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2 10:54

노숙인이 파는 잡지, 빅이슈를 아십니까?

빅이슈 한국판 준비하는 도서평론가 최준영
                                                                                                                                         안태호 기자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의 한국판을 준비하는 도서평론가 최준영 씨를 만났다.
▲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의 한국판을 준비하는 도서평론가 최준영 씨를 만났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왜 우리나라는 노숙인들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려고 애들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개인의 인생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빈곤은 사회적 문제라고, 노숙인을 포함한 빈곤계층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한’ 결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술기운에 휩쓸린 혀는 애석하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숙인 문제는 과연 개인이 짊어져야 할 멍에인가? 여기 노숙인 문제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직시하고 그 해결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의 한국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한국판 추진 과정의 위원장 격인 도서평론가 최준영 씨를 인사동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를 본 따 설립된 성 프란시스 대학에서 노숙인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시작한 이래 4년 동안 쉬지 않고 노숙인들과 작문교육을 진행해 왔다. 지금은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시가 운영하는 ‘비전트레이닝 센터’ 등 네 곳에 출강한다. 노숙인들과 격의 없이 강의하고 토론하며 강의 뒤엔 함께 생맥주를 들이키며 어울린 경험이 빅이슈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노숙인들은 인문학교육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와 자존감을 회복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자활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간 성프란시스 대학이 4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신용불량이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숙인들이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생각하던 와중에 빅이슈를 만났고 한국어판 발간을 추진하게 됐다. 노숙인들에게 스스로 일을 한다는 자긍심과 동기를 부여해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빅이슈는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영국에서 만들어진 주간지다. 1991년 창간된 이 잡지는 잡지의 판매 권한을 노숙인에게만 제공하는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노숙인들이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주로 다루는 이 잡지에는 데이비드 베컴, 비욘세, 케빈 스페이시, 폴 메카트니 같은 유명인들이 발행취지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무료 표지모델로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빅이슈는 17년 역사를 통해 영국에서만 주간발행부수가 16만부에 달하는 유력지로 성장했으며 5천여명의 노숙인들이 자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남아공 등 세계 28개국에서 발행되어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일부러 따라가 왜 잡지를 샀느냐고 물었더니, ‘옛날에는 저분이 저 자리에 쭈그려 앉아
구걸을 했는데, 지금은 다리가 불편한데도 당당하게 서서 잡지를 판매하고 있잖아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잡지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의견을 정확하게 밝혀준 겁니다.”
(사진출처 : 빅이슈 한국판 준비모임, http://cafe.daum.net/2bi
)

최준영 씨는 작년 초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영국을 다녀왔다. 빅이슈 운영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확인한 현장은 빅이슈 한국판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어줬다. 우선 조직부터가 활기에 넘쳤다. “젊고 조직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급여수준은 일반 기업의 7,80%밖에 안 되지만 빅이슈 출신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덕에 매우 각광받는 직장이라더군요.”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빅이슈가 갖는 의미와 힘을 직접 체험했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벤더(판매원)들은 짧은 입문교육을 받고 1주일 정도의 시범판매 기간을 갖는다. 최준영 씨는 그곳에서 목발을 짚은 채 빅이슈를 판매하는 노숙인에게 잡지를 구매한 한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이 한 말은 그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부러 따라가 왜 잡지를 샀느냐고 물었더니, ‘옛날에는 저분이 저 자리에 쭈그려 앉아 구걸을 했는데, 지금은 다리가 불편한데도 당당하게 서서 잡지를 판매하고 있잖아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잡지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의견을 정확하게 밝혀준 겁니다.” 실제로 영국의 벤더들이 잡지판매시 반드시 지참하는 등록증에는 ‘Working, Not Begging’(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다)라는 말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있는 잡지도 다 문을 닫고 망해가는 판에 새로 잡지를 만드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숱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좋은 취지다, 일단 만들고 나면 기꺼이 도와주겠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당장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해도 실제로 잡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그가 한겨레 <왜냐면>에 기고한 이후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글에서 빈곤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빈곤’을 아쉬워했다. 글이 나간 후, 몇몇의 대학생들이 직접 연락을 해와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매주 회의를 진행하며 일이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매체들에서도 관심을 갖고 조금씩이지만 보도가 되기도 했다. 몇몇 재단이나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얼마 전에는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을 열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3, 4개의 약속을 잡고 창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이다. 만나는 사람들도 시민단체 활동가나 언론종사자에서부터 각종 재단이나 기업 관계자는 물론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까지 폭이 매우 넓다. 빅이슈와 노숙인,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일에서부터 창간을 위한 재원마련과 길거리 출판물 판매 금지라는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즐비하다.

조니 뎁, 데이비드 베컴 등 유명인사들이 모델로 등장한 빅이슈의 표지
(사진출처 : 빅이슈 한국판 준비모임, http://cafe.daum.net/2bi)
 

그는 무엇보다 아쉬운 것이 ‘사람’이라고 한다. 창간을 위해 혼자 뛰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준비모임을 함께 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역시 온전히 창간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사람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창간 때까지 함께 기획서를 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진행할 사람이 당장 2, 3명은 필요하다. 창간 무렵이 되면 편집장과 편집기자, 취재기자 등이 필요해질 것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기의 일 또는 전망으로 생각하고 함께할 이들이 절실하단 얘기다. 그는 매주 수요일 신촌 민들레영토에서 진행되는 준비모임회의는 언제나 열려있다고 귀띔한다. 누구든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할 이들이 참여해도 좋다는 뜻이다.

빅이슈의 취지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 그가 내민 브로셔 한 장에는 빅이슈 한국판 창간의 뜻이 오롯이 담겨져 있는 문장이 알알히 박혀있다.

추위에 움츠러든 가슴을 펴주는 ‘위안’같은 잡지, 차갑게 식은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줄 ‘연탄불’같은 잡지, 갈수록 혼탁해지는 우리네 정신의 어깨를 때리는 ‘죽비’같은 잡지, 답답함과 갈증을 날려주는 ‘단비’같은 잡지, 그러나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더불어숲’같은 잡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서로에게 건네는 반가운 ‘인사’같은 잡지, 그런 잡지가 바로 '빅이슈(한국판)이다.

잡지창간은 준비호 등을 시험적으로 발간한 후 올해 10월경으로 예정하고 있다. 올해 본격적인 창간을 앞둔 만큼, 연예인이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명사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포함해 각종 이벤트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돌아오는 가을에는 거리 곳곳에서 노숙인들의 잡지 판매 모습을 확인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엄동설한을 종이박스 몇 개로 버텨내는 이들의 고달픔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을까. 사회적 빈곤에 대한 시선이 한 뼘이라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우선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라 우겨댔던 후배를 만나 빅이슈 한국판을 우격다짐으로라도 손에 쥐어줘야겠다.

 

빅이슈 한국판 창간준비모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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