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3.16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2. 2009.03.11 해질녘의 허밍, 허밍
  3. 2008.12.11 만화, 詩를 찾아가다
  4. 2008.10.06 세상에 꿈꾸는 자들은 모두 하나다 - 구본주 벗의 5주기와 김소연 기륭분회장의 복귀를 맞아 드리는 허튼 詩 (2)
  5. 2008.10.03 시, 구분 짓기 없던 세상의 말 - 김근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2009.03.16 14:03

이슬라 네그라, 꽃이되고 탄환이되는 시

[남미액션투어]칠레 _ 이슬라네그라
                                                                                         김강 _ 남미액션투어 기획자, LAB39 디렉터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 네루다 시의 원천은 민중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칠레인들의 삶 자체가 그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정엽 드로잉.

11월 4일 제2회 퍼포먼스 비엔날레가 칠레 산티아고 도서관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1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산티아고의 갤러리, 미술관, 거리, 공원과 칠레 남서부에 위치한 발디비아(Valdivia)의 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또한 12일-15일은 아르헨티나, 21일-23일은 우르과이에서 네트워크 형태의 예술행사가 개최된다. 이렇듯 칠레라는 한 나라에서도 2군데의 도시를 비롯해 남미의 여러 도시와 여러 장소에서 예술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예술가들의 작품발표의 재료이자 표현이 바로 그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발표(전시)를 위한 예술작품의 물질적 속성이 예술가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고, 발표의 형식 역시도 그의 신체에 기인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통이 동시에 가능하다. 삶과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자신의 신체와 표현을 위한 여러 소도구들이 구비되면 미술관이든 거리이든 어느 곳에서나 작품은 제작과 발표가 가능하다. 또한 퍼포먼스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관객은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예술가가 촬영 후 다른 곳에서의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퍼포먼스 등이 등장하고 있어서, 직접 예술가들의 행위가 실연되는 것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구분해서 부르는 경향도 나타난다. 남미의 퍼포먼스 행사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중심축을 이루고 몇 개의 비디오 퍼포먼스 상영, 비디오 아트 상영,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다.


씨앗, 물고기, 가루, 깃발, 네트워크

11월 5일 늦은 오후부터 한국 작가들은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신문사(Diario de Nacion)의 너른 공간과 그 주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손민아의 퍼포먼스. 남미의 각 나라명이 한눈에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었다.


남미의 각 나라명은 한눈에 쉽사리 알아볼수 없는 이미지 텍스트로 변화되어 관객에게 제시되었다. 눈의 각도 즉 몸을 움직여 텍스트를 보려하지 않으면 그 텍스트는 독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야만 한다. 손민아가 제작한 석회로 만들어진 이미지텍스트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자신의 눈을 바닥에 댄 관객을 맞이했다. 텍스트 독해에 빠진 관객들 주위를 돌며 손민아는 서서히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이 함께 분 입바람으로 그 국가들은 뿌연 석회가루로 흩어졌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정정엽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쓰개치마를 쓰고 등장했다. 강렬한 연분홍색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복장인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정정엽은 관객들에게 칠레 시장에서 구입한 다종다양한 씨앗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퍼포먼스 말미에 투명 유리병에 색깔대로 부어져 행사장에 전시되었다. 사실상 도시인들은 씨앗을 만질 기회도, 씨앗을 자세히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지구반대편에서부터 쓰개치마를 입고 외출한 한국여성이 ‘씨앗’으로 칠레인들과 교통한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이호석은 4개의 둥그런 어항과 4개의 어종, 12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무대에 섰다. 팝송 ‘We are the world’ 가 흐르고, 4개의 어항은 각기 다른 색깔의 물로 변화된다. 서식환경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되는 것.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는 ‘We are the world'라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현대인이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던 작은 어항은 커다란 어항하나로 통합된다. 통합의 어항, 'We are the  world의 어항'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제네바에 위치한 WTO로 부쳐지는 소포상자로 변환되었다.

김윤환의 깃발 퍼포먼스. 전세계 모든 국기를 모은 세계국기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전 세계의 모든 국기를 하나로 모은 세계국기가 신문사를 나와 라 모네다 궁 뒤편에 우뚝섰다. 깃발을 흔드는 그의 곁으로 경찰이 다가오고, 행사 주최 측의 몇 명이 경찰에게 귀띔을 한다. 대통령 궁에 꽂힌 칠레 깃발 위로 넓게 휘날리던 ‘세계깃발’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깃발 위로 관객 1명이 올라탄다. 김윤환의 ‘세계국기’는 관객을 그 위에 태우고 여러 번 바닥을 지나는 동안 구멍이 났다. 너덜너덜해진 깃발은 길게 찢어져서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거리 위에서 넘실댄다. 몇몇의 작가가 찢어진 깃발의 일부를 기념으로 가져갔다.   

