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총'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03.20 그 문화정책, 천박하다
  2. 2009.02.13 예술위 내홍, 위원장이 책임져야
  3. 2009.01.23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4. 2008.12.11 유인촌 장관, 본인부터 떳떳해져라
  5. 2008.12.09 반민주, 반문화 정권의 질주를 멈춰라
  6. 2008.11.11 김윤수 현대미술관장 해임사유 적절한가
  7. 2008.10.29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 ①]'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 김동원 감독 (1)
2009.03.20 09:34

그 문화정책, 천박하다

문화예술계,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 발표
안태호 기자
18개 문화예술단체가 19일 문화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을 발표했다.
▲ 18개 문화예술단체가 19일 문화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을 발표했다.

“소통없는 문화정책, 일관성 없는 문화정책, 공공성 없는 문화정책, 공보기능으로 전락한 문화정책”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년에 대한 문화예술단체들의 평가다. 민예총, 문화연대, 언론연대, 우리만화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18개 문화예술단체는 19일 오전 11시 문화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을 발표했다.

이들은 “문화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총괄적인 문화정책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개별 정책사업 계획만을 일관성 없이 발표하고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1년이 “비전, 전략, 실행, 소통 면에서 모두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이 발표한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공공기관장 강제해임과 경영 논리를 앞세운 노골적인 코드인사 ②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율성 침해 ③미디어 관련법 개악 추진 ④저작권법 개정,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을 통한 표현의 자유 침해 ⑤독립영화 명칭 삭제, 독립영화 관련 일부 사업에 대한 일방적 지원 중단 및 변경 ⑥국립오페라 합창단 해체 ⑦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 철회와 상업성 위주의 음악 산업 진흥 정책 추진 ⑧연예인 응원단 지원 파문 ⑨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등 개발 논리와 관광정책 위주의 지역문화정책 ⑩구체적인 전망과 계획이 부재한 예술뉴딜 정책

기자회견 중 진행된 퍼포먼스. 유인촌 장관의 '입'에 문화정책 실정의 내용을 담고, 
장관의 머리에 '아무것도 없잖아'라는 문구를 넣어 문화정책의 내용없음을 풍자했다.
 

기자회견에서 진보네트워크의 오병일 활동가는 발언을 통해 현재 국회 본회의에 계류되어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일명 ‘삼진아웃’제로 불리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며 저작권법을 세번 이상 위반한 이용자나 게시판을 사용정지시켜버리는 저작권법 개정안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오병일 활동가는 ‘삼진아웃’제에 대해 “주차위반 세 번 하면 광화문으로 못들어온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저작권 보호가 필요하지만 정당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최상배 부지부장은 “상임단체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지금까지 왔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와 단체 해체 뿐”이었다며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공공성을 도외시 한 채 경제적인 논리에만 함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문화부 청사의 '문화로 따뜻한 세상'이란 문구가 새삼스럽다.

단체들은 별도로 준비한 성명을 통해 정부에 비전있는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1년 동안 보여준 문화정책의 모습이 ‘야만적이고 천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문화예술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편중된 인사와 정책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정부가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며 시장의 논리로 자본과 수익 중심의 운영과 정책만을 양산하고 있다”고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문화강국과 선진화의 원천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며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일상적인 탄압을 중단하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 지부, 문화연대, 미디어기독연대,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민족미술인협회, 언론연대, 우리만화연대,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전국언론노동조합, 정보공유연대 IP 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기자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작가협회, 한국PD연합회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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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16:50

예술위 내홍, 위원장이 책임져야

오광수 신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 오광수 신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 김용태, 이하 민예총)은 13일 논평을 통해 신임 예술위 3대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예술위 내부갈등의 해결이라고 밝혔다.

민예총은 우선 “오 위원장의 임명으로 선장없는 배와 같이 표류 중이던 예술위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면서 신임위원장이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심사와 지원방식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 예술의 생활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예술 재원 확보 등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예술위의 숙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사무처장 임명건으로 발생한 노동조합과의 갈등은 당사자로서 책임있는 해결을 요구했다. 민예총은 ‘분명 새 위원장으로 확정되지 않았던 직무대행 시절에 이뤄진 윤 사무처장 임용은 그간의 절차나 과정을 무시한 월권’이라며 “오 위원장은 이런 내홍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결자해지의 자세로 사태 해결에 임해야 할 것이다.”라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민예총은 “예술위 내부 갈등은 예술위 자체 뿐만 아니라 예술위에 젖줄을 대고 있는 순수창작예술인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사태”라며 “위원장은 어떤 정치적 고려를 털어내고 그야말로 예술계를 살려내야 한다는 엄중한 책임감으로 임할 것”을 권고했다.

