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08.12.31 불온한 삶을 꿈꾸다
  2. 2008.12.31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를 위한 탐색
  3. 2008.12.31 ‘오렌지’ 아니죠~ ‘어륀지’ 맞습니다
  4. 2008.12.30 북미권 대안만화의 흐름과 현재
  5. 2008.12.29 누가 먼저 내민 '혀'인가? (1)
  6. 2008.12.29 '땡전 뉴스' 꿈꾸는 정부
  7. 2008.12.27 고구려의 밤하늘엔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8. 2008.12.26 '3단 합체 김창남'이라는 사회 그리고 웹툰 (1)
  9. 2008.12.25 한국문학의 '취약한' 성장
  10. 2008.12.25 광장으로 나온 만화
2008.12.31 12:21

불온한 삶을 꿈꾸다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 ⑨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
                                                                                                                                       이주호 기자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


7월 19일 이상희 국방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보안정책과는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 세 분야 23개 불온서적 목록을 지정하여 각 군에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를 내려 보냈다. “불온서적 무단 반입 시 장병 정신 전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공군은 24일 각급 부대에 공군참모 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7월 28일부터 8월 8일까지 불온서적 반입 여부를 일제 점검하여 8월 11일 상급부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가 불온이라는 말을 들고 나오자 매도, 척결의 시린 계절이 다시 오려는가 염려도 잠시, 인터넷은 오히려 국방부에 대한 조소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포문은 진중권 교수가 열었다. 그는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자신의 책들이 국방부 선정 리스트에서 제외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면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도 왜 그 책이 배제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빨간’이라는 색깔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거기에 ‘바이러스’까지 붙여 강력한 전염성을 경고”한 『빨간 바이러스』 역시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3권 선정 과정에서 출판사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조소도 잊지 않았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에 “사회과학이 금서가 되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사회과학이 찬란하게 꽃피던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정말로 오기는 올 것 같다. … 국방부의 금서 목록에 내 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정말 깊이 반성하였다.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이 아닌가, 정말 마음 속 깊이 반성한다.”고 하는 반성 아닌 반성의 글을 올렸다.

물론 한총련과 같이 국방부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는 구태의연한 대응 방식도 여전했다. 하지만 불온서적에 관한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의 진원지는 따로 있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불온서적 중 자신이 읽은 책에 200자 평을 달면 적립금을 쌓아주겠다는 이벤트와 함께 대대적인 불온서적 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이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10월 22일에는 현역 군법무관 7명이 “국방부가 23권의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것은 장병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 사회지식을 얻고자 책을 사 읽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국방부의 엄포가 그들이 의도한 분위기 조성은커녕 희화화되고만 있었으니 내부적인 자성의 제스처 하나쯤은 여론 환기용으로 너그럽게 눈감아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씨가 불온한 시에 관해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문화의 불온함, 질서 순응적이고 안이한 방식의 예술에서 불온함이란 무엇일까 역설하는 김수영 시인의 글에 시종일관 정치적 불온성만을 물고 늘어지던 이어령 씨의 천진난만함이 더해져 문학에서의 불온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던 계기였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언급했을 때의 불온함은 단지 정치적인 의미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불온함은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대놓고 권위를 비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까지 깨어 있는 눈더러 보란 듯이 기침을 해대는 젊은 시인의 불온성, 규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의 문고리를 휘어잡는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의 얼굴이 언뜻 내비친 것도 같았다.

박정희 귀에 불온하기 그지없었던 김민기와 한대수의 음악, 전두환에게 있어 불온하기 그지  없었던 김남주의 시, 어느 샌가 불온성은 7080 추억담 속에 잠자고 있었다. 꽉 짜여 숨 크게 내뱉기도 힘든 완고한 순환의 한 끄트머리를 잘라내고 싶은 소심한 일탈의 꿈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만난 정치적 불온성은 낭만적이기마저 했다. 일률적인 눈요깃거리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차가운 대형 상가 뒤편, 피맛골과 황학동에서 삶의 불온성이 보였다.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과 주식을 파는 세상에서, 뉴타운과 재개발 열풍에 머리털 하나 날리지 않으며, 뉴라이트들이 주 7일 근무를 하든 야간근무를 하든 상관없이 적게 벌고 많이 생각하며 사는 불온성을 무척이나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 대포도 안 만들고 / 탱크도 안 만들 테고 /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더 많은 것을 아끼고 /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일부,『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2008) .

오렌지를 오렌지라 부르는 불온한 사람들이 애타게 찾던 불온성의 씨앗이여, 너 거기 철책 안에서 자라고 있었구나!



 

[관련기사]
개발과 보존의 아이러니
그 해 온라인은 흉흉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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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10:16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를 위한 탐색

오래된 미래 전 (2008.12.11--2009.2.15,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이선영 _ 미술평론가
심현주, [waterfront-1.92Km], 2008
▲ 심현주, [waterfront-1.92Km], 2008

‘오래된 미래’ 전은 날로 험악해져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본 전시이다. 본래 인간은 자연의 극소한 일부에 불과했으나 물질적 진보, 요컨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마치 자연으로부터 자율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양, 전체 시스템 속에서 그 비중이 커진 지배적 구성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연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전체 계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감행하고, 이는 목전의 이익만 탐하는 인간들에게 재앙처럼 다가오게 된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 표현에 내포되어 있듯이, 이 전시는 미래라는 시점에 과거를 배치한다. 이러한 배치는 미래를 과거와의 단절로 간주하는 진보주의적 비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전시 타이틀과 동명인 책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인간이 올바른 미래를 찾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자연과의 더 큰 조화를 이루는 어떤 근본적인 패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 즉 자연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 서로서로의, 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알아보게 하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대안적 비전은 이성과 도구를 통해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자연을 좌지우지하려는 환상에 대한 반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환상은 과학기술주의와 결합한 진보사상에 의해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원시 지구의 물적 조건 속에서 살아있는 물질인 생명의 탄생을 비롯하여 진보는 잠재적인 면에서 가치 있는 것이지만, 진보의 구체적 실현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사회적 관계는 소수에게로 집중되는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방향으로 흘러왔고, 그 다수에는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자연도 포함되었다. 그것은 물질적 진보라는 단선적인 길(모델)만을 인정함으로서 생겨난 폐해이다. 이에 대한 균형을 위해서는 현실도피나 몽매주의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계몽과 이성이 필요하다.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이 될 생태적 사고는 단순히 자연 회귀 같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그래서 결국은 체제 안주적인 발상을 넘어, 진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다니엘 리, <Dreams>, 2008

우에마쓰 타쿠마, <coral forest>, 2008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면면은 생태주의에 대한 비전을 구현함에 있어, 모호한 문명비판이라는 초월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현대성과 진보에 대한 다시 읽기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손과 사고의 움직임이 균형을 이룬 결과라고 믿는다. 이들의 작품은 전망 없는 비판이나, 비판 없는 전망을 넘어서고 있다. 구체적 현실 비판은 전망을 포함하는 것이고, 올바른 전망을 가져야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는 개인이나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와 연관된 것임을 암시한다. 관객이 처음 보게 되는 여락의 작품은 로드 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소재로 한다. 인간만 다닐 수 있는 배타적인 통로인 고속도로는 생태계를 가로지르기 힘든 부분들로 조각내며, 그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많은 희생물을 낳는다. 정은정의 작품에서 머리만 남은 사체 역시 희생물을 연상시키는데, 제의적 과정이 생략된 낱장의 사진들은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보인다. 대만출신의 작가 다니엘 리의 합성 사진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연을 보여준다. 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적대세력의 모습을 흉내(의태)내곤 하는데, 자연물에 박힌 인간의 얼굴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내재된 긴장감을 보여준다.

