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9.02.13 워낭소리 성공 오히려 독 될까
  2. 2009.02.13 술과 여자, 그리고 여행
  3. 2009.02.09 <워낭소리> 마음의 고향, 그것뿐이다. (7)
  4. 2009.02.05 인디다큐 새얼굴을 찾아라!
  5. 2009.01.16 선댄스 화제작, 그 영화 놓쳤다면
  6. 2009.01.09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7. 2008.12.13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잔치
  8. 2008.12.12 한독협, 공부하자!
  9. 2008.12.04 관객은 냉정하다. 재밌어야 산다!
  10. 2008.11.21 '독립영화배우'로 부담을 가져야 할 때 (1)
2009.02.13 09:43

워낭소리 성공 오히려 독 될까

 - 독립영화 감독모임, '독립영화 환경, 열악해지고 있다'
                                                                                                                                         박휘진 기자
2009년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영화들, 그러나 아직 현실은 냉혹하다.
▲ 2009년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영화들, 그러나 아직 현실은 냉혹하다.

<워낭소리>가 독립영화 최초로 30만 명 관객을 기록하고, <똥파리>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타이거상 수상, 최근 개봉한 <낮술>은 매진사례를 기록하는 등 2009년 현재 한국의 독립영화는 생생하게 팔딱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독립영화의 현실을 걱정하는 감독모임’은 2월 11일 광화문 미디액트에서 ‘독립영화가 살아야, 한국영화가 산다’며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독립영화계는 지금 성공을 자축하는 축배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워낭소리 제작자이자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인 고영재 PD는 “워낭소리가 잘 돼서 너무 좋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워낭소리를 비롯한 많은 독립영화들이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독립영화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여전히 극장을 확보하지 못 해 개봉조차 할 수 없는 영화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진흥위원회(이하영진위)에서는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축소시키거나 폐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이 워낭소리와 여타 독립영화들의 성과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2008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선정 올해의 좋은 영상물 대상을 수상한 <동백 아가씨>는 영화 제작부터 관객을 만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동백 아가씨>의 박정숙 감독은 “영진위의 제작 지원이 천에서 천오백만 원 정도인데, 나는 이 영화를 찍는데 3년이 걸렸다. 지원금으로는 영화 제작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종 아르바이트와 병행하고 빚을 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제작이 끝난 후에도 배급에 대한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게 그간 진 빚을 갚으려면 다시 아르바이트에 전념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배급을 생각할 수 있다.”며 독립영화의 팍팍한 현실을 언급했다.

제작 및 배급의 어려움은 비단 박정숙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간담회에 참여한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안해룡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 모두 비슷한 경험을 지녔다. 게다가 영진위가 몇 년째 예산을 6억원으로 고정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사업’을 폐지하여 앞으로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길은 더더욱 요원해질 전망이다.

안해룡 감독은 “워낭소리가 히트해서 이제 개봉지원 안 해도 되겠다는 말들을 하는데 이게 바로 현실 왜곡 아니겠느냐”며 이처럼 계속 지원을 없애려고만 하면 독립영화를 지속할 수 있는 인력이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익준 감독은 “내 영화가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에 지원을 못 하게 된 첫 작품이다. 아버지께 영화 개봉하려고 돈 좀 더 빌려달라 했더니(양감독은 이미 영화 제작을 위해 아버지께 9000만원을 빌린 상태다) 나도 대출받아야 된다고 하셨다”며 “직접 닥치니까 지원이 끊어지는 게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더라. 제발 지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정현 감독은 “지원 사업도 끝나고, 독립영화에서 이제 ‘독립’은 빼버리겠다고 하고, 정말 이 판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기분이다”라며 다양한 문화를 양성, 지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독립영화는 예술영화이고 실험영화인 동시에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독립영화를 단순히 비상업영화의 범주로 넣겠다는 것은 ‘너희는 돈이 안 되는 것’이라는 표식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독립영화에는 더 이상의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고영재 PD에 따르면 향후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공모전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독립영화지원은 끊고, 모든 지원을 공모전 식으로 진행한다면 실질적인 독립영화 지원은 앞으로 더더욱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CJ나 싸이더스 같은 대기업들도 모두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자본의 세계가 독립영화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간담회를 마치며 고영재 PD는 “독립영화를 제발 영수증 처리되는 금액이 아닌 실제 콘텐츠의 가치로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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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9:41

술과 여자, 그리고 여행

[영화소개] 노영석 감독, <낮술>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미국 개봉이 결정된 독립영화 <낮술>이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는 <워낭소리>와 함께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미국 개봉이 결정된 독립영화 <낮술>이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는 <워낭소리>와 함께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나라 기자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미국 개봉이 결정된 독립영화 <낮술>이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는 <워낭소리>와 함께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신인감독 노영석이 100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 지난 2월 5일(목) 개봉한 <낮술>은 현재 7000명 이상의 관객을 확보하며 이번 주말 독립영화의 흥행 기준이라 할 수 있는 관객 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혁진은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친구들은 술기운에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제안한다. 다음 날 정선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한명도 오질 않고 터미널엔 혁진 혼자 서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실연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혁진은 마음이 적잖이 상한다. 그는 친구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들어간 식당에서 대낮부터 소주를 들이킨다. 당장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심란한 마음에 딱히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혁진은 일단 친구의 선배가 운영한다는 펜션을 찾아가기로 한다. 힘들게 도착한 펜션 옆방에는 혼자 왔다는 미모의 여자가 투숙하고 있다. 여자는 그에게 술을 사달라며 은근히 유혹하는데. 

<낮술>은 평범한 남자들의 술과 여자에 대한 욕망,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옆방 여자와의 하룻밤 로맨스, 버스 옆자리에서 만난 운명의 여인 등 혁진의 다양한 욕망과 판타지는 남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또 여행에서 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혁진의 여행도 뻔하지 않은 신선한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유부단 소심남 혁진, 섹시하면서도 백치미 있는 옆방녀, 미쓰홍당무 양미숙도 울고 갈 비호감 캐릭터 란희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배우와 스탭 모두 합쳐 10명의 인원이 13일 동안 10회의 촬영으로 완성했다는 <낮술>은 노영석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모두의 원맨쇼’였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포지션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면 특히 노영석 감독의 이름을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미술, 촬영, 편집, 음악 편집 심지어 곡을 쓰고 노래까지 했다고 하니 독립영화계에 진정 다재다능한 신인 감독이 출현한 듯싶다. 이번 주말 친구들과 일찌감치 <낮술>보고  ‘낮술’ 한잔 하면 어떨까. 문의: 02-3672-0181(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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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11:08

<워낭소리> 마음의 고향, 그것뿐이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영화 <워낭소리>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외국인과 한국의 도시인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그려냄으로써 정서적 감흥을 일으킨다.
▲ 영화 <워낭소리>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외국인과 한국의 도시인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그려냄으로써 정서적 감흥을 일으킨다.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사상 최초로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주말은 예매율 1위라는 기염을 토하면서 조만간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사상 최초로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사실, 조만간 2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 그 자체도 놀랍지만, 요즘처럼 한국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는 시기에, 웬만한 상업영화도 흥행에 참패하고 마는데 독립영화가 이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워낭소리>가 이처럼 큰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소재적 차원에서 먼저 접근해야 할 것 같다. 30년이나 인생의 동반자였던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통해 인생이라는 성찰의 문제를 이끌어내고,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아냄으로서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 소외된 듯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소의 죽음을 대하면서 막막한 슬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생과 삶, 자연 등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워낭소리>의 영화적 완성도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내가 놀란 것은 감독의 연출력이었다. 이 영화에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없다. 주인공인 할아버지도 말씀이 거의 없으시다. 그렇다고 소가 말을 하겠는가? 단지 할아버지에 대한 불평을 늘여놓으시는 할머니의 독백만이 영화 속에 살아있을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를 별다른 설명 없이 화면만으로 이끌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거나 불명확하지도 않다. 이런 솜씨는 아무나 가진 게 아니다 장담컨대 이충렬 감독은 탄탄한 영화적 실력을 지니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 내장되어 있는 정서적 울림에 깊이 동감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자마자 어느 정도 흥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지금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적절하게 건드리게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하게’ 건드린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소를 지극히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40살이나 된 소는 죽을 나이이고 할아버지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둘 다 인생의 황혼기인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는 아직도 쇠죽을 끓여 소에게 먹이고, 소 달구지를 타고 읍내에 나가고, 소꼴을 베기 위해 농약을 치지 않는다.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할 때도 소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 풍경은 지금 현재 농촌의 풍경이 아니라 몇 십 년 전 과거의 농촌의 모습이다. 요즘 농촌에서는 기계화되어 이런 일소를 기르지 않는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일소를 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굳이, 이제는 사라진 풍경을 영화 속에, 그것도 사계절의 순환 속에 녹여낸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참으로 편안하게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왜냐고? 머리 아프게 만드는 현실적 문제가 이 영화에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라진 마음속의 풍경이 영화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부모님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생각하면서 편안히 영화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보고 싶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이 영화에 그려진 것과 비슷한 것이다. 마치 <북극의 나누크>를 만들었던 로버트 플래허티나, 과거의 중국을 빨간 색의 풍광 속에 담아냈던 초기의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라고 할까.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방법말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관객들의 호기심도 채워주고, 새로운 구경거리도 제공한다. <워낭소리>는 외국인이, 그리고 한국의 도시인들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묘사가 없다. 미국 소 수입을 반대하는 집회장 앞으로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갈 때 현실을 환기하기보다는 웃음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 포근한 마음속 고향의 느낌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관객들이 쉽게 영화 속에 빠져들도록 감독은 극영화의 편집 체계를 사용하고, 사계절의 순환 속에 사건을 재배치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온 가족이 모두 앉아 편하게 볼 수 있는, 프라임 시간대의 TV 다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토록 평안한 다큐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고영재 PD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프로듀서한 <우리 학교>, <농민가>, <워낭소리> 사이의 관계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다가갔지만, <우리 학교>는 조총련의 현실적 문제에, <농민가>는 한미 FTA와 몰락하는 농민의 현실적 문제에 깊이 다가간 반면 <워낭소리>는 현실적 고민이 거의 증발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로 두 편의 영화를 프로듀싱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정반대적인 입장을 담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워낭소리>와 <농민가>를 같은 사람이 프로듀싱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지금, 한독협 사무총장이 프로듀싱한, 매우 비정치적인 성향의 영화와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독립 다큐가 워낙 큰 흥행을 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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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13:10