오광수 위원장은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지난 1월 윤정국 사무처장 임명과 관련하여 예술위 노동조합과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예술위 노동조합은 ‘직원선발 시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았고, 새로 임명될 위원장과 일을 하게 될 사무처장을 직무대행이 선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출근저지투쟁과 농성을 계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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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21:25

죽음의 현장을 추모와 저항의 공간으로

용산 참사 항의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
                                                                                                                                        안태호 기자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 23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과 추모행사를 가졌다.(사진제공 문화연대)

문화예술인들도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에 항의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1시 용산 참사 현장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우리만화 연대 등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모여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 현장에서 자행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철거민 및 진압경찰 사망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및 추모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용산 참사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개발 정책과 공권력의 과잉충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민주적 살인정권의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행사는 고영재 한독협 사무총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종회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 집행위원장과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의 규탄발언, 송경동 시인의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또한 문화행사로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동만 시인의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의 낭송이 있었고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너희가 누구인지 그때 알았다’가 담긴 민미협 이윤엽 작가의 걸개그림을 사고건물 3층에 걸어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본질과 정권의 비민주적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회성 추모행사가 아닌 사고 현장을 지속적인 추모와 저항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추모시] 죽여서 죽었다
...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문동만(시인)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그러나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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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11:28

유인촌 장관, 본인부터 떳떳해져라

 - 한국작가회의, 민주노동당 김정헌 위원장 해임 비판

한국작가회의와 민주노동당은 각각 성명서와 논평을 통해 문화부의 예술위 김정헌 위원장 해임을 비판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작가회의와 민주노동당은 각각 성명서와 논평을 통해 문화부의 예술위 김정헌 위원장 해임을 비판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12월 5일 문화부(장관 유인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을 해임한 데 대해 문화연대와 민예총 등 문화단체들의 반대 성명에 이어 한국작가회의와 민주노동당에서도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해임 건의 반문화적 태도와 인사 청탁 건을 비판하고 나섰다.

작가회의는 성명서에서 “문화부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헌 위원장을 연이어 해임함으로써 반문화적 문화행정은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공공기관장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하거나 해임한다는 것”은 법의 정의를 문화부가 앞장서서 훼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가회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들의 타율성과 책임 의식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책임 있고 균형 잡힌 문화행정을 담당해야 할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전원이 당사자의 소명이나 해명을 전혀 청취하지 않은 채, 문화부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근거로 위원장 해임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인 “사려 깊지 않은 결정”은 심각하게 성찰해야 될 부분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김정헌 위원장의 기자회견에서 언급됐던 문화부 관계자 인사 청탁사건에 대해 해명을 촉구했다. ‘뉴서울CC’는 지난 20여 년간 문화부 출신 관료와 정치인, 퇴역 장성들이 대표이사를 맡았던 곳으로 낙하산 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이 논평은 이번 인사 청탁 사건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며 “유인촌 장관은 이번 인사 청탁사건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부가 발표한 김정헌 위원장 해임 사유의 정당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관광기금 평가손실이 70억 원을 넘어선 지금, 유 장관이야말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사청문회 때 논란이 되었던 재산에 대해 환원을 약속하고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하는 점 또한 허위공약 유포”에 해당한다면서 유인촌 장관 “본인부터 떳떳해”지라고 덧붙였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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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17:03

반민주, 반문화 정권의 질주를 멈춰라

김정헌 위원장 해임에 문화예술단체 반발 _ 이주호 기자

12월 5일, 문화부의 해임 사유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정헌 위원장.

▲ 12월 5일, 문화부의 해임 사유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정헌 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이어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지난 12월 5일 해임됐다. 그러나 해임사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문화예술단체들이 문화부의 원칙 없는 행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예총과 문화연대는 문화부가 김정헌 예술위 위원장을 해임한 것에 대해 12월 8일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번 해임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문화예술계 전체에 공식 사과할 것을 주장했다.

문화부는 12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11월26일부터 12월1일까지 진행된 특별조사에서 기금 운용 규정 위반 등 사실이 적발”되었다는 이유로 김정헌 위원장을 해임했다. 이날 문화부는 예술위가 국가재정법 및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해 기금을 예탁할 수 없도록 돼 있는 C등급의 금융기관 5개 사에 기금을 예탁하여 손실을 냈으며, 방송발전기금을 인사미술공간 내 작가 레지던스 운영비로 사용한 것과 아르코미술관 ‘프로젝트형 카페’ 운영 사업자를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선정한 것 등을 해임 사유로 들었다.