일본작가 우에마쓰 타쿠마의 작품에서 종과 종 사이의 만남은 괴물이 가지는 양면성--금기의 위반에서 야기되는 괴기스러움과 일탈적 해방감--을 가진다. 불길함보다는 축제적인 활기를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 속 자연들은 인간의 분류체계를 초월하여 상호 침투하며 공존한다. 김인배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듯이, 내용적으로 사람과 동물, 사람과 인공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물고기를 닮은 유연한 형태는 억압적 체계를 빠져나가는 적절한 형태로 보이며, 목전에 펼쳐진 분해된 사물을 종합적으로 인지하는 거대한 조상은 전능한 존재를 떠오르게 한다. 강태훈과 공공엘피는 인간이 투쟁적으로 점유하는 영토의 개념을 다룬다. 강태훈은 소유와 전쟁의 인과관계를 세계지도 아래의 전자 계기판으로 보여준다. 나날이 늘어가는 국방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의식의 조작이다. 작가는 시계, 하이힐 같은 도구적 물건들에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수도꼭지를 부착하여, 일방적인 사용의 개념을 전도시키고자 한다. 공공엘피는 온난화로 인해 바다 속으로 사라질 어떤 섬나라 풍경을 소금 더미와 선인장으로 표현한다.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배출한 오염물질은 기후의 변동을 야기시켜 사막화를 비롯한 삶의 터전의 소실을 앞당기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손정은, <복락원>, 2008

공성훈, <인공절벽>, 2008

이학승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들에 눌려 들리지 않던 타자들의 소리를 복원하려 한다. 이러한 소리들은 인간 끼리만의 소통을 위해 제거해야할 소음이 아니라, 병든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소리 약’이다. 세계 여러 지역의 돌멩이들을 그것이 놓여있던 주변 풍경이나 사연과 함께 담은 김순임의 작품은 발에 채이는 하찮은 미물에게도 소중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손정은과 공성훈의 작품에서 스스로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기이한 산물로 나타나곤 한다. 손정은은 울창한 숲을 거니는 새 같은 유토피아의 풍경을 연출한다. 숨겨진 스피커에서는 풍요로운 자연의 소리 등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전체는 자연과의 유대를 잃고 부실한 가설무대 위에 얹혀 있을 뿐이다. 겉으로 자연스러운 듯하나 그렇지 않은 이물감은 공성훈의 풍경에서도 나타난다. 공원 속의 인공연못이나 인공 절벽이 있는 풍경은 원초적 자연이 아니라, 손쉽게 자연을 즐기고 소유하려는 인간에 의해 순치된 풍경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을 노니는 오리들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대량 살처분 되는 도구화된 자연을 떠오르게 하며,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 밤에도 붉을 밝히는 인공 자연은 진정한 휴식이 없는 삶을 예시한다.

임승천, <낙타>, 2008

김주연, <유물>, 2008

정경희, <기억의 숨>, 2008

자연의 협력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심현주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잠실대교에서 청담대교에 이르는 1.92km 의 한강변을 촬영하여 꼴라주 형식으로 재편집한 영상은 인간의 욕망에 조응하는 질서로 환경을 재편한 이상적 도시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도시의 대기를 채우는 것은 물고기들이다. 그것은 영상 앞에 놓여진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실시간 투사한 것인데, 이러한 조합은 연출된 인공낙원이 어항처럼 닫혀 있는 계라는 암시를 준다. 닫혀진 계 속에서의 아귀다툼을 피해 이상향으로 떠나려는 임승천의 거대한 배는 그 자체가 또 다른 닫혀진 계이다. 머리 셋 달린 배는 눈이 셋 달린 소년과 함께 괴물로 변해버린 이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서 바벨탑 형태의 도시는 파괴를 통해서만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으며, 바벨탑 안쪽에서 본 듯한 하늘은 자그마한 물웅덩이처럼 보일 뿐이다. 김주연은 현대적 삶을 소격시킨다. 아파트 등의 인공낙원에서 축소된 자연으로 소유되었던 화분들은 출토된 유물처럼 배열된다. 그것은 일정한 단위로 분절된 현대적 시간 주기를, 고고학 같은 장기지속의 시간대로 변형시킨다. 인간사는 자연사에 귀속되는 것이다. 정경희는 사슴의 뿔 부분을 잠자리 날개로 전치한 형태를 통해 여기와 저기뿐 아니라, 지금과 그때를 연결하는 공시적이고도 통시적인 그물망을 표현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절대적인 질서로 간주된 현재는 상대화 된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벽 위의 그물망은 언어, 예술, 종 다양성을 향한 탈중심화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문의; 598-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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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10:13

‘오렌지’ 아니죠~ ‘어륀지’ 맞습니다

한글문화연대, 우리말 사랑꾼, 해침꾼 선정
김나라 기자
제주올레는 ‘제주 걷는 길’에 ‘올레’라는 이름을 붙여 잊혀져 가는 제주어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일깨워 알리고 있다. 제주올레 코스 중 일부.(사진 제주올레 홈페이지)
▲ 제주올레는 ‘제주 걷는 길’에 ‘올레’라는 이름을 붙여 잊혀져 가는 제주어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일깨워 알리고 있다. 제주올레 코스 중 일부.(사진 제주올레 홈페이지)

한글문화연대(대표 고경희)는 지난 12월 26일 ‘2008 우리말 사랑꾼․해침꾼’을 선정, 발표했다. ‘우리말 사랑꾼’에는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의 이대로 대표, 대한항공, 그리고 '(사)제주올레’가 선정됐으며 ‘해침꾼’에는 이경숙, 공정택, 강남교육청이 선정됐다.

사랑꾼에 선정된 이대로 대표는 40년간 한글운동을 실천해왔으며 현재 중국 절강성 월수외국대학교에서 한국어강의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유럽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후원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 사랑꾼으로 선정되었다.

또 제주올레는 ‘제주 걷는 길’에 ‘올레’라는 이름을 붙여 잊혀져 가는 제주어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일깨워 알리고 있기에 선정되었다. ‘올레’는 ‘문’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에서 파생된 제주어다.

한편 우리말 해침꾼에 선정된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은 올 초 제17대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어륀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으며 영어공교육완성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려 했다.

또 올 해 당선된 공정택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은 본격적으로 영어몰입식교육을 위한 국제중학교 설립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였으며 강남교육청은 강남구의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해 한자교육을 실시한다는 정책을 추진하였기에 해침꾼으로 선정되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이경숙, 공정택 등을 해침꾼으로 선정한 이유로 “공교육에서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국어교육은 등한시한 채 앞장서서 영어 광풍을 일으키고 또 한자교육을 강조하여, 상대적으로 국어를 비롯한 다른 교과목들과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오히려 사교육 열풍을 일으키는 등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또 “특히 정체성 및 인성 형성에 중요한 초중등교육에서 국어교육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쇠퇴하게 된다면 개인 정체성은 물론 나아가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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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3:50

북미권 대안만화의 흐름과 현재

[대안만화를 말하다-②]세계의 대안만화(북미)
                                                                                                                      김낙호 _ 만화연구가
세계에서 가장 주류만화의 특정 장르에 대한 편중이 심했던 바 있는 북미권의 대안만화의 경험은 대안 장르를 통해서 만화문화의 질적 성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참조사례가 되어줄 법 하다.
▲ 세계에서 가장 주류만화의 특정 장르에 대한 편중이 심했던 바 있는 북미권의 대안만화의 경험은 대안 장르를 통해서 만화문화의 질적 성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참조사례가 되어줄 법 하다.

주류 만화의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혹은 너무나 주류 만화가 주류화되어 새로운 발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종종 다른 종류의 만화에 대한 관심과 희망을 건다. 그것은 작가주의 만화, 언더만화, 인디만화 등 다양한 명칭을 거치곤 하는데, 새로운 다른 시도가 하나의 선택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측면에서 거칠게 ‘대안만화’로 일컬어진다. 이렇게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주류만화의 특정 장르에 대한 편중이 심했던 바 있는 북미권의 대안만화의 경험은 대안 장르를 통해서 만화문화의 질적 성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참조사례가 되어줄 법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에서는 간단하게나마 북미권 대안만화의 지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현실에 곧바로 일대일대입을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쓸 만한 함의 몇 가지 정도는 건져낼 수 있으리라.


대안의 의미를 주류에서 찾다

대중문화에서 대안이란 기본적으로 주류에 대한 반정립이기 때문에, 모든 대안에 관한 이야기는 주류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담아내는 정서의 측면에서의 주류를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담아내는 이야기가 주류적 감성, 즉 사회가 해당 매체에서 기대하는 보편적 방향성과 수위를 충족시켜주는지에 대한 것이다. 혹은 산업적 의미에서의 주류, 즉 주류적 생산양식을 꼽을 수 있다. 만화의 경우라면 특정한 방식의 생산 및 유통 방식과 그에 따른 작품 표현이 그것이다. 미국 대형 만화출판사들의 올컬러 40페이지 중철 제본 ‘코믹북 이슈’ 방식을 통해서 섬세한 장편 일상물을 히트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다. 농축된 스토리 전개, 코드화된 전개와 화려한 시각적 임팩트에 최적화되어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물론 어떤 요소들은 항상 그랬던 것이 아니다). 또한 이를 위해 만들어져 있는 기능별 세부 분화에 의한 작품 제작 방식, 즉 스토리작가, 밑그림 데생, 펜선, 채색, 식자 작업 등이 모두 팀제로 분화되어 있고 출판사가 그들을 각각 고용하여 관리하는 협업 시스템은 사적인 탐구보다는 코드화된 보편적 오락성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 제작비용이 늘어남도 물론이다. 만약 작가 개인의 사적 성찰을 중시하고, 오락성을 희생하더라도 깊이를 탐구하며, 코믹북 이슈의 방식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연출을 구사하고 싶다면 그 주류에 속할 수 없다.


