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3.26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2. 2009.02.26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3. 2009.02.09 <워낭소리> 마음의 고향, 그것뿐이다. (7)
  4. 2009.01.01 몰락의 시작인가, 부진의 고착화인가
  5. 2008.10.08 내 밥그릇과 네 밥그릇은 다르지 않다 -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농민가> 윤덕현 감독 인터뷰
2009.03.26 10:27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한독협,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개최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이주호 기자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주제로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26일 7시 명보아트홀에서 개막하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는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김경만, 2008), <잊지 않을 거야>(영, 2009), <철탑, 2008년 2월25일 박현상씨>(변해원, 2008) 등 단편 3편이 선정되었다.

이외 <워낭소리>의 고영재 PD가 제작을 맡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장편 다큐멘터리 <농민가>(윤덕현, 2008)와 기지촌의 새 이름인 아메리칸 앨리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아메리칸 앨리>(김동령, 2008)를 비롯한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 35편과 해외작 7편이 상영된다.

부대행사로는 3월 27일 금요일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6편의 영화를 연속 상영하는 심야상영회와 29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저녁 8시 30분 창고극장에서 감독들과 대화할 수 있는 <다큐로 이야기하기> 등이 준비되어 있다.

1회 관람료는 5,000원이며 상영일정을 비롯한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홈페이지(http://stunet.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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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6 09:18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13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김나라 기자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워낭소리>가 1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요즘, 국내외 관객과 평단이 열광한 아시아 각국의 독립영화를 미리 만나볼 기회가 온다.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아시아영화펀드(Asia Cinema Fund, 이하 ACF) 쇼케이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이 오는 3월 13(금)일부터 18(수)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ACF 쇼케이스에서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제작 활성화와 안정적 제작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작품 14편이 상영된다.

상영될 작품은 <똥파리>(양익준), <허수아비들의 땅>(노경태), <약탈자들>(손영성),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마리오), <샘터분식-그들도 우리처럼>(태준식), <농민가>(윤덕현), <태백 잉걸의 땅>(김영조) 등 국내 작품 7편과 <노인의 바다>(라제쉬 쉐라), <리버 피플>(허 지엔쥰), <멘탈>(소다 카즈히로), <개종자>(파누 아리), <유토피아>(왕 이런), <공성계>(지단), <우공이산>(조안나 바스케스 아롱) 등 중국, 태국, 인도, 일본 등의 아시아 각국의 독립영화 7편이다.

이번 상영작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특히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2009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프랑스 도빌영화제, 스위스 프리브룩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어 주목 받았다. 또 <허수아비들의 땅>은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베를린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 상영되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 두 작품은 오는 4월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피프메세나상, 2008년 두바이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다큐멘터리 1등상을 수상한 소다 카즈히로 감독의 <멘탈> 역시 올해 6월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은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를 가늠하고 아시아 독립영화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ACF 쇼케이스는 서울에서 열린 후 4월 21(화)일부터 26(일)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개최된다. 문의: 02-778-0366(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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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11:08