김강.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

스쾃티스트유니온(squartist union) 캠프가 신문사의 어두운 구석에 세워졌다. 그리고 반자본, 반가부장, 반국가에 동의하는 일단의 관객들이 캠프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들은 제안자와 몇 가지 행위를 한 후 퇴장한다. 저항하는 네트워크의 결성, 그 자체가 퍼포먼스로 등장했다.

밤 11시, 한국 작가를 비롯한 페루,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작가의 퍼포먼스가 모두 끝났다. 밤거리로 나온 일단의 무리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11월 7일 이른 아침. 지난밤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여성 6명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은 이슬라네그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산티아고로부터 약 82KM의 거리에 있는 이슬라네그라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_ 바다, 흙길, 물고기의 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을 네루다는 1939년 출판사의 도움으로 스페인 출신의 늙은 사회주의자 선장에게서 구입했다. 그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이슬라 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

이슬라 네그라 마을풍경. 네루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정치활동은 늘 천둥처럼 느닷없이 다가왔기에 집필을 중단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2) 네루다는 이 집에서 여러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1969년에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를 수락한다.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여러 당들이 연합대통령후보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아옌데 지지 연설을 다닌다.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3년 라모네다 궁에서 쿠테타 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옌데가 사망한 지 12일 만인 9월 23일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이슬라 네그라의 마을 풍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집은 현재 네루다재단에서 관리하는 박물관이다. 살아생전 그가 살았던 집은 칠레 초등학생들의 단체 답사처가 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한 날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조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의당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과자, 초콜렛 등을 파는 이동상점이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길다란 과자를 입에 문 김하를 데리고, 우리도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이동했다. 네루다 박물관의 관람은 개별 관람은 불가하고 소집단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 또한 박물관 내부는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발파라이소의 또 다른 네루다 박물관도 같은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유명인의 생가는 그의 사후에 박물관으로 변하고는 하는데, 네루다의 집만큼 ‘박물관’ 다운 ‘박물(博物)’의 면모를 가진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수집품은 앙드레 말로가 앙크로와트에서 훔치려 했던 국보급 유물이 아닌 생활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몇 종의 수집품 선반은 밖에서도 잘 볼 수 있게 진열되어 있다.

네루다가 모은 유리병들. 

유리병, 재떨이, 마스크, 뱃머리에 붙어 있던 선수상(船首像)들, 나비 박제, 그가 외교관으로서 머물렀던 미얀마 등 현지에서 수집한 것들과 그의 수집병을 아는 친구들이 보내준 많은 물품들은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물품들의 향연이다. 온 집안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수집품 중의 일부를 이미 그가 살아있을 때 칠레 대학 등에 기증했다고 하니 그의 수집병은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차근차근 정리되어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마치 여러 시대의 유물을 한꺼번에 대면하는 듯 진귀한 감정과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루다의 수집품만 본다면 그가 민중시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사취미가 느껴진다. 하여 생전의 네루다도 그의 정적으로부터 이러한 호사취미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그가 어떠한 비판을 받았든 간에, 그의 호사취미로 인해 후세대들은 그가 살았던 시기의 여러 생활물품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물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나도 그의 집을 둘러보며 세계 곳곳을 한 눈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이 현재와도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은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89년 이후이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는 자물쇠로 굳게 잠겼던 이곳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칠레인들과 외국인들이 독재자의 눈을 피해 찾아 왔던 순례지이기도 했다.

이슬라 네그라 언덕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시인의 집을 나와 비포장 흙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고삐도 매지 않은 말이 언덕 위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모녀는 우리에게  ‘올라(ola, 안녕)’하고 인사한다. 야트막한 언덕에선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동네는 조용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찾아 올 만큼 세계적인 유명세를 지닌 동네답지 않게 소란스러움이 없이 조용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시인 한명으로 인해 이 동네가 풍성하고, 칠레가 풍성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 생각은 다시 수정되어야만 했다. 네루다가 시어를 길어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칠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었기에 이 동네는 네루다로 인해 풍성해진 것이 아니니라. 자연과 대적하여 끈질기게 살아왔고, 식민과 독재에 저항하며 현재를 일구어온 칠레인들의 삶 그 자체가 네루다의 시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3)고 고백하는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전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 
 
꽃이 되고 탄환이 되는 시는 지금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재에 떨어진 시는 지금 꽃으로 피어날까 혹은 탄환이 될까? 하는 생각이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맴돌았다.