인디다큐 새얼굴을 찾아라!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지원사업 공모
▲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오는 3월 개막에 앞서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김나라 기자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오는 3월 개막에 앞서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다큐멘터리의 시대정신을 계승하고 다양한 관객과 소통하고자 2001년 시작된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다.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은 기존에 제작경력과 포트폴리오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했던 제작지원 제도에서 벗어나 제작 경험이 없어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날 선 시선을 갖고 있는 새 얼굴들을 발굴한다는 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사업으로 다큐멘터리의 다층적인 소재와 형식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게 한다.

지원 자격은 극장 개봉, 영화제, 방송 등에 상영된 작품이 2편 이하인 제작자이다. 주제 및 포맷은 제한이 없으며 최종 제작물의 상영길이는 40분 이내여야 한다.

선정된 감독들에게는 기존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기술 스탭들이 각 작품별로 멘토로 지정되어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함께 하는 ‘멘토 시스템’을 제공 받게 되며, 미디액트의 기자재 및 시설물을 무상 이용할 수 있는 ‘미디액트 머니’도 지원 받는다. 또한 영화제 입장료 수익의 일정 부분이 총 지원작에 균등 배분되어 현금으로 지급된다.

심사는 서류심사를 거쳐 영화제 기간 중 프리젠테이션 심사 후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폐막식을 통해 발표 및 시상한다. 최종 선정된 감독의 작품은 2009년 4월 13일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제작기간을 거쳐 2010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최종 상영할 예정이다.

공모에 지원하려면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공식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제출서류와 함께 서울 마포구 공덕동 법마을길 29 2층 (우)121-800로 기간 내에 방문 또는 우편 접수하면 된다. 문의: 02-334-3166(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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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0:13

선댄스 화제작, 그 영화 놓쳤다면

선댄스선댄스 기획전, 씨네코드 선재에서 22일부터

미국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7편을 다시 볼 수 있는 ‘선댄스선댄스 Sundance It Movie’ 기획전이 1월 22일(목)부터 2월 4일(수)까지 씨네코드 선재(옛 아트선재 아트홀)에서 열린다

▲ 미국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7편을 다시 볼 수 있는 ‘선댄스선댄스 Sundance It Movie’ 기획전이 1월 22일(목)부터 2월 4일(수)까지 씨네코드 선재(옛 아트선재 아트홀)에서 열린다



                                                                 김나라 기자

미국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7편을 다시 볼 수 있는 ‘선댄스선댄스 Sundance It Movie’ 기획전이 1월 22일(목)부터 2월 4일(수)까지 씨네코드 선재(옛 아트선재 아트홀)에서 열린다. 이번 기획전은 짐 자무쉬, 쿠엔틴 타란티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을 발굴한 바 있는 세계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 선댄스영화제(1월 15일~25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진행된다.

상영될 작품은 <헤드윅>(존 카메론, 2001), <원스>(존 카니, 2007), <로큰롤 인생>(스티븐 워커, 2008), <미 앤 유 앤 에브리원>(미란다 줄라이, 2005), <브릭>(라이언 존슨, 2005), <언더 더 쎄임 문>(파트리샤 리겐, 2007),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자나 브리스키, 로스 카우프만, 2004) 등으로 2000년대에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다.

특히 <원스>는 2007년 선댄스영화제와 더블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관객에게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2주 만에 만들어진 저예산 독립영화인 <원스>는 2007년 5월 미국에서 2개 관으로 시작했으나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개봉 열흘 후 20개 관으로 상영관이 확대되고, 80일 만에 140개의 상영관을 확보 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슬리퍼 히트 대역에 올랐다. 그 시기 <슈렉 3>,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트랜스포머> 등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스>의 선전은 더욱 값지다.

한편 <원스>는 이번 기획전에 앞서 1월 15일(목)부터 앙코르 상영에 들어간다. <원스> 앙코르 상영은 씨네코드 선재를 비롯해 메가박스 코엑스, CGV 압구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또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였던 자나 브리스키 감독과 다큐멘터리 편집자였던 로스 카우프만 감독의 데뷔작인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중 최고의 다큐멘터리라는 찬사를 받아 더욱 기대가 된다. 선댄스가 선택한 화제작 7편, 그 영화 놓쳤다면 이번 기획전의 상영 일정을 꼼꼼히 챙겨 보길 권한다. 상영 일정은 씨네코드 선재 공식카페에 게시될 예정이다. 문의: 02-3672-0181(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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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2:24

비약은 없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⑩] 임창재 한독협 이사장 
                                                                                                 컬처뉴스 김나라, 필름온 안효원 기자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 특집으로 준비했던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 마지막 인터뷰는 한국 독립영화 1세대이자 한독협 이사장으로 재임 중인 임창재 감독과 함께했다. 마지막 인터뷰는 그동안 아홉명의 독립영화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야기 했던 독립영화계의 현안과 독립영화인들의 고민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독협의 이사장으로서 또 동시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임창재 감독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 달라.

일단 시간이 빨리 갔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변화가 있었지만 많은 변화는 아닌 것 같다는 양면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건 협회의 일원이 아닌 한국 사회의 창작자 입장에서 말하는 건데, 우리는 창작을 통해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며 산다. 그 원칙에서 비춰볼 때 작품을 더 치열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양적으로 따지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감독들을 볼 때 더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사라지는 감독들 또한 창작하고 싶은 열망이 없어서 작업을 그만둔 것은 아닐 텐데.

지난 10년의 정권이 독립영화 환경에 영향을 주긴 했다. 그런데 그런 외적인 요인과 무관하게 내적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쌓는 데 있어 더 강화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말이다.

가치와 미학에 영화란 옷을 입히다.

언제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됐나.

1994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실험영화제에서 <오그>(ORG)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제는 내가 몸담고 있었던 실험영화연구소에서 주관했었는데, 국내 작품이 전무한 상태라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만들게 됐다.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왔다. 당시 실험영화가 낯선 개념의 영화였는데도 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여 힘이 됐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실험영화에 뜻이 있었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했다. 군대 제대한 후인 1990년대 초반은 우울하고 패배적인 사회 상황이었다. 제대하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에 속해 있는, 거의 해체 위기에 있는 영화모임에서 공부를 했다. 시네마테크에서 외국 영화를 빌려와 보고 토론하고 그렇게 1년간 했다. 그러다 서서히 창작, 제작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나.

권병순 감독님이 영화 미학의 기초가 되는 실험영화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연구소도 만들었고, 노동자문화운동연합의 영화분과가 서울영상집단으로 독립했다. 당시 충무로를 경험한 선배들이 있었는데 충무로에서 수순을 밟는 것이 결코 최선의 코스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또 1980년대에 대학에서 인문사회를 공부하면서 영화 쪽에 관심을 가졌던 선배들이 1990년대에 영화를 만들면서 7,80년대의 관행들에 균열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립영화를 선택한 이유인가.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연장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개인 창작, 즉 역설, 가치, 미학을 그림이 아닌 영화란 옷을 입혀 만들고 싶었다. 그림이나 영화, 모두 비주얼이 중요한 언어라는 공통점도 있고.

