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엽'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4.24 기타에 갇힌 노동자에게 일할 자유를!
  2. 2009.03.08 망루(望樓)는 망루(亡淚)다!
  3. 2009.01.28 여기, 예술이 있다
  4. 2009.01.23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2009.04.24 11:08

기타에 갇힌 노동자에게 일할 자유를!

콜트ㆍ콜텍 릴레이 문화행동, 판화가 이윤엽

판화가 이윤엽. 기타에 갇힌 노동자를 표현한 판화작품으로 일인시위에 나섰다.

▲ 판화가 이윤엽. 기타에 갇힌 노동자를 표현한 판화작품으로 일인시위에 나섰다.



                                                  안태호 기자

4월 22일 수요일 낮 12시.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몹시 불었다. 기분과는 달리 강렬한 바람이 얼굴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바람에 물건들이 계속 자리를 못잡는다. 바람과 투닥거리며 일인시위 판넬에 작품을 붙이랴, 바닥에 현수막을 붙이랴, 인사동 남인사마당 복판이 분주하다.

3월부터 시작된 ‘콜트ㆍ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예술인 릴레이 문화행동’의 일곱번째 일인시위가 시작됐다. 오늘의 시위자는 판화가 이윤엽. 그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싸움이 있을 때, 아예 대추리에 들어가 살았다. 그곳에서 발표한 대추리 연작판화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큰 활동은 대추리 주민으로 사는 것이었다. 올해 용산참사가 일어나자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제목의 판화작품을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유족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가장 뜨거운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작업하는 문제적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이윤엽 작가가 콜트ㆍ콜텍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들고 나온 작품은 <일하고 싶다>. 콜트 마크가 새겨진 기타의 소리통 위로 마스크를 쓴 노동자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의 손에는 톱과 망치가 들려 있고 머리 위에는 새 한마리가 그려져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기타에 갇힌 사람들을 표현했단다. 비록 기타에 갇혀 있지만 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손에 연장을 들려주었고, 이 상황이 조속히 해결되어 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평화를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 위에 새를 그렸다.

사실, 그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것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기막힌 사연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직후였다. 작년 10월 무렵 이 소식을 접한 이윤엽은 즉석에서 기타에 갇혀있는 노동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누가 먼저 사용했을거라 생각했던 이 주제는 이제껏 아무도 다루지 않았다. 작품은 시위 전날에서야 완성됐다.

이윤엽 작가는 작품을 말로 설명할 때가 가장 싫다며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딴은 그럴 것이다. 예술가에게 섬광처럼 떠오른 영감을 구구절절 말로 풀어내게 하는 것은 못할 짓이다. 예술가는 이미 작품으로 말을 다 했는데 거기에 말을 덧붙이는 건 그게 어떤 말이든 사족이 될 수밖에 없을테니까.

콜트ㆍ콜텍 노동자들 역시 그들의 기타로 이야기했다. 그들의 기타는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할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기타로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당했다. 지금 그들의 외침은 자신들의 일할 자유를 되찾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이지만, 언젠가 그들 역시 다른 말이 필요없는 기타를 보란듯이 만들 날이 올 것이다.

수요 일인시위는 문화예술인들이 릴레이로 참여하고 있다. 기타노동자들의 사연인만큼 음악인들의 참여가 많았다. 한받(아마추어 증폭기), 김일안(처절한 기타맨), 목인(캐비넷싱얼롱즈), 최철욱(킹스톤루디스카) 등의 음악인들과 시인 김경주가 일인시위 판넬을 목에 걸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매주 수요일 남인사마당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연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호소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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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11:35

망루(望樓)는 망루(亡淚)다!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 1부 망루전(亡淚戰), 3월 11일 평화공간서

용산참사의 현장을 다룬 예술작품들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용산참사의 현장을 다룬 예술작품들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기자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

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나온 망루의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올해 1월 20일 이후 이 개념은 수정되어야, 아니 최소한 새로운 뜻이 추가되어야 마땅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사람들이 쫓겨 가는 마지막 장소”라는 의미가 더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쩔 수 없이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속도전이 사회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생존의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탓이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망루전을 열겠다고 나섰다. 망루에 다시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진다. 망루전의 제목이 ‘亡淚戰’인 까닭이다. 평화공간space*peace(상임대표 김숙임)에서 3월과 4월 두 달 동안 개최될 전시는 1․20 용산참사의 폭력적 현실을 세계에 고발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유족과 더불어 그 슬픔을 연대하기 위해 게릴라 기획전이다. 3월 11일(수) 개막해 31일(수)까지 열리는 1부가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4월 열릴 계획인 망루전(望樓傳)은 강주룡이 1931년 5월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래 용산 망루투쟁까지를 다룬 망루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다.

1부 전시에는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예술가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과 시인, 활동가들의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된다.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때 사용된 대형 걸개그림, 다섯 분의 희생자를 걸개형식으로 표현한 초상화, 현장 목판화, 포스터, 전단지, 사진, 다큐멘터리 동영상이 출품된다. 시인들의 시는 오프닝 당일 퍼포먼스로 평화공간 골목에 ‘벽시’로 새겨지게 된다.

전시에는 전미영, 이윤엽, 노순택, 김천일, 성효숙, 최호철, 박은태, 김미혜 등 시각예술 작가들과 송경동, 손세실리아, 문동만, 백무산 등 문인을 포함해 30여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전미영은 평화공간 건물 옥상에 특별한 체험공간을 마련한다. 일종의 망루를 제작해 관람객에게 망루투쟁의 체험을 공유케 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 성효숙 작가는 주말을 이용해 일반관람객과  ‘용산참사’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전시장의 한 벽면은 주재환, 윤석남, 임옥상, 류연복 등 2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 기금마련 작품들로 채워진다.