미국 언더그라운드 코믹스

로버트 크럼이 1968년에 만든<잽 코믹스>

북미권 대안만화의 시초는 정서적 측면의 주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즉 주류 보수 기독교적 도덕성의 문화에 대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5-60년대 기성세대의 불안감, 기득권층의 정치적 및 문화적 이해관계 등은 호황으로 인한 분방함을 도덕적 혼란과 타락, 나아가 사회에 대한 배반으로 규정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모든 종류의 “청소년에게 부정적일 수 있는” 표현들을 제거해야만 받을 수 있는 코믹스 코드에 의한 허가제가 강요되었다. 이 코드에는 배급력을 지닌 사실상 모든 출판사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미국만화는 그대로 박제된 건전함에 갇혀 버렸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화는 가장 건전하고 유치한 저연령층 매체가 되어갔다.

하지만 변화는 젊은 세대의 주류문화에 대한 반항, 반문화가 한층 가속도를 지니며 성장하던 60년대 후반에 나타났다. 점점 혁신적인 시끄러움과 분방함을 자랑하게 된 락앤롤, 동서양의 신비주의를 미묘하게 흡수한 히피문화, 마약과 자유 섹스 등 반문화의 분방한 실험정신은 부모 세대의 경악 속에 점점 세력을 키워나갔다. 만화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매체 본연의 자유로운 표현력과 넓은 친화력이 한 쪽이라면, 도덕적 박제의 대표 상징에 대한 우상파괴 욕구가 다른 쪽이었다. 즉 반문화의 핵심 정서를 만화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면서, 주류 만화의 방식으로는 그런 내용을 도저히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한층 ‘지하’로 들어간 생산 및 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작가들은 성적 금기의 타파, 마약 복용 상태에서 생겨나는 왜곡된 감각, 기성 도덕과 정부 시스템에 대한 끝없는 조롱, 낙천성과 자기 모멸감의 공존 등을 본격적으로 실험했다. 언더그라운드 코믹스 작품들은 주로 소형 인쇄소에서 만들어져서, 담배 가게를 중심으로(물론 이런 가게에서는 마리화나도 같이 취급했다) 유통되었다. 창작을 분업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영세한 규모 등 제한된 제작조건 덕분에 당시 미국에서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았던 잡지형 모음집으로 만들어졌는데, 덕분에 여러 다양한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주었다.

이런 잡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잽 코믹스(Zap Comix)는 로버트 크럼Crumb이 1968년에 처음 제작했다. 표지에 코믹스코드 심의필 마크 대신 “정당한 경고: 성인 지성인들만 보시오”라고 적혀 있는 이 잡지의 대형 히트는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입지와 기반을 일거에 확대시킨 바 있다. 히피적 낙천성을 묘사한 “계속 트럭질 하시오”(Keep on Truckin') 시리즈는 당대 반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수도 없이 인용당하고, 크럼 특유의 신경질적 독백과 적나라한 성적 열등감, 사회에 대한 폭넓은 불평은 그를 이 분야의 대가로 만들어주었다. 클레이 윌슨, 로버트 윌리엄스, 스페인 로드리게즈, 빌 그리피스, 릭 그리핀 등 여러 스타 작가들 역시 잽을 통해 세상과 만났다. 현재까지도 잽은 공식적으로 폐간한 적이 없어서, 2005년에 통산 15호가 출시되기도 했다. 이 잡지는 물론 기성의 도덕을 깔보기 위해서 각종 부도덕한 내용을 다루어 악명을 쌓았는데, 결국 여러 지역에서 판매금지를 당했다(그래도 계속 어디선가는 구할 수 있었기에,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더욱 빛내주었다). 이후 잽의 전례를 따라 이런 방식의 잡지들이 계속 나왔는데, 퍼니 애니멀즈(Funny Animals)의 편집자였던 테리 즈위고프는 훗날 크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95년도에 선댄스를 포함 각종 영화제를 휩쓸기도 했다.

<잽 코믹스>에 실린 <Keep on Truckin'> 시리즈의 한 장면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와 락음악의 교류 역시 활발했다. 인기 싸이키델릭 및 블루스 락 음악가들이 유명 언더만화가에게 앨범 표지를 의뢰했는데, 크럼이 그린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재니스 조플린이 보컬을 맡았던 밴드)의 Cheap Thrills 앨범 표지는 이 분야의 전설급으로 남아있다. 또한 미국에서 펑크 락 운동을 주도한 잡지 펑크 매거진 역시 편집자 홀스트롬과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의 교류를 통해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미국에서 언더그라운드 코믹스는 박제된 도덕성의 상징인 주류만화를 뒤집어 반문화의 중심으로 만화를 세워낸 큰 공이 있지만, 전위를 부르짖는 성향 덕분에 미학적 측면의 장인적 완성도라든지 세련된 오락성 등의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음악의 경우 반항의 락 장르들이 대형 상업적 성공 속에서 제도권에 편입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정상 유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용적으로나 생산의 영세성에서나 장애물이 너무 컸다. 이런 와중에 70년대 중반부터 마약 용품의 거래가 불법화되어 기존의 유통망도 무너졌다.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흐름은 사실상 70년대로 사실상 끝났으며(비록 로버트 크럼은 80년대에는 위어도Weirdo라는 잡지를 통해서 계속 자신의 성향을 이어나갔지만), 80년대부터 미국의 대안만화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독립’ 만화의 시대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시대가 저물기는 했지만, 80년대에도 북미권 만화계의 청소년 친화적인 대형 출판사 위주의 슈퍼히어로 장르의 굳건한 주류 점유는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안 만화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했는데, 6-70년대의 통일된 반문화 정서보다는 좀 더 다양한 관심사의 만화가 화두에 올랐다. 점차 인기가 쇠락하면서도 제작 및 유통 시스템의 경직성은 변할 줄 몰랐던 주류 만화 산업에 대한 반발, 그리고 만화의 예술적 성취를 좀 더 진지한 수준으로 올려놓고 싶었던 순수한 작가적 열망 등의 요소들이 동시에 제기되었다. 이런 시대에 대안만화가 저항하고자 한 주류는 자본의 경직성으로부터의 독립이었고, 이것은 기존 대기업 위주의 독점적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성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북미권에서 흔히 대안만화라고 부를 때는 이들을 지칭하곤 한다.

어떤 작가들은 문자 그대로 대형 출판사로부터 독립했다. 북미권의 일반적인 주류 대형 출판사들은 창작자 권리에 무척 인색했는데, 분업화된 공정 속에 자신들이 대부분의 저작권 수익을 가져가고 또한 작품의 방향 역시 전권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자신에게 사업 수완이 있다고 판단한 데이브 심은 77년에 직접 출판사를 설립, ‘세레부스’ 시리즈로 주류 시장에서 대형 히트를 기록했다. 이런 방식은 제프 스미스의 ‘본’ 등으로도 이어졌는데, 에피소드식 슈퍼히어로물 일변도에서 소외받았으나 사실은 여전히 수요층이 확실했던 선 굵은 장편 판타지 모험물이 많았다. 장르적 오락성의 감성, 나아가 상업적 성공까지도 분명히 주류적이었으나, 장르의 선택과 출판 방식은 독립출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80년대 독립만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만화잡지 <RAW>

