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9.04.22 야생마 이상훈, 이제는 뜨거운 기타리스트
  2. 2009.04.14 기타 치는 도깨비 김광석
  3. 2009.04.01 우리는 가요 밴드다, 그게 나쁜가?
  4. 2009.03.06 퓨전국악의 새로운 가능성 (4)
  5. 2009.02.24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연기
  6. 2009.02.19 형평성 있는 대중음악 축제
  7. 2009.02.05 서정과 서사 아우르는 호소력 있는 여가수
  8. 2009.01.11 꽃다지가 억울한 까닭 (3)
  9. 2009.01.06 부활에서 중흥으로
  10. 2008.12.10 내 인생의 음악과 함께하는 송년모임
2009.04.22 09:34

야생마 이상훈, 이제는 뜨거운 기타리스트

▲ "특별한 꿈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몇 해 전, 야구계를 주름 잡았던 LG트윈스의 Closer, 야생마 이상훈이 홀연 은퇴를 했다. 하지만 이걸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는 듯 곧이어 그가 야구공 대신 기타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밴드 ‘What’이 결성은 놀람의 결정타였다.

나와 함께 A-frica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베이시스트 장민규가 What의 멤버가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시나위 출신의 드러머 신동현이 What의 안방마님으로 들어앉았다. What은 결성부터가 이슈였다. 내가 A-firca에서 활동했을 때, 이상훈이 우리밴드의 세컨 기타로 참여한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A-firca가 LA Guns의 내한공연의 오프닝 공연을 했을 때도 이상훈은 A-frica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그때 느꼈던 것이 ‘이제는 야구인 이상훈이 아닌, 음악인 이상훈이 되었구나.’였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Closer 47시절만큼이나 뜨거웠다. 프로야구선수 출신 이상훈, 시나위 출신 신동현 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미 그들은 오직 “What”이라는 이름으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지난 수식어들을 떨쳐버린 “What”과 그 중심에 서있는 뮤지션 이상훈을 만나기 위해 홍대에 위치한 연습실을 찾았다.


요즘 밴드활동에 미용실 사업에, 거기다가 이상훈의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인터뷰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닌가?

(이상훈 / 기타&보컬 / 기타) 요즘은 멤버들과 함께 곡 작업에 매진중이다. 대신 공연을 많이 줄였다. 얼마 전에 부산에서 공연을 하고 왔는데, 그것은 그 전부터 잡혀있던 거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일부러 공연을 잡아서 하고 있지는 않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했던 클럽공연도 줄였다.

야구선수 이상훈의 밴드가 아닌, 록 밴드 What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간단히 소개를 해 달라.

(이상훈) 뭐 그냥 록 밴드다.(웃음) 다른 밴드들처럼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록밴드이다. 앨범은 EP 1장과 정규앨범 1집, 2집 이렇게 총 3장을 발매했다.

이상훈은 야구 현역시절부터 수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뮤지션 이상훈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 처음에 어떻게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가?

(이상훈) 내가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 팀에서 이탈을 해서 방황을 했는데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도 해봤고, 나이트클럽에서도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나와 함께 먹고 자고 하는 웨이터가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연주는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와~ 이게 뭐지?’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야구만이 이상훈의 전부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가?

(이상훈) 물론이다. 그전에도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하지만 악기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기타연주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혼자 책을 보며 기타연습을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정식으로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밴드를 하게 되면서 다른 팀들의 연주를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있는가?

(이상훈) 존경하는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은 많다. 슬래쉬(건스 앤 로지즈), 잭 와일드(오지 오스번 밴드), 덕 앨드리치(배드 문 라이징)를 좋아한다. 지미 헨드릭스도 좋아하지만 슬래쉬, 잭 와일드가 더 와 닿는다.

What은 어떻게 결성되었는가?

(이상훈) 드러머 신동현이 야구를 무척 좋아해서 그전부터 나와 알고 지내고 있었다. 사실 그때부터 What이라는 밴드를 했었다. 2002년에 시즌 끝나고 팬 미팅할 때도 동현이와 함께 밴드를 했었다.

그런데 언론에는 What의 존재가 2004년도 즈음 공개가 되었는데.

(이상훈) 2004년에는 우리가 단지 앨범을 발매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앨범을 홍보하려고 언론에 알린 것은 아닌데,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화시켰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홍보를 안 한다는 걸. (웃음) 우리는 라이브가 홍보다.

초창기 What의 음악적 기반은 어떻게 잡았는가?

(이상훈) 우리가 초도를 잡을 때, 외국의 어떤 밴드를 모델로 잡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음악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다고 해서 그런 음악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냥 우리에게 어울리는 음악,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What의 앨범 3장에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앨범을 내면서 점점 더 ‘우리화’되어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좀 민감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이상훈도 물론 기타는 20대 초반부터 잡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평생 음악만을 하던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드러머 신동현은 Zero-G, 시나위 등에서 활동할 때부터 나에게 영웅과 같았던 뮤지션이다. 이렇게 국내에서 내로라는 최고의 뮤지션들과 음악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는가?

(이상훈) 부담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봤다.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평생 음악만 하던 동현이에게 ‘나와 같이 밴드를 하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현이에게 ‘내가 너하고 밴드를 같이 해도 되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그때 동현이가 ‘음악, 뭐 같이 하면 되지’라고 대답을 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신동현의 입장도 많이 고려했었다. 평생 음악만 하던 신동현이 야구선수 이상훈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동현이 주변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What이라는 밴드가 존재하고 있는 자체가 그러한 편견을 지워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추구하는 음악적 욕심이 있어서 시작을 한 것 이었나? 하드록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든 것인가?

(이상훈) 아니다. 하드록이든, 팝메탈, 심지어 데스메탈까지 어떻게든 갖다 붙이면 장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드록이라고 규정짓지는 않고 싶다. 물론 그렇게 불러주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단지 밴드 What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 물으면 그냥 ‘밴드 What이 하는 음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에 서있는 뮤지션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면 대중들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은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다보면 우리를 좋아하는 팬들이 생기고,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곡 작업을 할 때는 누가 주도적으로 하는가? 작곡에 참여를 하기도 하는가?

(이상훈) 저작권 등록할 때 이름 올리는 것은 수익 때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웃음) 사실 저작권이라는 규제가 없으면 그냥 What의 이름으로 올리고 싶다. 곡 작업을 할 때도 특별히 작곡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냥 기타를 치다가 좋은 리프가 나오면 멤버들끼리 모여서 거기에다 살을 붙이고, 그 다음 MR을 제작한다.

멜로디 라인은 본인이 직접 만드는가?