2002년 충무로에서 <하얀방>을 연출했다.

그쪽에서 의뢰가 왔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협회의 운영위원이었고, 한독협 원년 멤버인데 상업영화를 하면서 협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선배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근데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고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와 적대관계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독립영화건, 상업영화건 영화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지점은 관객, 대중이기 때문에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직접 해보니 어땠나.

돌이켜보면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충무로는 역할이 분화되어 있고 시스템화 되어 있다. 그게 장점이고 단점인데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엔 시야도 좁고 경험도 부족했다. 스탭 개개인은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사람들이라 능력 있는 분들이다. 근데 그분들의 노하우를 작품에 녹여 내는 방향으로 했어야 하는데 시원하게 못한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더 과감하게 결정하고 고집도 부렸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충무로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제작비이다. 제작비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감독의 입장을 넘어 프로듀서적인 마인드도 같이 갖고 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관객, 대중을 한 축에 놓고 사고를 해야 한다. 과연 이 많은 제작비를 갖고 관객들을 상대할 때 그 정도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나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고 내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할 것이다.

독립영화,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이후에도 꾸준히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다. 독립영화의 매력이 뭔가.

독립영화를 통해서 크든 작든 꾸준히 성과를 쌓아가는 게 가치 있는 작업 아닌가. 지금 충무로가 어렵다고 하지만 독립영화는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다. 그 속에서도 창작의지를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본분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10년이 넘게 작업을 했는데 작업 환경의 변화가 있나.

물론 있다. 양적인 변화도 있고, 독립영화라는 개념도 생겼다. 그 전에는 작은영화, 상업영화, 단편영화라는 말만 있었다. 지금은 독립영화라는 개념과 지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 과정에는 한독협의 설립이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충무로 방식이 합리적이진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충무로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독협 10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나 경험이 있다면.

한독협이 생긴 이후에는 그렇게 큰 사건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전부터 있던 인디포럼이 한독협이 출범하는데 가장 큰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인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역할 분담해서 만드는 영화제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모임이었다. 인디포럼이 협회가 만들어지는 돌다리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개념과 신념이 생기면서 창작자들이 수적으로도 늘어나고, 사적으로도 교류를 하게 됐다.

작년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창작자와 협회의 이사장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협회의 결정은 개인의 결정이라기보다 집단의 결정이기 때문에 내가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협회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좀 힘이 없어 보이는 이사장일 수 있다.(웃음) 실제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부담되지는 않는다.

기획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독립영화계가 ‘변화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독협 10주년을 맞은 2008년 독립영화의 상황은 어떤가.
 
결국은 독립영화인들이 자생력을 키우는 시기였던 것 같다. 자생력은 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근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 미진한 게 많다. 인디스토리가 10년 됐고, 독립영화 전용관도 1년 됐고, 미디액트도 4, 5년 됐다. 또 지금 독립영화 배급사가 더 생기는 판이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작일 뿐이고, 이제 또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총체적인 의미에서 영화를 만들고 배급되고 상영되고 평가 받는 소통 과정의 순환이 커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미약한 부분이 있다.

소통 과정 순환의 최소한의 기틀은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한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바뀌면서 기존의 방향과 달라졌다는 인식이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영화를 너무 산업적인 측면에서 사고하는데서 오는 문제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봤을 때, 영화를 산업으로만 볼 때에 독립영화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영진위의 지원금이라는 게 결국은 세금이고 관객들이 낸 입장료에서 모아진 기금, 즉 대중이 만들어준 재원이라는 거다. 그런 재원을, 나쁘게 이야기 하면, 일회성, 소비적인 부분에만 ‘올인’하면 사실 그건 다양성, 공공성을 해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독립영화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독립영화 진영에 지원하는 것이 문화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독립영화인들이 상대적으로 다양성이나 공공성을 더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지원에만 의지하면 좋은 창작태도는 아니다. 근데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의 논리로만 영화를 풀어가야 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관객이다. 독립영화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미래 한국 관객을 위해 그렇게 정책이 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정신 차려라!
 
서울독립영화제 기간에 한독협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의외였다.

우리도 좀 껄끄럽기도 했다. 근데 워낙에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고,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다.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야 했다기 보다, 그 시점에 알려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명서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작년, 올해 논의됐던 복합상영관 건립 문제다. 예산까지 확보 됐었던 사업인데 그걸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아시아무빙이미지센터’(이하 이미지센터)로 확대된 건데, 청사진이 있더라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그걸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전략전술이 필요한데 그게 미진했고 결과적으로 추진할 역량이 안됐다고 생각한다. 강한섭 위원장의 리더십과 추진에 대한 신념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서 그 쪽에 포커스를 맞춰 성명서를 냈다.

이미지센터는 복합상영관과 방향이 전혀 다르지 않나.

이미지센터는 국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아시아를 포괄하는, 어떻게 보면 전시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걸 실현시킬 장기적인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기에 복합상영관 문제가 묻혀서 이중적인 고통을 받아 찌그러진 것 같다.

그럼 복합상영관 건립은 폐기된 건가. 이미지센터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공간보다는 활동이 더 중요한 거다. 어쨌든 복합상영관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매개체인데, 그게 지금 불투명한 상태가 되니 답답한 거다. 또 3기 영진위에서 추진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니까 굉장히 화가 난다.

강한섭 위원장이 4기 영진위를 맡으면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안 한 것 같다. 성명서의 내용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는 언제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런 것 없이 많은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기도 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강한섭 위원장이 “영진위의 사업은 독립영화가 거의 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그게 아니라는 건 영진위 예산이나 정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독립영화 진영도 영진위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넓게 보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독립영화의 체계, 시스템을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다. 영진위는 그 중 하나의 촉매제로 바라봐야 하는 거지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물론 같이 힘을 모을 부분이 있지만 그건 부분이지 전체가 될 수는 없다.

한독협, 브레인을 찾습니다!

전체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책 연구가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10주년 기념 사업만 해도 과거를 돌아보는 부분은 좋았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정책에 관한 부분은 미진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새로운 10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정책 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어떻게 목표를 도달할 것인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책이라면 당연히 한독협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회의에서 그런 논의가 나오고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근데 우리가 대부분 창작자들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 그걸 전담 해서 하기가 어렵다. 자발적으로 뜻이 모아져야 되는데 조직적으로 너무 강제 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금방 나오지는 않지 않나. 필요성은 있지만 요구만큼 시원하게 나올 정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풀어갈 예정인가.

글쎄, 그건 내가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한독협이라는 조직의 틀을 떠나 전문성을 갖추고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과 결합하는 게 필요하다. 비전과 능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열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방금 외부 인력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기획 인터뷰에서 한독협 내부 인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다. 영화를 만드는 스탭은 물론 활동가들 또한 일은 많고, 생활이 보장 안 된다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합리적으로 나오면 일하기가 더 수월할 거다. 근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번에 좀 도와주면 다음 작품 할 때에 도와줄게”라는 식으로 노동력을 담보로 노동력을 빌려 온다. 100% 신용사회다.(웃음) 어쨌든 물질적인 부분을 많이 강화할 필요는 있다. 그걸 감수하면서 일하려는 사람이 적은 건 당연한 거고, 한 개인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독립영화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협회가 전체적으로 조금씩 나아진다면 개인도 같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한독협 초기에 비해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좀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협회 초기에 인원이 적었을 때는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만, 협회가 커지면서 개인이 생각하는 협회의 가치, 목표가 넓어지기 때문에 협회 내부에서도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서 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고 본다. 그걸 더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조직이 되는 게 중요하다. 논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우리 역할을 방기하는 거다. 이견까지도 대화하고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구조와 열린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창작의 고통을 마주하라! 그게 창작자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인이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많은 것 같다. 선배 독립영화인으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예술은 추상적인 통로고, 창작자는 생각이나 의지를 그 통로를 통해 삶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현실 속의 사람들과는 삶의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가 체념하는 것도 생기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데 그런 자각을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 먼 관점에서 볼 때 독립이다 아니다 하는 경계 자체가 무너지길 바란다. 독립, 비독립은 자본의 성격 갖고 결정되는데 그런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건가.