80년대 독립만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잡지로는 ‘로’RAW와 ‘헤비메탈’을 꼽을 수 있다. 로는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와 80년대식 인디만화의 교량 역할을 한 작가 아트 스피글먼과 프랑스 출신 부인 프랑소와 몰리가 만든 잡지로, 만화의 표현적 가능성을 최대한 탐구하여 만화의 예술적 잠재력을 마음껏 실험했다. 나아가 자끄 따르디 등 섬세한 예술적 표현력을 지닌 유럽 만화들을 실어냄으로써, 전위성을 조악함이 아닌 품격으로 승격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들은 뉴욕의 출판 및 예술계에 영향력을 확대해나갔고, 잡지에 연재했던 스피글먼의 ‘쥐’가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입지를 확실히 했다. 현재까지도 스피글먼은 표현력이 좋은 인디만화 성향 작가들을 발굴하고 주류 미디어와 연결시켜주는 강력한 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헤비메탈’은 장인적 필력을 바탕으로 성인 지향 오락성을 강조하는 성향을 이끌어주었다. SF만화가 뫼비우스가 만든 프랑스 잡지 ‘메탈위를랑’의 미국 번안판인데, 에로틱함과 판타지 SF의 결합을 핵심 정서로 하며 그 분야 프랑스 대가들의 단편들을 본격적으로 미국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때로는 조잡한 방향으로 나타난 분방함과 대비되는 정제된 스타일과 세계구축, 하지만 돋보이는 하위문화 애호 기질은 새로운 세대의 대안만화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시도들이 늘어나고 성공사례가 발생하자, 보다 여러 작가들이 과감한 시도를 했다. 주류와 인디의 대형 성공작들에 힘입어 80년대 말 이래로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층 올라가고, 기술 발달에 따라서 인쇄 비용 역시 상대적으로 내려가자 작가 자신만의 만화잡지를 내는 시도가 이어졌다. 일부는 독립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와 의기투합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은 독립만화의 출판을 장려하는 후원단체인 크세릭Xeric 재단의 지원금을 통해서 출판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작가가 여러 자신의 단편과 습작, 때로는 장편 연재물을 모아서 직접 코믹북 이슈 형식으로 묶어서 지역 만화 전문점에 배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 대안만화계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들이 이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고스트월드’, ‘데이빗 보링’ 등 시니컬한 잡담으로 미국 현대사회의 불안을 그려낸 댄 클로우즈의 작품들이 바로 그의 개인 잡지 에이트볼Eightball 을 통해서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지미코리건’에서 아이콘화된 그림체와 복합적 흐름의 문법으로 미국만화계 최고의 카드로 평가받곤 했던 크리스 웨어 역시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Acme Novelty Library라는 1인 출판물로 활동하고 있다. 웨어의 경우 코믹북 이슈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매번 새로운 크기와 제본방식을 실험하는 재기까지 발휘한다. 소심한 아시아계 루저를 그리는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옵틱 너브Optic Nerve, 미묘하게 건조한 성장담을 즐겨 그리는 캐나다 작가 체스터 브라운의 여미 퍼Yummy Fur 등도 이 부류에 포함된다.

작가주의 성향 독립만화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며 고품격 출판물로 만들어주는 전문 출판사들 역시 대두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는 70년대 말에 설립된 판타그래픽스Fantagraphics와 91년에 설립된 캐나다의 드론앤쿼털리Drawn and Quarterly가 가장 먼저 꼽히곤 한다. 이들은 언더/인디 만화운동에 깊숙이 개입된 작가와 편집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고, 비평 혹은 만화 연재 잡지와 단행본을 같이 제작해왔다. 판타그래픽스는 멕시코 출신 헤르난데즈 형제의 러브앤로켓Love and Rockets 시리즈를 발굴한 것은 물론, 앞서 언급한 크리스 웨어와 댄 클로우즈의 개인잡지들도 출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드론앤쿼털리는 캐나다를 위시해서 유럽권 만화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은 작품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 3인방 세쓰, 체스터 브라운, 조 매트를 위시해서 ‘베를린’ 시리즈의 제이슨 루츠, 페미니즘적 성향의 언더그라운드 코믹스 성향이 강한 줄리 두셰 등이 포함된다. 물론 이런 출판사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자주 처하곤 하지만, 고전카툰의 재발간 등 여러 수익사업을 통해서 근근히 버티고 있다. 이외에도 2000년대에는 대형 출판사들이 만화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들이 늘어나서, 퍼스트세컨드First Second 등의 출판사들이 새로 뛰어들기도 했다. 이들은 더 이상 엄밀한 의미에서 ‘독립’ 만화로 보기는 힘들지만, 그 계열 작품들의 성향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비행'이라는 소재로 그린 단편을 모아서 출판하는 <플라이트>


북미권 대안만화의 오늘

오늘날 북미권 대안만화는 사실 90년대라는 부풀은 희망의 성장기에 비하면 많이 차분해진 상태다. 하지만 전망은 나쁘지 않다. 시장성에 대한 성장 전망은 과도한 기대를 접었지만, 반면에 정제된 그래픽노블의 형태로 만들어낼 경우 만화 전문점이 아닌 서점 중심으로 유통을 시키는 것이 더 용이해진 상황이다. 또한 우수작에 대한 사회적 시선 역시 훨씬 나아졌으며 독립출판 만화들의 박람회인 Small Press Expo (SPX) 역시 매해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다. 나아가 웹을 통해서 한층 새로운 대안 만화 창작 및 유통의 길이 열렸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 덕분에 데뷔했다. 만화적 연출과 세밀한 코미디로 섬세한 성장물을 만들어내는 ‘다르면서 같은’의 데릭 커크 킴이 대표적이다. 이 부류의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파스텔풍 환타지를 그리는 카즈 키부이시가 주도하며 비행이라는 소재로 그린 단편을 모아서 출판하는 ‘플라이트’ 모음집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웹을 통해 등단했다는 것 말고도, 일본만화의 영향권 하에서 성장했다든지 성장물 코드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능하다든지 하는 여러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은 주류적인 본격 장르오락물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성향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독립만화로서의 대안만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북미권 대안만화

북미권의 대안만화 환경은 한국과는 무척 역사가 다르다. 비록 모양새 자체로 놓고 보자면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언더그라운드만화 운동이라든지 독립만화 논의들이 적지 않지만, 주류의 응집력 자체가 미국의 경우처럼 강력하지도 않았고 대안만화 씬의 자가발전 동력 역시 탄탄한 반문화나 전위미술계의 기반을 지니고 있던 그들에 비해서 크게 열악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까지 일정 지분을 유지하고 또 계속 성장을 노리는 한국의 작가주의 성향 만화출판에 있어서는 미국의 대안만화가 상황에 대처하며 성장한 방식이 몇 가지 지점에서 참조사례가 될 법하다.

첫째는 작가/작품의 ‘스타’화다. 미국의 대안만화계는 주류문화와 적잖이 교류하면서 아트 스피글먼, 댄 클로우즈 등 대안만화의 대표주자들을 주류 문화에서 일종의 고급 취향으로 자리매김시켜서, 부족한 상업성 대신 문화적 품격으로 가치를 만들어냈다. 둘째는 여하튼 계속 작업하곤 하는 긴 호흡의 문화다. 상업적 성공이 오지 않은 동안은 다른 직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 만화를 접느냐 아니면 조금씩 오래 계속 하면서 버티느냐는 큰 차이다. 크럼의 잽이나 위어도는 월간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아무리 드문드문 내더라도 결국 계속 내면서 전설이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비교해보면, 한국의 대안만화 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작가들의 재능이 아니라 전략과 생존의지인 셈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북미권 만화들은 최근 붐을 이룬 슈퍼히어로 만화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런 대안만화의 영역에 속한 것들이다. 대안으로서의 의미보다, 그저 좋은 만화로서 들어온다는 의미다. 대안이라는 맥락도, 좋은 작품이라는 본질을 위한 구실일 뿐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결국 지향해야 할 지점일 듯 하다.