(이상훈) 내가 보컬이다 보니 MR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그냥 들으면서 흥얼거린다. 그러면서 가사를 적는다. 그리고 일단 녹음을 하는데 입에 달라붙는 가사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아닌 경우에는 녹음 도중이라도 가사를 바꿔버린다. 그러다보면 완성이 된다. (웃음) 완벽하게 틀을 잡아놓고 녹음하지는 않는다. 물론 80%정도는 기반을 잡아놓지만, 마지막 보컬녹음을 할 때는 변수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조금씩 수정을 하면서 곡을 완성시킨다.

삶에 있어 음악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미용 사업에 야구인으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단순히 취미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상훈) 어떤 사람이든지 여길 가면 이것을 열심히 해야 하고, 저길 가면 저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것을 하는데 저걸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뮤지션으로 불리고 싶다, 사업가로 불리고 싶다, 프로야구선수로 불리고 싶다’ 이런 것이 없다. 물론 사람들은 나를 뮤지션으로도 얘기를 안 하고, 사업가로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이상훈, 저 사람 야구선수였잖아. LG트윈스. 왼손잡이’라 부른다.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한데 난들 어떡하겠는가. 단지 사업을 할 때는 비즈니스를 열심히 하는 것이고, 기타를 치거나 무대 위에 있을 때는 뮤지션의 마인드로 살고 싶다.

결성 당시부터 매스컴으로부터의 관심을 받았다. 야구선수라는 꼬리표가 음악을 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는가? 공연장을 찾아온 팬이 What의 음악보다 LG트윈스의 팬이었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상훈)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웃음) 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데 내가 어떡하겠는가. 날더러 야구선수라고 하는데 그 앞에서 ‘나는 지금 뮤지션이다.’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오히려 나에 대한 기억을 가져준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반대로 지금의 나를 보며 ‘뮤지션이 다 되었다’, ‘사업가가 다 됐네.’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의 정현규는 이상훈을 일컬어 화려한 테크니션은 아니지만, 뜨거운 플레이를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본인은 스스로 어떤 기타리스트, 어떤 보컬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상훈) (웃음) 아휴~ 내가 무슨 기타리스트인가. 그리고 나는 보컬도 아니다. 그냥 기타가 좋아서 치는 거다. 노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우리 팀에서는 내가 노래를 가장 잘한다. (웃음) 우리 팀이 하는 음악에 내 목소리가 가장 어울려서 보컬을 한 것이지 특별한 것은 없다. 솔직히 노래연습은 합주할 때나 하고, 평소에는 기타연습에 더 비중을 둔다.

방송출연을 많이 하지 않던데, What의 공연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행사공연도 많이 하는 편인가?

(이상훈) 방송섭외는 안 들어오더라. (웃음) 그러나 방송이든 뭐든 라이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공연을 하는 편이다. 행사공연 또한 잘 안 들어온다. 홍보를 안 해서. (웃음) 우리는 클럽공연을 주로 한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광주, 청주 등 각 지역 클럽은 모두 다녔다. 사실 이러한 라이브무대가 홍보가 아닌가.

팬 층은 주로 어떠한가?

(이상훈) 팬들이 없다. (웃음) 3명이랑 공연을 한 적도 있고, 30명과도 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은 다른 밴드도 비슷하지 않은가.

뮤지션 이상훈으로 꿈이 있다면?

(이상훈) 특별한 것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새로운 앨범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면 더욱 고마울 뿐이다. 사람들이 우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처음에 내뱉었던 말을 지켜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록 마니아들에게 어떠한 밴드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상훈) 그냥 변질되지 않고 열심히 꾸준하게 음악을 하는 밴드,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환갑이 넘어서도 외국의 훌륭한 밴드들처럼 앨범을 내고, 순회공연을 다니며 그렇게 살고 싶다. 사실 다른 밴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환경이 열악하니깐 그렇게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현재 곡 작업을 하고 있고 녹음도 진행 중이라 7~8월이면 새 앨범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기대를 해도 좋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아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자신의 인생에서 전설의 반열에 올랐던 사람이지만 뮤지션 이상훈의 열정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음악이라는 제 2의 삶, 나아가 사업가의 삶 앞에서 여전히 청춘인 이상훈, 그의 삶 자체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기타리스트’ 이상훈이 각인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온 록의 하이웨이의 톨게이트가 저만치 보인다. 록의 불모지에서 20여 년간 ‘Metal Will Never Die’를 외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밴드, 살아있는 한국 헤비메탈의 신화, 밴드계의 큰형님. 어떤 수많은 수식어를 붙여도 그들을 표현하는 데 모자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만날 밴드는 내가 음악을 하면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블랙홀’이다. 한국 헤비메탈의 토대를 구축한 밴드 ‘블랙홀’, 하이웨이 스타의 대미라면 이 정도쯤 돼야 하지 않겠나.

[관련기사]
서울 가려 했으면 진작에 갔다
우리가 느낀 밴드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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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09:01

기타 치는 도깨비 김광석

[필살의 라이브]김광석의 음악여정 보여준 '기타 치는 도깨비'
                                                                                                                      김형찬 _ 대중음악평론가
클럽 바다비에서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김광석의 1집부터 3집에 이르는 음악의 변모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클럽 바다비에서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김광석의 1집부터 3집에 이르는 음악의 변모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중반기에 시작되었던 초창기의 홍대 앞 클럽가는 쏠림현상이 심했었다. 모던록, 펑크, 댄스 등의 장르편중현상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음악위주의 클럽보다 상업성 위주의 클럽들이 더 번성하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10년이라는 기간을 거치는 동안 살아남은 음악인들의 수준은 상당한 내공을 지니게 되었고 다양한 음악으로 승부를 걸어온 음악위주의 클럽들은 매달 한 번씩 사운드데이(매달 마지막 금요일 음악위주의 클럽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집중공연순례 프로그램)를 거치면서 홍대 앞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에 창작곡과 다양성을 공급하는 수원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런 좋은 음악을 중심으로 공연을 하는 클럽 중의 한 곳이 ‘바다비’ 라는 클럽이다. 여기서 지난 3월28일부터 4월3일까지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기타 치는 도깨비’ 라는 공연이 열렸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은 본인의 2006년 6월의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그는 1978년 이후 주로 녹음실과 연주무대에서 세션기타리스트로 활약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이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록그룹이었던 히파이브에서 1976년 이후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들국화의 객원기타리스트로 많은 공연에 참가했으며 1995년에 1집과 2003년 2집, 2009년 3집 등 자신의 독주곡집을 발매한 바 있다.

