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2 15:07

사회는 우리를 패배자 혹은 노예라고 한다 - [영화소개]일본다큐멘터리특별전, 아와부치 히로키,《조난 프리타 遭難 フリーター》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공공부문 인턴 1만 명 채용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대학 졸업생 또는 휴학생 대상, 월 100만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닌, 별다른 혜택 없이 일시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제 아예 정부가 나서서 계약직을 늘려 청년층에 ‘88만원 세대’ 낙인을 찍으려나 보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의 호황으로 일본의 대학생들은 취직 걱정 없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일본도 고용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한가 보다. 고이즈미 총리의 규제 완화 이후, 기업들은 파견사원이라는 이름 하에 계약직 직원을 채용해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일본 청년층의 소득 격차는 심화되고 있고 비정규직, 일용직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프리타 족(Free+Arbeit의 일본식 조어)’은 더 늘었다. 티비에서는 아베 총리가 “젊으니까 다시 도전하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꿈 꿀 수 없는 이 시대, 조난당한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도쿄 근교에 있는 캐논 공장에서 일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가족들은 “그게 대학 나온 애가 할만한 일이냐”라지만 주중에는 공장에서 시급 1250엔을 받고 잉크병에 뚜껑 붙이는 일을 하고 주말에도 도쿄에 나가 일용직을 찾아야 겨우 생활이 가능하다.

사회는 우리를 패배자 혹은 노예라고 한다.
나는 누구에게 진 것일까? 나는 누구의 노예일까?

감독은 누구에게 이겨야만 비정규직 인생에서 벗어나 월급이 오르고 보너스도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을지 자문한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NHK 방송 프로그램 속의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변자’, ‘사회와 구조의 피해자’로 ‘연출’되지만 사실 감독 자신은 ‘사회 탓만은 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도쿄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큰 음반회사에 취직한 친구는 그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고 그걸 위해 뭘 하고 있냐고 묻는다. “글쎄...잡지사나 출판사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확실하진 않지만…매일 조금씩 정보도 모으고…”어물거리는 그에게 돌아오는 친구의 말.
“넌 지금 아무것도 하는 게 없잖아. 내가 구직 활동 많이 했는데 너 그렇게 하면 왕쪽팔린거야. 그냥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
순간 ‘왕쪽팔렸던’ 나의 구직 활동이 떠오르며 현재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내게 하는 말 같아 어두운 극장 안에서 혼자 낯을 붉혔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 누구 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점점 적어지는 ‘정규직’ 자릿수를 탓해야 하는 건지, 이력서 10만장까지 써 본 적 없는,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 “가득가득 일하고 싶어. 일하고 싶어~가득가득 웃고 싶어 행복 하고 싶어”라던 노랫말의 마음은 뚜렷이 와 닿았다. 구직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일하다 죽고 싶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겨울.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인 감독은 잘 곳을 찾지 못해 비 오는 밤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밤새 발 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아 온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도쿄의 끝, 남쪽 바다. 밤새 방황하던 청춘은 말한다.

“자, 이제 돌아가 볼까. 나는 이제 겨우 입구에 도착했다.”



2008-09-29 오후 5:47:12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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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14:58

아카펠라와 비트박스의 만남 - “스윙글 싱어즈” 새 음반 'Beauty and the Beatbox'

9월 22일 스윙글싱어즈의 신작 <Beauty and the Beatbox>가 발매되었다.
▲ 9월 22일 스윙글싱어즈의 신작 가 발매되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내 귓가에 속삭여 주며 아침 햇살에 나를 깨워달라는 마로니에의 노래 <칵테일 사랑>이 유행이던 시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이 어떤 곡인지 잠시 궁금하기도 했었다. 어물쩍 사라져가는 유행가 따라 클래식에 대한 옅은 관심도 끝내 깊어질 날을 만나지 못했지만, 클래식은 화장품이나 가구 광고에서 늘상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다 급기야 그 음악과 마주하게 되었으니 아, 이 음악이구나 싶다. 하지만 이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노로 연주하지 않는다. 스윙글싱어즈가 부르는 아카펠라 버전의 모차르트인 까닭이다.

스윙글싱어즈의 새로운 음반 <Beauty and the Beatbox>를 소개하는 광고 문안에는 40년의 역사, 3,500번 이상의 콘서트, 50여 장의 음반, 5회의 그래미상 수상이라는 화려했던 지난날이 열거되어 있다. 화려한 경력이 음반의 질을 보장해 준다 치면 한국의 역대 최고 뮤지션은 단연 HOT가 아니겠는가. 일단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앨범을 틀면 시작되는 베토벤의 운명, 이게 뭔가 싶다.

입으로 베토벤의 운명을 소리 내는 것만큼 결정적 순간을 과장하는 통속적이고 가소로운 상황 연출도 없을 거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음반이 웅장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은 여성의 고음으로 운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꽝스런 비장미를 앞세우는 건가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어지는 현란한 드럼 소리, 심벌 소리. 비트박스 연주자 쉬로모(Shlomo)의 등장, 그리고 현기증 나는 협연. 이래서 음반 제목이 <Beauty and the beatbox>구나 실감하게 된다.