 

* 본 기사는 우리만화연대에서 발간하는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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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앙굴렘 한국만화 특별전 외 다수의 만화전시 큐레이터, 만화비평웹진 <두고보자> 창간 편집장, <계간만화>등 여러 지면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국제학술행사 기획, 대학 출강, 만화관련서 집필과 번역으로 만화지평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동분서주 중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capcold라는 퍽 차가운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http://capcold.net


 

[관련기사]
오늘, ‘대안만화(alternative comics)'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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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9 10:17

누가 먼저 내민 '혀'인가?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⑧블로그 소설연재와 ‘혀’를 둘러싼 논쟁
이주호 기자
누구의 '혀'인가, 주이란의 『혀』(글의꿈, 2008) 와 조경란의 『혀』(문학동네, 2007)
▲ 누구의 '혀'인가, 주이란의 『혀』(글의꿈, 2008) 와 조경란의 『혀』(문학동네, 2007)

실제 연주 음악을 CD에 디지털 변화시킬 때는 원음에서 거의 손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용량이 커서 저장성이 떨어진다. MP3 파일은 CD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용량으로 거의 같은 음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CD가 가지고 있는 음역대에서 무려 30%나 제거된 압축 방식으로 제작되었기에 이것을 저질의 음악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여전하지만 저질음악이라는 공세와 인간의 청력으로는 절대 이 둘을 구분할 수 없다는 수세의 승부가 갈리길 기다릴 것도 없이 음반 시장은 이미 MP3쪽으로 기울었다. 거기에는 CD를 사건 MP3를 다운받건 음악 감상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음악처럼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책에서 역시 이 비슷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e-book 리더기가 책 시장 한 귀퉁이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지속해오는 동안 인터넷에서는 블로그 소설 연재가 출판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아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이 박범신, 황석영, 공지영 등 굳이 인터넷이 아니라도 일정 판매고를 보장할 수 있는 작가들이었다. 블로그 연재 후 종이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는 마당에 이것이 정말로 새로운 출판 형태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것 같다. 다만 연재 블로그가 대형 포털이나 대규모 인터넷 서점의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지는 데다 현재로선 유명 작가들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자본 - 유명작가 - 출판이 연계된 새로운 독과점 형태는 아닌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연재 형식보다 작품 내용에 관한 이야기가 우선이라는 건 두말 할 나위 없는 일이다. 조회 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블로그 연재가 기획되었을 리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 것이 익숙한 세대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글이란 것이 종래의 종이 출판과 어떻게 다른지, 항간의 우려대로 질적인 차이는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최고급 플레이어와 스피커 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 청음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CD 음악과 128kbps, 256kbps 음질의 MP3 음악을 구분하게 하는 실험이 있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CD와 MP3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MP3에서 손실된 부분은 사람의 귀로 구분할 수 없는 음역대다. CD음악을 고수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음향심리학이란 면도 고려하여 과연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었을까? 128kbps의 저음질은 참가자 모두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256kbps 이상의 음질에서는 CD 음질과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주이란과 조경란의 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생긴 싸움 방식 그대로 힘 있는 측에선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했고 힘없는 측에선 없는 힘마저 다하다 기력이 쇠하고 말았다. 요리, 혀, 악마적 탐닉이라는 소재가 어지간해선 상상할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발상이라 할 수는 없다. 과거 소설이 누가 더 가난했는가, 누구의 시대적 상처가 더 깊은가를 두고 내기를 벌여 왔다면 지금의 소설들은 누가 더 기괴한가, 누구의 소재가 더 기발한가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주이란, 조경란의 상상력은 문학의 소재를 한때 팔리는 영역으로 제한하는 문단 출판인, 혹은 출판 문학인들이 깔아 놓은 배경에서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다.

주이란은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한국 문단 내에서는 소설가 아닌 소설가이다. 반면 조경란은 신인문학상의 등용문을 거친 데다 유수의 문학상들이 차마 빗겨가지 못한 유명 소설가다. 이 둘의 지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주이란은 공모 참가자이고 조경란은 공모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이 소설책을 발간했다. 소재의 차이가 없다. 발상이야 그렇다 치고 전개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CD고 누가 그것을 복제한 MP3인지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분이 가질 않는다.

혀를 둘러싼 공방에 평론가들이 뛰어 들었다. 이슈랄 게 없는 문학계에 모처럼만에 생긴 이슈인데 경사는 아닌 모양이었던지, 극히 발언하는 사람도 적었거니와 그나만 언급된 평들을 보더라도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제본인지는 고사하고 도대체 누가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건지조차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다, 일정 수준에 이른 글은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CD와 MP3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술적 진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는 문학성의 기준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부끄러운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의 현실적 존재 이유인 옥석 고르기가 여기서 발휘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떤가, 읽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회사에 소속된 변호사가 자신의 법적 지식을 회사 운영에 유리하게 끌어다 붙이는 것 마냥 진단, 제안, 옥석 고르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이 그간 갈고 닦은 참고 문헌 목록을 뽐내고 있다는 것이 비평의 현실이다.

실험에 참가했던 도도한 CD 청음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MP3음악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듣는다면 무척이나 근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영옥의 『스타일』을 읽는 장소와 마음가짐이 이청준의 『신화의 시대』를 읽을 때와 같을 수 있을까? 읽기가 껄끄러우면 정서적 울림이 크고 MP3와 같이 싸고 듣기 편하면 정서적 울림이 적다는 기계적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문열이 대중적으로 어필한 『시인』 뒤에는 삶에 대한 그의 고민이 종교적으로 드러난 『사람의 아들』이 있었고, 예술적 형상화의 문제로 표현된 「들소」가 있었고, 정치 계급적 모순으로 드러난 『미로의 날들』이 있었다. 작년과 올해 서점가에서 이름 떠날 날이 없었던 황석영이 『바리데기』, 『개밥바라기 별』만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었다. 그러면 정이현, 서유미가 『달콤한 나의 도시』, 『쿨하게 한 걸음』의 기층에 무엇을 깔아 놓았을까? 쇼핑과 쿨한 연애 말고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든 계간지에 연재하든 그것으로 문학성의 기준을 삼을 수는 없다. 저음질로 들어야 돋보이는 음악이 있듯이, 음악과 시각적 효과, 때로 하이퍼텍스트 형식까지 더불어 활용하는 인터넷 연재라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소설도 있을 것이다. 한 작가 안에서도 『하악하악』식의 표출과 『벽오금학도』식의 표출이 공존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2008년 출간된 어떤 책이 독자를 지하철이 아닌 서재로 끌어들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은 다분히 작가 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MP3 파일로 제작된 음악을 아이팟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듯, 현재 문학이라는 것도 문단과 출판이 긴밀하게 결합된 출판 시장에서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게재될 <장르 결산 특집-출판계>의 내용을 빌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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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9 10:15

'땡전 뉴스' 꿈꾸는 정부

[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 ⑦ YTN, KBS 그리고 이명박 정부
박휘진 기자

지난 12월 9일 YTN 사옥 앞. YTN의 구본홍 사장 취임 반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지난 12월 9일 YTN 사옥 앞. YTN의 구본홍 사장 취임 반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월 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농지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것이 국민일보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화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기사가 누락된 배후에는 이동관 대변인 ‘본인’이 있었다. 그가 직접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봐 주면 은혜를 갚겠다’ 했단다. 이 뿐만 아니다. 언론은 ‘대변인이 엠바고(보도유예)를 지나치게 남발한다’고 비판해왔다. 대변인이 잦은 보도 유예와 비실명요구 등으로 언론보도를 조정하려 드는 것. 이 모습이야 말로 현 정부가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일 것이다.
 
왜 언론은 제 4의 권력인가. 우리는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기관과 더불어 제 4의 권력이라 부른다. 언론이 가진 이 수식어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보도’(알림)의 역할을 넘어선다. 언론은 사건들의 ‘진실’을 보도해야 하며 ‘본질’을 보도해야 한다. 그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대변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야 하며, 사회 여러 분야의 감시자를 자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언론은 제 4의 권력이란 수식어를 달기엔 그야말로 ‘지못미’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기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높다. 2008년은 언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보려는 정부의 욕심이 민망할 정도로 드러난 한 해 였다. 아마도 시작은 YTN의 낙하산 인사였을 것이다. 물론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 위원장 임명을 그 시점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언론계와 학계 등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최시중은 이명박 후보 진영의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6인회’의 좌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코드 ‘강부자’, ‘고소영’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의 방통위원장 임명을 포기하지 못 한 이유는 자명하다.

