치시켜 새롭게 보게해 준다. 그가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활동하게 된 계기들 역시 놓치기 아까운 역사의 기록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 / 편집자.

독립영화, 무에서 유를 만들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 마디 해 달라.

김동원 감독: ‘벌써 10년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또래는 세월이 빨리 가니까.(웃음) 한편으론 독립영화 활동한지 오래됐는데 10년밖에 안됐나 싶기도 하고. 내가 초대 이사장을 하면서 한독협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각 사무국장하고 어린 사무원은 그 때 월급 20만원씩 받고 시작했다.

독립영화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인가.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지금은 미디어 센터, 독립영화전용관, 독립영화 제작지원제도 등이 생겼다. 이런 건 외국사례로 말로만 듣던 것들인데, 일반 영화계에서 질투할 만하다.(웃음) 막 없던 게 생기고 점점 늘어나니까, 있던 게 없어진 사람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독립영화계만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지원금 총액으로 보면 굉장히 작다. 

그만큼 독립영화계가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10년 전만해도 독립영화라는 말을 할 때 약간 켕기는 게 있었다. 그때 독립영화하면 반정부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진위)에 독립영화라는 말이나, 독립영화 지원은 없었다. 또 영진위 1기 위원회 생기고도 몇 년간은 없었고, 그 이후에 생겼다.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공식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강한섭 위원장이 다시 뺀다고 한다. ‘작은 영화’ 이런 식으로 바꾼다고.

작은 영화라... 김동원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게 20년이 지났는데, 독립영화란 말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난 원래 상업영화 지망생이었고, 독립영화란 말도 없었다. 1980년대 얄라성이나 장산곶매 등에서 영화를 만들고, 미국식 개념의 이름을 붙여준 거다. 사실 미국식 개념과는 많이 다른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나는 독립영화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상업영화 조감독을 했는데 이게 나랑 안 맞더라. 당시 전두환 정권 때 이런저런 일이 많았는데 방송에서는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때 내가 결혼식 비디오를 찍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땐데, 사회의 모습을 찍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날라리, 가장 감동적인 올림픽을 만나다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김동원 감독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

날라리였다. 데모도 안했고.(웃음)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엔 운동권이란 개념도 없었다. 언더그라운드에는 좀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난 연극 많이 하고, 놀기 좋아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 때 무의식적으로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는 ‘왜 우리학교는 데모 안하지? 데모하면 휴교하는데’하면서 데모가 나길 원하기도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유인물 만들어서 뿌리기도 했다. 휴교 때문에. 그런 걸 보면 약간 반골 기질이 있었나 보다. 그런 게 정리가 안 되다가 상계동 가서 정리가 됐다. 사회과학 책도 한두 권 읽어봤지만 전혀 안 와 닿았는데, 상계동 가서 구조적 모순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상계동에 어떻게 들어간 건가.

상계동 철거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신부님이 거기 들어가 계셨는데 강제철거 당하는 장면을 증거자료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하루만 와서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게 내 팔자를 바꿀 줄을 몰랐다.

처음 <상계동 올림픽>을 촬영할 때 ‘다큐멘터리는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나.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고, 또 당시 우리나라에는 필름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거의 없었다. 대학 영화과에서도 단편영화제를 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없었다. 서울영화집단에서 8미리 필름으로 십 분짜리 다큐멘터리를 1985, 6년인가에 만든 게 전부였다. 그저 머릿속에는 TV에서 본, ‘추적 60분’유의 다큐멘터리만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그런 관성들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외국 나가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보니까 ‘아 다큐멘터리가 할 만한 거구나’ 싶었다. 상계동 시절에는 전혀 몰랐는데, 가서 보니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 때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이렇게 넓구나’ 했다.

그 이후에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느낀 건가? 어떤 매력을 느껴서 다큐멘터리를 계속하게 된 건가.

