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09.03.27 “합창단 해체는 예술적 자폭행위”
  2. 2009.03.27 5분의 경이와 한 권의 혁명적 지식
  3. 2009.03.27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생명과학
  4. 2009.03.26 MB 1년, 정치경제 도구로 전락한 문화
  5. 2009.03.26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6. 2009.03.26 [김성희의 페이지]그만 쳐 놀려라, 비비디바비디부!
  7. 2009.03.25 ‘정명훈’인가 ‘정명박’인가? (1)
  8. 2009.03.25 동네책방, 랩이 흐르다
  9. 2009.03.25 [학술소식]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국경을 넘는 연대’ 외
  10. 2009.03.24 21세기 유목민을 위한 작은 집
2009.03.27 09:35

“합창단 해체는 예술적 자폭행위”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반대하는 일만인 선언
안태호 기자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합창단 해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세종로 문화부 청사 앞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합창단 해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세종로 문화부 청사 앞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소리높여 외쳐라 하늘이 떠나가게, 손에 손을 맞잡고서 다 함께 노래 부르세~”

세종로 일대가 갑자기 합창공연 무대로 바뀌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도 잠시나마 발걸음을 멈추고 이 드문 광경과 우렁찬 노래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끝없는 환희를 그대에게’, 베르디의 오페라 <일트 로바토레>의 ‘대장간의 합창’, ‘러시안 피크닉’과 ‘사랑합니다’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객석이 아닌 거리에서 앙콜이 터져나왔다. 20여명의 합창단은 ‘우정의 노래’로 화답했다. 많지 않은 관객들이지만 귀에 익은 레파토리와 박력있는 공연에 박수와 함성이 이어진다.

얼핏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는 ‘찾아가는 문화활동’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지만, 이들은 예술단 해체와 일방적 단원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다. 이들이 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반대하며 싸움을 시작한지도 어언 4달 째가 됐다.

이제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단지 하나의 예술단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정책의 수준과 한국 공연예술인들의 처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가는 중이다. 민예총과 문화연대를 비롯한 18개 문화예술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10대 실정’의 한 항목으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를 꼽았다. 프랑스 예술계는 합창단의 투쟁 소식을 전해 듣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대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합창단 측은 일본과 이탈리아의 예술인들도 동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25일(수) 문화부 앞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ㆍ노동자ㆍ시민 일만인 선언 기자회견’을 가졌다. 애초에 서명 목표를 일만명으로 잡았지만 실제로 서명에 응한 사람들의 숫자는 만 삼천명을 넘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낸 성악가 박수길 한양대 명예교수와 현재 국립합창단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나영수 지휘자를 포함해 음악대학교수 및 연출가, 지휘자들이 150명 이상 서명에 참여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국립합창단 단원 31명을 포함 국공립 합창단의 322명이 서명했으며 음악대학 학생들 928명도 서명에 동참했다. 이는 실제로 음악계 내부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가치를 뚜렷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서명에는 프랑스 바스티유 국립오페라단노조 프랑스와 소바죠 위원장, 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 공연예술분과 클로드 미셸 위원장 등 해외 문화예술인들 58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일만인 선언’을 통해 “직제규정상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통보하고, 합창단원 전원을 해고”한 것은 “다년간 호흡을 맞춰온 오페라 전문합창단의 기간 성과를 포기하는 예술적 자폭행위”라며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산을 철회하고 국립오페라 발전에 더욱 더 기여할 수 있도록 규정 등 법적,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방관하는 문광부, 제멋대로 오페라단, 눈물짓는 합창단원, 문광부는 각성하라!"

국립오페라합창단 계선경 조합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합창단원들은 기자회견 이후 상자에 담은 일만인 서명용지를 문화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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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09:33

5분의 경이와 한 권의 혁명적 지식

[신간소개] 『지식ⓔ season 4』

EBS 지식채널 e, 『지식ⓔ season 4』, 북하우스, 값 12,800원.

▲ EBS 지식채널 e, 『지식ⓔ season 4』, 북하우스, 값 12,800원.



                                                                     이주호 기자

지식과 검색 정보가 같은 값으로 통용되는 시절이다 보니 지식에는 가치 판단을 들이댈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가치와 남모른 척 돌아선 지식이란 것이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검색 지식, 교과 지식이 마치 가치 판단을 유보한 듯 전달되고 그럼으로써 지식은 실용성에 극진히 봉사하거나 실생활과 유리되어 독립적인 자료의 형태로 고착되는 듯하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혜나 깨달음의 아래 단계에서 용도인 한편 몰라도 큰 불편은 없는 정보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요즘 세상 지식이란 건 대개 '유산소 운동을 하더라도 근육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근육운동은 건강에 해롭다, 치즈를 곁들여야 포도주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치즈와 포도주는 영양학상 함께 먹으면 안 된다',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런 모양새를 지켜보다 보면 지식과 지혜를 분리하여 지식을 자기 내면과 관련 없는 바깥 정보로 취급하는 자기계발 지침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이런 까닭에 상식에 맞서 지식을 혁명적 진실이라 말하기 위해선 의당 긴 설명을 달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EBS에서 방영하는 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지식채널ⓔ>의 강렬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혁명적 지식과의 만남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식ⓔ』는 <지식채널ⓔ>의 지식을 확장시킨 책이다. 말없는 5분의 경이와 책 한권에 담긴 혁명적 진실. 두 지식 매체를 연결시키려면 이 정도의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이 책은 수와 통계, 인용으로만 지식을 전달한다. 몇 가지 인용을 차례대로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지식체계가 만들어지는지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국내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할인점
10배 이상 급증

2001년 이후
소규모 슈퍼, 구멍가게
1만1,400여 곳 폐업
……
소주 한두 병 사려고 대형할인점까지 갈 수도 없고 거기서 왕창 살 물건도 돈도 없지, 뭐. 조금 비싸지만 구멍가게는 외상도 되고…

가난한 사람이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세상”
                                                                                  「구멍 없는 구멍가게」 일부