민예총은 <정권은 반민주, 반문화의 역질주를 멈추라>는 성명서에서 문화부의 김정헌 위원장 해임 사유를 “억지로 짜 맞춰진 허술한 각본”으로 일축했다. “예술위에 관한 법적 조항 어디에도 문예진흥기금의 운용과 관련해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 이하는 투자 금지’와 같은 구체적인 규정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것은 감사원의 사후 평가에 따른 내용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사미술공간 게스트하우스 임대 건의 경우 기금을 지원해준 방송위마저도 실사 후 아무런 후속 조치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문화부만이 법령 위반을 운운하고 있으며, 카페 계약 건 역시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닌 예술매개공간 조성의 일환으로 추진된” 목적사업이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또한 성명서를 통해 문화예술진흥기금 이외의 기금은 얼마나 고수익을 내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논리는 “세계적 경제위기와 이에 대한 강만수 경제팀의 잘못된 대응 등 정부 경제정책의 총체적인 부실”의 책임을 “김정헌 위원장에게 묻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성명서들은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물러나”라는 입장을 고수해온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좌파코드인사’ 몰아내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문화연대는 지난 9월 문화부의 한 과장이 한나라당 당원 2명을 뉴서울골프장 감사와 전무로 뽑아 달라 인사청탁을 넣은 사실을 들어 “코드 인사 운운하던 문화부가 부당한 인사를 청탁했다는 사실은, 이번 해임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 가를 말해”준다고 말했고 , 민예총은 현 정권이 “문화예술을 비롯한 전 영역에 있어서 예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반민주적 권력행사를 당연시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문화예술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화부는 지난 달 미술품 유입과정에서 벌어진 실무자의 단순과실을 내세워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해임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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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9:30

김윤수 현대미술관장 해임사유 적절한가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해임사유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미술관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해임사유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미술관 전경.

문화부가 결국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해임했다. 문화부는 11월 7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자체감사결과를 밝히고 김윤수 관장에 대한 계약해지를 발표했다. 계약해지 사유는 ‘미술품 구입과정에서 관세법(274조),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관리 규정 등을 위반하여 국가공무원법 제 56조상 성실의무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2005년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작품가격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고,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 구입결정이 있기 전에 소장자에게 구입의사 결정사실을 알렸으며, 관세신고가 되지 않은 미술품을 반입해 관세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문화부의 설명이다.

김윤수 관장의 해임은 올해 초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이명박정부의 첫 문화부 수장을 맡은 유인촌 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산하단체장들의 거취문제를 들고 나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번 사태로 문화예술계의 ‘코드적출’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 유인촌 장관은 김윤수 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김윤수 관장의 해임은 비단 ‘코드인사’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이번 사태는 한국 미술계의 상징인 현대미술관장을 해임하는 사유가 충분했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과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은 11월 10일 성명을 내고 김윤수 관장의 해임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문화부가 계약해지 사유로 든 내용들이 ‘아전인수격의 자의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문화부가 올해 초부터 작품의 진위문제로 조사를 했으나 ‘구입회사로부터 진품임이 확인’되었고, 가격 역시 ‘다른 에디션의 작품보다 귀한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관세법 위반 문제도 ‘작품의 국내 반입이 이뤄졌던 시점은 아직 작품 구입이 결정되기 전이며 작품을 가지고 들어온 것 역시 작품 판매자 측’이었으므로 세관신고는 반입자에게 있는데다 ‘미술품의 관세가 0%이므로 탈세를 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상의 내용들이 한국 미술의 상징적 기관의 수장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을 결정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이 될 수 없다”며 이번 사태를 ‘“현 정권과 코드에 안 맞는 기관장들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말의 실행이며, 예술에 대한 폭력이고 예술가에 대한 현 정권의 추악한 탄압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김윤수 관장은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했으며 연임에 성공해 1년여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김 관장은 문화부의 계약해지에 대해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 2008-11-10 오후 5:13:21 컬처뉴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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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15:35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 ①]'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 김동원 감독

10월 23일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 10월 23일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10주년을 맞았다. 한때 생소하기만 했던 ‘독립영화’라는 존재의 정체성 확립과 자리매김의 역사는 한독협의 10년 역사와 나란히 놓여져 있다. 영화인들이 자본과 검열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의미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까지 한독협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다. 컬처뉴스는 한독협 탄생 10년을 맞아 독립영화계의 1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대 한독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감독, 배우, 활동가, 제작자 등 독립영화인들 10명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번 기획은 한독협 사무국과 팀블로그 필름온이 함께해 이루어졌다.