음악위주의 클럽들은 한국대중음악에 창작곡과 다양성을 공급하는 수원지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날의 공연은 제목이 의미하듯이 일정한 주제와 흐름을 가진 공연이었다. 어느 날 도깨비가 인간세상에 내려왔다가 <그리움>이라는 연주를 듣고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가진 연주회였다. 두 번째로 연주했던 <혼돈>은 도깨비가 자신의 괴력을 발휘하며 종횡무진 연주를 들려주는 곡이다. 이 곡에서 연주한 악기는 ‘비타’ 라는 악기로서 김광석이 개발한 악기인데 기타의 몸통에 7줄의 명주실을 매서 한국의 전통악기 비파와 기타를 결합한 음향을 낸다. 김광석은 3집 음반부터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의 탐구를 시작했다. 비타라는 악기의 개발과 전통리듬을 도입한 연주곡 <혼돈>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어서 도깨비는 그가 반했던 <그리움>을 연주하려고 하지만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더듬거리기만 한다. 이 때 김광석은 기타를 왼손으로 잡고 이 장면을 연출한다.

 김광석이 개발한 악기 ‘비타’, 전통악기 비파와 기타를 결합한 음향을 낸다.

네 번째로 연주된 순서는 뇌성마비의 장애를 갖고 있는 퍼포먼스 예술가의 퍼포먼스와 <은하수>라는 연주곡의 결합이었다. <은하수>는 김광석이 몽골 여행 도중 캄캄한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얻은 느낌을 작곡한 곡인데 5음계와 3박자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하지만 몹시 아름다운 곡이다. 이런 아름다운 곡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룻바닥을 구르는 퍼포먼스는 바로 도깨비가 인간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겪는 고통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앞의 곡 <혼돈>처럼 기량과 위력을 과시하는 연주는 잘 하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을 표현하는 연주는 오히려 고통이 되고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도깨비의 마음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무대 전경

도깨비는 인간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한 이후 드디어 그가 바라던 <그리움>을 연주하게 된다. 앞의 곡들이 추상적인 느낌인 것에 비해 이 곡은 아주 대중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연주곡이다.

이번 공연은 김광석의 1집부터 3집에 이르는 음악의 변모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집에서는 김광석의 역량을 과시하는 연주곡들로 구성이 되었고 2집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4장의 음반에 대작의 형태로 담아내었음에 비해 3집은 2집의 느낌을 아주 단순한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적이고 소소한 아름다움까지 감싸 안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는 김광석의 음악여정을 한 편의 음악이야기로 풀어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음악인 김광석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몸은 인간이나 짐승의 마음을 닮아가는 돈이라는 도깨비가 활개 치며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현재 우리의 삶의 모습에 대한 예술가 김광석의 음악적 성찰은 우리에게 무언의 간절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기타 모양으로 새겨진 공연 현수막

 

 

 
 김광석 - 그리움 김광석 - 은하수, 퍼포먼스

 
 

김광석 -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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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10:01

우리는 가요 밴드다, 그게 나쁜가?

[하이웨이스타] ④ 젊은 록키드의 두 얼굴, 지킬
[강종택 _ 기타리스트]

밴드를 처음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8살 이상 터울이 나는 형들과 음악을 해서인지 지금까지도 나는 어딜 가도 막내다. 연주할 때는 보통 10년 이상의 경력 차이를 극복해야만 했다. 너무 큰 나이 차이 때문에 나와 연배가 비슷한 밴드를 만날 때면 괜스레 마음이 끌리고 편안했다. 음악 이야기도 하지만 또래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을 공유한다는 게 나에게는 음악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지킬은 나와 가장 살가운 밴드다. 2004년 처음 만난 지킬과는 전국 여러 공연장을 함께 다니면서 많은 친분을 쌓았다. 추구하는 음악이 우리와는 많이 달랐지만 밴드라는 큰 틀 안에서 서로 큰 의지가 되는 팀이었다. 피터팬처럼 소년의 감수성을 가진 밴드 지킬과의 이야기다.

오랜만이다. 아직 지킬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소개를 해 달라.

(심승식 / 기타&보컬 / 리더) 지킬이라는 이름이 많이 생소할 것이다. 이름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따 왔다. 이중성을 가진 인물처럼 음악을 하리라는 취지에서 그룹명을 지킬로 한 것이다. 우리는 2005년 6월 지킬 1집 앨범 “The Message For Hyde”로 데뷔한 후 현재 2집까지 낸 밴드이다.

저번 주에 부산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전국을 누비고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새 앨범 준비는 어떻게 돼 가나?
 
(심승식) 3집 앨범의 곡 작업은 이미 끝났고 데모까지 나온 상태다. 그러나 세부적인 작업은 들어가지 않아서 3집 앨범이 언제 쯤 나올지는 말을 못하겠다. 앨범 작업 말고는 연습에 몰두한다. 물론 공연도 하면서 말이다.

지킬의 곡은 대체적으로 정통 하드락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밴드음악의 느낌보다는 가요 느낌이 많이 든다. 물론 가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박성준 / 드럼) 그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지킬은 팝락(Pop Rock)을 하는 팀이다. 그래서 다른 밴드들에 비해 강렬한 느낌은 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밴드형태의 틀 안에서 멜로디 라인을 중요시 하는 팀이다. 가요처럼 들렸다고 한다는 것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곡은 심승식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팀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멜로디 라인이 상당히 특이하면서 생소하다. 그렇지만 또 친숙한 느낌을 많이 받기도 한다.

(심승식) 만들다보니 그렇게 나왔다. (웃음) 다른 팀과 차별화된 멜로디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다음번에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멤버가 나가고 들어오면서 밴드 색깔이 조금씩 바뀌는 것은 있다. 이런 것이 곡이 탄생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심승식이 작곡과 출신인데, 곡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밴드 음악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참고로 나는 작사를 잘 하고 싶은 생각에 국문과를 갔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심승식) 글쎄, 도움이라… 음악을 비롯해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술적 능력이 교육을 통해 향상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작곡과에서 기본적인 틀은 많이 가다듬었다. 그러나 나의 음악적 본질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본다. 정말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작곡과에서 기본적인 기반을 잡고, 나의 음악을 그 위에 만들었다.

지킬은 멜로디도 그렇고 비주얼도 그렇고 예전의 이브나 Girl의 느낌이 강하다. 이런 말을 자주 듣지 않는가?

(박성준) 예전에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성의 있게 음악을 준비하고 매너 있고 깔끔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른 밴드들과 비슷하다는 말보다 지킬만의 모습이라는 좋은 말을 많이 듣는다. (웃음) 이런 것이 좋은 것 아니겠는가.

계속 다른 밴드와 비교해서 미안한데…(웃음) 공연 횟수가 비교적 적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예전에는 공연을 참 많이 하는 밴드 중 하나였는데….