실제 다큐프로그램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없이 음악과 화면 자막만으로 5분이 채워진다. 내용을 살려 줄 수 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글자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까닭에 글자 이미지와 이미지로서의 내용은 책보다 강렬하다. 이미지가 이성보다는 감성 전달에 적합한 이유로 사회진화론적 시각을 자본 시장에 들이대며 구멍가게가 대형할인점에 맞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체념인지 반박인지 모를 말들에 어떻게 대꾸할지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위 인용구가 활자화되어 신명조든 궁서든 글자 모양이란 것이 단지 가독성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될 때는 어떤 것이 지식인지 입씨름을 각오해야만 한다.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서, 과연 지식이 검색 정보와 같은 값으로 매겨질 수 있고, 따라서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보고한 2008년 12월 27일부터 23일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시 사망한 팔레스타인 주민 1,366명, 부상자 5,380명. 같은 기간 이스라엘 측의 발표 병사 10명, 민간인 3명 사망. 이명박 정부,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한 녹색 뉴딜을 발표하며 95만 6,420명의 고용창출 효과 기대. 반면 친환경 녹색에너지 분야에 단 8%, 80%는 토목 공사의 예산이라는 발표되지 않은 수치. 더불어 이명박 정부 들어 장애아 무상보육 지원금 50억 삭감,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비 568억 삭감,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기금 지원 1천 억 삭감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치.

수는 정직하다? 어느 면에서는 그렇다. 지식으로서의 수, 통계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정직하다. 『지식ⓔ』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직한 수, 통계, 지식을 나열한다. 프로그램의 회가 거듭되고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 가면서 이 안의 지식들이 누구를 위한 지식인지 점점 분명해져 간다. 물론 책을 만드는 이들은 지식이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광우병 소고기 관련 프로그램에 명예훼손 혐의를 붙여 검찰이 MBC PD수첩 제작진을 체포하고 나섰다. 법적 지식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에 대한 물음도 물음이지만 『지식ⓔ』3권에 실렸던, 광우병을 내용으로 한 「17년 후」를 제작한 PD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이명박을 비롯해 미제쇠고기를 먹지 못해 안달 난 이들이 가진 지식과 PD수첩이나 「17년 후」를 제작한 이들의 지식을 비교해 볼 때 드디어 지식의 정체가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지식은 없다. 지식은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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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09:28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생명과학

[연극리뷰]《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시리즈의 집대성으로 평가되는, 생명과학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시리즈의 집대성으로 평가되는, 생명과학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박휘진 기자

21세기의 과학은 범인들이 쉬 접할 수 없는 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팽팽 돌아가는 유전자지도, 전자현미경으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안 나오는 분자구조들, 뚜껑만 열었다하면 짜증부터 나는 컴퓨터. 21세기 과학의 결과물들은 가까이 하려해도 정부터 떨어지고 마는 것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과학은 모든 삶의 근간이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은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접속해 있고, 시중에 파는 음식들은 온통 GMO(유전자조작식품)들이지 않은가.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복제실험들은 정말 우리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 가까운 미래에 공상소설의 한 캐릭터처럼 심장은 돼지에게서, 간은 말에게서, 신장은 개에게서 받은 사람이 옆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실험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통 연극은 과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배우의 연기도 과장되고, 캐릭터도 과장되어 있다. 그래서 쉽게 몰입하기도 하지만 쉽게 불편해지기도 한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길거리에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일상의 모습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연극은 다르다. 입장을 허락받고 좌석을 찾아 해맬 때도 무대는 이미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뿐만 아니라 배우도 이미 연기중이다.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열심히 책자를 읽고 있고, 칠판 앞에 어리바리한 여자는 한자로 ‘물질, 생명, 뇌’를 적는다. 그러다 그 공간을 통과하던 사람들이 슬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없어진 케이크 이야기, 한쪽에서는 얼마 안 남은 교생실습이야기. 어떤 안내 멘트도 없이 연극은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것이다. 어둠을 뚫고 한줄기 핀조명을 받으며 휘황하게 등장하는 배우 대신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인물이 눈앞에 있다. 이게 바로 이 연극의 묘미다. 카페에 진을 치고 앉아 이쪽저쪽 테이블의 수다를 엿듣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더 재밌는 상황을 찾는, 그 재미를 연극에서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평소라면 애써 모른 척 했을 과학 이야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된다.

무대 위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이내 하나의 화제에 집중한다. 화제의 중심에는 ‘뇌’가 있다. 이 연구실은 얼마 전 전쟁에 참여했다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세계적인 뇌과학자 ‘알렌 클래식’의 ‘뇌’를 보관하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의 ‘뇌’는 배양액 속에서 살아있다. 아니 최적의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알렌의 뇌가 끊임없이 뇌파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뇌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일단 진정하자. 이 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쓰인 것이니까. 이때부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과 대답, 아니 수다 한판이 신나게 벌어진다. ‘뇌만 살아있는 게 가능한 것인지. 그게 가능하다면 과연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뇌를 배양액 속에서 살릴 수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식할 수도 있다는 것인지. 뇌이식이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누구라고 해야 하는지. 뇌 주인이 신체의 주인인 것인지, 신체의 주인이 뇌주인이 되는 것인지. 혹시 인공신장, 인공심장처럼 인공뇌도 만들 수 있는지. 인공뇌를 이식받은 이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등 뇌과학을 둘러싼 쟁점들이 날카롭게 제기된다.

생명과학에서는 빠질 수 없는 쟁점 ‘복제’에 대한 논란도 화두에 오른다. 자폐증 연구를 위해 복제원숭이를 실험대상으로 사용하는 연구원과 유인원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정면으로 부딪힌다. 자폐증을 연구하는 연구원은 사흘에 한 마리꼴로 원숭이를 죽인다. “인간을 위해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써도 되는 것이냐. 복제원숭이라 괜찮다고 하는데, 복제한 원숭이는 우리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것이냐. 인간이 복제가 가능하다면 인간으로도 실험을 할 것이냐.” 며 유인원연구소의 연구원은 그를 매섭게 공격한다. 그러나 뇌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먼 이야기 같았다면 이 두 연구원의 언쟁은 비판의 날을 날카롭게 세울 수 없게 만든다. 자폐연구를 하는 연구원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 아이의 엄마다. 과학연구와 삶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을 때 이성적 비판은 그 힘을 잃는다. 아니 어쩌면 비판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당한다.

따라서 이제는 과학연구실을 엿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개인이 맞서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공간을 확장해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학적 논의들은 이미 달나라를 거처 먼 우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지만, 과학은 별빛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범접할 수 없는 세계로 약올리듯 달려나가는 과학을 ‘철학’과 만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과학의 빛은 ‘핵’ 이상의 것일 게 분명하다.