<워낭소리> 마음의 고향, 그것뿐이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영화 <워낭소리>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외국인과 한국의 도시인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그려냄으로써 정서적 감흥을 일으킨다.
▲ 영화 <워낭소리>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외국인과 한국의 도시인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그려냄으로써 정서적 감흥을 일으킨다.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사상 최초로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주말은 예매율 1위라는 기염을 토하면서 조만간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사상 최초로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사실, 조만간 2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 그 자체도 놀랍지만, 요즘처럼 한국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는 시기에, 웬만한 상업영화도 흥행에 참패하고 마는데 독립영화가 이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워낭소리>가 이처럼 큰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소재적 차원에서 먼저 접근해야 할 것 같다. 30년이나 인생의 동반자였던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통해 인생이라는 성찰의 문제를 이끌어내고,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아냄으로서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 소외된 듯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소의 죽음을 대하면서 막막한 슬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생과 삶, 자연 등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워낭소리>의 영화적 완성도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내가 놀란 것은 감독의 연출력이었다. 이 영화에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없다. 주인공인 할아버지도 말씀이 거의 없으시다. 그렇다고 소가 말을 하겠는가? 단지 할아버지에 대한 불평을 늘여놓으시는 할머니의 독백만이 영화 속에 살아있을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를 별다른 설명 없이 화면만으로 이끌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거나 불명확하지도 않다. 이런 솜씨는 아무나 가진 게 아니다 장담컨대 이충렬 감독은 탄탄한 영화적 실력을 지니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 내장되어 있는 정서적 울림에 깊이 동감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자마자 어느 정도 흥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지금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적절하게 건드리게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하게’ 건드린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소를 지극히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40살이나 된 소는 죽을 나이이고 할아버지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둘 다 인생의 황혼기인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는 아직도 쇠죽을 끓여 소에게 먹이고, 소 달구지를 타고 읍내에 나가고, 소꼴을 베기 위해 농약을 치지 않는다.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할 때도 소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 풍경은 지금 현재 농촌의 풍경이 아니라 몇 십 년 전 과거의 농촌의 모습이다. 요즘 농촌에서는 기계화되어 이런 일소를 기르지 않는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일소를 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굳이, 이제는 사라진 풍경을 영화 속에, 그것도 사계절의 순환 속에 녹여낸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참으로 편안하게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왜냐고? 머리 아프게 만드는 현실적 문제가 이 영화에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라진 마음속의 풍경이 영화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부모님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생각하면서 편안히 영화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보고 싶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이 영화에 그려진 것과 비슷한 것이다. 마치 <북극의 나누크>를 만들었던 로버트 플래허티나, 과거의 중국을 빨간 색의 풍광 속에 담아냈던 초기의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라고 할까.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방법말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관객들의 호기심도 채워주고, 새로운 구경거리도 제공한다. <워낭소리>는 외국인이, 그리고 한국의 도시인들이 보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묘사가 없다. 미국 소 수입을 반대하는 집회장 앞으로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갈 때 현실을 환기하기보다는 웃음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 포근한 마음속 고향의 느낌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관객들이 쉽게 영화 속에 빠져들도록 감독은 극영화의 편집 체계를 사용하고, 사계절의 순환 속에 사건을 재배치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온 가족이 모두 앉아 편하게 볼 수 있는, 프라임 시간대의 TV 다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토록 평안한 다큐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고영재 PD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프로듀서한 <우리 학교>, <농민가>, <워낭소리> 사이의 관계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다가갔지만, <우리 학교>는 조총련의 현실적 문제에, <농민가>는 한미 FTA와 몰락하는 농민의 현실적 문제에 깊이 다가간 반면 <워낭소리>는 현실적 고민이 거의 증발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로 두 편의 영화를 프로듀싱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정반대적인 입장을 담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워낭소리>와 <농민가>를 같은 사람이 프로듀싱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지금, 한독협 사무총장이 프로듀싱한, 매우 비정치적인 성향의 영화와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독립 다큐가 워낙 큰 흥행을 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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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16:38

몰락의 시작인가, 부진의 고착화인가

[2008 장르결산 - ③]영화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포함하여 고작 8편에 불과하다.

▲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포함하여 고작 8편에 불과하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2008년 한국영화를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부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08년 한국영화계의 어떤 수치를 보더라도 부진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 없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개봉한 영화는 105편 내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올해 초 50편 내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작편수만 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작품이 개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개봉된 영화 가운데 2005년이나 2006년, 2007년에 제작된 영화, 일명 창고영화가 적지 않는 수를 차지하고 있다. 활황기에 제작했지만 개봉 시기를 놓친 작품을 뒤늦게 개봉한 것이다(물론 창고영화 대부분이 매서운 시장의 버림을 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영화 점유율이 올라갈 수 없다. 역시 영진위의 통계에 의하면, 올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영화 점유율은 41.6%인데, 지난 해 같은 기간의 52.3%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화관객 수도 줄었다.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관객 수는 1억 3,490만 명인데, 이는 한창 관객이 늘던 2006년보다 1,500만 명이나 줄어든 수치이다. 개봉편수는 비슷한데, 한국영화 점유율이 줄고, 전체 관객이 줄어들었으니 영화의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영화가 고작 8편이라고 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 <강철중:공공의 적 1-1>, <고死>, <영화는 영화다>, <아내가 결혼했다>, <미인도>, <과속스캔들> 등이 자랑스런(!) 목록이다. 이와 반대로 전국 관객 10만 명도 모으지 못한 영화도 12편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105편 가운데 단 8편이 수익을 냈으니 과연 누가 영화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정말로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외형적인 수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한국영화는 2006년을 정점으로 해서 서서히 내려오는 중이다.