(심승식) 음…, 대답하자면 힘든 일이 좀 있었다. 2집 앨범 발매 후 기획사가 망하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베이스 치는 친구가 팀을 나갔다. 그때부터 공연을 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었다. 물론 요즘 3집 앨범작업 때문에 공연을 줄이는 면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밴드를 하면서 이 정도도 각오를 안했겠는가. 힘들지만 우리는 꿋꿋이 음악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공연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심승식) 지금은 기획사에서 나와서 우리끼리, 정말 음악만 하고 있다. 그래도 특별히 음악하는데 지장이 있다거나 불편한 점은 전혀 없다. 공연은 내가 직접 섭외를 한다. 리더인 내가 매니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몇 해 전 MBC 아침드라마 <내 곁에 있어>에 지킬이 깜짝 출연을 했다. (웃음) 그때 많이 놀랐다. 어떤 계기였는가? 방송 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생겼는가?

(심승식) 하하하, 부끄럽다. 밴드 “WHAT”의 기타리스트 김인건의 소개로 드라마에 깜짝 출연을 했다. 우리의 음악으로 방송을 먼저 탔어야 하는 건데…. (웃음)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아침드라마라서 알아보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웃음)

이재욱(기타)과 박성준(드럼)은 나이가 아직 많이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참 보기가 좋다. 요즘 밴드음악을 하는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기가 힘들지 않은가?

(박성준 / 드럼) 물론 예전처럼 음악에 운명을 걸고 밴드를 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그만큼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본다. 우리처럼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대신에 이렇게 우리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밴드를 하고 있다.

지킬은 나이도 어리고 패션도 상당히 개성이 있다. 그리고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넘버들도 가지고 있는데, 여성 팬들이 많지 않은가?

(심승식) 팬은 무슨…, (웃음) 우리는 팬이 없다. 소녀들보다는 아저씨들이 좋아하시더라. (웃음) 우리 팀은 결성된 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 스스로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좀더 성숙해지면 그때는 팬에 대한 욕심도 한번 내보겠다.

그래도 팬들이 없다면 힘 빠지지 않는가? 음악이라는 게 사람들이 들어주고 사랑해줬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심승식)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인기만을 좇으면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밴드를 하는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단지 기타를 치는 것이 좋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았다. 1집을 발매했을 때 많이 미숙했다. 그것을 보안하면서 2집을 만들었다. 좀더 가다듬어졌지만 만족한다는 말은 못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있다. 이제 3집에서 우리의 사운드를 비롯한 모든 면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다면 자연스레 대중들이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우선 우리 “지킬”이라는 팀을 확실하게 완성시키고 싶다.

인기 때문에 음악적 자존심을 버리지 않을 거라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지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어떤 밴드라고 생각하는가?

(심승식)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밴드 곡들의 느낌을 가진 팀은 적어도 한국 안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의 자부심이다. 이 기사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지킬의 음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속는 셈치고 한번 들어주길 바란다. (웃음) 지킬은 화려한 기교가 있는 팀도 아니고, 관중들을 휘어잡는 에너지가 있는 팀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색깔을 확실히 가져가고 있는 밴드라는 점을 스스로 크게 평가하고 싶다.

밴드가 확실한 팀컬러가 있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이지 않겠는가. 아직 젊은 밴드 지킬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못 물어봐서 못한 말이 있다면 해 달라.

(심승식) 나를 제외한 멤버들이 많이 어리고 아직은 배우는 단계이다. 그래도 그들의 음악적 영역에는 터치를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을 존중해주면서 밴드를 이끌고 싶다. 지금까지 잘해준 것처럼 앞으로도 최고를 향해 성장하는 지킬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3집 준비를 제외하면 뚜렷한 계획이 없다. 앨범 작업에 몰두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둘러 싼 열악한 환경 조건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대해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묵묵히 열심히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성공하는…,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살의 어린 친구들이 열정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 내게 밥벌이 걱정 말고 또 무엇이 남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 나도 한때는 하루에 라면 한 끼만 먹어도 음악만 하면 행복할 거라는 꿈이 있었다. 씁쓸한 마음 한편에서 몰래 체념을 한다. 그래도 굶지는 말아야지.

다음 인터뷰는 전설을 만날 차례다. 음악계의 전설은 아니고 한 때 야구 계를 주름 잡았던 잠실벌의 전설, 삼손! LG트윈스의 클로저 ‘야생마’ 이상훈을 만난다고 하니 벌써부터 주위에서는 같이 가서 사진 좀 찍으면 안 되겠냐고 난리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전설적인 밴드 시나위의 드러머 출신 신동현. 각기 다른 전설을 숙명처럼 꼬리에 달고 다녀야 했던 밴드 “What”. 이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전설이 되고자 하는 “What”을 찾아 미용실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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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1:59

퓨전국악의 새로운 가능성

[필살의 라이브]퓨전국악보컬그룹 아나야
                                                                                                                      김형찬 _ 대중음악 연구자
5명의 멤버를 주축으로 구성된 아나야는 퓨전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팀이다
▲ 5명의 멤버를 주축으로 구성된 아나야는 퓨전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팀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역사의 심각한 단절을 경험했다. 이에 따라 전통문화가 서구사조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을 만나면서 순조롭게 현대화되지 못하고 일방적 모방 혹은 수세적 수용의 형태로 귀결됨으로써 ‘전통문화의 현대화’ 라는 화두는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인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1980년대 초반 김영동의 국악가요 작업이 그 단초를 보여준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들어와서는 슬기둥을 중심으로 한 국악전공자그룹과 민예총 산하의 민족음악인협회 음악인들이 그 작업을 이어왔다. 주류음악 쪽에서는 채치성의 <꽃분네야> 주병선의 <칠갑산> 등이 국악가요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기억된 바 있다.