교생실습을 나가는 학부생이 이런 말을 한다. “뇌과학이 발달한다면 저는 모든 것이 분명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예술도 마찬가지죠. 인간이 어떤 것에 감동하고, 어떤 것을 아름답다 느끼는지를 알게 되면 예술도 과학이 됩니다.”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섬뜩해 하는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야만 했던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조우했다. 그 자리에 그녀들의 연인이 있었다면, 그 둘은 닮지 않았을까.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는 그녀들의 외모가 비슷한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지는 않을까. 말하자면 이런 거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하다는 사랑도 사실은 과학처럼 어떤 조건과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 법칙이 발견만 된다면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혹시 이말은 곧, 내 감정이 누군가에 의해서 컨트롤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닐까. 이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을 보길 권한다.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시리즈의 집대성으로 평가되는, 생명과학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의 과학연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며 4월 12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3만원.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의 한장면.정말 뇌과학이 발달하면 모든 것은 분명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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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0:29

MB 1년, 정치경제 도구로 전락한 문화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 토론회’ 참관기
                                                                          지현 _ 문화연대 활동가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토론회'에 참여한 패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토론회'에 참여한 패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 19일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문화정책 진단 토론회 <위기의 문화정책, 길을 묻다>”가 국회의원회관 128호에서 열렸다.(주최/주관 : 문화연대 후원 : 국회의원 최문순) 이번 토론회는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 평가를 통해 현재 문화․예술계가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토론회의 기조발제를 한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의 특징은 권위적이며 시장주의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과 비교해보면 이번 정부의 문화정책은 ‘선진화, 경제, 산업, 경쟁력’에 대한 가치지향이 뚜렷하며, 이전의 정부가 크게 내세웠던 문화적 자율성, 문화행정의 자율성이 생략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원용진 집행위원장은 작년 문화부에서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기조 및 주요정책발표계획’의 경우,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기조를 알리는 데에만 주력하고 거의 일정조차 지켜내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이 연역적이고 하향식 슬로건을 담고 있어 미리 정해진 목표와 기조에 맞추어 정책을 내놓다보니, 구체적 실행 가능성을 타진하기보다는 정책을 내기에만 급급한 현실이라는 비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사회적 시스템을 넘어 궁극적으로 다양한 삶의 감수성과 이상을 지원하는 영역으로서의 본래의 목표를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정책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한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1년 문화부에 대해 “한마디로 한 일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검증조차 되지 않은 유인촌 장관을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못박았다. 이원재 처장은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잠재되고 축적되어 있던 문화정책에 대한 역량조차도 권위적으로 억압하고 유실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이전 정부들의 성과를 부정하기에 급급할 뿐 이를 상쇄할만한 비전과 정책은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으며, 문화정책을 경제ㆍ정치적 도구의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에 대한 철학의 부재, 문화정책을 둘러싼 전문성 부재, 정치 및 경제적 우월주의, 고민과 성찰 없는 문화 이벤트 등은 문화정책의 파국을 낳고 있으며, 그 결과 문화정책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경제지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발제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1년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1)정치적 경제적 도구가 되어 버린 문화정책 2)기본도 원칙도 없는 사유화된 문화정책 3)배제와 갈등을 조장하는 문화정책 4)문화민주주의와 문화공공성 없는 문화정책으로 규정하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극단적인 시장지향적 정부로서 시장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환경부는 가장 반환경적이고, 노동부도 가장 반노동적이며, 문화부 역시 가장 반문화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기를 만들어가면서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공적인 공간에서 이런 것들을 차단시키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는 ‘핵심적인 문화정책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건종 교수는 “문화적 능력을 통해서만 시장이 극복되며, 시장화 된 삶에 대안적인 능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문화적 능력”이라고 규정하며, “대중 속에서 시장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은 <워낭소리>를 통해 독립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TV나 기존 영화에서 다루지 않고 산업이 놓쳐왔던 볼만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같은데, 정책 담당자들은 ‘독립영화’를 ‘빨갱이’, ‘좌파’를 지칭하는 말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화진흥정책에는 현재 ‘독립영화’라는 명칭자체가 없으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다양성 영화 전용관’으로 바꾸었다는 것. 원승환 소장은 3“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등장한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가 어느 순간 그 말이 담고 있는 ‘문화 다양성’의 의미는 사라지고, ‘빨갱이 영화’를 대신하는 중립적 용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현 정부는 “산업 중심의 정책만 남겨두고 영진위 위원들을 거수기로 전락시켜 영진위의 본래 기능을 마비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강한섭 위원장의 ‘3D(디지털 다운로드, DVD, 다큐멘터리) 시장 창출’을 발표에 대해서도 “정책상으로 새로울 바가 없고 오히려 영화인들을 3D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글로벌 영화산업’의 미래가 어디 있는 건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정찬일 전 담양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문화예술교육팀장은 이명박 정부 하의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하여 지역의 미래를 우려했다. 그는 “현재 지역에 25개 정도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센터가 있는데 앞으로 확대가 가능할 것인지가 의문”이라며, 서울에는 많은 인력과 인프라가 있지만 지역에는 전무한 상황을 지적하였다. 또, 다양한 단체들에게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맞는 물적, 인적 컨텐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임을 설명하면서, 관련 제도ㆍ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강사 발대식을 언급하며, “예술 강사의 많은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지역에 있는 문화들이 학교로 결합할 수 있는 지역의 인프라구축, 프로젝트 등이 필요한데, 현재 이명박 정부의 경우 오로지 1인 강사 위주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기능위주로 가고 있다”며 비판했다. 문화예술교육 강사 사업이 사실상 학생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중심의 정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작년 한해 지역 현장에서도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정책 토론의 자리가 전무했음을 지적하고, 정책 입안자들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정책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은 “현재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문화정책을 포장, 분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정책에서 ‘가치’의 영역을 배제하고, 노골적인 ‘통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문화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정희섭 소장은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이전 정부가 열심히 한 것을 지우려고 하는 ‘지우기 정책’, 노골적인 ‘정치주의’, 현장에 대한 고려 없는 즉흥적 ‘땜질 정책’이라고 요약하였다. 정희섭 소장은 “더 이상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기대를 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것을 기대할 필요 없이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의 전부로 봐야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참여정부 이래로 문화정책의 대상자들이 점점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며 예술가, 창작가,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스스로 체질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정희섭 소장은 이제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기대를 버리되 포기하지 말고, 더 주목하고 경고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할 때”라며,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비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 최문순 국회의원은 지난 1년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대대적인 인적청산과 문화의 정치도구화를 비판하였다. 최문순 의원은 작년 각 기관장들의 해임 과정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거나 기관장들을 협박한 후 감사, 수사를 하고 소송을 못하도록 추가 감사를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몰염치한 인사행정으로 대대적인 인적청산과 낙하산 보은 인사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현재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빈곤’ 상태인 동시에 행정능력마저 저하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책의 실패를 홍보의 실패로 호도하는 무지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 정책의 일방적 홍보만을 주장하며 문화의 정치화, 정치 홍보화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최문순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일수불퇴’, ‘초지일관’의 태도를 지적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민주주의 토대 하에 기능하는 정부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 토론자 모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문화가 경제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며, 이로 인해 현재의 문화예술계가 문화적 다양성과 자율성 침해 등으로 퇴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참석자들은 정책은 없이 공보적 기능으로 전략한 문화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은 소통ㆍ일관성ㆍ공공성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음을 비판하였다. 또한 참석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다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비판이 필요한 때라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교류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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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0:27