첫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한국독립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다. 여러모로 한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동원 감독은 한독협의 초기 모습과 현재의 지점을 역사적인 맥락에 위치시켜 새롭게 보게해 준다. 그가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활동하게 된 계기들 역시 놓치기 아까운 역사의 기록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 / 편집자.

독립영화, 무에서 유를 만들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 마디 해 달라.

김동원 감독: ‘벌써 10년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또래는 세월이 빨리 가니까.(웃음) 한편으론 독립영화 활동한지 오래됐는데 10년밖에 안됐나 싶기도 하고. 내가 초대 이사장을 하면서 한독협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각 사무국장하고 어린 사무원은 그 때 월급 20만원씩 받고 시작했다.

독립영화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인가.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지금은 미디어 센터, 독립영화전용관, 독립영화 제작지원제도 등이 생겼다. 이런 건 외국사례로 말로만 듣던 것들인데, 일반 영화계에서 질투할 만하다.(웃음) 막 없던 게 생기고 점점 늘어나니까, 있던 게 없어진 사람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독립영화계만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지원금 총액으로 보면 굉장히 작다. 

그만큼 독립영화계가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10년 전만해도 독립영화라는 말을 할 때 약간 켕기는 게 있었다. 그때 독립영화하면 반정부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진위)에 독립영화라는 말이나, 독립영화 지원은 없었다. 또 영진위 1기 위원회 생기고도 몇 년간은 없었고, 그 이후에 생겼다.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공식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강한섭 위원장이 다시 뺀다고 한다. ‘작은 영화’ 이런 식으로 바꾼다고.

작은 영화라... 김동원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게 20년이 지났는데, 독립영화란 말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난 원래 상업영화 지망생이었고, 독립영화란 말도 없었다. 1980년대 얄라성이나 장산곶매 등에서 영화를 만들고, 미국식 개념의 이름을 붙여준 거다. 사실 미국식 개념과는 많이 다른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나는 독립영화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상업영화 조감독을 했는데 이게 나랑 안 맞더라. 당시 전두환 정권 때 이런저런 일이 많았는데 방송에서는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때 내가 결혼식 비디오를 찍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땐데, 사회의 모습을 찍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날라리, 가장 감동적인 올림픽을 만나다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김동원 감독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

날라리였다. 데모도 안했고.(웃음)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엔 운동권이란 개념도 없었다. 언더그라운드에는 좀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난 연극 많이 하고, 놀기 좋아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 때 무의식적으로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는 ‘왜 우리학교는 데모 안하지? 데모하면 휴교하는데’하면서 데모가 나길 원하기도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유인물 만들어서 뿌리기도 했다. 휴교 때문에. 그런 걸 보면 약간 반골 기질이 있었나 보다. 그런 게 정리가 안 되다가 상계동 가서 정리가 됐다. 사회과학 책도 한두 권 읽어봤지만 전혀 안 와 닿았는데, 상계동 가서 구조적 모순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상계동에 어떻게 들어간 건가.

상계동 철거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신부님이 거기 들어가 계셨는데 강제철거 당하는 장면을 증거자료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하루만 와서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게 내 팔자를 바꿀 줄을 몰랐다.

처음 <상계동 올림픽>을 촬영할 때 ‘다큐멘터리는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나.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고, 또 당시 우리나라에는 필름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거의 없었다. 대학 영화과에서도 단편영화제를 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없었다. 서울영화집단에서 8미리 필름으로 십 분짜리 다큐멘터리를 1985, 6년인가에 만든 게 전부였다. 그저 머릿속에는 TV에서 본, ‘추적 60분’유의 다큐멘터리만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그런 관성들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외국 나가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보니까 ‘아 다큐멘터리가 할 만한 거구나’ 싶었다. 상계동 시절에는 전혀 몰랐는데, 가서 보니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 때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이렇게 넓구나’ 했다.

그 이후에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느낀 건가? 어떤 매력을 느껴서 다큐멘터리를 계속하게 된 건가.