본격적으로 정부의 야욕이 드러난 사건은 YTN 신임 사장 취임 사건(‘낙하산 인사’)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자신의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YTN의 사장으로 앉혔다. 이날 YTN 주주총회는 노조간부들의 출입을 봉쇄한 채 이뤄졌고, YTN 이사회에서는 모든 절차를 단 6분 만에 마무리 짓는 ‘날치기’의 전형을 보여줬다. 절차를 무시한, 전형적인 코드 인사에 YTN의 기자들은 사장 출근 저지 및 인사불복종 투쟁을 진행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구 사장은 전․현직 노조위원장 및 노조원 6명을 해고, 총 33명의 직원에게 정직, 감봉, 경고 조치는 중징계를 내렸다. 더불어 YTN의 간판 프로그램 ‘돌발영상’도 폐지시켰다. 이른바 ‘YTN사태’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5공 이후 최대의 언론인 해고 사건이다. 모 일간지에서는 사설을 통해 ‘언론에서는 역사의 시계가 뒤로 돌고 있다, 현 정부가 70~80년대 언론 탄압을 보였던 유신정권의 후계자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YTN뿐만이 아니다. KBS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KBS의 정연주 사장을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해임시켰다. 그러나 이미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과 YTN사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정부의 꿍꿍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병순 사장은 ‘그의 임무를 다하고자’ 취임 첫날인 8월 27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아온 일부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단박 인터뷰’ ‘미디어 포커스’ ‘시사 투나잇’ 등의 프로그램은 가을 개편을 기점으로 폐지되고, 새로운 시사프로그램 ‘시사360’이 편성되었다. ‘시사 360’은 첫 회 ‘미네르바 신드롬, 왜?’편에서 ‘미네르바가 근거 없는 비판으로 경제 불안을 조장한다’는 정부 쪽 주장을 주요하게 전해 YTN, KBS 사태가 단순히 사장이 바뀌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누구도 다시 땡전 뉴스를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이 정책홍보방송으로 이용되었던 지난 80년대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뿐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감시하고, 질책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어떻게 언론을 길들이느냐가 정부의 관심사여서는 곤란하다. 새해에는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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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7 09:27

고구려의 밤하늘엔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신간소개]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외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김일권, 사계절, 2008.

▲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김일권, 사계절, 2008.


                                                   이주호 기자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동양인이 바라보는 밤하늘 풍경과 서양인 눈에 비친 밤하늘 풍경은 어떻게 달랐을까? 현대인이 바라보는 별자리의 모습은 고대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조선 시대 이후 중국인의 눈으로 별을 헤던 한국인들은 지금은 서양인의 눈을 빌려 오리온의 뒤를 쫓는 전갈과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오래 전, 한국인의 눈에 비친 밤하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구려의 별자리와 별자리에 담긴 신화를 다루고 있다. 벽화에 나타난 별자리의 모습을 세심하게 복원하고 재구성하여 고구려의 종교, 문화, 신비한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다.

김일권, 사계절, 값 29,500원.


『백조 액추얼리』
교량 건설을 전공하고 있는 요이치는 길을 가다 우연히 밧줄에 걸린 백조 한 마리를 구해준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백조의 순수한 사랑 덕분에 요이치는 꿈을 이룬다는 것이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 백조는 거품이 되어 사라졌을까, 요이치와 알까기를 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일본 순정만화의 기대주라고 하는 코다마 유키의 순정 만화. 가격에 비해 독서 시간이 허망하므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주의.

코다마 유키, 천강원 역, 애니북스, 값 8,000원.


『울리지 않고 아이 버릇들이기』

곧 죽어도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아이, 친구를 때리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아이, 온 집안을 늘어놓고 혼을 내면 비명을 지르고 욕을 하는 아이, 얘들은 덜 맞아서 그러는 걸까? 눈 오는 날 발가벗겨서 현관 앞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버릇이 고쳐질까? ‘울리지 않고 아이 키우기’ 열풍을 일으킨 육아교육전문가 엘리자베스 팬틀리가 체벌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 첫 6년 동안 아이가 저지르는 일들 중에 정말 진심으로 부모가 화를 내야 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아이들의 버릇없는 행동은 ‘나쁜행동’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감정조절을 할 수 없는 시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행동이라 말한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적절하게 필요한 교육과 구체적인 양육지침을 습득하여 제발, 이 아이들이 커서 국회의원 나서겠다고 하는 일 좀 막아 봅시다, 다들.

엘리자베스 팬틀리, 강명희 역, 값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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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6 10:35

'3단 합체 김창남'이라는 사회 그리고 웹툰

웹툰의 이용자는 작품이 지닌 하나의 세상을 창작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그 세상의 구성원이다. 그래서
웹툰은 마이크로소사이어티를 꿈꾸고 프리코노믹스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일권,<삼단 합체 김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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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만화' 개편, 온라인만화에서 웹툰으로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만화 콘텐츠 섹션인 '네이버만화'가 개편했다. 웹사이트 랭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음디렉토리'의 최근 지표에 의하면 '네이버만화'의 현재 위치는 국내 웹사이트 중 32위이다. 네이버 내부 서비스 중에서는 10위, 전체 연예오락 분야와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간 방문자는 2,648,029명이고 주간 페이지뷰는 76,575,881회(1)를 기록 중이다.

'네이버만화'의 이번 개편 이슈는 온라인만화와 웹툰의 자리 교체이다. 개편 이전 '네이버만화'는 출판만화의 디지털 버전인 온라인만화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웹툰은 온라인만화의 유료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이해됐었다. 하지만 조석의 <마음의 소리>, 김규삼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등의 인기로 지난 3월 주간 1억1천 페이지뷰를 돌파하면서 입장이 달라졌다. 하위에서 운영되던 웹툰 페이지를 사이트 전면에 배치하고 유료로 운영되던 온라인만화 서비스를 하위로 돌렸다. 매주 40여 편의 연재만화가 요일별로 게재 되는 초대형 만화잡지의 디지털 버전인 셈이다. '베스트도전'과 '도전만화' 코너는 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후방의 작가 양성 및 작품 선정 시스템이다.(2)

기존에는 웹툰이 곧 장르였지만 작품 분량이 늘면서 '에피소드', '옴니버스', '스토리'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특히 웹툰 비판의 중심이 됐던 '단편성'을 의식한 듯 스토리만화의 게재 비중이 늘었다.

<삼단 합체 김창남>은 묘하게 아름답고, 묘하게 현실적이며, 묘하게 감동적인 작품이다. 


<3단 합체 김창남>, 3단 합체 하일권

'네이버만화' 연재작 중 눈에 띄는 작품은 하일권의 <3단 합체 김창남>이다. 전체 연재작 중 별점 수치가 가장 높은 9.8점을 기록 중이다. 이용자가 뽑은 가장 좋은 작품이다. 그들의 평가를 인식하기 전에 작품을 일독했고 그 뒤 감상 결과를 이용자들의 평가와 비교해 봤다. 웹툰 이용자에게 익숙할 법한 우연한 일상, 극한 과장, 악취미와 엽기적 웃음 등의 요소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웹툰에서 찾을 수 없었던 서사적 감동이 가득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름이 계속되는 근미래의 어느 도시. 이제 막 김창남이라는 이름을 지닌 거대로봇이 만들어졌다. 가정부 로봇쯤은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 호구네 집에도 있을 만큼 발전된 세상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화창한 성장의 무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무한지옥이다. 반 친구들에게 상습구타와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는 호구에게 학교는 지옥이다. 아비, 어미 없이 노망난 할머니와 삐뚤어진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집도 탈출하고 싶은 지옥일 뿐이다. 호구가 사는 어느 도시는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지만, 호구가 처한 현실은 집단적 억압과 죄의식 없는 가해가 행해지는 지금 이곳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어느 날 이런 호구의 지옥으로 인간형 로봇 시보레가 들어온다. 거대로봇 김창남에 이어 사람과 함께 일상에서 생활하는 로봇이 개발됐고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호구네 학교로, 그것도 호구 옆자리 짝궁으로 여학생 로봇 시보레가 왔다. 무리 중 가장 못난 자가 완장을 차듯 호구는 여학생 로봇 시보레의 당번이 된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공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던 호구는 교과서와 사전식 정보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시보레에게서 인간미를 느낀다. 호구는 그렇게 미래 사람들이 도구로 여기는 로봇을 사랑하게 되고 이로부터 탈출을 열망하던 호구의 근미래 성장극화가 전개된다. 

