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2 09:34

야생마 이상훈, 이제는 뜨거운 기타리스트

▲ "특별한 꿈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몇 해 전, 야구계를 주름 잡았던 LG트윈스의 Closer, 야생마 이상훈이 홀연 은퇴를 했다. 하지만 이걸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는 듯 곧이어 그가 야구공 대신 기타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밴드 ‘What’이 결성은 놀람의 결정타였다.

나와 함께 A-frica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베이시스트 장민규가 What의 멤버가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시나위 출신의 드러머 신동현이 What의 안방마님으로 들어앉았다. What은 결성부터가 이슈였다. 내가 A-firca에서 활동했을 때, 이상훈이 우리밴드의 세컨 기타로 참여한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A-firca가 LA Guns의 내한공연의 오프닝 공연을 했을 때도 이상훈은 A-frica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그때 느꼈던 것이 ‘이제는 야구인 이상훈이 아닌, 음악인 이상훈이 되었구나.’였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Closer 47시절만큼이나 뜨거웠다. 프로야구선수 출신 이상훈, 시나위 출신 신동현 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미 그들은 오직 “What”이라는 이름으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지난 수식어들을 떨쳐버린 “What”과 그 중심에 서있는 뮤지션 이상훈을 만나기 위해 홍대에 위치한 연습실을 찾았다.


요즘 밴드활동에 미용실 사업에, 거기다가 이상훈의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인터뷰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닌가?

(이상훈 / 기타&보컬 / 기타) 요즘은 멤버들과 함께 곡 작업에 매진중이다. 대신 공연을 많이 줄였다. 얼마 전에 부산에서 공연을 하고 왔는데, 그것은 그 전부터 잡혀있던 거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일부러 공연을 잡아서 하고 있지는 않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했던 클럽공연도 줄였다.

야구선수 이상훈의 밴드가 아닌, 록 밴드 What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간단히 소개를 해 달라.

(이상훈) 뭐 그냥 록 밴드다.(웃음) 다른 밴드들처럼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록밴드이다. 앨범은 EP 1장과 정규앨범 1집, 2집 이렇게 총 3장을 발매했다.

이상훈은 야구 현역시절부터 수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뮤지션 이상훈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 처음에 어떻게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가?

(이상훈) 내가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 팀에서 이탈을 해서 방황을 했는데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도 해봤고, 나이트클럽에서도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나와 함께 먹고 자고 하는 웨이터가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연주는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와~ 이게 뭐지?’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야구만이 이상훈의 전부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가?

(이상훈) 물론이다. 그전에도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하지만 악기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기타연주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혼자 책을 보며 기타연습을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정식으로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밴드를 하게 되면서 다른 팀들의 연주를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있는가?

(이상훈) 존경하는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은 많다. 슬래쉬(건스 앤 로지즈), 잭 와일드(오지 오스번 밴드), 덕 앨드리치(배드 문 라이징)를 좋아한다. 지미 헨드릭스도 좋아하지만 슬래쉬, 잭 와일드가 더 와 닿는다.

What은 어떻게 결성되었는가?

(이상훈) 드러머 신동현이 야구를 무척 좋아해서 그전부터 나와 알고 지내고 있었다. 사실 그때부터 What이라는 밴드를 했었다. 2002년에 시즌 끝나고 팬 미팅할 때도 동현이와 함께 밴드를 했었다.

그런데 언론에는 What의 존재가 2004년도 즈음 공개가 되었는데.

(이상훈) 2004년에는 우리가 단지 앨범을 발매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앨범을 홍보하려고 언론에 알린 것은 아닌데,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화시켰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홍보를 안 한다는 걸. (웃음) 우리는 라이브가 홍보다.

초창기 What의 음악적 기반은 어떻게 잡았는가?

(이상훈) 우리가 초도를 잡을 때, 외국의 어떤 밴드를 모델로 잡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음악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다고 해서 그런 음악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냥 우리에게 어울리는 음악,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What의 앨범 3장에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앨범을 내면서 점점 더 ‘우리화’되어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좀 민감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이상훈도 물론 기타는 20대 초반부터 잡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평생 음악만을 하던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드러머 신동현은 Zero-G, 시나위 등에서 활동할 때부터 나에게 영웅과 같았던 뮤지션이다. 이렇게 국내에서 내로라는 최고의 뮤지션들과 음악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는가?

(이상훈) 부담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봤다.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평생 음악만 하던 동현이에게 ‘나와 같이 밴드를 하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현이에게 ‘내가 너하고 밴드를 같이 해도 되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그때 동현이가 ‘음악, 뭐 같이 하면 되지’라고 대답을 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신동현의 입장도 많이 고려했었다. 평생 음악만 하던 신동현이 야구선수 이상훈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동현이 주변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What이라는 밴드가 존재하고 있는 자체가 그러한 편견을 지워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추구하는 음악적 욕심이 있어서 시작을 한 것 이었나? 하드록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든 것인가?

(이상훈) 아니다. 하드록이든, 팝메탈, 심지어 데스메탈까지 어떻게든 갖다 붙이면 장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드록이라고 규정짓지는 않고 싶다. 물론 그렇게 불러주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단지 밴드 What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 물으면 그냥 ‘밴드 What이 하는 음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에 서있는 뮤지션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면 대중들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은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다보면 우리를 좋아하는 팬들이 생기고,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곡 작업을 할 때는 누가 주도적으로 하는가? 작곡에 참여를 하기도 하는가?