독립영화 했다고 계속 독립영화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립, 비독립을 떠나서 창작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고통은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이외에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가까이 두고 살면 위안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고전음악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음악, 문학 등 훌륭한 예술가들을 마음속에 두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만날 독립영화 관객들과 한독협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독립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관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근데 창작자와 관객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럴수록 만드는 입장에서는 고민이 더 많아 진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괴리가 더 커질수록 창작자의 고민도 더 깊어지는 거다. 그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 창작자들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통해서 삶에 힘과 자극을 받았다면 거기에 대해서 표현을 해주면 좋겠다. 창작자들에게는 큰 힘이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 달라.

이제 첫 길을 건넜다. 뒤돌아보면 많은 일을 했고, 주변을 보면 한독협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전망을 계속 유지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지금 그런 걱정을 한 단계는 아니지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쨌든 경계해야 할 것은 경계하고, 힘을 많이 쏟아야 할 데는 힘을 쏟아야 한다.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것은 사실 바람일 뿐이지 비약하는 것은 없다. 이후 10년이 지나서 뒤돌아보더라도 조금씩 변해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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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3 13:38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잔치

 - 2008 서울독립영화제 11일 개막(김나라 기자)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목)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식을 갖고, 19일(금)까지 9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올해 서독제의 슬로건인 ‘상상의 휘모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렬한 상상력의 힘이 독립영화계에 거침없이 휘몰아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상상력이 문제였단 말인가!”라는 외침과 함께 시작한 오프닝 영상이 개막식의 문을 열고  뒤이어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코러스를 맡은 ‘미미 시스터스’의 화려하고 뜨거운 개막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각각 8회, 5회 연속으로 서독제의 사회를 맡아온 권해효, 류시현의 진행으로 한국독립영화협회 임창재 감독의 개막선언, 영화진흥위원장 강한섭,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개막작인 강미자 감독의 <푸른 강은 흘러라>가 상영되며 개막식의 공식 행사가 끝을 맺었다.

강미자 감독은 “모든 영화는 저마다 세상에 나올 만한 이유가 있다”며 “영화인들이여 도전을 마음껏 즐겨라.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하자. 이것이 결국 우리 한국영화를 더욱 깊고 넓고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로 34회를 맞는 2008 서독제에는 경쟁부문 51편, 국내외 초청작 35편이 상영된다. 본선 경쟁작들은 영화제 기간 중 심사를 거쳐, 19일 폐막식에서 수상작이 발표된다. 국내 초청작 부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밌거나 혹은 열받거나’를 주제로 한 9편의 ‘촛불 영상’이다.

이밖에 영화 관람 이외의 일정도 다양하다. 독립영화감독들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일일 자원활동가’, 감독과 배우의 만남의 장인 ‘감독, 배우를 만나다’ 등의 행사와 ‘Sex is cinema : 영화에서 성적 표현의 문제’, ‘거리의 촛불, 참여 미디어의 가능성’ 등의 세미나가 마련돼 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 관람료 5천원. 문의: 02-362-9513 (서독제 사무국) 

 

'장기하와 얼굴들'과 코러스와 댄스를 맡은 '미미 시스터즈'의 개막축하 공연 모습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축하 인사  

스폰지하우스 중앙1관에서 열린 개막식은 1, 2층 480석을 꽉 채운 관객과 독립영화인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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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2 10:22

한독협, 공부하자!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⑦] 맹수진 영화평론가

맹수진 영화평론가
▲ 맹수진 영화평론가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상영’된다고 그것이 그 영화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건강한 피드백이 없다면 감독 개인의 차원에서도 영화산업 전체의 차원에서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만나본 사람이 독립영화비평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맹수진 영화평론가다. 맹수진 씨는 한독협 운영위원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 소위원, 영화제 심사위원 등 독립영화의 안팎에서 꾸준하고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어쩌면 독립영화계의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비판의 날이 가장 서 있는 인터뷰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정 어린 충고가 담긴 인터뷰 시작해 본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아쉬움이 좀 남는다. 10주년 기념 영화도 만들고 포럼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했는데 행사가 너무 회고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올해의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을 쭉 살펴보면서 한독협의 출범 의의라든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에 관해 나름대로 잘 정리하는 시간이긴 했다. 문제는 지금 정세가 많이 변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과거에 한독협이 정부와 대립하는 단체였다면, 지난 10년은 한독협이 제안하는 사업을 정부가 많이 받아 들였던 시기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많은 사업이 이루어졌고, 독립영화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지원을 받다 보니 NGO가 갖고 있는 긴장이 좀 없어진 느낌이다. 옛날에는 허리띠 졸라매는 게 기본이었는데 최근 10년 동안은 어떻게 보면 좀 배부르게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한독협의 역할이 너무 사업에 치우쳤고 정책 연구에는 소홀했다.

그게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면서 많은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 다른 방향에 대해서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와 싸워야 하는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거 같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는 정책 개발이다. 그런 이야기가 10주년 사업에서는 별로 없었다. 굉장히 많은 사업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액기스가 좀 빠진 것 같다.

영화, 사랑하고 끔찍하다

처음부터 숨 가쁘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웃음)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영화평론가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 위원과 <무비위크> 스탭 평론가로 활동했다. 또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나다에서 2주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활동을 했다. 전주영화제에서 6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독립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서독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5년부터다.

많은 일을 한다. 영화평론가로서의 삶은 어떤가.

평론가로서의 삶이라, 그건 뭐 다 짐작할 것 같은데 연애하는 느낌이다.(웃음) 연애하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또 너무너무 끔찍할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고 가장 싫어하는 영화도 독립영화에 있다. 충무로 상업영화들에는 안정적인 틀이 있지만 동시에 답답하고 고루한 면이 있다. 독립영화 중 그걸 벗어나는 영화, 예상치 못한 영화를 만나면 진짜 신난다.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내가 발견한 느낌, 정말 좋다.

그럼 끔찍할 때는 언제인가.(웃음)

충무로에서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아닌 영화는 냉정하게 시장에서 버려진다. 근데 독립영화의 경우 함량 미달인 영화도 있는데 독립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갈등하게 된다. 특히 ‘힘들게 만들고, 양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으니까 욕하기 보다는 격려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갈등은 심해진다.

그걸 잘 표현하는 타입인가.

난 외교적인 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맘속에 있는 말을 결국 드러내게 된다. 싫은 영화나 그 감독을 만나면 표정관리도 안된다. 뒤에서는 욕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영화 잘 봤다고 할 수도 있는데 난 맘에 안 드는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앞에 앉아 있다가 서먹해지는 상황도 많이 있다.(웃음)

민주화를 꿈꾸던 자유주의자

영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다. 그 때 내가 1주일에 한번씩 들렀던 것이 종로에 있던 코아아트홀이다. 또 라이브러리를 회원제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회사는 다녀야했다. 나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도 빨리 모으려고 했다.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왠지 학창시절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거 같다.

내가 89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정치조직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몇 달 동안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집에서 학교도 못 가게 했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듯 맞은 적도 있었다.(웃음) 근데 그땐 몰랐는데 그 시기에 학생운동을 하다 영화 쪽에 들어온 사람들이 되게 많다.

영화에서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발견한건가.

그때 영화로 방향을 틀면서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동안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투쟁했다면 이제는 영화를 통해서 문화운동을 해 보겠다’고 말이다. 그 즈음에 문화담론이 굉장히 활성화 되면서 문화를 통해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시류에 내가 묻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면 뼛속깊이 자유주의자고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다.

얘기가 점점 흥미로워진다.

학창시절 끊임없이 사회 운동을 하면서도 조직이 ‘나’라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못 견뎠다. 난 너무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조직이 원하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근데 그때는 조직이 개인을 억누른다는 생각을 차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비조직적이고 쁘띠부르주아적이며 나약한 인간이라는 자기학대를 끊임없이 했다. 조직의 이익이 있고 목표가 있을 때 나의 이익과 관심은 뒤로 빠지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개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겠다.

점점 힘들어졌다. 연애도 깨지고 부모님과도 갈등이 심화됐다. 나는 너무 힘든데 조직의 논리는 개인을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회의가 들면서 내가 감성적인 인간이고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 결국 무엇을 택하든지 내가 좋아하는 거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책 읽고, 영화 보고, 글을 쓰는 걸 하게 됐다.

영화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평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평론을 하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냥 막연히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사실 논문 마치면 쓰려고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만날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 ‘나 논문 끝내고 미디액트 등록할거야’다.(웃음) 내가 상업영화를 만들 건 아니지만 그냥 개인 비디오로 장롱 영화라도 만들고 싶다. 결국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또 하나의 글쓰기인 것 같다.