국내 신작 다큐 영화와의 반가운 만남

한독협,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개최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 <인디다큐페스티벌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이주호 기자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주제로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명보아트홀에서 개최된다. 26일 7시 명보아트홀에서 개막하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는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김경만, 2008), <잊지 않을 거야>(영, 2009), <철탑, 2008년 2월25일 박현상씨>(변해원, 2008) 등 단편 3편이 선정되었다.

이외 <워낭소리>의 고영재 PD가 제작을 맡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장편 다큐멘터리 <농민가>(윤덕현, 2008)와 기지촌의 새 이름인 아메리칸 앨리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아메리칸 앨리>(김동령, 2008)를 비롯한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 35편과 해외작 7편이 상영된다.

부대행사로는 3월 27일 금요일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6편의 영화를 연속 상영하는 심야상영회와 29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저녁 8시 30분 창고극장에서 감독들과 대화할 수 있는 <다큐로 이야기하기> 등이 준비되어 있다.

1회 관람료는 5,000원이며 상영일정을 비롯한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홈페이지(http://stunet.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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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0:25

[김성희의 페이지]그만 쳐 놀려라, 비비디바비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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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2:40

‘정명훈’인가 ‘정명박’인가?

예술가의 연대요청에 대한 정명훈식 대응법
목수정 _ 진보신당 당원
합창단원이나 오케스트라단원 정도는 그저 자신의 위대한 예술을 위한 사소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한 정명훈의 발언은 연대나 인권, 노동자의 권리 따위의 개념을 송두리째 결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합창단원이나 오케스트라단원 정도는 그저 자신의 위대한 예술을 위한 사소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한 정명훈의 발언은 연대나 인권, 노동자의 권리 따위의 개념을 송두리째 결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파리에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은 하루아침에 유례없는 방식으로 전원 해고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소식을 접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그들의 복직을 위한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 - 공연예술노조 위원장, 파리 오페라 합창단 단원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 등 - 은 우리의 설명을 들은 지 3분 만에 정황을 파악하고, 이 놀라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와 지지의 뜻을 즉각 표했다. 공연예술노조에선 하루 만에 지지 성명서를 발표해 주었고, 바스티유오페라의 합창단원은 거의 대부분 주저 없이 서명해 주었으며 한국 오페라 합창단 단원의 복직을 지지하는 거리콘서트 에 대한 논의도 자체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모든 프랑스 예술가들은 한결같이 정명훈을 만나서 지원을 호소할 것을 조언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정명훈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예술권력자의 한사람이었기에.
 
그가 2004년 국립오페라합창단과 까르멘 공연을 한 후, 자기가 만난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합창단의 해체 소식에 예술가의 양심을 발휘해주기를 우린 바랬다. 정명훈은 또한, 1994년 그를 부당 해고한 오페라 바스티유극장 측과 힘겨운 소송을 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당시 오페라 바스티유 극장의 노조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으며 뼈아픈 경험을 이겨낸 그였기에, 비슷한 사안에 대하여 그가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힘을 보탤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명박과 막역한 사이이긴 하나, 예술가의 순진함에 기인하는 불행한 사건일 것이라고 애써 짐작하며.

3월 20일,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샤틀레 극장에 갔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그 콘서트는 완벽하게 우리를 고무시켰다. 나와, 함께 간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당원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정신이 맑지 않을 수 없고, 정의와 진리를 담지 않을 수 없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뒤편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린 한국 사람들이고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운을 떼자, 그는 대뜸 비서를 불러서 그 사람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의 비서에게 우리가 가져간 서명운동 용지를 보여주며,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를 설명했다. 그녀는 정명훈이 아마도 이 사실들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오페라 합창단원들이 그의 형을 통해 정명훈의 지원을 호소했던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만, 그 비서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가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이 내용을 전달해 주고 그에게 서명하도록 할테니 아침에 호텔에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어로 된 문서를 보고, 한국어였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고 언질을 주었다.

한국의 합창단원들은 문화부, 오페라단과 담판을 벌이는 중요한 날인 다음 주 화요일까지 이 모든 서명을 받기를 원하고, 그는 내일 아침 떠나고... 우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근처 사이버까페에 가서 한국어 본을 출력하여 밤에 호텔에 전달하기로 했다. 서명보다 더 중요한건 그의 생각이고, 지지의 발언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중요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갔다는 정명훈씨가 지금쯤 와 있으리라 생각하고. 뫼리스 호텔에 도착했더니 그는 1층 레스토랑에서 몇몇 사람들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기왕 온 김에 단 3분이라도 그에게 우리의 육성으로 절박한 현실을 전하고 그의 예술가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기에. 우린 그에게 전달할 문서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호텔의 한 직원이 우리에게 누구와 약속이 있냐고 묻고, 그렇지 않다면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돈 많은 현대의 귀족들의 충실한 심복 같은 그들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쫓아낼 판이었다. 실랑이 끝에 겨우 정명훈에게 남길 메시지와 한글로 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문서를 남기면 호텔측에서 그 문서를 전달하기로 하고, 글을 거의 다 쓸 무렵, 마침 그 때 그들의 긴 만찬이 끝이 났다. 정명훈은 우릴 발견하자마자 다가왔다. 