조연출을 한 4년 정도 했는데, 현장이 지겨웠다. 촬영할 때도 긴장감을 못 느꼈다. 그런데 상계동에서 철거 현장을 찍을 때,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 철거 깡패들이 위협해도 전혀 무섭지가 않은 거다. 카메라가 알아서 막 돌아다니는 신들린 경험을 했는데, 그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촬영하는 게 이런 거구나. 또 철거, 투쟁 현장 모습들이 외부에 알려지기 힘든 상황에 <상계동 올림픽>을 발표했는데, 엉성하게 만들었지만 대학가에서 상영되고 그러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 때 다큐멘터리의 굉장한 힘을 느꼈다.

그래도 뭔가 손에 잡히지 않을 시절,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상계동 올림픽> 하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촬영할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외국영화 직배 관련해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정지영 감독이 나에게 ‘다큐멘터리를 해라. 극영화 하는 사람은 많지 않냐. 넌 잘할 것 같고, 너라도 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고, 싫지도 않고, 또 극영화가 잘 안 풀리고 해서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총 제작기간만 12년이 걸린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투사? 난 그런 사람 아니다

1990년대에 <송환> 촬영하랴, <명성 그 6일의 기억> 발표하랴 정신없었을 거 같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부터 장기수들이 출소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저분들의 증언은 기록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촬영을 시작했다. 사실 그걸 어떻게 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장기수들의 삶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이 함께 벌인 석방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몇 편 나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송환>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사실 내가 오며가며 찍은 거지 찍어야겠다 해서 찍은 게 별로 없었다.(웃음)

 그럼 <송환>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1999년 초부터 송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의 송환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남북정상회담하면서 송환이 급물살을 타면서 엄청 급해졌다. 그 다음 6월부터 9월까지는 정신없이 찍었다. 그 전에는 판판히 놀다가.(웃음)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파이가 커졌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촬영했고 어떤 관심을 가졌나.

지금도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는 액티비즘, 즉 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에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고. 서울영상집단,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 등의 집단은 일종의 운동으로 한 거다. 노뉴단은 노동운동, 서울영상집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 민족영화연구소 등은 그 외 사회문제를 다뤘다.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태생단계의 특수성 때문에 액티비즘이 강하다.

김동원 감독은 어느 편에 속했나.

난 아무데도 속해있지 않았다. 굳이 얘기하면 빈민운동 쪽인데, 빈민지역 청년들과 활동을 하면서도 작업은 혼자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정체성은 없었다.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는 현장의 기록이고, 일상이었다. 빈민운동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느 순간에 찾았나.

나는 아직도 감독이라는 말을 안 좋아한다. 난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너무 앞서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감독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도 감독이라고 부르고, 또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 하니까 이젠 그냥 ‘맘대로 부르라’고 한다.(웃음) 감독이라는 말이 옛날보다는 많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엄정한 사실성, 객관성 이런 것들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는데 요즘에는 다큐멘터리도 연출을 해도 괜찮다는 게 일반적이니까. 내가 아무리 연출을 안 하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다.

작업을 하면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경우도 많이 있었겠다.

글쎄, 잡혀갔던 거?(웃음) 푸른영상 하면서 몇 번 잡혀갔다. 1993부터 2년 터울로. 그 때만해도 영화법이 손질되기 전이고, 장기수들을 찍는다는 게 시찰 대상이었다. 안기부 직원한테 매일 안부전화를 받았으니. 그쪽에서 조작간첩 사건들과 엮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잘 안됐다. 1996년에는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란비디오 단속법을 걸고 넘어졌다. 참, 음란비디오라니. 그 외에도 청소년 보호법, 국가 보안법 등 다양하게 조사받았다. 다행이 변호사를 잘 만나서 기각시켰다. 

투쟁의 역사다.(웃음)

투쟁은 무슨.(웃음) 난 투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그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 당당한 거다. 심의를 받으려면 10분에 얼마 돈을 내야 하는데 내가 골이 비었나.(웃음) 여하튼 몇 번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미지가 그렇게 됐는데, 내가 용감해서 싸운 건 아니다. 그냥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김동원 감독은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송환>)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받을 거 같다.