조연출을 한 4년 정도 했는데, 현장이 지겨웠다. 촬영할 때도 긴장감을 못 느꼈다. 그런데 상계동에서 철거 현장을 찍을 때,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 철거 깡패들이 위협해도 전혀 무섭지가 않은 거다. 카메라가 알아서 막 돌아다니는 신들린 경험을 했는데, 그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촬영하는 게 이런 거구나. 또 철거, 투쟁 현장 모습들이 외부에 알려지기 힘든 상황에 <상계동 올림픽>을 발표했는데, 엉성하게 만들었지만 대학가에서 상영되고 그러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 때 다큐멘터리의 굉장한 힘을 느꼈다.

그래도 뭔가 손에 잡히지 않을 시절,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상계동 올림픽> 하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촬영할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외국영화 직배 관련해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정지영 감독이 나에게 ‘다큐멘터리를 해라. 극영화 하는 사람은 많지 않냐. 넌 잘할 것 같고, 너라도 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고, 싫지도 않고, 또 극영화가 잘 안 풀리고 해서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총 제작기간만 12년이 걸린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투사? 난 그런 사람 아니다

1990년대에 <송환> 촬영하랴, <명성 그 6일의 기억> 발표하랴 정신없었을 거 같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부터 장기수들이 출소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저분들의 증언은 기록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촬영을 시작했다. 사실 그걸 어떻게 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장기수들의 삶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이 함께 벌인 석방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몇 편 나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송환>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사실 내가 오며가며 찍은 거지 찍어야겠다 해서 찍은 게 별로 없었다.(웃음)

 그럼 <송환>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1999년 초부터 송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의 송환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남북정상회담하면서 송환이 급물살을 타면서 엄청 급해졌다. 그 다음 6월부터 9월까지는 정신없이 찍었다. 그 전에는 판판히 놀다가.(웃음)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파이가 커졌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촬영했고 어떤 관심을 가졌나.

지금도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는 액티비즘, 즉 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에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고. 서울영상집단,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 등의 집단은 일종의 운동으로 한 거다. 노뉴단은 노동운동, 서울영상집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 민족영화연구소 등은 그 외 사회문제를 다뤘다.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태생단계의 특수성 때문에 액티비즘이 강하다.

김동원 감독은 어느 편에 속했나.

난 아무데도 속해있지 않았다. 굳이 얘기하면 빈민운동 쪽인데, 빈민지역 청년들과 활동을 하면서도 작업은 혼자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정체성은 없었다.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는 현장의 기록이고, 일상이었다. 빈민운동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느 순간에 찾았나.

나는 아직도 감독이라는 말을 안 좋아한다. 난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너무 앞서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감독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도 감독이라고 부르고, 또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 하니까 이젠 그냥 ‘맘대로 부르라’고 한다.(웃음) 감독이라는 말이 옛날보다는 많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엄정한 사실성, 객관성 이런 것들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는데 요즘에는 다큐멘터리도 연출을 해도 괜찮다는 게 일반적이니까. 내가 아무리 연출을 안 하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다.

작업을 하면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경우도 많이 있었겠다.

글쎄, 잡혀갔던 거?(웃음) 푸른영상 하면서 몇 번 잡혀갔다. 1993부터 2년 터울로. 그 때만해도 영화법이 손질되기 전이고, 장기수들을 찍는다는 게 시찰 대상이었다. 안기부 직원한테 매일 안부전화를 받았으니. 그쪽에서 조작간첩 사건들과 엮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잘 안됐다. 1996년에는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란비디오 단속법을 걸고 넘어졌다. 참, 음란비디오라니. 그 외에도 청소년 보호법, 국가 보안법 등 다양하게 조사받았다. 다행이 변호사를 잘 만나서 기각시켰다. 

투쟁의 역사다.(웃음)

투쟁은 무슨.(웃음) 난 투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그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 당당한 거다. 심의를 받으려면 10분에 얼마 돈을 내야 하는데 내가 골이 비었나.(웃음) 여하튼 몇 번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미지가 그렇게 됐는데, 내가 용감해서 싸운 건 아니다. 그냥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김동원 감독은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송환>)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받을 거 같다.

글쎄. ‘왜 이렇게 구질구질한 얘기만 하냐’는 사람은 있지만 따갑지는 않다. 당연히 알려야 할 이야기고. 지금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전혀 안했는데 당연히 나라도 해야지 그랬다.


한독협. 힘든 시작, 지금은 괜찮아 무엇이든!

한독협이 세워지기 전, 독립영화인들은 어디를 구심점으로 모였나.