묘하게 아름답고, 묘하게 현실적이며, 묘하게 감동적인 작품이다. 웹에서만 볼 수 있는  수직으로 길게 펼쳐지는 '스크롤 이미지 서사'만의 경이적 연출 기법은 더욱 강화됐다. 코믹스만화의 핵심 테마인 소년의 열정과 과잉 분노 그리고 성(性)적 관심과 농담도 충분하다. 또 모든 성장 소재 서사물이 고민해왔던 공간에 대한 인식과 사건을 통한 자기 성찰의 과정도 있다. 무엇보다 각자 따로따로일 것 같은 세 가지 코드가 요령 있게 합체되어 하나의 작품 안에 담겨졌다. 3단 합체 작가 하일권의 탄생이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출신인 하일권은 재학 중 '파란미디어' 내 '카툰' 코너를 통해 데뷔했다. 이용자들은 <삼봉이발소>를 통해 하일권이라는 작가의 독특한 개성과 만났다. '코믹타운'과 '스포츠조선닷컴'에 연재됐던 <보스의 순정>을 통해서는 작가의 재능과 롱런 가능성을 읽었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이용자 기반을 지닌 '네이버만화'에서 이용자들은 웹툰 은하계의 어떤 작품, 어떤 작가와도 경쟁하지 않고 독특한 코드 조합으로 자신만의 서사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하일권을 발견한다. 절대적인 조회수를 주지 않았지만 대신 최고의 별점을 줬다. 단순 열람이 아니라 별도의 체크 과정이 필요한 별점을 주면서까지 '만화 속 세상(다음)'에는 있고 '네이버만화'에는 없었던 의미 있는 서사물의 등장을 응원한 것이다. 적절한 상황 인식이고 명확한 분석과 평가임에 분명하다.(3)
 

천재 소녀가 먼저 발견하고, 미소년은 한참 후에 깨닫고, 여학생 로봇은 만나자마자 알았던 못난
호구의 재능. 이는 곧 하일권이고, 지금의 웹툰이다. 웹미디어 시대의 만화이자 대중문화다.

마이크로 소사이어티 그리고 프리코노믹스

보잘 것 없는 호구가 가진 것은 선한 마음뿐이다. 근미래 도시에서는 없어진, 어디 쓸 일도 크게 없는 선한 마음이 호구가 지닌 재능의 전부다. 천재 소녀가 먼저 발견하고, 미소년은 한참 후에 깨닫고, 여학생 로봇은 만나자마자 알았던 못난 호구의 재능. 이는 곧 하일권이고, 지금의 웹툰이다. 웹미디어 시대의 만화이자 대중문화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발견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어 세상을 변화 시키는 큰 힘이 되는 사회. 누군가 말했던 마이크로 소사이어티(Micro Society)다. 지금 이곳의 기준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네트워크상의 수많은 이용자 중에는 그것의 장점, 그것이 지닌 디테일한 코드를 찾아내는 이가 있다. 이들이 새로운 코드를 전파하고 동감하는 세력을 찾아낸다. 소집단을 이루면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고 이 사회와 또 다른 사회가 동맹을 맺으면 듣도 보도 못한 신세계가 구축된다. 이는 그 사회의 형성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의 시선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웹툰 역시 그렇게 형성됐다.

호구와 생활해보지 않고 호구가 가진 선한 마음을 발견할 수 없듯 '작가 1인이 지닌 디테일한 코드가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를 형성하고 급기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것을 웹툰 밖에서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사회를 경험한 1인들이 '도전만화'라고 하는 개방된 연습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1인들이 '만화는 공짜'라는 인식을 만들어 '우리 만화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짜경제, 프리코노믹스(Free Economics)가 웹툰의 대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웹툰의 이용자는 과거처럼 만화잡지나 스포츠신문을 저가에 사 보며 킬링타임을 즐기던 구매자가 아니다. 작품이 지닌 하나의 세상을 창작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그 세상의 구성원이다. 그래서 웹툰은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를 꿈꾸고 프리코노믹스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 편의 작품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확신아래.(4) 

 

 

 박석환 _ 만화평론가


* 이 기사는 우리만화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우리만화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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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의 온라인 광고 단가표에 의하면 네이버만화 섹션의 광고 공시단가는 CPM(1,000번 노출) 당 1,250원이다. 네이버만화의 페이지뷰를 1회 노출로 가정하고 이를 광고매출 1.25원으로 산정하면 주간 76,575,881회, 월 306,303,524회 곱하기 1.25원으로 월 광고매출은 382,879,405원이 된다. 현재 네이버만화의 모든 광고 페이지가 정상적으로 판매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네이버 메인페이지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작품을 최종 열람하기까지 노출되는 광고의 숫자, 작품 회당 노출되는 광고의 숫자 등 직접 노출 효과만 고려하더라도 이 수치는 상회할 것으로 추정 된다. 본 고에서 제시된 모든 수치는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2008년 11월 24일을 기준으로 한다.

2) 포털사이트에는 수많은 성격의 콘텐츠 영역과 커뮤니티 영역이 존재한다. '네이버만화'에서 '요일별웹툰'에 게재되는 만화 작품의 경우는 기업이 작가에게 정당한 원고료(인기에 따라 턱없이 높은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턱없이 낮은 경우도 있다)를 지급하고 게재하는 콘텐츠 영역이다. 반면 '베스트도전'과 '도전만화' 코너는 작가를 희망하는 사용자가 습작을 공개하는 곳으로 커뮤니티 영역에 해당된다. 커뮤니티 영역에서 작품을 올린 작가는 '작가를 희망하는 사용자'로 간주되고 콘텐츠 제공자가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즉 '요일별웹툰'이 만화잡지와 동일한 매체적 성격을 지녔다면 '베스트만화'나 '도전만화'는 일종의 연습 무대이고 사교 공간이다. 이 같은 영역의 구분 없이 '웹툰은 무료로 창작하고 무료로 유통된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라 할 수 없다.

3) 과거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독자 반응의 절대 지표로 삼았던 독자엽서에 비하면 포털사이트의 반응 측정 시스템은 놀라운 수준이다. 실 이용도와 구체적인 반응이 측정되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던 시절에 주어졌던 전문 편집자나 평론가의 '권위적 평가'의 영향력은 감소됐다. 웹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때문에 만화가가 변해야 한다면 마찬가지 기준에서 편집자와 평론가도 달라져야 하고 정책 입안자나 진행자도 달라져야 한다. 물론 다수의 선택이 좋은 작품의 절대적 기준일 수는 없다. 대중을 위해 만화계 내부에서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좋은 만화에 대한 기준'을 배신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의 선택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만화의 계승을 위해 고전적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만화 수용자의 변화하는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른바 전통과 혁신의 상호보완적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양비론이라고 비판하고 한 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평론가로서 나의 입장은 전통보다는 혁신이고 유지관리보다는 변화관리에 있다. 지금은 대중의 평가를 더 소중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평론가로서 나의 평가이다.

4) 나는 오늘 <3단합체 김창남>을 봤다. 전파 수신료를 내고 TV드라마를 보듯, 통신 사용료만 내고 웹툰을 봤다. 작품에 별점도 줬다. 좋은 작품을 제공해준 기업이 어딘지 광고도 눈여겨봤다. 연재가 끝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일독을 권해야겠다. 단행본이 나오면 사고 싶을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감독이 좋을지 생각해본다. 집단따돌림과 자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입장을 밝히고 싶다. 호구가 키우던 강아지는 캐릭터 상품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던 만화 원작산업 아닌가. 웹툰의 프리코노믹스 전략은 말 그대로 '전략'이다. 나는 오늘 <3단합체 김창남>이라는 사회의 시민이 됐다. 그 곳에서 '누구누구를 살려주세요'라고 요청하는 5642번째 사람이 됐다. 덧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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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5 12:37

한국문학의 '취약한' 성장

[2008 장르결산 - ①]문학
고봉준 _ 문학평론가

2008년 한국문학은 칙릿(chick-lit)과 성장소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백영옥의 <스타일>,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 2008년 한국문학은 칙릿(chick-lit)과 성장소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백영옥의 <스타일>,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칙릿(chick-lit)과 성장소설의 강세, 2008년 한국문학을 이 두 가지로 요약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도시 여성들의 소비와 연애를 중심 소재로 삼는 칙릿(chick-lit)의 대중적 확산은 소설 시장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백영옥, 정이현, 서유미의 소설로 대표되는 칙릿 소설의 상업적 성공은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욕망이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20-30대 여성독자들의 심리와 욕망을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칙릿은 장르문학과 함께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거기에 대한 평단의 본격적인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소설시장의 활로가 장편 위주로 흘러가고 있고, 제도와 시장, 매체의 욕망이 장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칙릿의 확산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최근 도서서평지 월간 북새통이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올해의 책 1위로 선정했다. 이 순위가 곧 한국문학의 바로미터는 아니지만, 미국 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문학이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한 데에는 성장소설, 특히 황석영의 힘이 컸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경제상황에 민감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몇몇 작가들의 상업적인 성공은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그러나 문학을 양적인 성장만으로 평가하는 것만큼 불합리한 일 또한 없다. 문학에 ‘성장’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몇몇 기록들이 보여주는 양적인 풍요만으로 해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장소설의 강세는 좀 더 신중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족 같은 한국사회의 당면문제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김려령의 성장소설 『완득이』와 황석영의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은 대표적인 성장소설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성장소설은 한국소설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고, 그런 만큼 가장 대중적인 형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느껴지는 황석영의 소설과 2000년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김려령의 소설에서 ‘성장’의 형식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소설의 대중적 성공에 중견작가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현상의 한 가운데에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다. 공지영, 김훈, 조경란의 소설 역시 해를 넘기면서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매체와 평단의 시선이 온통 신진 작가들에게 집중된 가운데에도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중견작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평단과 독자 사이의 거리는 비단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며, 또한 심각하게 논의되어야 할 문학적인 물음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 한국문학의 담론을 이끌어왔던 동력이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견작가들의 대중적 성공에는 모종의 평가가 뒤따라야 할 듯하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감수성이 독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부분, 그리고 소설의 상업적인 성공이 몇몇 출판사와 작가에게 집중되어 발생한 점이 못내 아쉽다. 