전시문의 02)735-5811 주진우 평화박물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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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18:09

여기, 예술이 있다

[편집자가 독자에게]이윤엽과 송경동의 경우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윤엽, '여기 사람이 있다'.



                                                안태호 편집장

고향 다녀오는 길에 보니, 평소 왕래하던 길가에 어느 새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도로 옆 공터였던 곳에 시멘트를 부어넣은 철골구조물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더군요. 안 그래도 주변이 고층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는 지경인데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건물을 우겨넣고 보는 건설현장의 풍경을 보니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갑갑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딴은, 개발업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노는 땅이 아깝기도 할테지요.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단위면적에서 낼 수 있는 수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빈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방치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아파트로 대표되는 개발은 욕망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개발로 인해 생기는 이익이 몇몇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는 현 상황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개발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개발' 자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겠지만, 개발을 통해 소수가 독점적인 이익을 그러쥘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막개발에 올인하는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용산참사에 대해 민심은 절절 끓고 각계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섯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정부여당은 이치에 닿지 않는 흰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각계의 목소리에 입장 하나를 더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치열함의 일단을 보여줬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와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를 봅니다. 전자는 걸개그림으로 제작된 미술가 이윤엽의 판화작품이고 후자는 시인 송경동의 추모시입니다. 이 두 작품이 함께 실린 현수막이 참사현장 빌딩에 걸렸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에 함께하며 인간다운 삶을 꿈꾸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땅을 일굴 권리를 옹호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길 한미FTA에 반대하며 이윤보다 인간을 외치던,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며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그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그림값이 수 천 만원을 호가하거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불평등과 부조리와 모순과 추문을 고발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예술가는 자신들만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가들이 자신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고 말이지요. 네, 맞는 말입니다. 현장예술의 이름을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곳에만 한정짓는 것 또한 단견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묻고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켜내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_ 송경동

국민의 밥상에 독이 든 고기를 올리겠다고 했을 때
천년 강물의 가슴을 파헤치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교육의 전당을 시장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죽음 같은 경쟁으로 내몰겠다고 했을 때
뉴타운을 지어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겠다고 했을 때

가녀린 촛불 하나하나를 곤봉과 방패로 짓이겨 갈 때
100만 촛불의 간절한 생명의 소리를 콘테이너산성으로 막고 귀막을 때
인터넷에 마저 재갈을 물리겠다고 압수수색해 올 때

96일 굶은 기륭 김소연이 오른 철탑 망루를 뒤흔들고 경찰차로 들이박을 때
죽어보라고 용역 구사대를 앞세워 이죽거릴 때
미포조선 100m 굴뚝농성장에 불기를 끊고 음식물을 끓을 때
용기 있으면 죽어보라고 사주할 때

바른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곧은 교사들의 목을 단칼에 치고
교과서에 새겨진 참민주주의의 목을 조를 때

890만 비정규직 2년짜리 노예목숨도 부족해
4년짜리 노예, 영원한 비정규목숨들을 양산해
자본에겐 횡재를 민중에겐 살아도 죽은 목숨을 선사하겠다고 했을 때
가진 자들만을 위해 모든 법률을 개악하겠다고 했을 때
항복하지 않으면 어떤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없다고 북의 동포들에게 엄포를 놓을 때
팔레스타인 학살 규탄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질 때

알았다. 너희는 소수라는 것을
만인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만인을 죽음으로 내몰 잔인한 살인 정부라는 것을
폭력으로 밖에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부라는 것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농민빈민서민의 위기로 돌리려는
극악한 정부라는 것을

너희에겐 그 무엇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린 고통을 당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라는 것을
보라. 미천한 자본과 폭력의 개들아
진실은 다시 모두가 잠든 새벽녘
가난한 삶의 현장에서 성난 불꽃으로 일어나
우리 모두의 나약한 가슴을 태우고
비겁과 나태를 밀어내고
양심과 도덕의 횃불에 다시 불을 당긴다
헐벗은 겨울 벌판을 정화하는 들불처럼
쥐새끼들을 몰아내고 병든 균들을 태워 없애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시대의 봄을 부른다

더 이상 오를 곳도
더 이상 내려 갈 곳도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쌓듯 망루를 쌓아갔던 열사들이여
그러니 일어서라
일어서서 이 차디찬 새벽을 그 뜨거운 몸으로 증거하라
우리가 그대들이 되어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더 이상 안주할 곳도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는
이명박 신자유주의 폭력 살인
반민중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에 결연히 나서도록
살아서 비굴한 목숨이 아니라
열사들의 영전에 자랑스런 이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사들이여 그 뜨거운 분노
그 뜨거운 함성, 그 뜨거운 소망을 내려놓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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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21:25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용산 참사 항의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
                                                                                                                                        안태호 기자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문화예술인들도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에 항의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1시 용산 참사 현장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우리만화 연대 등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모여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 현장에서 자행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철거민 및 진압경찰 사망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용산 참사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개발 정책과 공권력의 과잉충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민주적 살인정권의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행사는 고영재 한독협 사무총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종회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 집행위원장과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의 규탄발언, 송경동 시인의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또한 문화행사로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동만 시인의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의 낭송이 있었고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너희가 누구인지 그때 알았다’가 담긴 민미협 이윤엽 작가의 걸개그림을 사고건물 3층에 걸어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본질과 정권의 비민주적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회성 추모행사가 아닌 사고 현장을 지속적인 추모와 저항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
...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문동만(시인)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그러나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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