합창단 해고해도 다음날 500명 모인다?

조금 전 비서에게 전한 문건을 손에 쥐고 흔들어 대며, “도대체 이게 뭐에요. 이게 뭐하자는 일이에요”. 나는 그의 말을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의 경악스러움에 대한 표현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오해였다. 그는 도대체 왜 그깟 합창단 하나 없어진 일이 뭐가 대수라고 지금 여기까지 자길 찾아와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기자도 아니고, 에이전시도 아니고... 도대체 우리를 어떤 사람들로 분류할지를 모르는 듯 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사회적 연대 따위를 요청해 온 일은 없는 사람처럼. 약간의 설명 끝에 대충 감 잡은 그는,
“이 합창단이 없어졌다고, 그 합창단을 살려야 되겠다고 지금 여기 와 있는 거에요?
그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들을 꼭 구해야 되요? ”

“선생님이랑 함께 공연했고, 2004년 까르멘 공연하셨을 때, 프랑스에도 없는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하신 바 있는 합창단입니다. 그냥 합창단 하나가 아니라, 국립오페라단에 있는 한국에선 유일한 상설 오페라합창단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그 상황을 전하고 선생님의 도움을 청하고자 온 것입니다. 이 합창단을 없애고, 더 좋은 사람들을 뽑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상설합창단을 없애고, 앞으로 모든 공연을 건별로 대학생 단체 같은 곳과 계약해서 공연하기로 한답니다.”

오페라합창단이 간직하고 있는 그의 찬사는 지나가는 립서비스였는지 그는 자신의 그 합창단에 대한 칭찬을 기억초자 하지 못했다.
 
“뭐요? 언제 같이 공연했다구요? ”하고 되물었다.
“한국은 합창단 해체해도 다음날이면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 금방 모입니다. 한국에서는 합창단 때문에는 아무 문제없어요. 그런데 대체 왜 해체했다는 겁니까, 이유가 뭐래요? ”

“그야 물론 경영효율, 예산절감이 이유죠. 표면적인 이유는 상설합창단을 둘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거고.”  

“거봐요. 예산이 없다는 거 아니에요. 그 예산 당신들이 어디서 만들 거에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건데. 당신들이 나서서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아니요. 오히려 오페라단 예산은 올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를 잘못 두고 있는 게 문제죠.”

“이봐요. 내가 서울시향에 있는데 거기서 일 년에 5-6명씩 해고당해요.
여기만 해고당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온 나라가 다 그러구 있는데, 
합창단 하나 없어졌다고...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그리고,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에 서명하라구?”

우린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단원들이 서명한 서명지를 보여주며, “거의 모든 합창단원들이
서명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나 정부에서 오로지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서명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프랑스에서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6페이지에 빼곡히 담긴 바스티유오페라단원들의 서명을 보면서도 그의 태도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없었다.

합창단원이나 오케스트라단원 정도는 간단하게 소모품
취급해버리는 그는 연대나 인권, 노동자의 권리 따위의 개념을
송두리째 결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사진 공공노조)

“그거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내가 한국 가서 이거 알아 볼 꺼에요.
오페라 단장한테 물어보죠. 어떻게 된건지.”

그의 말이 맞다. 그가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서명을 (할리도 없겠지만) 한다한들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 그의 본심을 알았으니, 우린 더 기대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가 사건의 정황을 묻게 될, 해고 당사자 오페라 단장한테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너무나 뻔했다. 그는 그들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터이다.


미국에 구걸하던 사람들이, 이젠 미국쇠고기를 안 먹겠다고?

늦은 밤이니 빨리 투숙할 것을 종용하는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 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초반에 자기소개를 했음에도, 그는 다시 한 번 남의 일을 위해 한밤중에 그에게 달려온 우리를 외계인 보듯 하며 왜 남의 일에 나서서 이러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운동을(militant)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예술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함께 일하는 세상을 위해서 연대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는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주나 하면서 손 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게 말이나 되는... 알았어요. 알았어.”

촛불을 든 시민들을 천민으로 묘사한 한나라당 주성영의원의 망언이 언뜻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투와 어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서 익히 접해오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이 대목에선 우린 둘 다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위대한 예술가 정명훈인지. 바로 조금 전 우리의 영혼을 황홀하게 감싸주던 음악을 선사하던 그 지휘자가 맞는지. 잠시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예술가들을 거리의 불쌍한 걸인 취급하는 저 인간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내 눈빛에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무한한 경멸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을 읽었는지, 정명훈은 제대로 역정이 났다.

“도대체 제 정신을 좀 차리세요. 공부 좀 하란 말이야. 세상이 그런 게 아니야. 이 계집애들이 말야. 한밤중에 찾아와서.”

비속어까지 서슴지 않는 그를 향해, 나는 그에게 제대로 적합한 말인 “정신차리라”는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당신이나 정신 차리세요!” 

그는 거의 우리를 때릴 듯이 씩씩거리며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아프리카에나 가라구”. 다시 한 번 아프리카를 들먹이며 코 앞까지 다가와서 소리 질렀고, “기도하라구. 기도” 하는 말을 끝으로 올라갔다.

그의 마지막 말.
“기도하라”.
그에게도 이명박이 서울을 봉헌했던, 그래서 그를 도왔던 하느님이 있었나보다.

나와 성악하는 학생은 분노와 충격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걸었다. 그녀는 울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 예술가가 저토록 상상할 수 없는 사상의 오물을 잔뜩 머리에 품고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린 소화하기 힘들었다. 예술 전체에 대해, 인생 전체에 대해 거대한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문득 호텔로 오기 전, 샤틀레 극장 주변 까페에서 만난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말이 생각났다. 우린 거기서 만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한국에서의 사태를 설명했고, 그들은 모두 경악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해줄 것을 약속했다. 우리가 혹시 정명훈에게 당신들이 동참을 호소할 순 없느냐는 제안에는 단호히 불가를 표명했다. 정명훈은 정치적 사안에는 늘 거리를 둔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곁들이는 말이, “당신들 지금처럼 파업하면 한국에선 감옥에 가”. 라고 정명훈이 라디오 프랑스 단원들에게 말했다는 거다.