이어지는 알비노니의 <아디지오>와 라벨의 <볼레로>. 거기에 멕시코 민요까지 이어질 땐 이들의 레퍼토리가 어디까지인지, 귀에 들리는 음악보다 앞으로 들을 음악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음반의 매력은 다양한 레퍼토리가 아니다. 기존에 너무도 익숙해 그 이상 어떤 연주나 편곡도 본래의 곡이 가진 매력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을 가볍게 뒤집는 통쾌하면서도 유쾌한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이들이 다시 연주하는 볼레로는 어떤 모습일까, 이들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들으면 불어터진 눈두덩으로 아침잠과 싸우는 연인이 갑자기 예뻐 보이기라도 할까, 다음엔 어떤 음악 또 다음엔 어떤 음악. 연이은 궁금증은 급기야 그래 니들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하는 오기를 일으키고, 실망스런 점을 찾고야 말겠다는 악랄한 트집 잡기마저 부리게 만들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음반의 첫 곡으로 돌아가 있다.

거기에 가장 최근 편곡되었다는 'It's Sand, Man!'은 흥겨운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는 증기선 안에서 시끌벅적한 빅밴드 연주를 들으며 되지도 않는 춤을 춰대는 나이 먹은 톰 소여를 상상하게 하다가, 사무실이든 도보 위든 갑작스럽게 춤과 노래 판이 벌어졌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이 진행되는 뜬금없는 뮤지컬 속에 놓인 나 자신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듣기도 전에 이들의 이름만으로 음반의 질을 의심치 않게 만드는 것은 역시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독창적으로 음악을 해석해 온 이들의 오랜 노력의 과정 때문이다. 그리고 40년 내내 고수해온 지독한 연습은 급기야 <Beauty and the Beatbox>라는 먹을 것 많은 소문난 잔치 같은 수작을 만들어내었다.


 

2008-09-26 오후 4:07:02   컬처뉴스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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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14:43

여성주의에서 에코페미니즘으로 - 윤석남 개인전 《사람과 사람없이》

윤석남 개인전 《사람과 사람없이》전이 아르코 미술관에서 11월 9일까지 열린다.
▲ 윤석남 개인전 《사람과 사람없이》전이 아르코 미술관에서 11월 9일까지 열린다.

1,025개의 눈빛들. 차마 맞서보기 애처롭도록 퀭한 눈빛이 있는가하면 천진난만한 발랄함이 있다. 맘이 시리도록 쓸쓸한 눈빛이 있는가하면 무덤덤한 체념의 기운이 맴돈다. 아르코 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 윤석남 개인전 《사람과 사람없이》전에는 1,025개의 나무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어떤 작품은 희미한 형상만 남아있고, 윤곽조차 흐릿한 작품마저 보인다.

놀라지 마시라.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모두 개를 조각한 것이다. 작가가 3년 동안이나 자신의 동생과 함께 나무를 자르고 깎고, 그림을 그려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유기견을 주제로 해서일까. 작품들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아픔을 간직한 표정이 드러난다.

작가가 유기견을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신문에서 1,025마리의 유기견을 거두어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의 기사를 본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의 느낌을 작가 자신은 “인간이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애신의 집’을 직접 방문한 후부터 긴 작업이 시작됐다. 작가는 그때의 충격이 너무 생생해 차마 다시 애신의 집을 다시 찾지는 못했다고 전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그 많은 수의 작품에 놀라고 개들의 표정과 형태가 그토록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데 놀란다. 1, 2층으로 구성된 전시실의 1층은 무채색의 작품들이 어두운 조명 아래 설치되어 병들고 아픈 개들을 보여준다. 반면 2층은 강렬한 색상표현으로 건강하고 씩씩한 개들을 표현했다. 작가가 애신의 집을 찾았을 때 150여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작가에게 달려드는데 그렇게 튼튼하고 예쁜 개들마저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고 한다. 나머지 개들은 밖에 내놓지 못하고 별도의 막사 안에 들어있었는데, 사람을 봐도 꼼짝 않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층에 전시된 작품 중 흐릿한 형태나 외관만 남은 작품들은 생사마저 불분명한 개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5년 동안 작품을 제작하며 버려진 존재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작가는 자연스레 채식을 하게 됐다. ‘남의 살을 먹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윤석남은 한국의 여성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버려진 나무와 빨래판으로 어머니와 여성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미술에 관심이 적은 이라도 한번은 접해봤음직한 이미지다. 정규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은 그녀는 나이 마흔에 미술을 시작해 30년 동안 여성미술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실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은 작가가 개인 창작에만 머무르지 않고 ‘또 하나의 문화’ 동인,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발행인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 속에 자신의 작업을 위치시키며 활동의 폭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느껴진다. 유기견이라는 주제가 여성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돌봄노동’이라는 시대의 화두에 걸맞는 인식과 실천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꼭, 유기견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외되고 버려진 존재, 소수자와 약자의 현실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은 작가의 지향과 활동이 작품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생태여성주의의 지향을 공유하게 됐다는 것을 전시는 보여주고 있다.

2층 전시장 한켠에는 ‘윤석남의 방’이 설치되어 작가의 과거 작업을 슬라이드로 감상할 수 있으며, 한국 페미니즘 미술과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주요 문헌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전시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26일 전시개막 당일에는 김금화 만신이 오프닝 퍼포먼스로 ‘진혼굿’을 열며, 전시기간 중인 10월 18일(토)에는 2001년 타계한 일본의 미술사학자 지노 가오리 교수의 추모강연이 열린다. 추모강연에는 윤석남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10월 11일(토)과 24일(토) 오후 5시에는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야생동물 교통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황윤)와 생명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형석의 단편영화 <호흡법, 제2장>, <155마일>이 상영된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계속된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아르코미술관(02-760-4724)



  
* 2008-09-26 오후 3:51:44  컬처뉴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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