외연적인 상황을 떠나 내부를 들여다봐도 실속이 없다. 올해 한국영화는 세계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상도 못했고 경쟁작으로 출품하지도 못했다. 수출은 거의 막히다시피해서 충무로에는 돈줄이 말랐다. 더 큰 문제는 쉽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부가 시장의 소멸을 들 수 있다. 지금 한국영화가 살아나려면, 이미 숱하게 주장한 것처럼, 부가 시장이 살아나야 한다. 한국의 영화 시장은 부가 시장이 소멸하면서 수익의 90% 이상을 극장에서 뽑아야 하는, 매우 불안정한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 세계 영화최강국 미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국내 극장 시장보다 두 배 이상 큰 국내 부가 시장, 그리고 국내 전체 시장보다 더 큰 해외 시장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은 국내 극장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니 홍보비가 과도하게 투입되면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현 위기를 타파할 근본적인 방법은 단 하나다.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서 합법적인 제작 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윈도우를 개발해야 한다. 이것 없이 한국영화가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이와 더불어 해외 시장을 다시 개발해야 하고, 지나치게 상승한 제작비를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100억 원짜리 영화를 소화하기에는 한국영화 시장은 아직 좁다. 부가 시장과 해외 시장을 모두 살린 다음 파이를 키워야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기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의 영화가 꽤나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도 수익을 내기는커녕 손해를 본 것은 지나치게 고비용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암울한 산업 이야기만 나열한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논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게 되었다. 이제 간단하게라도 2008년 한국영화의 경향과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논할 것은 팩션영화의 강세이다. <님은 먼곳에>, <신기전>, <고고70>, <모던 보이>, <라듸오데이즈> <미인도> 등 많은 영화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었다. 흥미롭게도 남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주에까지 상상력을 넓혀갔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팩션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특정 시기와 특정 지역을 불러오는가의 문제, 즉 역사 해석의 문제이다. 그런데 <님은 먼곳에>를 뺀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부족했다. 2008년에 개봉된 많은 팩션영화에서 왜 역사를 영화의 소재로 다루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해석을 통해 관객과 대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논할 경향은 다양한 에로티시즘의 등장이다. 신윤복을 여성으로 해석해 그의 사랑을 그린 <미인도>, 가부장적 구조가 강한 한국사회에 반기를 든 <아내가 결혼했다>,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트를 뒤엎어버린 <미쓰 홍당무>,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과감한 동성애를 다룬 <쌍화점> 등 다양한 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더라도 매우 다양한 경향의 에로티시즘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비단 볼거리로서의 에로티시즘에 그친 것이 아니라 성적 정체성과 가부장제의 문제점까지 파고드는 것이라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물론 모든 영화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독립영화의 경향을 살펴보면, 2008년의 독립영화 역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독협이 10주년을 맞았지만, 왕성하던 창작의 에너지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고, 뜨거운 열기를 지닌, 새로운 감독들은 쉽게 등장하지 않고 있다. 영화제에 출품된 수많은 단편들도 제한된 상상력 속에서만 진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진지한 울림이 있는 <농민가>,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워낭소리>,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짚어본 <똥파리> 등의 영화는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혹자는 한국영화가 위기 아닌 적이 있었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지금 한국영화계는 상시적으로 반복되었던 위기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돈이 없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볼 것이 뻔히 보여 투자를 하지 않는 지금의 구조는 심각한 악순환을 몰고 온다. 때문에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내년의 영화계는 올해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영화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앞장서서 해야 할 영진위를 보면,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타는 갈증처럼 한없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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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18:31

내 밥그릇과 네 밥그릇은 다르지 않다 -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농민가> 윤덕현 감독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의 윤덕현 감독.
▲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의 윤덕현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는 2007년 봄부터 2008년 봄까지 경남 사천시 농민회 회원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2006년 말, 한미FTA 반대집회를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 윤덕현 감독은 시위 현장에서 사천시 농민회의 여성 회원 김윤진 씨를 만나게 되고, 이후 사천으로 내려가 빈집을 얻어 생활하면서 농민회 회원들의 활동을 영상에 담았다.

<농민가>는 5일 밤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첫 상영회를 가졌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와 뒤풀이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 날 정오, 해운대 해변에서 감독과 만나 전날 밤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 년간 사천에서 집을 얻어 혼자 살았다고 들었다. 객지에서 혼자 살면서, 그것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들이대면서 영화를 찍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이집 저집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거부감도 많았다.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그분들의 진실된 일상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도 반 농군이 되어 일했다. 농사짓고, 중참 먹으며 소주 한 잔 하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마음을 여시는 것 같았다.

도중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려 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많이 외로웠고, 몸도 힘이 들었다. 특히 겨울밤에 일을 마치고 혼자 있을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다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이 영화를 다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농민회 분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비롯하여 마을의 이런저런 모임에 불러 함께 어울리게 해 주시고 영화 찍는 데 어려운 것 없냐, 일일이 살펴 주셨다. 이 영화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정말 미미하다. 이것은 농민 분들이 찍은 농민의 이야기다.

농촌이 어렵다는 얘기는 늘 있어 왔던 이야기라, 농촌이 정말 이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메시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좋은 영상, 아름다운 화면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사이에 갈등은 없었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도입 부분에는 농사짓는 장면을 많이 담았고, 나중에 시위 장면과 교차하게 했다. 물론 영상과 메시지 두 가지를 다 담고 싶은 욕심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상당히 고민한 부분이다. 최대한 나의 관점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나 역시 정치적인 사람이고, 이명박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싶었다. 하지만 투쟁 영상이라는 건 뻔하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쟁을 연결시키는 흐름을 가져가자는 생각이었다. 뭐랄까, 업그레이드된 투쟁 영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게 고민이었다.