그동안 어떻게 저 고매한 예술가가 이명박과 손발이 맞아 수년간 파트너쉽을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한 방에 해결되었다. 


정명훈 씨, 고맙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그는 연대나 인권, 노동자의 권리 따위의 개념을 송두리째 결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합창단원이나 오케스트라단원 정도는 그저 자신의 위대한 예술을 위한 사소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한 발언. 다 갖다 버려도 다음날 얼마든지 손쉽게 충전할 수 있는 건전지라도 되는 듯. 그 사고의 경박함은 이명박, 유인촌, 이소영과 그가 한 치의 차이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우리가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린 결례를 범하긴 했다. 그러나 조용히 옆의 로비에서 기다렸고, 그가 우리를 마주친 시간이 1시였던건, 그들의 긴 만찬이 끝난 시간이 1시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짧은 시간에 자료를 읽어야 할 그가 한국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는 초반에 “한국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약속도 안 잡고 무례하게 무조건 사람을 기다리고 끼어든다”면서 우리를 한참 나무랐다. 언짢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잠시 3분 정도 우리의 설명을 듣고, 알겠다고 하면서 읽어보겠다고 하며 서명지를 들고 객실로 올라갔어도, 우린 그의 수면을 단지 3분 정도 지체시킬 뿐이다. 긴 얘기를 한 건 그였고, 우린 그가 쏟아내는, 사상의 오물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포극을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우린 너무 빨리 넘어갔고, 그것의 연출가가 같은 사람이란 사실에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촛불 발언부터 계집애 발언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준 정명훈이 차라리 고맙다.
(사진 공공노조)

1994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을 때, 그는 노조의 지원을 받아 함께 싸웠고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현재 지휘하는 서울시립합창단에는 노조가 없다. 그가 취임하면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무슨 노조냐” 면서 노조에 대해 못을 박았기에 단원들은 감히 노조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무노조 경영 삼성과 비슷하다.

그가 현재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에도 그가 지휘했던 바스티유 오페라에도 강력한 노조가 있다. 한국에서 가진 제왕적 권력이 거기에선 당연히 없는 탓이다. 2007년, 오페라 바스티유는 열흘이 넘는 강도 높은 파업을 하기도 했다. 무려 4만9천명에 달하는 고객들에 대한 환불사태가 있었다. 이곳의 예술가들이 지금의 안정적인 대우를 받으며 -합창단 연봉은 한화로 약 8천5백만원 내외, 오케스트라 단원은 1억원 내외이며 은퇴까지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이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을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예술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창작기반을 위협하는 경영자의 어떤 요구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연대와 투쟁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당히 대우하는 이 사회의 예술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수반되었던 까닭이다.
 
가장 강력한 지원을 기대했던 정명훈을 통해 전원해고 사태를 가능하게 했던 문화 통치자들의 사고의 핵심을 오히려 들을 수 있었다. 문득, 그가 정직하고 양심있는 예술가였더라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그 수많은 문화예술계에서의 사건에서 그 어떤 입장표명도 하지않고 지내올 순 없었을 것임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정명훈은 아름다운 소리를 이끌어내지만 그 소리의 구체적인 주체는 연주자들과 합창단들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예술가로 대우하지 않고, 소모품 정도로 간주하는 그는 더 이상 존경을 바칠 수 있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권력자의 그늘 아래 안거하면서, 그가 나눠주는 달콤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우리시대가 만든 신화의 슬픈 이면이었다. 우리가 쇼크를 받는 수고를 감수했을지언정, 그럴싸하게 포장된 무관심을 드러내기보다, 촛불 발언부터 계집애 발언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준 정명훈이 차라리 고맙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막강한 권력자의 마술지팡이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친절한 권력도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선물해 주진 않는다. 예술노동자들 스스로가 보다 넓은 연대의 틀에서 그것을 쟁취하려고 나서지 않는 한. 연대의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서명에 동참했던 모든 프랑스 예술가들이 정명훈의 발언을 접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다.

정명훈이 일하는 라디오프랑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그가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유네세프 친선대사로 있으면서 그는 여기저기서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가지기도 했다.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콘서트를 여는 자비를 베풀 수 있을지언정, 수십명의 예술가들이 일 할 수 있는 터전을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아도 채워 넣을 예술가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아무상관 없다는, 구세계의 모순에 온전히 빠져있는 자기중심의 거룩한 예술가. 어마어마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정녕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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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2:37

동네책방, 랩이 흐르다

'랩하는 박하’의 인문학책방 랩 소공연
박휘진 기자
랩퍼 '랩하는 박하'(박하재홍)가  동네책방 랩 소공연을 기획했다. 첫 공연은 4월 10일 광주 '청년 글방'에서 열린다.
▲ 랩퍼 '랩하는 박하'(박하재홍)가 동네책방 랩 소공연을 기획했다. 첫 공연은 4월 10일 광주 '청년 글방'에서 열린다.

랩퍼 ‘랩하는 박하’(박하재홍)가 서울 뿐 아니라 인천, 광주, 부산, 홍천까지 전국 곳곳의 동네책방을 순회한다. ‘랩하는 박하’는 2003년 비폭력주의 랩 그룹 ‘실버라이닝’을 결성, 약 320여 회의 공연을 해온 나름 ‘공연의 달인’이다. 지금은 동물권리 운동과 생태주의자들의 시골 생활에 관심을 쏟고 있는 그가 이번엔 거리가 아니라 동네 책방 공연을 기획했다.

랩퍼가 책방에서 랩을 한다? 서울 시내 으리으리한 서점에서 랩을 들었던 적이 있었나. 클래식 선율이 대기를 장악한 서점만 경험해 본 이들에게는 이처럼 안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랩은 가사 내용에 따라 하위 장르가 세분화 될 정도로, 문학적인 음악이다. 또한 음악 양식 들 중 가장 서술적인 음악이며, 창작자의 관점이 치열하게 드러나는 음악이기도 하다. 때문에 책방과 랩퍼는 도리어 자연스럽고 친숙할 수 있다.