(이상훈) 저작권 등록할 때 이름 올리는 것은 수익 때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웃음) 사실 저작권이라는 규제가 없으면 그냥 What의 이름으로 올리고 싶다. 곡 작업을 할 때도 특별히 작곡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냥 기타를 치다가 좋은 리프가 나오면 멤버들끼리 모여서 거기에다 살을 붙이고, 그 다음 MR을 제작한다.

멜로디 라인은 본인이 직접 만드는가?

(이상훈) 내가 보컬이다 보니 MR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그냥 들으면서 흥얼거린다. 그러면서 가사를 적는다. 그리고 일단 녹음을 하는데 입에 달라붙는 가사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아닌 경우에는 녹음 도중이라도 가사를 바꿔버린다. 그러다보면 완성이 된다. (웃음) 완벽하게 틀을 잡아놓고 녹음하지는 않는다. 물론 80%정도는 기반을 잡아놓지만, 마지막 보컬녹음을 할 때는 변수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조금씩 수정을 하면서 곡을 완성시킨다.

삶에 있어 음악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미용 사업에 야구인으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단순히 취미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상훈) 어떤 사람이든지 여길 가면 이것을 열심히 해야 하고, 저길 가면 저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것을 하는데 저걸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뮤지션으로 불리고 싶다, 사업가로 불리고 싶다, 프로야구선수로 불리고 싶다’ 이런 것이 없다. 물론 사람들은 나를 뮤지션으로도 얘기를 안 하고, 사업가로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이상훈, 저 사람 야구선수였잖아. LG트윈스. 왼손잡이’라 부른다.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한데 난들 어떡하겠는가. 단지 사업을 할 때는 비즈니스를 열심히 하는 것이고, 기타를 치거나 무대 위에 있을 때는 뮤지션의 마인드로 살고 싶다.

결성 당시부터 매스컴으로부터의 관심을 받았다. 야구선수라는 꼬리표가 음악을 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는가? 공연장을 찾아온 팬이 What의 음악보다 LG트윈스의 팬이었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상훈)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웃음) 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데 내가 어떡하겠는가. 날더러 야구선수라고 하는데 그 앞에서 ‘나는 지금 뮤지션이다.’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오히려 나에 대한 기억을 가져준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반대로 지금의 나를 보며 ‘뮤지션이 다 되었다’, ‘사업가가 다 됐네.’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의 정현규는 이상훈을 일컬어 화려한 테크니션은 아니지만, 뜨거운 플레이를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본인은 스스로 어떤 기타리스트, 어떤 보컬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상훈) (웃음) 아휴~ 내가 무슨 기타리스트인가. 그리고 나는 보컬도 아니다. 그냥 기타가 좋아서 치는 거다. 노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우리 팀에서는 내가 노래를 가장 잘한다. (웃음) 우리 팀이 하는 음악에 내 목소리가 가장 어울려서 보컬을 한 것이지 특별한 것은 없다. 솔직히 노래연습은 합주할 때나 하고, 평소에는 기타연습에 더 비중을 둔다.

방송출연을 많이 하지 않던데, What의 공연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행사공연도 많이 하는 편인가?

(이상훈) 방송섭외는 안 들어오더라. (웃음) 그러나 방송이든 뭐든 라이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공연을 하는 편이다. 행사공연 또한 잘 안 들어온다. 홍보를 안 해서. (웃음) 우리는 클럽공연을 주로 한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광주, 청주 등 각 지역 클럽은 모두 다녔다. 사실 이러한 라이브무대가 홍보가 아닌가.

팬 층은 주로 어떠한가?

(이상훈) 팬들이 없다. (웃음) 3명이랑 공연을 한 적도 있고, 30명과도 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은 다른 밴드도 비슷하지 않은가.

뮤지션 이상훈으로 꿈이 있다면?

(이상훈) 특별한 것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새로운 앨범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면 더욱 고마울 뿐이다. 사람들이 우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처음에 내뱉었던 말을 지켜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록 마니아들에게 어떠한 밴드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상훈) 그냥 변질되지 않고 열심히 꾸준하게 음악을 하는 밴드,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환갑이 넘어서도 외국의 훌륭한 밴드들처럼 앨범을 내고, 순회공연을 다니며 그렇게 살고 싶다. 사실 다른 밴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환경이 열악하니깐 그렇게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현재 곡 작업을 하고 있고 녹음도 진행 중이라 7~8월이면 새 앨범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기대를 해도 좋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아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자신의 인생에서 전설의 반열에 올랐던 사람이지만 뮤지션 이상훈의 열정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음악이라는 제 2의 삶, 나아가 사업가의 삶 앞에서 여전히 청춘인 이상훈, 그의 삶 자체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기타리스트’ 이상훈이 각인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온 록의 하이웨이의 톨게이트가 저만치 보인다. 록의 불모지에서 20여 년간 ‘Metal Will Never Die’를 외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밴드, 살아있는 한국 헤비메탈의 신화, 밴드계의 큰형님. 어떤 수많은 수식어를 붙여도 그들을 표현하는 데 모자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만날 밴드는 내가 음악을 하면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블랙홀’이다. 한국 헤비메탈의 토대를 구축한 밴드 ‘블랙홀’, 하이웨이 스타의 대미라면 이 정도쯤 돼야 하지 않겠나.

[관련기사]
서울 가려 했으면 진작에 갔다
우리가 느낀 밴드란 이런 것이다
음악적 변화에 대한 강박은 없다
우리는 가요 밴드다, 그게 나쁜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