 

이슬라네그라 동네 풍경.
네루다 박물관. 이 집에서 네루다가 거주했고, 현재는 그의 수집품이 빼곡하다.
돌기둥, 바다, 드로잉을 하고 있는 정정엽.
네루다는 이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집필실에서 시를 지었다.
네루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해안풍경.
수집된 선수상. 마치 바닷가의 선술집처럼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흙길 옆에 배를 닮은 집이 지어져 있다.
정원 한 복판에 위치한 네루다와 그의 부인 마틸다의 묘.
이슬라 네그라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철조조형작품으로 세워져 있다.


정정엽, 퍼포먼스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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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 역, 민음사, 2008년.  pp.214-215 참조
2> 같은 책, p. 498
3> 같은 책 p.496
4> 같은 책 pp.43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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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10:25

해질녘의 허밍, 허밍

고영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작과 비평)

고영민 시인.

▲ 고영민 시인.




                                                       김상미 _ 시인

고영민 시인은 시인축구팀 ‘글발’의 미드필드다. ‘글발’은 축구를 좋아하는 시인들끼리 모여 만든 축구팀 이름이다. 그곳에서 처음 고영민 시인을 만났다. 우리는 그를 ‘숀펜’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는 만만치가 않다. 3년 전에 그가 첫 시집 『악어』(실천문학사)를 출간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가 시집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작과비평)을 펴냈을 때도 우리는 모두 시집 제목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만치는 않지만 예의바르고 겸손한,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한 끼 밥 앞에 공손히 두 손을 올려놓으며 냉혹한 도시생활의 “무거운 눈덩이를 털어”(「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낼 줄 아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공손한 손」 전문

“밥” 앞에서 누구나가 느끼는 본능적인 공감대. 밥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밥인데 누가 그 앞에서 공손해지지 않겠는가. “밥”은 그에게도 시의 입구이며 출구이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가는 시의 근원이다. 열두 남매의 막내로 자란 그에게 고향과 가족이란 세상의 중심인 동시에 자신의 중심이다. 

그는 충남 서산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해 왔다. 과수원과 양계장을 했던 부모님과 열두 남매의 어릴 때 농촌생활 경험은 그가 각박한 도시생활을 견디는 데 많은 힘이 되었다. 그 힘(향수)으로 그는 딸아이와 아내의 숨결을 지키고, 도시가 주는 환멸을 견디고, 열린 마음으로 밥과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이번 시집 『공손한 손』은 그러한 그를 있게 한 고향, 부모님, 형제들에게 시인으로서 바치는 연가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시집을 읽는 내내 철벽같은 도시의 콘크리트 벽 틈에서도 피어난 노란 민들레꽃을 발견했을 때처럼 짠한 감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다. 환갑이 지난 큰형이 팔순의 어머니께 추석선물로 드린 「바바리맨 인형」 이야기나 농약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온종일 약통을 젓는 작업 중 일어난 「과수원」이야기는 시인의 건강하고 밝은 천성을 보는 듯 유쾌하고 즐거웠다.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눈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 짐칸에 실려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엇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손/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 자를 적어온/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   - 「허밍, 허밍」 전문     
 
처음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았을 때의 느낌도 이랬을까? 해질녘의 풍경과 함께 오버랩 되어 오는 이 장엄하고 숙연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든 것을 다 감싸 안는 듯하면서도 하나하나의 깊이를 적막으로 생생히 드러내는 해질녘의 풍경. 마치 저녁 이미지들이 시인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가 하나하나 불려져 나오는 듯하지 않은가. 유난히 저녁 풍경이 많은 그의 시집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 속에 이렇듯 언어로 껴안을 수 있는 저녁 이미지들이 많다는 데에 놀랐다. 특히  “이 저녁엔 사랑도 사물이다./ 나는 비로소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나무를 보았느냐,/ 서 있는 그대로 온전히 한 그루의 저녁이다.”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시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에선 숱한 세월 변함없이 한 곳에 서 있는 나무를 통해 그의 비애의 깊이와 넓이를 보는 듯 마음이 싸하면서도 시가 주는 간곡한 심미적 불꽃에 잠시 넋을 놓았다.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에게도 시어를 잘 배려하여 그 속에서 울음(감동)을 건져낸다. 그의 시에서 비틀린 이미지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분열되거나 부정적인 의식을 만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때로는 세밀하고 치열하게, 때로는 함축과 비약으로 그는 자신이 가진 기억을 사물에 넉넉히 등치시킴으로써 독창적인 시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그 독창성은 웃음과 슬픔을 잘 버무린 세상의 모든 평범한 행복의 경이와 함께 하고 싶은 그의 꿈처럼 시 곳곳으로 스며들어가 다정하면서도 엄격하고 소탈한 애가(哀歌)로 태어난다.
 