슬기둥의 작업은 전공자들답게 국악기와 양악기를 함께 섞은 연주팀으로 새로운 연주를 들려주었고 몇 곡의 노래들을 대중에게 기억시킨 바 있다. 민족음악인협회도 10년 이상 이 작업에 매달려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현재는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전공자들로 구성된 슬기둥은 국악어법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악’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지만 전통에 방점을 둔 상태라 ‘국악의 맛을 지닌 새로운 대중음악’ 으로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민족음악인협회는 의욕은 높았지만 전문적 기량의 부족으로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그에 비해 채치성과 주병선의 국악가요는 대중음악반주에 국악의 선율과 창법을 사용하는 초보적인 단계로서 1970년대 김민기가 보여준 문제의식을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국악전공자들이 과거처럼 소수가 아니라 대중음악과의 만남을 자신의 새로운 진로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그 양상은 양과 질을 달리 하게 된다. 강은일과 꽃별은 해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해금을 배우려는 대중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숙명가야금연주단과 같은 연주그룹은 대중음악음반 못지않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형태도 무척 다양해졌다. 거문고연주팀, 가야금연주팀, 아쟁연주팀, 국악메탈밴드, 타악그룹, 월드뮤직그룹, 가야금싱어송라이터 등이 출현하면서 ‘퓨전국악’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수준의 향상이다. 국악전공자로서의 전문기량, 대중음악적 감수성, 새로운 세대가 갖는 자유로움 등이 결합하여 선배들의 음악작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지난 2월 7일 남산국악당에서 공연했던 ‘아나야’라는 그룹은 그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팀이라 할 수 있다. 5명을 중심으로 객원연주자를 포함하여 10여명이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 일렉기타 등의 양악기에 태평소, 대금, 가야금, 장구 등의 국악기를 혼합하여 연주하는 팀인데 새로운 민요풍의 노래를 중심으로 내세우는 팀이다. 2003년 창단한 아나야는 2005년 제3회 한국가요제에서 <신사랑가>로 동상을 수상했고, 2007년 제1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는 <기원>으로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제2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따북네>로 아리랑상을 수상하면서 그 실력을 이미 과시한 바 있다.

새로우면서도 격조가 있게 느껴지는 아나야의 음악이 대중들의 눈높이에 어떻게 편안하게
다가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나야는 팀내에 3명의 보컬을 둘 만큼 민요의 현대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을 위해 아나야는 각 지방의 민요를 그대로 부르지 않고 경기소리를 서도소리로 부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서로 혼합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 결과 민요의 맛은 살리면서 새로운 민요의 느낌을 주고 있다. 창법도 전통창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민요의고졸함을 탈피하고 있다. 정지상의 고시와 황진이의 시조를 차용한 <송인>이 그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 현재 각 지방의 민요를 섞는다는 발상은 역사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이며 그것이 오히려 현재의 대중감수성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나야의 또 다른 시도는 판소리에 쓰이던 사설을 현대화하는 시도이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을 랩과 비트박스를 사용하여 힙합의 형태로 바꾼 <신사랑가>가 그것이다. 사실 랩의 원조는 판소리임에도 외국문화인 랩이 현재 청소년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00년 전의 판소리와 현재의 랩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낼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 하겠다.

아나야의 바램은 새로운 보컬그룹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의 시를 차용하여 가사로 사용하는 것은 전통의 흥취를 담아낼 수는 있지만 현재의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현재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나야의 음악은 새로우면서도 격조가 있는 음악으로 느껴지는데 대중들의 눈높이에 어떻게 편안하게 다가갈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아나야 - 송인 아나야 - 신사랑가

 
 * 필자가 녹화한 <송인>은 상태가 좋지 않아 아나야의 협조하에 광주MBC 출연시 아나야가 직접 찍은 영상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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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07:54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연기

문화부 돌연 지원 철회, 재정 문제로 시상식 일정 연기
                                                                                                                                        이주호 기자
2월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 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문광부의 돌연 지원 취소로 연기되었다.
▲ 2월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 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문광부의 돌연 지원 취소로 연기되었다.

2월26일로 예정되어 있던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개최 일주일을 앞두고 돌연 시상일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수상 후보 선정 작업 및 홍보, 언론 보도가 이미 끝난 2월 1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정위원회 사무국에 일방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핵심 사업 지원을 위한 예산배정 때문에 시상식 지원을 취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는, 정부의 핵심 사업이라는 것이 과연 일주일 앞둔 행사를 취소하여 재정을 마련할 정도의 계획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이다. 선정위원회 사무국은 2008년 12월부터 담당부서와 논의하여 지난 1월에 국고지원금 교부신청서와 담당자가 요구한 해당 자료들을 사전에 모두 제출했었다.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일정과 장소를 바꾸어 3월 중에 개최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당초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었던 2월 26일에는 이번 사태와 추후 시상식 일정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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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0:54

형평성 있는 대중음악 축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개최
                                                                                                                                      이주호 기자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2월 26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2월 26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하는 제 6회 한국대중음악상이 2월 26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2008년 한 해 동안의 한국 대중음악의 성과를 정리하고 시상할 제 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 시상식은 윤도현과 이하나의 사회로 이적, 에픽하이, 윤미래와 드렁큰타이거 등 지난 회 수상자들이 시상자로 참여하여 총 25개 부문의 수상자를 발표하게 된다.

공로상에 선정된 산울림과 6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된 언니네이발관 및 정엽, 스윙스, 비솝 등 8팀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한편, 작년 신설된 ‘네티즌이 은 올해의 음악인’은 남성, 여성, 그룹 세 부문으로 나뉘어 2월 17일부터 8일간 네이버를 통해 투표가 진행된다. 관람은 한국대중음악상 홈페이지(www.kmusicawards.com)를 통해 신청 가능하며 올해의 후보들의 노래 27곡이 담긴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노미니즈 음반’을 제작, 이벤트를 통해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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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14:53

서정과 서사 아우르는 호소력 있는 여가수

[필살의 라이브]이정미 노래의 힘
                                                                                                                       김형찬 _ 대중음악연구가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돌아보면 과연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면서도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여성가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정미라는 여성가수를 눈여겨 탐색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돌아보면 과연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면서도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여성가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정미라는 여성가수를 눈여겨 탐색할 필요가 있다.

2006년 9월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었던 재일동포가수 이정미의 공연이 지난 1월24일 홍대앞의 요기가갤러리에서 열렸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닥친 겨울밤 어렵게 찾은 지하공연장을 들어서니 이미 낯익은 이정미 카페회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자연스럽게 마감한 갤러리는 자연에코가 이루어져 마이크로 소리만 조금 키우는 최소한의 음향시설로 마치 안방과 같은 공연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정미가 팬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따뜻한 허브차는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포근하게 해주었다.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흰 무대의상을 입은 이정미는 사쿠마 준페이의 어쿠스틱기타 반주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발표되었던 이정미의 대표곡 <나는 노래하네>와 <케이세이센>으로 공연의 문을 연 다음 지난해 12월 5년 만에 발표된 3집 「지금 여기에 있어요」에 수록된 <안타까움 저 너머>를 부르면서 지난 해 50세를 맞이하여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오랜만에 새 음반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들려준 <고마워라 삶이여>는 칠레의 여성 민중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부른 곡인데 이정미가 이 곡에 깊이 공감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방황할 때 일본의 시인 아마오 산세이의 <기도>를 듣고 넘치는 노래의 욕구를 느꼈던 그 시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인도에 가서 배운 땀부리 라는 악기를 천천히 연주하며 오랫동안 자신에 몰두했다.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흰 무대의상을 입은 이정미는 사쿠마 준페이의 어쿠스틱기타
반주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중간에 게스트로 등장한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기타리스트 사쿠마 준페이의 연주를 극찬했다. 일본 포크음악의 개척자인 그는 다양한 장르의 어법을 구사하며 곡마다 적절한 표현으로 혼자만으로 능히 연주회를 감당했다. 그는 김광석과 함께 김광석이 이번 3집에 발표한 대표곡 <은하수>와 <행복>을 연주했다. 김광석의 지극히 간결한 선율의 <은하수>와 <행복>은 추운 겨울밤 홍대앞 오막살이에 모인 음악동네사람들을 은하수 저편으로 날아가게 하는 행복한 꿈을 꾸게했다.