근데 왜 굳이 동네책방인걸까. 사실 이번 기획공연이 이루어지는 책방들은 알 사람들은 다 안다는 유명한 인문사회학책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제목이 ‘동네책방’인 것은, 공동체 ‘스스로 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공연은 랩 가사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완성된 음악을 들려주는 형식과 랩워크숍을 진행하는 형식 중 한 가지로 진행된다. 전자의 경우  ▲라임연습장 - 선의 나침반 ▲계화갯벌이야기 - 새만금,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Mia bela birdo - 자멘호프의 평화사상 ▲꽃들에게 힙합을 - 꽃들에게 희망을 ▲Meat is Murder - 동물해방 ▲팔레스타인 소년의 편지 - 가자에 띄운 편지 ▲구름만이 아는 대답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순이 베러 블루스 - 휴머니즘의 동물학 등 8곡의 랩과 8권의 책이 소개될 것이다. 랩워크숍 공연에서는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랩을 만들어보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현재 공연이 확정된 곳은 4월 10일 광주 <청년글방>, 4월 11일 부산 <인디고서원>, 4월 17일 서울 강남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5월 9일 서울 은평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5월 10일 인천 책방거리 <스페이스빔> 등이다. 공연 입장료는 정해져 있진 않지만 책방 후원의 의미로 소정의 입장료, 혹은 공연 후 자율기부를 정할 수도 있다.

혹, 랩하는 박하와 아직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와 뜻을 같이 하고 싶은 책방은 그(박하재홍)와 연락을 취해보시라.  011-9885-6022 buzz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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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2:35

[학술소식]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국경을 넘는 연대’ 외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3월 31일부터 사흘간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석학강좌Ⅱ'국경을 넘는 연대'를 개최한다
▲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3월 31일부터 사흘간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석학강좌Ⅱ'국경을 넘는 연대'를 개최한다

                                              박휘진 기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석학강좌 ‘국경을 넘는 연대’>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3월 31일부터 사흘간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석학강좌Ⅱ를 개최한다. 작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이번 석학강좌에는 니시카와 나가오와 니시카와 유코가 초빙되었으며, 주제로는 ‘국경을 넘는 연대’가 선정됐다. 니시카와 나가오와 니시카와 유코는 강좌에 참여하는 3일간 ▲프랑스혁명 재론 ―혁명은 식민지주의를 극복했는가(니시카와 나가오) ▲국가와 가족 ―일본형 근대가족과 표상으로서의 주거(니시카와 유코) ▲국내(내적) 식민지를 둘러싼 고찰 ―식민지주의론의 심화를 위해(니시카와 나가오)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양대 비교문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이번 행사를 통해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반일 감정 등이 여과 없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 즉 국민국가를 자명한 것으로 인지하면서 국민국가의 외부에 있는 타자를 배제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나아가 국가 안팎의 식민지주의를 극복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 의:비교역사문화연구소, 02-2220-0545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3월 27일 서울대 인문대학 산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학술대회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한국사회와 지역연구’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의 새로운 모델’ 두 분야로 나눠 진행되며, ▲한국사회와 지역연구의 방향성(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지역연구 조직화 및 후진양성 모델: 동남아연구 사례(전제성 전북대학교) ▲인문한국 해외지역연구소 운영경험과 제언(유승만 한양대 유라시아연구사업단)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와 범위 설정의 다양성 문제(박병규 고려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사업 통합 메트릭스 구축방안(이상현부산외국어대학교 HK교수) ▲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등 총 6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문의: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02 - 880-8065 


<이화학술원 강좌 ‘우주의 탄생’>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은 3월 27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에서 제7회 이화학술원강좌 ‘우주의 탄생(The Beginning of the Universe)’을 개최한다. 강사로는 이화학술원의 해외석좌교수이자,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신 조지 F. 스무트 교수가 초빙되었다. 문의:이화학술원, 02-3277-6576


<좌파의 역사 실험실, 라틴아메리카>

사회공공연구소는 4월 7일부터 4주간 매주 화요일, 사회공공연구소 교육실에서 열린 강좌 ‘좌파의 역사 실험실, 라틴아메리카’를 진행한다. 강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낸 7년 동안 그곳에서 진행되는 과감한 대안 실험들을 경험한 라틴아메리카 전문기자 박정훈(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았다. 강연주제로는 ▲좌파의 역사 실험실, 라틴아메리카 ▲게릴라 혁명의 마지막 주자, 라울의 쿠바/ 자치 민주주의자, 사빠띠스따의 멕시코 ▲21세기 사회주의(?),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현실주의 신좌파, 룰라의 브라질 등이 선정되었다. 문의:사회공공연구소, 02-832-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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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09:20

21세기 유목민을 위한 작은 집

[전시리뷰]안규철 전 (3.11 - 4.26, 공간화랑)
                                                                                                  이선영 _ 미술평론가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2.6 평방미터의 집’이라는 부제로 열린 안규철 전은 개인이 홀로 칩거하고 이동하기에 적합한 크기와 형태를 지닌 집에 대한 아이디어들과 모형, 그리고 실제의 집에 근접한 입체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목재 합판 등으로 만들어진 1인용 집은 햇빛을 받아들이는 널찍한 천정 창과 열리면 바닥으로 연장되는 벽으로 되어 있고, 침대와 책걸상이 구비되어 있다. 자투리 공간에 책들이 꽂힌 미니 책꽂이 겸 침구 수납대가 설치되어 있어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설계한 흔적이 보인다. 이 작은 집은 자족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이 밖으로 펼쳐져 있을 때 햇빛과 별빛과 바람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문과 벽을 닫으면 박스 형태가 된다. 박스는 이 집이 완전 밀폐될 수 있다는 것과 이동가능성을 예시한다. 자동차에서 전형적이듯이, 밀폐와 이동은 서로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이 된다.

안규철의 작은 집은 머무름과 떠남이 이항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구조 속에서도 많이 할애된 기능은 독서와 수면을 위한 공간이다. 독서나 수면은 이동 가능한 이 집처럼 내면이나 무의식으로의 여행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드러난다. 이 집에는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전등 외에 콘센트가 필요한 도구는 없다. 홀로 있음을 무력화시키는 기계들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이 집은 거주할 수는 있지만, 캠핑카나 컨테이너 같은 실제 집의 축소판이기 보다는, 생산과 소비 활동으로 번잡한 속세와 거리를 둔 특화된 집에 가깝다. 단출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도 나는 그것들은 마치 시인이나 수도사의 방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물질적 풍요에 헛배 부른 현대인은 시간의 가난뱅이인 만큼이나 공간의 가난뱅이다. 이미 현대생활의 많은 부분이 비좁은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시원, 쪽방, 구루마, 망루, 천막, 자동차 등등. 대부분이 이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억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비좁은 것과 작은 것은 다르다. 이동 가능한 안규철의 작은 집은 머무름과 떠남이 이항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안규철이 고안한 집들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작가는 이미 자세한 시방서를 가지고 있을 듯싶다.