책꽂이에 책들이 꽂혀 있다/ 빽빽이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있다/ 등뼈가 보인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읽을거리가 있다/ 아버지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다/ 절교를 선언하고 뛰어가던/ 애인이,/ 한 시대와 역사가 그랬다// 등을 보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네가/ 부끄러울까봐/ 멋쩍게 돌아서주는 것이다  - 「책의 등」 전문

등은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읽을거리가 있다”고 말하는 그의 인색하지 않은 성숙이 참 좋다. “등을 보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부드럽고 넉넉한 사유의 선들이 참 좋다. 등은 그야말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리고 크고 너그러워 한없이 기대고 싶게 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등이 그렇고 형제와 친구의 등이 그렇다. 정직하고 거짓말 할 줄 모르는 그 등에 그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읽을거리를 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音)”(「우륵」)인 “울음”을 탄금하기 위해 오늘도 시를 조율하고 숨을 골라 해 지는 가얏고 속으로 들어간다. “소리를 따라 온몸이 함께 울고, 서럽고 서러운 생각들이 울림통이 되어 몸을 진동”시키는 큰 시를 낳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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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11:23

만화, 詩를 찾아가다

 2008 노동만화전 들꽃 13, 14일 성미산 마을학교서(안태호 기자)

노동만화전 들꽃이 12월 13일과 14일 성미산마을학교에서 열린다.
▲ 노동만화전 들꽃이 12월 13일과 14일 성미산마을학교에서 열린다.

노동만화네트워크 들꽃의 2008년 정기전이 ‘만화 詩를 두드리다’라는 주제로 12월 13일(토)과 14일(일) 양일간에 걸쳐 열린다.

올해 8번째를 맞은 노동만화전 들꽃은 마포 성미산마을의 대안학교를 전시장소로 잡았다.. 학교의 다목적실을 전시공간으로 바꿔 사람들 속으로 조용히 찾아들어갈 계획이다. 전시에는 강우근, 문동호, 배영미, 황우, 정재훈, 최정규, 전선봉, 김현숙, 신성식, 김규정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할 예정. 주제전에서는 시를 통해 상상한 만화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어떤 작가는 일러스트 컷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는 시를 읽고 떠오는 상상을 스토리로 엮어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1년 동안 작가들이 활동하며 창작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들꽃의 젤소미나는 “작년에는 상자를 활용해 주제, 소재로 사용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실험적인 시도들을 했다. 올해에는 작가들이 시를 통해 상상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주제로 잡아봤다.”고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자세한 정보는 2008 노동만화전 들꽃 홈페이지 참조. 문의 032-611-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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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8:45

세상에 꿈꾸는 자들은 모두 하나다 - 구본주 벗의 5주기와 김소연 기륭분회장의 복귀를 맞아 드리는 허튼 詩

9월 29일 기륭전자 앞에서는 조각가 고 구본주 5주기 작품전이 열렸다. 이 날은 90일이 넘는 단식 끝에 병원에 실려가야 했던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현장에 복귀하는 날이기도 했다. 천일이 넘도록 고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노조원들과 구본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기륭전자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이 28일 문화제에서 낭송한 시를 게재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지난 겨울
내설악 어느 외로운 골짜기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3개월을 폐인처럼 보냈다

밤새 내리는 눈
산사의 종소리는 밤마다 서른 세 번씩 울렸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그렇게 긴 여운의 소리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푸른빛으로 꽁꽁 언, 빈 겨울 하늘에 초승달로 걸려
속가슴을 찌르곤 했다

긴 세월을 돌아 작은 한 소년이
이젠 혼자술에 취해 망연히 창가에 선 장년이 되었다
겨울처럼 깨어보면 늘 반짝이는 아침이었다
세상에 늘 새로운 아침이 하루마다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말았을 것이라는 괜한 생각.
나는 죽어도 대낮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아픔에 목이 메어 왔다

오, 나도 아침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오, 나도 행복을 나눠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
오, 나도 희망만을 깎는 조각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난 욕심쟁이였다
난 타락한 영혼이었다
난 혼자였고 난 비겁이었으며 독선이었고 두려움이었다
사이비 활동가 사이비 주술사였다
진실을 말하자면 적개심과 시기와 질투 얄미움으로만 가득찬
말할 수 없는 상처였다