독립영화?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

언제 본격적으로 평론을 하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전주영화제를 하면서부터다. 처음에 영화 공부를 할 때는 현장 비평보다는 한국영화사를 새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그런 학문적인 관심이 많았다. 근데 전주영화제에서 단편영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책을 한 권씩 쓰는데, 그 때 현장의 영화들, 그때그때 나오는 영화들에 대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건가.

2005년도에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이 연락을 해 왔다. 전주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쓴 글을 보고 제안해 온 것이다. 영각 씨가 다른 데서 글 쓰는 사람들과 독립영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영각 씨가 바쁜 사람인데도 보면 되게 바쁜데도 독립영화에 대한 글들은 꼬박꼬박 챙겨 읽는다.(웃음) 그때 2005년도 서독제 예심을 봐 달라 해서 인연을 맺게 됐다. 2006년에도 예심, 2007년에는 본심, 올해 다시 예심 심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서독제  집행위원도 하고 한독협 운영위원도 하게 됐다. 옛날에는 영화보고 글 쓰는 거에 만족했는데 한독협과 인연을 맺다 보니 독립영화가 내 울타리가 되었다. 나의 놀이터라고나 할까?

독립영화란 놀이터가 재미있나.

일단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에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에 주류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긴 했었는데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들은 재미있는데, 대학원에서 배운 서구이론들을 영화들에 재밌게 적용시키지 못했다. 미국영화나 스페인영화에 대해서 내가 써봤자 같은 문화적 공감을 갖는 그 나라 사람들만큼 못쓰지 않겠나. 그래서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구라’ 치는 거 같고.(웃음)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구라’를 안 치나보다.(웃음)

내가 독립영화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이슈들, 사회문제들이 독립영화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넓게 보면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내가 옛날에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이 독립영화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더 재밌게 할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됐다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 이뤄졌다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취약하고, 절실한 문제들이다. 사실 그렇다. 독립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돈이 안 된다. 주류 평론가 중에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으니까 비평하겠다고, 심사하겠다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두 번 단기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하려면 힘든 부분이 있다. 월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일을 해도 돈을 받는 일은 없다. 독립영화계에서 살려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은 리뷰를 써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 삶에 타격이 있다.(웃음) 어찌 보면 이게 독립영화계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독립영화 비평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건 평론가의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독립영화는 분명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라는 일반적인 잣대로 봐야할 부분이 있고, 독립영화라는 특수성으로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걸 다 이해하면서 글을 써야만 정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러려면 독립영화를 많이 봐야 한다. 영화를 정말 사랑해서 많이 본 사람들의 글에는 깊이가 있고 향기가 있지 않나. 근데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립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글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독립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해결책으로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독립영화 비평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비평가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에 한독협에 비평분과가 처음 생긴 거다. 정책 단위가 필요하고,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비평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
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독립영화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

그건 독립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영화 저널이 없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한독협이 비평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는 없었다.(웃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나마 전에는 독립영화 비평은 필요하니까 외부 비평가들한테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는 식이었지 한독협 내부에서 비평가들을 육성하는 건 없었다. 근데 그런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영각 씨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진행하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 ‘해피투게더’를 진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세미나를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서독제 자원활동가나 데일리 기자로 쓰면서 조금씩 글을 쓸 기회를 준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독립영화 비평 자원을 키워가자는 논의가 나온 게 최근 2, 3년 사이다.

한독협 비평분과에는 몇 명의 평론가가 있나.

8명 정도 가입되어 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데 잘 안되고 있다.(웃음) 다 자기 일들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자꾸 일에 치인다. 난 영화 같이 보고 세미나 하고, 비평을 하는 계획이었다. 근데 계획대로 잘 안됐다. 현재 한독협 내에서 비평분과에 요구하는 일들, 예를 들어 인디스페이스 리뷰, 10주년 기념 책자 등 외부에 돈 주고 하기 힘든 일들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서 진행 할 거다.

독립영화 비평의 최전선에 있다. 이번 서독제 출품된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말해 달라.

단편은 지금까지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중심적으로 심사한 건 단편보다는 장편인데, 장편의 경우 올해 굉장히 센 영화들이 많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의례적으로 상영되던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빠졌다. 지금까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흔히 얘기되는 영화들은 기본적인 미학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이 상영돼 왔다. 난 그게 가장 불만이었다. 소재 차원에서 독립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만의 미학을 담은 영화들을 선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극영화가 많고, 다큐멘터리 중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을 욕먹을 각오하고 뺐다.

심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아무래도 6명이서 토론을 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반이 절대 찬성하고, 반이 절대 반대하는 논쟁적인 영화가 본선에 올라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안 되는 영화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무난한 영화들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근데 ‘그 정도면 괜찮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틀어도 무방하다는 말 아닌가.

심사 과정이 치열했겠다.

올해 비장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지금까지 서독제가 한 해를 정리하는 독립영화 축제 같은 느낌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포괄했다면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편수를 과감하게 줄이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은 빼고 우리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들로 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근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거 같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관철시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올바름이 있다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이 되고 상영이 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가 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얼굴의 영화들이 등장 했다. <농민가>를 연출한 윤덕현 감독도 처음 들어보는 감독이고, <워낭 소리>의 이충렬 감독도 방송 쪽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영화들이 자극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영화도 논란이 예상되는 영화들이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기 힘들어할 영화도 있다. 물론 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올해 장편 경쟁 같은 경우 조금 선명하게 가려고 노력했다.

틀을 깨는 새로운 영화, 철학을 찾아서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마츠모토 토시오가 쓴 <영상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다. 이 사람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작품은 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는 눈이 없을 뿐이다’이다. 그게 맞는 말 같다. 분명히 새로운 시각을 가진 영화들이 있는데, 그게 어떤 관성에 의해, 지금까지 상영해온 영화의 미학적 틀이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락될 수 있다. 현재 어디에서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고 있는지 눈을 돌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주로 하는 일을 통해서 독립영화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난 평론가이기 때문에 비평의 차원에서 고민이 있다. 주류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관행이 독립영화에도 있다. 솔직히 감독들과 많이 가까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창작과 비평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근데 독립영화인이라고 통칭되면 그게 더 어렵다. 사실 사람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되게 부담스러워 한다. 특히 안 좋게 본 영화는. 근데 이제 써야 할 것 같다.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달라.

공부하자.(웃음) 한독협이 약간은 비대해졌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몸과 손발이 커진 것에 비해 머리는 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연이 확대되고 한국영화계에서 한독협이라는 단체의 입지도 과거와 다르게 매우 커졌는데 거기에 걸맞는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창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결국 유야무야 됐다. 만약 정책을 갖고 했다면 그게 끊어져서는 안 된다. 또 그 때 예술, 독립영화 의무 상영에 관한 ‘마이너쿼터’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럴 때 한독협이 정책과 철학을 갖고 영화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사업보다는 정책 강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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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냉정하다. 재밌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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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4 11:14

관객은 냉정하다. 재밌어야 산다!

[한독협 10년, 오늘의 독립영화-⑥] 정병길 감독

정병길 감독

▲ 정병길 감독

올해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작품을 꼽으라면 정병길 감독의 <우린 액션배우다>를 선택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실적으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우린 액션배우다>는 독립영화계에 분명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 속 늘어난 트레이닝복 차림의 정병길 감독을 상상하며 나간 인터뷰 장소에는 생각지도 않게 트렌디한 모습의 감독이 서 있었다. ‘웃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 정 감독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통해 정병길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현재 충무로에서 새 영화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는 정 감독은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구분 않고 계속 영화 작업을 할 생각. 양쪽을 아우르며 작품 활동을 하는 감독이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정 감독의 말은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게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글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한독협을 안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아, 내가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처음 한독협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됐고, 10주년 기념식에도 참가해 같이 술도 마셨다. 그래도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대단한 거 같다.(웃음)

액션배우, 관객을 만나다

그럼 먼저 <우린 액션배우다> 얘기 먼저 하자. 개봉하고 기분이 어땠나.

시원했다. 시간이 없어서 개봉 날짜 맞추려고 마지막까지 고생했다. 개봉하고 모든 GV에 참석하긴 했지만 극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진석이는 매일 극장가서 영화는 안보고 관객 얼마나 왔나 숫자 세고 왔다는데.(웃음) 근데 나는 영화 개봉하고 나서 인터뷰도 많고 일도 많아서 정신없었다.

언제부터 개봉 준비했나.

글쎄, 개봉 못할 확률이 컸었다. 배우들도 ‘그거 개봉할 수 있겠냐?’고 했다. 영화 찍을 때도 그냥 ‘얘가 또 뭐 하나보다’ 뭐 이런 반응이었다. 근데 전주국제영화제 CGV 장편영화 개봉지원작에 선정돼 개봉하니까 정말 신기해했다. 이지연, 이용희 프로듀서가 많이 도와줬다. 그분들 없었으면 개봉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린 액션배우다>(2008)

감독으로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니 어떤 느낌이었나?