글쎄. ‘왜 이렇게 구질구질한 얘기만 하냐’는 사람은 있지만 따갑지는 않다. 당연히 알려야 할 이야기고. 지금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전혀 안했는데 당연히 나라도 해야지 그랬다.


한독협. 힘든 시작, 지금은 괜찮아 무엇이든!

한독협이 세워지기 전, 독립영화인들은 어디를 구심점으로 모였나.

1991년에 독립영화협의회라는 단체가 세워졌다. 내가 의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는 구속이 너무 많았다. 그 때만 해도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고, 모여 봤자 운동하는 독립영화인들만 모이는 거 같고. 1990년대 중반 넘어가고, 독립영화계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독립영화인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영화가 뭐냐’ 하는 정체성 논란도 있었고, 일련의 산통 끝에 한독협이 생겼다.

한독협이 생기고 어려움은 없었나.

내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웃음) 앞서 얘기한대로 한독협의 정체성 찾기가 가장 힘들었다. 한독협 초기에 독립영화협의회나 민예총 영화분과 등과 관계 설정하는 게 어려웠다. 1996년부터 한독협 설립 논의를 시작했으니까.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협회를 만든다는 거에 의구심 어린 시선도 있었고. 하여튼 초기에 발동 거는 게 좀 어려웠는데 발동 걸고 나서는 최근까지는 잘 굴러왔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3기 위원이었다. 어떻게 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면 회의만 많고, 그렇다고 독립영화에 관한 회의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 가야 된다고 하니까 갔다. 별 재미는 없었다.(웃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나.

목표가 너무 분명했다. 독립영화전용관 만드는 거. 10년 동안 만들자는 말만 있었지, 만들지 못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난 다른 건 못해도 전용관 하나 만큼은 만들겠다는 각오로 들어갔다. 다른 영진위 위원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의도를 내비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 독립영화인들의 노력 끝에 인디스페이스가 생겼다. 근데 인디스페이스가 위치한 중앙시네마 재건축 때문에 몇 년 안에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럼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지. 3기 영진위 때 미디어센터, 시네마테크, 독립영화전용관을 다 포괄하는 500억 규모의 복합상영관을 짓기로 서울시와 결정했다. 그런데 강한섭 위원장이 무슨 아시아센터를 건립한다고 한다. 지금 어떻게 진행 중인지 모르겠다.

규모를 500억에서 1,000억으로 늘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사업계획을 만들면 그 만큼 그 과정이 늦춰지는 거 아닌가. 현재 미디어센터 미디액트나 서울아트시네마, 독립영화전용관 모두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아무래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음, 어떻게 보면 위기를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어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이건 좋은 극장이 생긴다는 측면이 아니라 독립영화인들에게 뭔가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다른 얼굴, 하지만 우린 가족이다

한독협 홈페이지를 보면 초기에는 게시판에 서로 안부도 묻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화도 보고, 얘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한독협 10주년을 맞이한 2008년.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

글쎄. 내가 고민한다고 되나?(웃음) 이제 독립영화가 나름대로 사회적인 위상을 이제 갖게 됐다. 그런데 대안영화로서의 자기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영화가 잘 안 나오고 있다. ‘지금쯤 나올 때가 됐는데’하는 기대가 있는데 잘 그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은하해방전선>등 몇몇 작품은 기대를 많이 했고, 영화도 좋았음에도 불구라고 잘 안됐다. 영화는 관객과 함께 완성된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안 좋은 게 아닌데, 왜 안볼까. 이런 고민들을 한다. 답 없는 고민.

최근에 등장하는 후배들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다큐멘터리만 보자면,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본 <워낭소리>란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나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반가운 작품이다. <우린 액션배우다> <우리학교> 등 1년에 한 편씩은 문제작들이 나온다.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로는 ‘아 이런 게 일 년에 열편은 나와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코드가 약해지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열심히 만들고, 진정성이 보이는 다큐멘터리가 1년에 3-4편만 나오면 좋겠다. 인디다큐페스티벌에 7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됐다고 한다. 아르헨티나만 해도 다큐멘터리 영화제 하면 700여 편이 응모된다고 하는데, 우린 고작 70여 편이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있나.