후반부에 불렀던 <그로부터 이천년>은 미국이 어느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전쟁지역의 사람들을 두고 기쁜 새해를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작곡했다고 했다. 이 곡의 코러스는 평소 이정미가 한국에 공연 올 때마다 전 과정을 돌보아주었던 이정미 카페회원들이 음반녹음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때의 회원들이 상당수 공연에 참석하여 실제로 간단한 수화와 함께 즉석 코러스를 연출하여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이정미는 존레논의 <이매진>을 자신만의 독특한 호흡으로 재탄생시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정미 노래의 힘은 그녀가 서정과 서사라는 폭넓은 세계를 두루 아우르면서 자신의 독특한
호흡으로 청중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노래를 통한 자아찾기는
자기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온생명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이정미의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가 갖는 노래의 힘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이 노래의 힘은 그녀가 서정과 서사라는 폭넓은 세계를 두루 아우르면서 자신의 독특한 호흡으로 청중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노래를 통한 자아찾기는 자기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온생명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또한 사회에 관한 얘기를 할 때에도 청중의 감수성을 깊은 곳에서부터 건드려나가기 때문에 청중은 노래속으로 저절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 그녀의 창법과 호흡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리듬감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발성을 끌고가다가 적절한 순간에서 놓아버림으로써 청중은 관성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는데 이렇게 발생하는 리듬감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와 같은 리듬감을 발생시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해준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돌아보면 과연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면서도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여성가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 여성가수들은 서정적인 감수성의 호소에는 탁월하지만 서사적인 얘기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민중가요 쪽에서 서사를 노래하는 가수들은 있지만 서정적인 호소력의 내공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정미라는 여성가수를 눈여겨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정미 - 고마워라 삶이여 이정미 - 그로부터 이천년
 
이정미 - 이매진 이정미 - 있는 그대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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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1 08:11

꽃다지가 억울한 까닭

[필살의 라이브]꽃다지 2008 송년콘서트
김형찬 _ 대중음악평론가
꽃다지는 노찾사의 뒤를 이어 17년간 활동해오면서 ‘민중가요의 종갓집’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꽃다지 송년 공연 장면.
▲ 꽃다지는 노찾사의 뒤를 이어 17년간 활동해오면서 ‘민중가요의 종갓집’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꽃다지 송년 공연 장면.

현재 서울지역 민중가요 진영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래팀은 꽃다지와 우리나라, 희망새 등이 있다. 희망새는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다가 작년에 상경하여 활동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1999년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중이다. 꽃다지 앞에는 노찾사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면서 민중가요의 대중화에 공을 세웠다. 그에 비해 꽃다지는 1992년에 창단되면서 노찾사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노동현장과 집회를 중심으로 투쟁의 노래 또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17년간 활동해오면서 ‘민중가요의 종갓집’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의 공연과는 별도로 매년 일반청중을 위한 공연도 병행해왔는데 올해는 원래 봄, 가을, 겨울 세 번의 공연을 계획했는데 늦어지는 바람에 하반기에 세 번의 공연을 개최하게 되었다. 7월25일과 26일 홍대앞 클럽 로이에서 3회 공연, 10월10일과 11일 홍대앞 클럽 프리버드에서 4회 공연 그리고 12월27, 28일 프리버드에서 4회 공연을 개최하면서 일반 청중을 만나는 기회를 집중적으로 가졌다.

이렇게 연속되는 공연에서 꽃다지는 13곡의 창작곡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2001년 이후 음반이 나오지 않아 그들의 새로운 고민과 음악경향이 궁금했던 팬들에게는 궁금증을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기존의 꽃다지의 <세상을 바꾸자> <반격> <주문> <노래의 꿈> <이 길의 전부> 등과 같이 부조리한 사회속에서 개인의 자각을 거칠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노래들은 잦아들고 일상속에서 개인이 느꼈던 감정이나 고민의 편린들을 조심스레 펼쳐보는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수준높은 대중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민중가요 공연을 보러
홍대앞 클럽까지 오는 젊은이들은 무엇을 충족하기 위해 오는 것일까? 꽃다지 7월 공연.
 

어린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노래한 <아이야>(조성일 작사 작곡) 삶에 지친 친구를 위로하는 <친구에게>(정윤경 작사 작곡)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야이야예오>(송미연 작사 작곡) 등이 그것이다. 또한 <브레멘 음악대>(고희균 작사 작곡)와 에서는 음악인으로서 꽃다지가 세상속에서 찾고 싶은 희망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촛불집회 과정에서 작곡된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노래 <Hey! Mr. Lee>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현실을 노래한 <Fighter>(조성일 작사 작곡)과 같은 기존 정서의 노래들도 있다. 하지만 <Hey! Mr. Lee>같은 곡을 보면 날선 비판이 아니라 희화적 풍자라는 양식을 채택함으로써 꽃다지의 현실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곡의 경향이 변함에 따라 창법도 조금은 변화가 있었다. 힘차게 내지르던 창법에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면을 드러내는 쪽으로 발성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아쉬움은 여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수준높은 대중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굳이 일반인들이 지난 시절의 음악으로 쉽게 치부하는 민중가요 공연을 보러 홍대앞 클럽까지 오는 젊은이들은 무엇을 충족하기 위해 오는 것일까? 대중음악보다 출중한 음악적 기량이나 앞서가는 트렌드를 확인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은 왜 이렇게 엉망이고 희망이 없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의 실마리 정도라도 얻고싶어서, 또한 자신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음악의 공감을 통해 느끼고 싶어서 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욕구에 직면하는 꽃다지 노래의 가사들은 여전히 막막하거나 추상적이다. “난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아이야이야예오) “그렇게 차별과 상처 두려움에 길을 잃기도 하겠지만 난 그렇게 가야해”(길위에서) “그래 떠나자 브레멘으로 그곳에서 만들자”(브레멘음악대) 등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자신도 방황하면서 내면을 성찰하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내용은 추상적이며 지향점도 알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꽃다지가 현실에 직면한 솔직한 모습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가사는 대중음악권의 현실비판적, 자아성찰적 노래를 하는 음악인들도 능히 할 수 있으며 그것도 수용자들의 감수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반 대중들이 대중음악에 비해 사운드도 평범하며 보컬의 매력도 별로 없으며 가사도 별로 나은 것이 없는 민중가요를 굳이 듣겠는가?