음, 광화문 씨네큐브가 CGV보다 관객 반응이 더 좋았다. 아무래도 씨네큐브는 이런 작은 영화를 좀 찾아서 오는 관객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CGV는 일반 관객이 더 많고.

씨네큐브 관객과 CGV 관객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

씨네큐브 관객들이 더 예뻤다.(웃음) 개봉 첫 날 씨네큐브에서 GV할 때 20년 동안 연극배우 하셨다는 분이 있었는데 ‘영화 속 배우들이 힘들지만 계속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많이 반성했다’며 펑펑 울었다. 연극을 그만 둘까 고민하던 분이었다. 고맙기도 했는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냥 서 있었는데 맹수진 누나(영화평론가)가 수습해줬다.(웃음)

<우린 액션배우다>가 1만 명 좀 넘게 들지 않았나. 독립영화계에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아서 아쉬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십만 명 넘을 걸로 기대했었다.(웃음)

만이천 명 정도 들었다. 나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 첫 주 스타트가 좋았는데 중간에 교차 상영을 하고, 추석에 블록버스터가 쏟아져서 흥행이 주춤했다. 평일 첫 회, 마지막 회 상영을 하는데 누가 보러 올 수 있겠는가. 보려야 볼 수 없는 거지. 차라리 비수기에 좀 더 오래 틀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생각보다 담담한 것 같다.(웃음)

아, 자다 일어난 지 얼마 안돼서 그런 거다.(웃음)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저녁 6신데...(웃음)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우린 액션배우다>에도 나왔는데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근데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짜증이 나 방황도 하면서 그냥 놀았다. 할 일도 없고 해서 무작정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 보는 동안은 걱정을 잊을 수 있으니까 쉬지 않고 봤다. 영화보다 지쳐서 자고 일어나면 또 보고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했다.(웃음)

그때 지금의 ‘정병길 감독’의 모습을 상상했었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도 감히 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처음에는 스탭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 미술을 했으니까 콘티 작업을 하면서 미술감독의 꿈을 가졌다. 그래서 충무로에 이력서를 냈는데 군대도 안 갔다 오고, 운전도 못한다고 해서 안됐다. 그런데 군대 다녀오니까 나이가 많다고 퇴짜 맞았다. 그 때는 운전면허도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만들자 해서 무작정 만들었다.

그때 만든 작품이 뭔가.

액션스쿨에 있을 때 <칼날 위에 서다>는 극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액션스쿨에는 배우가 되려고 들어갔다. 그때 극단에서 연기도 하고 있었고. <칼날 위에 서다>를 만들고 나서 연출에 마음이 생겼다. 군대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이 보초를 선 후임병에게 ‘나 사회 나가서 뭐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배우는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더라. 왜냐고 물었더니, ‘정 병장님이 배우하면 극장에 온 연인들이 나가면서 욕할 거’라는 거다. 여자 관객이 ‘남자 배우가 정이 안 가’라고 할 거라고.(웃음)

용감하면서도 속 깊은 충고다.(웃음) 연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다. 내가 하는 게 ‘무조건 맞다’고 밀고 나갔으니까. 딱히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가난해서 죄송합니다>는 단편영화다. 이건 충무로 스텝들과 함께 만든 극영화다. 영화제에서 상은 탔지만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충무로 스탭들을 믿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많이 따라가서 충무로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시간이 워낙에 없었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거의 드라마 찍듯 만들었다. 

그 다음에 찍은 다큐멘터리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이하 <락큰롤>)가 2006년 서독제 관객상을 받았다.

원래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왜 나한테 찍으라고 하냐. 난 다큐멘터리 찍는 사람도 아닌데’라고 했더니, ‘넌 돈 안줘도 될 것 같다’고 답하더라.(웃음) 그래서 돈 안 받고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이 작품으로 서독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한독협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 전에 <칼날 위에 서다>도 출품했었는데 떨어졌다.

극영화랑 달랐을 텐데 촬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우선 시간이 없었다. 일본 유명 록 밴드 기타울프를 4박 5일간 따라 다니며 찍었는데, 그 후에 일본으로 휙 돌아가니까. 철저하게 계산을 해서 재밌게 만들려고 했다.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실제 따라다니면서 보았던 모습들과 픽션을 연결시켜서 만들었다. 편집 기간은 한 1주일 걸렸다.

4박 5일 촬영에, 1주일 편집에 그런 작품이 나온 게 신기하다. 혹시 편집 잘한다는 말 듣지 않나?(웃음)

가끔 듣는다.(웃음) 처음엔 안 될 것 같은 것도 머리 속으로 구상을 하고 여러 번 시도하면 아귀가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집에 가면 벽에 하나의 아이디어 붙여 놓고 계속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붙여서 말도 안 되는 거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다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항상 영화 보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지루한 영화를 못 본다. 그리고 관객은 더 냉정하다.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2006)

즐겁다, 고로 영화를 만든다.

평소 어떤 영화를 즐겨보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킹콩> 같이 뭔가 쉬지 않고 나오면서도 메시지도 있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도 그런 느낌으로 찍으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하면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있다. 인물을 세워놓고, 고정된 프레임으로 찍으니까 그런 것이다. 난 같은 얘길 해도 컷을 많이 나눠서 편집하면서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같은 다큐멘터리지만 <락큰롤>과 <우린 액션배우다>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찍을 때 마음가짐이 달랐다. <락큰롤>은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욕먹어도 괜찮으니까 즉흥적이라도 재밌게만 찍자는 마음이었다. 그에 반해 <우린 액션배우다>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만들었다. 제작 기간도 <우린 액션배우다>는 1년 6개월이 걸렸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스턴트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다. 기존에 스턴트맨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불쌍하게 그리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밝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반 사람들은 다치면서 돈 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몸값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일 하는 프로들이다. 액션배우라는 꿈을 안고 상경한 20대의 성장 드라마를 찍고 싶었다.

근데 그 형식이 왜 다큐멘터리인가. 극영화로 찍을 수도 있었지 않나.

일단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생각한 드라마의 가장 알맞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꿈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면서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어디가도 돈이 필요하니까 꿈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게 찍고 싶지 않았다. 웃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터미네이터>가 그랬던 거처럼.(웃음)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고 굉장히 놀랐다. 관객들 사이에서 이 장면이 많이 얘기되기도 했다.

나도 놀랐다(웃음) 알고 있었는데도, 진짜 다쳤나 싶어 깜짝 놀라서 카메라를 껐다. 처음에 스턴트맨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안 좋았다. 예전에도 스턴트맨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뻔하다는 반응이었다. 스턴트맨들 막 다치고, 불쌍하게 그리면서 감동을 끌어 붙이는 휴머니즘, 난 그게 싫었다. 그래서 논픽션에 픽션도 섞어서 그들의 직업을 자연스레 설명하고 싶었다.

어떻게?

자동차 사고가 나고 나서 차에 치인 배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또 운전을 하던 배우도 ‘전에도 이거 했었는데, 안 다쳤어요’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고,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턴트맨들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이들의 일이니까. 이들은 차에 부딪혀서 아프고, 괴로운 ‘찌질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꿈을 이루는 이들이다.

난 왜 이렇게 영화를 안 본 거야!

감독의 그런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거 같다.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액션배우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화제를 바꿔서, 한독협은 언제 처음 알게 됐나.

군대 가기 전이니까, 2000년도쯤이다. 그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영화인들을 알게 됐고, 가끔 술자리나 이런데 가서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럼 ‘한독협이라는 곳이 있는데, 자기는 거기 회원이고, 미디어 센터에서 장비를 싸게 빌려준다’는 얘기들을 했다. 그렇게 한독협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독협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아, 나도 여기 회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원이 되는 게 어려운 건 줄 알았다. 작품도 몇 개 만들고 상도 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웃음) 그러다 2006년 서독제에 <락큰롤>로 상 받았는데 회원 가입하라고 해서 가입했다.

회원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

달라진 점이라기보다는 좀 신기했다. 가입하고 나서 극영화 분과 사람들과 회의도 하고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혼자 영화 만들었으니까 그런 게 없었다. 또 인디포럼 상임작가 하면서 독립영화인들과 자주 만나게 되니까 친해지고, 워크숍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뭘 가르치기도 했다. 근데 초반에 열심히 나가다가 이제는 영화 작업이 바빠서 많이 못 나간다. 아, 근데 다큐멘터리 분과 회의는 한 번도 안 들어갔다.