수십 년, 수백 년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내설악 어느 산모퉁이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보다
내가 더 영예롭고 존엄하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발이 푹푹 빠지는 겨울 설악산 낙엽의 늪 속에서
어떤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도 있으면
그 길로 가고 싶었다

정말이다, 방법만 있다면
나는 이 개같은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다, 아니
암울한 나를 떠나 희망찬 나로 가고 싶다
문제는 이 세상이 아니라 나다
나의 문제다
이 욕망을 떠나 저 해방으로 갈 수 있다면
이 소유욕과 집착을 떠나 저 너른 연대로 갈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슨 마음을 더 갖기보다
밤 물소리 따라 남은 마음들마저 작별해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도
단 한번도 멈추지 못하고 흘러가야 하는 저 밤물결들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달빛도 별빛도
모두 외로워하지 않는데
왜 나는 청승을 떠는가
내 안에 있는 나에게도
이젠 그만 나를 떠나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밤들이었다

갈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돌아설 길도 많지 않았다
나는 내가 걷던 길을 계속 걷기로 햇다
아니, 더 편파적으로 구체적으로
당파적으로 혁명적으로 걷기로 했다

별 길도 아니었다
뼈빠지는 설움으로 내 몸에 새겼던 노동자의 길,
소외된 인간들이 쓸쓸히 등부비며 걷던 변두리 골목길,
모든 것들이 위대해 보이던 세상의 길,
지지말자 약속했던 반제반전반자본의 가시밭길
또 다시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며 가는 길,
우리에게 끝까지 남을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그 어떤 터치와 깎임과 떨림과 나눔과 사랑뿐이라는 것을
믿으며 쉬지 않고 내달리는 길
그 길에서 잊혀져도 좋은 길
잊혀져도 기꺼운 길

나는 움직이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너의 아픔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관습을 증오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창조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나는 모든 인간들의 모든 생산을 경외하는 인간이었으므로
모든 자연과 함께 묶여 있음을 기뻐하는 인간이었으므로
혼자가 아닌 만인임을 알았던 인간이었으므로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그냥 사라짐은 없으리
이 세상에 그 어떤 마음도 그냥 사라짐은 없으리




* 2008-10-02 오후 5:42:14  송경동 _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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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00:06

시, 구분 짓기 없던 세상의 말 - 김근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김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창비, 2008.
▲ 김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창비, 2008.

영화 <일포스티노>의 원작이기도 한 스카르메타의 소설『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는 시인 네루다가 시에는 관심이 없지만 시인을 혐오하는 한 여인과 은유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이 꼬박꼬박 주고받는 메타포 소동을 보다 보면 인물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빠져 웃음과 감탄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해석되지 않는 비유들이 있다. 시가 읽기 어려운 이유다. 읽어도, 읽어도 도대체 읽은 게 없는 것 같다. 시는 정서를 전달한다지만 읽은 게 없으니 전달 받은 정서도 없다.

“구름 극장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올해로 등단 10년, 김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가 출간됐다. 표제작인 「구름극장에서 만나요」는 “구름극장이 아니어도 … 그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릴 운명들”인 우리들이 구분 짓고 이해하는 행위가 사실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이 시구는 사물과 사물, 말과 말, 너와 나, 무수한 구분들이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 바로 시의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제 얼굴 지우고 싶은 사람들 하나 둘 숨어드는 곳”이 바로 시의 세계라는 것이다. 시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은 아마도 내가 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몸소 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해석되지 못할 은유를 해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물 안의 여자 물 안의 마을 물 안의 우물에서 물 안의 물을 길어올리네”
「물 안의 여자」 중

이 시구를 읽고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평처럼 “내심에 충실하고 무의식에 자기를 개방함으로써 시민공동체의 공통감각으로 인지되거나 흡수될 수 없는 다른 것과 조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도 어렵지만 평은 더 어렵다.

목숨이 다하면 구름극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들이 얼굴을 지우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 시가 그려내는 세계이자 시인의 정체성이 아닐까. “나를 버리고 오직 그대에게 속해 있기만” 바랐지만 결국 “안으로도 밖으로도 가지 못했다”는 시인의 말은 정확히 시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 장소에서는 농담처럼 은유를 맘껏 주고받으면 그만이지 그것이 실제 세계와 어떻게 연관된다거나 어떤 식의 풍자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단지 구름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우연히 등장게 된 인물들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시집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기괴한 시구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기괴함은 선명하게 어떤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잡힐 듯 말듯 한 세계를 흐릿하게 묘사하고 있다. 은유는 어렵다. 그가 만들어낸 기괴한 은유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분별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그 흐릿한 은유야 말로 시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 2008-09-30 오후 6:14:36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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