민중가요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실천적인 삶의 전망을
얘기하지 못하고 단순히 현실의 비판이나 막연한 자아성찰에 머무르는 수준으로는
더 이상 대중음악과 구별되는 차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꽃다지 송년 공연.
 

민중가요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실천적인 삶의 전망을 얘기하지 못하고 단순히 현실의 비판이나 막연한 자아성찰에 머무르는 수준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대중음악과 구별되는 차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꽃다지는 조금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내가 철학자나 사상가도 아닌데 새로운 삶의 전망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냐?” 라고. 억울하지만 답은 “그렇다” 이다. 1980년대에 민중가요가 청중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노래 속에서 새로운 삶의 전망을 발견하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만든 작곡가들도 운동권 내의 철학적 사상적 고민을 담은 학습과 현장의 투쟁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의 전망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과거의 시스템과 프리미엄이 사라진 현재 음악인들은 음악적 기량은 물론이고 노래에 담아낼 새로운 삶의 전망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홀로서기라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이것은 물론 음악인만의 문제만은 아니고 진보진영 전체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현실을 직면하고 대안 추구에 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었던 것이 민중가요 진영이 처한 답보상태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공연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꽃다지 - 길 위에서 꽃다지 - 브레멘의 음악대
 
꽃다지 - Fighter 꽃다지 - Hey M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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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11:18

부활에서 중흥으로

[2008 장르 결산-⑥]대중음악
                                                                                                              서정민갑 _ 대중음악의견가
다시 중흥의 때가 도래한 것일까? 올해 한국 대중음악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열기가 확확 느껴지는 한해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 다시 중흥의 때가 도래한 것일까? 올해 한국 대중음악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열기가 확확 느껴지는 한해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제 다시 중흥의 때가 도래한 것일까? 2008년 한국 대중음악을 돌아보는 지금 얼굴에 빙그레 웃음 떠올리는 이가 다만 몇몇은 아닐 것이다. 올해 한국 영화가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괜찮은 TV 드라마도 그다지 찾을 수 없었던 데 반해, 한국 대중음악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열기가 확확 느껴지는 한해였다. 이제는 백만장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십만장 판매고를 넘긴 음반이 다섯 장을 넘기고 음반 판매량이 음원 판매량보다 많았던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외형적인 성장은 단지 음반 판매량으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었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내한공연의 열풍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 규모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중요한 증거로서 이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위시한 일군의 대형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증가와 성공으로 이어지며 음악팬들을 즐겁게 했다.

외형적인 성장의 내면을 채운 몇가지 중요한 변화를 짚어보자. 오버그라운드와 인디 씬이라는 도식적 틀을 놓고 말하자면 오버그라운드에서는 김동률, 토이, 이승환, 신승훈을 비롯한 199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던 남성싱어송라이터 오빠들이 대거 돌아오며 구매력 높은 2-30대 언니들의 주머니를 열었다. 돌아온 오빠들 중에서는 모던록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선보인 신승훈의 이름을 각별히 기억해야 할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충성도 높은 언니들은 음반 시장의 판매량을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뮤지션들이 연 콘서트를 조기 매진시키며 오빠들의 저력을 증명했다. 이 연령대의 여성들을 타켓으로 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존재는 한국대중음악시장의 분화를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해냈다는 점에서도 탁월한 기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백현진 1집, <반성의 시간>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오빠들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오빠라고 부르기엔 어색한 봄여름가을겨울, 강산에, 오딘, 예레미의 새 음반은 연륜에 맞는 깊이와 변화를 담은 수작들로서 한국대중음악의 끊어진 허리를 튼실히 잇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쯤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생각했던 아이돌의 귀환이야말로 올해 한국 오버그라운드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지난 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통해 예고되었던 아이돌의 열풍은 올해 동방신기, 빅뱅, 샤이니로 계속 연결되면서 아이돌 문화의 진화를 보여주었다. 예전과는 달리 창작적 역량과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악들이 아이돌을 통해 배출되면서 아이돌은 10대만의 팬덤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오버그라운드의 음악적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함께 해냈다. 팝이라는 것이 그저 유행가가 아니라 완성도 높은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20년전 이문세나 조용필의 이름으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아이돌의 변화가 과연 얼마만큼의 지속가능한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결국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성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음악들을 더 많이 쏟아냈던 인디 씬에서도 올해는 더 많은 수작들이 쏟아진 한해였다. 명확하게 보아야 할 것은 기존의 장르 틀 안에서만 좋은 음악들을 쏟아냈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장르와는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의 음악들이 풍성하게 쏟아졌다는 점이다. 슈게이징과 노이즈, 포스트록이 뒤섞이며 비둘기 우유, 로로스의 수작이 탄생했고 록큰롤과 개러지, 펑크가 뒤섞여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가 범람했다. 여기에 스타리 아이드와 헬로루키를 통해 가능성이 확인된 국카스텐의 이름 역시 빠트릴 수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적 사운드라는 음악적 지역성이 분명해진 것은 2008년의 가장 큰 성과중 하나일 것이다. 당대의 세계적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해외의 사운드와는 명확하게 다른 차이를 음악으로 구현해내거나 한국적 가사에 잘 녹여낸 팀들은 한국 대중음악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뿐만 아니라 인디 음악의 유의미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특히 산울림 이후 맥이 끊어졌던 한국적 록큰롤이 눈뜨고코베인, 갤럭시 익스프레스, 문샤이너스, 치즈 스테레오 등으로 이어진 것은 한국 록이 다시 자기 언어를 정립한 표본이었다. 해외의 사운드를 재치있게 재현해낸 검정치마와 아톰북의 음악은 이러한 맥락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씬을 풍성하게 했다.