소설의 생산과 소비를 ‘인터넷’이 매개하는 현상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해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박범신의 『촐라체』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여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었고, 올해에는 공지영과 이기호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각각 장편 『도가니』와 『사과는 잘해요』의 연재를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과 출판사의 공동기획으로 시작된 장편 연재는 현재 인터넷 서점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현재 인터넷 교보문고는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를, 인터넷 서점 YES24는 블로그 형식으로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과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연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면의 확장(?)이 소설 생산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며, 소설의 성격변화를 초래한 것도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쌍방향적인 소통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단발성 기획, 즉 출판기획의 다변화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문예지 중심의 지면이 웹으로 옮겨오면서 장편소설이 활성화되고, 집필과정이 실시간으로 노출된다는 것이 달라진 점일 따름이다.  

시에 있어서는 미래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젊은 시인들의 두 번째 시집이 단연 화제였다. 김경주의 『기담』, 진은영의 『우리는 매일매일』, 장석원의 『태양의 연대기』, 정재학의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이민하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강정의 『키스』 등은 형식적인 실험과 파괴를 통해서 새로운 세대의 시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시는 전통 서정의 형식적 안정성보다는 음악과 연극 같은 타 장르와의 이접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실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근의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문태준의 『그늘의 발견』, 장철문의 『무릎위의 자작나무』는 서정시의 안정적인 문법을 유지하되 사물과 세계에 대한 한층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심보선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 오초』와 황성희의 『앨리스네 집』은 늦게 도착한 후일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전통 서정시의 안정감 사이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모색하는 바, 가독성과 실험성을 모두 갖춘 시집들이다. 구로노동자문학회 출신인 김사이의 『반성하다 그만둔 날』은 노동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성과를 남겼다. 

이 외에도 조경란의 『혀』를 둘러싸고 진행된 표절공방, 소설가 이청준, 박경리, 홍성원의 작고는 2008년 한국문학을 기억함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사건들이다. 연말을 맞이하여 많은 매체들이 문학계의 일 년을 회고하는 기사와 특집들을 쏟아내고 있고, 그 기사들 속에서 한국문학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몇몇 작가와 출판사에 집중된 ‘성장’이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문학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는지 조심스럽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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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5 12:30

광장으로 나온 만화

[한국만화비평의 쟁점]1980년대: 민중만화론과 만화전문지의 만화비평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와 같은 성인 만화잡지는 만화담론을 위한 주요한 대중적 공간이 되었다.

▲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와 같은 성인 만화잡지는 만화담론을 위한 주요한 대중적 공간이 되었다.



                         김성훈 _ 만화평론가

1980년대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와 함께 시작되었고, 대중문화도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3S정책’ 속에서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의 프로화가 시작되었고, 성인들만을 위한 영화가 줄을 지어 개봉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연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속속 등장하였고, 만화 역시 이들 지면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대학가는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민주화를 위한 사회 각계의 요구가 이어지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캠퍼스에 존재하는 미디어들, 일테면 교지, 학보 등은 기성 언론들과는 구별되는 주장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만화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여서, 대학신문을 중심으로 대안만화에 대한 목소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만화비평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 대학신문을 선택했고, 대학신문이 지니는 특유의 진보성을 담보하면서 만화에 대한 새로운 테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1980년대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민중만화에 대한 담론의 형성으로 구체화됐다.


대학신문과 만화비평

만화의 기본적인 속성이 ‘풍자(諷刺)’에 있으며, 대표적으로 시사만화가 그 풍자정신을 이어온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이나 북, 남미 등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시사)만화’의 공생관계는 상업적인 논리에 앞서서 ‘언론’이라는 공통분모로써 묶여 있다. 이와 같은 신문과 만화의 특수한 관계는 특히,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신문에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하여 대부분의 대학신문들은 시위현장을 담아내고 학내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노동, 미디어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들이 표출했다. 만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존 상업만화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시각을 보여주는데, 이는 ‘민중만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집약된다.

대학신문에 발표된 만화비평 가운데 1986년 『외대학보』에서 실렸던 「민중시대의 해방된 만화를 위하여」는 특히 주목할 기획이었다. 이 기획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매번 단편적으로 끝나는 다른 아티클과는 달리 7회에 걸쳐 ‘연재’되면서 ‘민중만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대학신문의 발행주기가 대체로 주간 혹은 격주간이며 방학과 시험기간 등에는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기획은 상당한 이슈가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대학가에서 ‘만화’가 시대를 읽는 주요한 매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학신문은 만화비평의 주요한 발표공간이었다.
사진은 『외대학보』 1986년 03월 04일자에 실린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

당시 『외대학보』는 다른 대학신문들과 마찬가지로 주간 단위로 발행되었고, 「민중시대의 해방된 만화를 위하여」는 3월 4일 개강과 동시에 발행된 신문에 첫 번째 글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이 실린 이후 5월 6일자 신문에 “만화의 민중적, 민족적 형식은 가능한가”로 마무리될 때까지 두 달 동안 연재되었다. 필자로서는 최열, 최민화, 곽대원 등 1980년대 만화비평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이들이 참여하였다. 발표된 글을 날짜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날짜

필자

제목

1986. 03. 04

최민화

문화운동 속의 만화의 역할

1986. 03. 11

곽대원

만화 매체의 독자성과 보편성

1986. 03. 18

최열

80년대 만화운동의 성과

1986. 03. 25

최열

제 3세계 민족 만화운동

1986. 04. 01

최민화

새로운 만화의 제작문제: 만화작법소론(1)

1986. 04. 08

최민화

새로운 만화의 제작문제: 만화작법소론(2)

1986. 05. 06

대담: 곽대원, 문영태, 장진영, 최열

만화의 민중적, 민족적 형식은 가능한가



만화전문지 속에 자리 잡은 만화비평

우리 만화에 있어서 1980년대가 1970년대와 구별되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만화전문지’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 만화산업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인데, 그것은 모두 만화 전문잡지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교양잡지 형식을 띠었던 그 이전의 만화관련 잡지와는 달리 전체 지면을 만화로 채운 <보물섬> 이후 <만화광장>과 <주간만화>가 창간했고, 뒤이어 <매주만화> <아이큐 점프> 등 만화전문지가 줄지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독자 연령층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신문이나 대본소를 통해서만 만화를 접하던 성인들이 만화잡지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성인 독자층이 견고해진 것은 만화의 소비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만화를 통한 세상보기’, 요컨대 만화비평이 자리 잡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1985년에 첫 선을 보인 <만화광장>은 만화를 ‘어른들의 문화’로 성큼 다가서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잡지다. 물론 <만화광장> 이전에도 만화를 즐기는 어른들은 존재했다. 스포츠신문을 통해 매일매일 만화와 마주할 수 있었고, 대본소를 통해 만화를 여가생활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만화가 ‘어른들을 위한 문화’가 되기엔 부족했다. 성인들을 위한 광장(廣場)’으로 나서기엔 아직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 만화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만화광장>의 출현은 이러한 닫힌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만화를 보다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희재, 박흥용 등의 작가들이 성인만화를 발표하면서 ‘소일거리의 웃음이 아닌 은유와 메시지가 담기는 철학’적인 만화, 그야말로 ‘어른을 위한 만화’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작품의 변화는 만화가 어른들을 위한 문화로서 자리 잡게 만드는 동시에 만화비평도 만화전문지의 주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덕분에 <만화광장> 이후의 만화전문지들, 요컨대 <주간만화> <매주만화> <시사만화> <만화시대> 등에서는 영화, 출판 등 문화산업 관련 기사는 물론 만화관련 비평이나 기사를 위한 지면이 필수적으로 마련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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