어린 소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물론 장면만으로는 아름답지만 이게 어떤 맥락일까, 영상에 대한 욕심이 자칫 영화 전체의 메시지와 어긋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면 장면이 전략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인물들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하승원 씨는 축산을 하시는 분이라 당연히 미국 쇠고기 문제와 결부가 된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다 보면 하승원 씨가 소를 먹이면서 소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도살이라는 과정은 피할 수 없겠지만, 키우는 과정에서의 교감이 바로 미국산 쇠고기와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소와 이야기하며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관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농민 분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작물들은 키우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작물과의 교감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우연히 찍게 된 장면이지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친근감이나 정이란 이런 게 아닐까, 그게 대량 생산된 수입 농작물과 우리 농부들이 지은 농작물의 차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잘 몰고 가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아주 격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담담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었다. 영화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격앙된 감정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냥 보여줘도 관객이 알 거라 생각했다. 인물들이 우는 장면들이 많았다.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평생 농사를 해 왔고, 농사를 좋아해서 농촌에 남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에 의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데 어떻게 억울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카메라 들이대면 영화 아닌 게 없다. 하지만 감정을 몰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몰고 가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적 감정의 정점에 강기갑 의원의 당선 장면이 있었다. 의도된 구성인가?

의원하나 뽑으면 승리한 것인가, 그 승리가 영화의 결말이 될 수 있는가? 정치도 일상이고 참여도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담은 장면이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일상은 다른 것이다. 정치 활동과 농민 활동은 괴리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일상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괴리되어 보이는 것들 간의 연관성이다.

선거 장면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질문하자면, 대통령 선거 장면에서 농민회원이 “농민을 생각하는 후보를 찍자”고 하자 한 아주머니가 “농민만 생각하면 되겠나, 나라 전체를 생각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제 극장 안에는 외국인 관객들도 많았다.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밥그릇 챙기기로만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우선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FTA도 이익이 있다. 경제 발전, 국익, 그것이 나를 잘 살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말에는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다 같이 잘 살자, 이런 말은 사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다.

농민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밥그릇 챙기기일 수 있다. 스크린쿼터는 어땠나? 똑같은 비판이 있었다. 그렇다면 밥그릇은 챙기면 안 되는 것인가?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이기적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과 나를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개의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의 밥그릇과 너의 밥그릇은 한 밥상에 놓여 있다. 하나의 싸움은 하나의 싸움이 아니다. 연대의 싸움이고, 너를 위한 싸움이다.

먹을거리가 수입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먹을거리가 내 통제에서 벗어난 곳에서 생산되는 데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농민들이 하는 투쟁은 그들 밥그릇 챙기기이기도 하지만 내 먹을거리를 내 통제 범위에 두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싸움을 나쁘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내 밥그릇과 너의 밥그릇은 다른 게 아니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여태껏 투쟁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라도 투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공화국이라는 말의 한자를 풀어보면 한솥밥 식구,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내가 남보다 많이 먹겠다. 이건 한솥밥이 아니다. 공화국은 한 솥밥이다. 누가 많이 먹으면 누군가는 적게 먹어야 한다.

이익은 당연히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식의 공화국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논리는 남의 이익을 나의 이익으로 취하겠다는 것이다. 정당한 경쟁, 룰, 좋은 말이긴 한데, 자기 제어가 안 되고 있지 않나. 이윤을 향한 경쟁은 암세포처럼, 공생해야할 전체 속에서 자신의 몸만 확장하다가 결국 자신도 공동체도 다 죽이고 만다.

영화 내용 중에, 농사지을 여건이 안 되면 농사를 접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것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지 않은가?

합리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다면, 농민들이 자기 농사를 짓다가 답이 안 나오면 접어야 한다. 농업이 수행하는 기능은 산업 그 이상이기 때문에 이윤논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공공논리에 의해 지켜줘야 한다는 합의는 없다. 합리는 싸면 수입하고 소비한다는 합의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궁극적인 합리는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통념상의 합리는 돈 안 되면 농사 접는 것이다. 이게 합리지만 정말 합리적인 것인가? 때리면 맞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합리인가? 합리 안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누구를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 이게 합리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장에 앉아서 준비된 자료를 검토하며 서류에 도장 찍는 것은 합리이고, 무지렁이 땅꾼들이 시청 앞에 모여 깃발을 흔드는 것은 합리가 아닌가? 농사를 접을 상황이라면 접는 것이 정황상 맞지만, 농사가 개인이 돈 버는 이상의 의미가 있고, 그것이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시대의 중심이 변방으로 밀려나가는 이런 현상이 내 삶에서 똑같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이 합리라고 생각한다.

 



* 2008-10-07 오후 3:10:12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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