"잘 만든 오락영화 하고 싶다. 얼마 전 <다크나이트>를 봤는데 소름끼쳤다. 재밌지 않나.
 메시지가 약한 것도 아니고"


한독협 사람들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너 뭐하냐” 그러면, “저 시나리오 써요” 이 얘기만.(웃음)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시야가 넓어졌다거나 배운 것이 있다면.

한독협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영화에 대해 참 모르는 게 많구나,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데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내가 영화를 많이 본 줄 알았는데 말 하다 보면 모르는 영화도 많다. 그런 갈증이 생기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하기 좋은 기본 조건을 갖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하면서 미장센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 편집은 감으로 잘 하고(웃음)

그림을 했던 게 영화 작업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그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안했을 것 같다. 그림을 했기 때문에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한 번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자신감. 편집은 혼자 책보고 공부했다. 워낙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책보고 프로그램 배우는데 되게 오래 걸렸다.(웃음) 내 친구는 옆에서 책 한 번 보고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냐’면서 바로 했다. 사실 내가 공부를 정말 못했다. 시험지를 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생긴 게 중학교 때였으니까.(웃음)

중요한건 기술적인 것보다 오히려 감인 것 같다.

그건 맞는 것 같다. 스타 크래프트도 배우는 건 쉽지만 잘하는 게 어렵지 않나.(웃음) 그런 개념인 것 같다. 프로그램을 익히면 편집은 되게 단순한 거다.

정 감독, 충무로 입성 준비 완료!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고 들었다.

<청년폭도맹진가>란 영화다. <우린 액션배우다> 찍다가 제작비가 떨어져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상금 1천 5백만 원이 걸린 시나리오 공모전 공고를 보고 쓴 작품이다. 당시 마감이 15일인가 20일 정도 남았었는데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걸 막 썼다. 될 거라는 생각보다 ‘이걸 핑계로 시나리오 완성하자’는 생각에 쓰게 됐다. 당선이 되면 좋고, 안 돼도 시나리오 하나 완성한 거니까.(웃음)

공모전에 당선된 건가.

아는 영화사 대표님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사업지원 공모에 이 시나리오를 내겠다고 해서 ‘내세요. 근데 안될거에요’라고 했는데 영진위 공모와 공모전 둘 다 됐다. 그래서 영진위가 4억, 공모전 쪽에서는 상금이랑 지원금까지 4억 4천 5백만 원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근데 공모전 쪽에서는 영화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고 일단 시나리오는 팔리는 거라고 해서 그걸 포기하고 영진위를 택했다. 나는 연출을 하고 싶으니까 당연히 돈 몇 천만 원 때문에 시나리오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 작업 하는 분들에게는 분개할 얘기다.(웃음)

이 시나리오는 충무로 영화 입봉할 생각으로 생각해 뒀던 거다. 단숨에 쓰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거다. 시나리오 자체가 상업적 코드가 있고, 많은 예산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나리오에 힘이 있다. 그래서 하석진, 이문식, 이정진, 이영훈 등 좋은 배우들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 게 잘 맞아 떨어진 거다. 

대략적인 영화 내용을 듣고 싶다.

고등학교 때 잘나가던 양아치들이 서른이 되어서는 양아치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할 일 없이 백수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그 사건이 생각지도 못한 일로 연결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웃다가 보고나면 약간 무섭다는 생각도 드는 그런 영화다. 곧 크랭크인 한다.

주변에서 다큐멘터리에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나. <우린 액션배우다>는 올해 가장 주목받은 다큐멘터리 중 하나다. 인정받는 장기를 제쳐두고, 극영화에 뛰어든 이유는 뭔가.

잘 만든 오락영화 하고 싶다. 얼마 전 <다크나이트>를 봤는데 소름끼쳤다. 재밌지 않나. 메시지가 약한 것도 아니고. 그걸 다큐멘터리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일리언>도 오락영화지만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오락영화를 찍고 싶었다. ‘터미네이터’ 같은 게 실제로 있으면 다큐멘터리로 찍는 게 더 좋겠지만.(웃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에 다큐멘터리는 한계가 있다.

충무로 입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영화 작업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침묵) 글쎄.(웃음) 가장 애정이 가는 영화는 <칼날 위에 서다>이다. 가장 못 만들었지만 그냥 좋다. 사실 시간이 지나서 내 영화를 다시 보면 화가 많이 난다. 이런 걸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나 싶다. 얼마 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린 액션배우다>를 상영했는데, 내 영화인데도 지루했다.(웃음) 내 영화를 싫어한다거나 후회한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창피해서 다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작게 할 영화가 있고, 큰 사이즈로 할 영화가 있다. 상업영화하다가도 독립영화를 해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 작업을 계속 할 거다"


영화 만들 때 언제가 제일 좋은가.

현장이 제일 좋다. 현장이 힘들 때는 빨리 편집하고 싶고, 편집하고 있을 때는 다시 현장으로 가고 싶다.(웃음)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지만, 싸워도 현장에서 싸우는 게 좋다.

독립영화, 생각대로 인디펜던트!

지금 충무로로 간다. 다시 독립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둘 다 할 생각이다. 작게 할 영화가 있고, 큰 사이즈로 할 영화가 있다. 상업영화하다가도 독립영화를 해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 작업을 계속 할 거다. 지금도 촬영을 마친 단편영화가 한 편 있다. <청년폭도맹진가> 끝나면 편집해서 완성할 예정이다.

한독협이나 독립영화인들을 어떻게 보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독립영화는 연출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난 독립영화인이란 인식은 없는 거 같다. 한독협과 인연을 맺은 것도 3,4년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 방식대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엔 공감한다.

한독협에 바라는 점은.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독협 10주년 체육대회랑 야유회가 있었는데 비와 와서 취소됐다. 체육대회 하면 족구도 하고, 계주 선수로 나가려고 했는데.(웃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지금처럼 잘 했으면 좋겠다. 나도 한독협이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데 많은 힘이 됐던 건 사실이다. 특히 고마웠던 건 <락큰롤>이라는 영화가 한독협이 없었으면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도 없었을 거다. 한독협에서 대안 상영을 많이 해서, 비록 단편영화지만 많은 지역을 돌면서 관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큰 도움은 안됐지만 나한테는 값진 시간들이었다.(웃음)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필름온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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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1 16:59

'독립영화배우'로 부담을 가져야 할 때

배우 서영주를 만나기 위해 한국종합예술학교로 찾아갔다.
▲ 배우 서영주를 만나기 위해 한국종합예술학교로 찾아갔다.

지금까지 김동원 감독,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등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막 독립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아직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은 젊은 독립영화인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와 한독협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 ‘매점에서 빵 먹다’ 캐스팅되어 독립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배우 서영주를 만나봤다. 서영주는 2003년부터 꾸준히 <잘돼가? 무엇이든>,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 <은하해방전선> 등 장․단편 독립영화에 출연해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또 <친절한 금자씨>, <괴물>, <미쓰 홍당무> 등 충무로영화에서도 간간히 그녀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직접 만나본 배우 서영주는 잘 웃고, 열정적인, 20대의 에너지와 고민들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좋은 질문들 해 줘서 고맙다, 나에게는 이게 인터뷰가 아니라 대화였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던 그녀에게서 발전적인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그 전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한 독립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를 가졌다. 중요한 건 ‘지금 같은 시대’에 꿈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움직인다는 게, 새삼스럽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몰라도 이것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10주년은 참 클 거다. 그리고 문득 사람들이 어떻게 날 독립영화인으로 보게 됐을까 돌아보게 됐다.

‘어떻게’에 대한 답이 나왔나.

음, 글쎄.(웃음) 요점은 꿈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독협이 계속 잘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언제 배우로 데뷔했나.

2003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또 학교에 들어왔다고 해서 신입생이 바로 연기를 한다거나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배우가 된 계기는 1학기 다니고 휴학을 했는데, 영상원 친구들에게 캐스팅이 됐다. 그 때 매점에서 빵을 먹고 있었다.(웃음)

길거리 캐스팅은 들어봤어도, 학교 매점 캐스팅은 처음이다.(웃음)

영상원 친구들의 졸업 작품을 찍으면서 배우로서의 경험을 하게 됐고, 영화들이 영화제 등에 알려지게 되니까 장편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1 ,2년이 지나고 장편 <은하해방전선>에 출연했다. 돌아보니 단편영화를 10여 편 정도 찍었더라. 연극은 올해 처음 해 봤다.(웃음)

연기를 시작해보니 어떤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배우의 직업 정신이라든가 배우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나름 얼굴이 알려졌다. 그게 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아직 ‘시작했나?’ 하는 의문을 계속 갖고 있다.