스케치는 실제 주거공간보다 자유롭게 작가의 발상을 펼쳐낸 것으로, 접고 펼칠 수 있는 집, 바퀴달린 집 등 1인용 포터블 하우스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매뉴얼로 구성된다. 작은 모형들은 접히는 지붕, 상자형태의 공간, 계단으로 연결된 3층 구조물 등으로, 실제로 3차원 상에서 구현될 수 있는 축소 모델들이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사람다리의 연결된 모형은 달팽이나 거북이, 소라 같은 동물들에서와 같은 몸-거주 복합체를 떠오르게 한다. 안규철이 고안한 집들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작가는 이미 자세한 시방서를 가지고 있을 듯싶다. 전시장에 구현된 3채의 집은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일부가 구현된 것에 불과하다.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집들은 기능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이다. 그것은 아기자기한 내부구조나 시설이 아니라, 한사람이 은거할 수 있는 집약된 형태를 강조한다.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집들은 상징적이다. 
한사람이 은거할 수 있는 집약된 형태를 강조한다.

야외에 서 있는 다각형 원뿔형 집은 공격과 방어와
연관된 보다 긴장된 형태를 구축한다.

한 구멍을 하나씩 차지하도록 되어 있는 그것은 차이가 있을 뿐, 지배적 사회가 그러하듯 차이가 위계로 변화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고립된 그것들이 미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전체주의적인 힘에 무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다각형으로 조립된 둥근 주거지 내부는 푹신하고, 개방된 윗부분은 우산이 뚜껑이다. 안에서 발을 구르면 굴러서 이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야외에 서 있는 다각형 원뿔형 집은 공격과 방어와 연관된 보다 긴장된 형태를 구축한다. 구조물은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상황과 표정이 있다. 일인용 이동 주거지는 이중적이다. 인생이 그렇듯이, 홀로 있다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떠날 수 있다고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고립과 유폐가 아니라 타자와 더 행복하게 만나기 위해 자신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된다. 때로 그것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점과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한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몸은 직접 접속하기도 한다.
몸은 세계의 상징적 중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과 연결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창틀에 놓인 작은 구조물에 나타난 것처럼, 기하학적 입방체와 몸은 직접 접속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몸은 세계의 상징적 중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과 연결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건축적 형식으로 구축된 공간 역시 추상적이거나 중성적이지 않다. 공간은 건조해 보이지만 거주자의 욕망과 꿈이 스며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이, 그리고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 있다. 그곳의 거주민인 유목민은 주어진 경계 안에 온전히 속해야 하는 동질화된 압력으로부터 도피하면서도, 그 경계의 부당함을 침해하는 위반을 꿈꾼다. 자크 아탈리는 [미로]와 [21세기 사전]에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폭력이 활개를 칠 21세기는 각 개인이 고독 속에 들어 앉아 유목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사막화된 세계를 횡단해야 하는 유목인들에게는 직선과 속도로 설정되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이들에게 세계는 미로이며, 이를 통과하기 위해 진리 대신에 지혜가, 이성 대신에 계시가 필요하다.

안규철은 2004년 로댕 갤러리에서 발표한 대작 [49개의 문이 있는 방]에서 미로의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커다란 가방처럼, 이 작은 집들은 미로로서의 세계와 역사를 통과하기 위한 유목 도구일수도 있다. 자크 아탈리에 의하면 유목민은 자기 집을 가지고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으며, 주요 오아시스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뿌리의 개념이 점차 희박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민이나 소비자 혹은 노동자가 되듯이 앞으로는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유목은 오늘날 소비적 관광, 종교적 순례, 경제적 이주 등 다양한 양태를 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유목은 이주, 망명, 여행 같은 실제적인 이동이라기보다는, 로지 브라이도티가 [유목적 주체]에서 언급하듯, 고착성에 대한 모든 관념, 욕망, 향수를 폐기해 버리는 종류의 주체를 형상화한다. 이점에서 그들은 진짜 유목민처럼 소수자에 속한다. 그들은 경계 안에 속하기 위해 대기 중인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다음번에 펼쳐질 사막을 가로지르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브라이도티)이다.

그의 집이 가지는 가동성은 축적을 위한 전유나 착취가 아니라, 이질적 타자와의
상징적 교환을 극대화하는 상호 주체성의 감각을 고양한다.

안규철의 포터블 하우스는 이러한 비판적 지식인 및 예술가로서의 유목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유목민은 정주민이 구축해 놓은 경계를 위반하고 침해하곤 한다. 자크 아탈리는 유목민이 사납다는 전설과는 반대로 그들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도 없다고 본다. 그는 땅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뿐이다. 유목민은 현대의 도시로 상징되는 바의 거대한 축적의 공간을 벗어나 타자들과 방랑의 장소를 공유한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개방과 연대에 인색하지 않다. 그의 집이 가지는 가동성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이끌어 왔던 동기인 축적을 위한 전유나 착취가 아니라, 연결망 즉 이질적 타자와의 상징적 교환을 극대화하는 상호 주체성의 감각을 고양한다. 그의 작품은 21세기가 좋은 의미든 아니든 유목의 시대이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종이나 나무판 따위로 구현된 그 작품은 번쩍거리는 미래주의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유목하는 인간의 필수품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독서는 가상적인 유목 생활을 상징한다. 책은 다른 정보기기와는 달리, 모든 것을 즉시 앞에 갖다 놓을 수 있다는 환상을 고무하는 진리를 향한 직선 도로가 아니라, 미로와 같은 우회로와 불투명성을 가진다. 미로는 ‘광명으로 향함과 동시에 의식 깊숙이 숨겨져 있는 지역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아탈리)이다. 아탈리는 미로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지혜는 이제 시간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우고 경험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살펴보는데 있다. 미로들은 물리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공간으로 변형된 시간이며, 이 한정된 공간 안에 무수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안규철의 작품 속 공간은 여유 있게 보내는 누군가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의 집들은 규준화 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음으로서 되찾아진 시간,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는 매개의 조건이 개시됨을 알려주는 듯하다. 
(전시문의 367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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