1991년에 독립영화협의회라는 단체가 세워졌다. 내가 의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는 구속이 너무 많았다. 그 때만 해도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고, 모여 봤자 운동하는 독립영화인들만 모이는 거 같고. 1990년대 중반 넘어가고, 독립영화계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독립영화인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영화가 뭐냐’ 하는 정체성 논란도 있었고, 일련의 산통 끝에 한독협이 생겼다.

한독협이 생기고 어려움은 없었나.

내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웃음) 앞서 얘기한대로 한독협의 정체성 찾기가 가장 힘들었다. 한독협 초기에 독립영화협의회나 민예총 영화분과 등과 관계 설정하는 게 어려웠다. 1996년부터 한독협 설립 논의를 시작했으니까.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협회를 만든다는 거에 의구심 어린 시선도 있었고. 하여튼 초기에 발동 거는 게 좀 어려웠는데 발동 걸고 나서는 최근까지는 잘 굴러왔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3기 위원이었다. 어떻게 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면 회의만 많고, 그렇다고 독립영화에 관한 회의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 가야 된다고 하니까 갔다. 별 재미는 없었다.(웃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나.

목표가 너무 분명했다. 독립영화전용관 만드는 거. 10년 동안 만들자는 말만 있었지, 만들지 못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난 다른 건 못해도 전용관 하나 만큼은 만들겠다는 각오로 들어갔다. 다른 영진위 위원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의도를 내비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 독립영화인들의 노력 끝에 인디스페이스가 생겼다. 근데 인디스페이스가 위치한 중앙시네마 재건축 때문에 몇 년 안에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럼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지. 3기 영진위 때 미디어센터, 시네마테크, 독립영화전용관을 다 포괄하는 500억 규모의 복합상영관을 짓기로 서울시와 결정했다. 그런데 강한섭 위원장이 무슨 아시아센터를 건립한다고 한다. 지금 어떻게 진행 중인지 모르겠다.

규모를 500억에서 1,000억으로 늘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사업계획을 만들면 그 만큼 그 과정이 늦춰지는 거 아닌가. 현재 미디어센터 미디액트나 서울아트시네마, 독립영화전용관 모두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아무래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음, 어떻게 보면 위기를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어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이건 좋은 극장이 생긴다는 측면이 아니라 독립영화인들에게 뭔가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다른 얼굴, 하지만 우린 가족이다

한독협 홈페이지를 보면 초기에는 게시판에 서로 안부도 묻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화도 보고, 얘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한독협 10주년을 맞이한 2008년.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

글쎄. 내가 고민한다고 되나?(웃음) 이제 독립영화가 나름대로 사회적인 위상을 이제 갖게 됐다. 그런데 대안영화로서의 자기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영화가 잘 안 나오고 있다. ‘지금쯤 나올 때가 됐는데’하는 기대가 있는데 잘 그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은하해방전선>등 몇몇 작품은 기대를 많이 했고, 영화도 좋았음에도 불구라고 잘 안됐다. 영화는 관객과 함께 완성된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안 좋은 게 아닌데, 왜 안볼까. 이런 고민들을 한다. 답 없는 고민.

최근에 등장하는 후배들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다큐멘터리만 보자면,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본 <워낭소리>란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나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반가운 작품이다. <우린 액션배우다> <우리학교> 등 1년에 한 편씩은 문제작들이 나온다.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로는 ‘아 이런 게 일 년에 열편은 나와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코드가 약해지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열심히 만들고, 진정성이 보이는 다큐멘터리가 1년에 3-4편만 나오면 좋겠다. 인디다큐페스티벌에 7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됐다고 한다. 아르헨티나만 해도 다큐멘터리 영화제 하면 700여 편이 응모된다고 하는데, 우린 고작 70여 편이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있나.

촛불 문화제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올해는 촛불이 가장 활활 타지 않았나.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닌데, 나가다 보니 찍을 게 보이더라. 뭐 큰 건 아니지만 해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들어서 촛불 문화제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독협의 또 다른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 달라.

제언이라. 아쉬운 건 한독협 홈페이지를 보면 초기에는 게시판에 서로 안부도 묻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욕도 하고.(웃음) 뭔가 공동체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커져서 그런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이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사업도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끼리 식구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도움도 주고받고, 영화도 봐주고. 이런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그런 계기를 못 만들어 주는 거 같다. 여러 영화제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요즘엔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영화도 보고, 얘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다시 식구가 됐으면 좋겠다.


 

* 2008-10-28 오전 11:35:02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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