그 전에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영화배우가 되어야지’ 하는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영화는 관객으로서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럼 독립영화도 많이 접해보지 못했겠다.

그렇다. 실험영상물에는 좀 익숙했다. 스토리가 없는 영상물. 주변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부담을 느껴야 한다

그래도 2003년부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남들이 보기엔 꾸준히, 내가 보기엔 그냥 되는 대로 출연한 거다.(웃음) 별 부담 없이 ‘하고 싶으면 하고’ 이런 식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작품이 ‘좋고 싫고’가 아니라 시간이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영화를 찍었다. ‘난 독립영화를 찍어야 돼, 단편영화를 찍어야 돼’ 이런 생각을 갖고 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뭉뚱그려서 보니까 ‘저 사람은 영화를 하는 사람’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작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좀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나.

좀 더 책임감 있게 되었고 무게를 가지고 결정하게 되었다. 나름 부담도 갖게 되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더 생각 하게 되었고. 그때는 ‘배우로서’ 보다는 ‘경험’ 이었다.

맞다, 서영주 씨는 한독협이 추천한 독립영화 여배우다. 부담을 가져야할 것 같다.(웃음)

지금 정답을 말했다. ‘부담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작년 말까지 작업을 하고 올 초부터는 연극을 하면서 올해는 작업을 하나도 안했다. 작은 역할이지만 들어온 드라마도 안했다. 올해는 ‘연극을 하는 해’로 잡았다. 그렇지만 영화는 자기만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영화가 계속 움직인다니.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 오늘도 ‘오! 인디풀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이렇게 독립영화 행사에 계속 연락을 받는데 내가 예전에 빵 먹다가 우연찮게 시작한 자세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좀 더 들여다 봐야 할 거 같다. 이를테면 배우관을 정확히 갖는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모호하게 될 것 같다.

고민이 많겠다.

지금은 좀 정리해야 하는 시기 같다. 정리가 되면 좀 더 명료해 질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이게 이미지나 직관적으로는 명료한데 실제로 현실에서 맞닿는 부분이 모호하다. 없는 걸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웃음)

"지금은 좀 정리해야 하는 시기 같다. 정리가 되면 좀 더 명료해 질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


경험과 연기, 그 사이에 서서

‘독립영화 배우’라는 타이틀이 갖고 있는 정체성의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배우면 배우지, 독립영화 배우는 뭘까’ 하는 혼란을 겪지는 않나.

좋은 질문이다.(웃음) 지금껏 내가 선택을 했지만 ‘내가 정말 선택한 적이 있었나’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영화들에 출연했나 생각해 보면 ‘받아들임’이었던 것 같다. 열어놓고 있었다. 놀았다고 볼 수도 있고. 탐구가 있는 놀이. 그러다 보니 혼동을 겪기도 했지만 그 혼동을 달갑게 생각 했다. 그러나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앞으로는 ‘받아들임’은 아니지 않을까.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다른 배우들과 ‘독립영화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본적 있나.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나쁘게 보면 모호하고, 좋게 말하면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뭔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정체성의 문제다. 내가 아직 결코 열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구나 하는 걸 대화를 하다 발견한다. 많은 배우들이 하는 일반적인 고민은 가치관의 혼란은 기본이고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 차이가 뭘까.

‘배우가 돼야지’하고 시작한 배우와 나처럼 ‘경험해 봐야지’하고 시작한 배우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영화를 할 때 받아들이고, 열어놨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열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영주라는 배우가 다음번에 부담을 갖고 풀어야 할 지향점인 것 같다. 결국 말로 푼다기보다는 영화를 찍어서 결과물이나 관객의 평가를 보고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선택했나,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 것을 찾고 싶다는 말이다. 

결국 영화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동안 연기할 때는 어땠나.

연기라는 걸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영화를 했다. 그래서 내 식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랬을 때 재밌었다. 특별히 정말 ‘이건 나야’라고 했던 건 잘 기억이 안 난다. 매순간 매 역할이 나였고 소중했다. 근데 캐릭터와 교감한 거라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복잡하게 얘기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선택의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한다. 정말 교감을 하고 싶으니까. 정말 교감을 할 거 아니면 이제는 받아들이는 건 그만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배우가 ‘교감을 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하는 건 굉장한 용기다.(웃음)

그러니까 이게 인터뷰가 아니라 나한테는 대화다.(웃음) 왜냐면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있다. 근데 그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이상하게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정리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복잡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에이 까발려 버렸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독립영화, 누구냐 넌?!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면 답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맞다. 그게 답인 것 같다.(웃음) 얘길 하다 보니 너무 복잡해졌다. 내가 독립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 할 말이 있어서 이 얘기를 굳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그 질문이 반가웠던 것이 이게 비단 배우라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독립영화계 얘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독립영화 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을 거다.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 좀 더 부담을 갖고 명료해 지고 싶은 거다.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면 독립영화라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본질을 봐야 선택을 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봤을 때는 독립영화나 한독협이 현상일 뿐일 수 있다는 거다. 의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립영화, 한독협에 대한 생각들을 낯설게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독립영화가 현상이라니.

독립영화는 수 만개의 특징이 있다. 무엇이 독립영화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독립영화를 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계기가 생겨서 영화를 찍은 거고, 독립영화와 가까워진 거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난 가끔 이렇게 인터뷰를 할 때 그 순간 독립영화 배우가 된다.(웃음)

그럼 현상으로서 한국 독립영화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에서 독립영화는 작품 퀄리티로서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자본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데 한독협은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대가 붕괴되면, 진정으로 독립하게 될까.(웃음)

독립영화에 대한 회의는 없었나.

있었다. ‘충무로 가기 위해 만드는 거 아니야? 뭐가 달라?’, ‘이 사람 영화에 어떤 생명을 불어 넣은 거야?’, ‘이 영화 만든 사람의 꿈은 뭐야?’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영화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면 된 것 같은 그런 영화. 내 기준으로만 보는 건데, 편협하고 정말 나쁜 거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기운도 없는 이 현대 사회에서 더 기운 빠진다.(웃음)

그렇다면 반대로 독립영화의 매력은.

음, 진짜 짧고, 기술적으로도 정말 못 찍었고, 한마디로 영화가 ‘꼬졌는데’ 그 안에 ‘빛’이 보이는 영화가 있다. 그런 게 독립영화의 포인트가 아닐까. 지금 시대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독립영화는 존재해야 한다.

충무로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독립영화계와 차이가 있나.

출연료 말고 말인가?(웃음) 충무로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아직 많이 하지 않았다. 어, 근데 독립영화에 대해서는 쉽게 말했네.(웃음)

"한독협, 힘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
각난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힘든 게 좋아!

영화를 하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나.

힘든 게 제일 좋았다. 안 힘들면 별로였다.(웃음) 근데 생각보다 힘든 게 별로 없었다. 독립영화 장편 찍었을 때, <은하해방전선>을 처음 찍었는데, 찍을 때는 너무 맘 편하게 찍었다. 근데 찍고 나서의 책임감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꼈다. 개봉하고 나서 훨씬 많은 활동을 했다.

힘든 게 좋다니...(웃음)

<미확인 미행물체>란 작품에서 비구니로 나왔는데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11월인가, 밤새도록 옷 하나도 안 입고 폭포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 자세히 보면 너무 추워서 물을 조금씩 끼얹는 게 보인다. 근데 지금 보면 되게 기쁘다. 더 힘든 거 하고 싶다.(웃음)

그동안 출연한 작품들에 만족하나?

옛날 작품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좋다. 근데 영화를 찍을 때에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마음에 들기는커녕 내 모습이 다 이상하기만 했다. 최근에 한 영화제에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많이 상영했다. 그 영화들을 보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너무 흐뭇했다. 처음으로 그런 맘이 들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럼 배우로서의 재미를 느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나.

맞다. 사실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이 날 배우로 봤다고 해도 내 스스로는 배우가 아니었다. 내 기준으로는 아직까지도 내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정체성을 찾게 될 것 같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난 지금 그 과정에 서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미래상은.

처음 얘기하는 건데 러브 스토리 찍고 싶다. 사랑에 빠지는 역할.(웃음) 영화든 연극이든 내러티브 안에서 진짜 살고 싶다. 그런 건 변하지 않는다. ‘연기는 행동이다’라고 배웠고,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건 ‘똥배우’라고 배웠다. 그게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연기를 해 보고 싶은 이유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고, 빠지고 싶은 거다.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나 자신과 만났던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역할을 더 찾고 싶다. 그 극 안에 진짜 빠져서 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독립영화계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한독협에 대한 제언을 해달라.

힘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필름온 안효원 기자,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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