촛불 문화제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올해는 촛불이 가장 활활 타지 않았나.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닌데, 나가다 보니 찍을 게 보이더라. 뭐 큰 건 아니지만 해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들어서 촛불 문화제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독협의 또 다른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 달라.

제언이라. 아쉬운 건 한독협 홈페이지를 보면 초기에는 게시판에 서로 안부도 묻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욕도 하고.(웃음) 뭔가 공동체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커져서 그런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이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사업도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끼리 식구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도움도 주고받고, 영화도 봐주고. 이런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그런 계기를 못 만들어 주는 거 같다. 여러 영화제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요즘엔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영화도 보고, 얘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2008-10-28 오전 11:35:02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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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15:07

사회는 우리를 패배자 혹은 노예라고 한다 - [영화소개]일본다큐멘터리특별전, 아와부치 히로키,《조난 프리타 遭難 フリーター》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공공부문 인턴 1만 명 채용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대학 졸업생 또는 휴학생 대상, 월 100만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닌, 별다른 혜택 없이 일시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제 아예 정부가 나서서 계약직을 늘려 청년층에 ‘88만원 세대’ 낙인을 찍으려나 보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의 호황으로 일본의 대학생들은 취직 걱정 없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일본도 고용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한가 보다. 고이즈미 총리의 규제 완화 이후, 기업들은 파견사원이라는 이름 하에 계약직 직원을 채용해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일본 청년층의 소득 격차는 심화되고 있고 비정규직, 일용직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프리타 족(Free+Arbeit의 일본식 조어)’은 더 늘었다. 티비에서는 아베 총리가 “젊으니까 다시 도전하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도쿄 근교에 있는 캐논 공장에서 일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가족들은 “그게 대학 나온 애가 할만한 일이냐”라지만 주중에는 공장에서 시급 1250엔을 받고 잉크병에 뚜껑 붙이는 일을 하고 주말에도 도쿄에 나가 일용직을 찾아야 겨우 생활이 가능하다.

사회는 우리를 패배자 혹은 노예라고 한다.
나는 누구에게 진 것일까? 나는 누구의 노예일까?

감독은 누구에게 이겨야만 비정규직 인생에서 벗어나 월급이 오르고 보너스도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을지 자문한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NHK 방송 프로그램 속의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변자’, ‘사회와 구조의 피해자’로 ‘연출’되지만 사실 감독 자신은 ‘사회 탓만은 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도쿄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큰 음반회사에 취직한 친구는 그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고 그걸 위해 뭘 하고 있냐고 묻는다. “글쎄...잡지사나 출판사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확실하진 않지만…매일 조금씩 정보도 모으고…”어물거리는 그에게 돌아오는 친구의 말.
“넌 지금 아무것도 하는 게 없잖아. 내가 구직 활동 많이 했는데 너 그렇게 하면 왕쪽팔린거야. 그냥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
순간 ‘왕쪽팔렸던’ 나의 구직 활동이 떠오르며 현재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내게 하는 말 같아 어두운 극장 안에서 혼자 낯을 붉혔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 누구 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점점 적어지는 ‘정규직’ 자릿수를 탓해야 하는 건지, 이력서 10만장까지 써 본 적 없는,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 “가득가득 일하고 싶어. 일하고 싶어~가득가득 웃고 싶어 행복 하고 싶어”라던 노랫말의 마음은 뚜렷이 와 닿았다. 구직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일하다 죽고 싶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겨울.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인 감독은 잘 곳을 찾지 못해 비 오는 밤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밤새 발 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아 온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도쿄의 끝, 남쪽 바다. 밤새 방황하던 청춘은 말한다.

“자, 이제 돌아가 볼까. 나는 이제 겨우 입구에 도착했다.”



2008-09-29 오후 5:47:12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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