수많은 새 음반들 가운데 수년간 활동을 쉬고 있던 언니네 이발관과 백현진의 새 음반은 음악적 집요함과 자유로움이라는 상반된 측면의 장점을 극대화한 음반으로서 올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녹음을 전부 다시 하는 전무후무한 고집스러운 노력이 섬세한 가사와 유기적인 구성으로 빛을 발한 언니네 이발관과 사적 기록의 내밀함을 사회적 냉소로 연결시킨 백현진의 자의식은 어쩌면 한국 대중음악이 나아가야 할 두가지 방향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스스로를 넘어서는 갱신은 자신의 믿음을 결벽증적으로 밀고 나가거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드러냄으로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므로 수년간의 해외활동 끝에 드디어 자신의 최고작을 선보인 나윤선의 [Voyage]와 미연&박재천의 [Dreams From The Ancestor] 음반은 한국의 재즈가 얼마나 고유한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서양적인 질감을 받아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할 음반이었다. 버벌진트, 제이에이&에이조쿠, 비솝, 유알디, 스윙스 등의 새로운 이름들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힙합 역시 올해의 부흥을 책임진 공신이었다. 부박한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의 가장 스타일리쉬한 아티스트인 디제이 손의 [Black Swarms] 음반은 저주받지 못한 걸작으로 기록될 듯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 <보편적인 노래>

음악적으로 양질의 음반들이 속출했던 올해의 인디 씬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장기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단 3곡이 담긴 EP 한 장만을 내놓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각종 페스티벌과 UCC를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받으며 인디 씬의 스타로 거듭났다. 기존의 어법과는 다른 복고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스타일과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 흥미있는 무대 등이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은 인디 씬에 대한 오해를 털며 대중적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을뿐 아니라 한국적 록 사운드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청년세대가 과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고 그의 음악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것인지는 앞으로 나올 정규음반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장기하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인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존재는 올해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검정치마를 내놓은 루비살롱의 존재와 함께 이러한 성취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낙관하게 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강한 레이블들의 존재는 사실 올해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이 가능하게 한 시스템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차별성을 꾸준히 추구하면서 음반 제작과 유통을 더욱 고도화한 레이블들의 성실한 활동들이 있었기에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또한 스스로 음반을 만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해외의 트렌드를 수시로 접하고, 분출하는 인디의 열기를 서로 교감하는 뮤지션들은 각기 다른 레이블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더욱 조이며 깎아 기름을 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문화컨텐츠진흥원에서 실시했던 인디레이블 지원 사업은 아쉽게 끊어졌지만 거대 포털 네이버가 새롭게 열었던 오늘의 뮤직 서비스는 인디 씬에만 묻힐뻔한 양질의 음악들을 소개하고 오버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역차별될 수도 있었던 음악들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역할을 했다. 대중음악웹진 보다(http://www.bo-da.net)와 리드머(http://www.rhythmer.net/), 이즘(http://www.izm.co.kr/) 정도로 축소된 웹진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신하면서 네티즌들의 평론을 평론가들의 평론과 같은 무게로 존중하고 다양한 음악적 흐름을 소개하려 했던 네이버의 시도는 실제 시장의 유의미한 호응으로 이어지며 올해 한국대중음악의 부흥을 도왔다. 소개하는 음악의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와 네티즌에 대한 존중이 음악적 평가의 가치를 흐리기도 했지만 포털의 순기능을 확인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TV 음악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음악적 진정성을 지켰던 EBS 스페이스 공감은 헬로루키 프로그램을 신설, 이를 펜타포트 록페스티벌과 네이버 양쪽으로 연결하며 신인 발굴의 가능성을 노크했고 상상마당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역시 함께 지켜보아야 할 좋은 시도였다. 늘어난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의 수가 앞으로 어떤 순기능을 할지도 더 두고 보아야 하겠으나 이러한 흐름 역시 상승의 증거임은 분명하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헬로루키 프로그램을 신설, 이를 펜타포트 록페스티벌과 네이버
양쪽으로 연결하며 신인 발굴의 가능성을 노크했다.

한편 음악이 울려퍼졌던 곳은 공연장만이 아니었다. 올해 한국사회의 최대 사건이었던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여러 대중음악인들은 때로는 대중음악인으로서 노래를 불렀고 때로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촛불을 들었다. 무대도 마이크도 없이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바드와 손병휘 같은 음악인들, 그리고 정치적 목적의 공연에 자연스럽게 동참했던 여러 대중음악인들의 움직임은 비록 당대를 다룬 음악의 창작으로 직결되지는 못했지만 올해 말 콜트 콜텍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한 연대로 이어지면서 음악의 사회적 발언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자연스럽게 확장했다.

경제가 바닥을 치고 민간독재가 공공연하게 활개를 치는 현실에서 이처럼 상승하는 대중음악계의 역동은 다소 이채롭다. 이것이 단지 어떤 순환의 사이클일뿐인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부활의 전조인지는 알 수 없지만 12월에 쏟아진 이장혁, 김창완, 이소라, 브로콜리 너마저, 캐스커, 49Morphines 등등의 음반은 이러한 움직임이 결코 쉽게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음악인들과 레이블, 기획자, 비평가들이 함께 일궈낸 성과에 이제는 정부가 답을 해야 할 차례이지만 대규모 삽질로 경제를 살리고 창의성을 키우겠다는 정부에게서 어떤 도움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헛되고 헛될 뿐일듯 하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부수고 헤쳐가는 음악, 그러므로 더욱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이명박 독재가 선사하는 유일한 즐거움일 듯하다. 내년에는 더욱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들과 함께 다시 누구도 물대포에도 쓰러지지 않기를.

 

 

 

[관련기사]
한국문학의 '취약한' 성장
2008년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대학로를 돌아보다
다시, 전위와 실천, 행동의 아방가르디즘을 위하여!
몰락의 시작인가, 부진의 고착화인가
누구도 거론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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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12:14

내 인생의 음악과 함께하는 송년모임

 - ‘삶이보이는창’과 함께하는 송년 음악나눔(이주호 기자)
'삶이보이는창'은 12월 12일 송년 음악나눔 행사 <내 인생의 노래>를 진행한다.
▲ '삶이보이는창'은 12월 12일 송년 음악나눔 행사 <내 인생의 노래>를 진행한다.

진보 생활 문예 출판사 ‘삶이보이는창’은 12월 12일 저녁 7시30분 대학로 이음아트에서 송년 음악나눔 행사를 연다. <내 인생의 노래>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이 행사는 올해 3월 출간되었던 최창근의 제3세계 음악 에세이집 『인생이여, 고마워요』에 소개되었던 음악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이다.

『인생이여, 고마워요』는 러시아 민중 서사곡인 스베틀라나의 <러시안 포크송집>, 얼마 전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에 삽입되기도 했던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안데스의 민속음악인 ‘포클로레’, 포르투갈의 ‘파두’,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적 정신을 지키기 위한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대표적인 가수 빅토르 하라와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 등 영미의 팝을 제외한 각국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음악에 얽힌 역사와 문화,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최창근 작가의 음악이야기와 더불어 세계음악을 감상하는 1부에 이어 2부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준비해 온 ‘내 인생의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으로 꾸려진다. 내 삶의 한 때와 겹쳐지는 음악이 담긴 CD음반을 가지고 오면 참석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 인생의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 이 행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행사에 관한 문의는 삶이보이는창(02-848-3097)이나 이음아트(02-745-9758)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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