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1 16:59

'독립영화배우'로 부담을 가져야 할 때

배우 서영주를 만나기 위해 한국종합예술학교로 찾아갔다.
▲ 배우 서영주를 만나기 위해 한국종합예술학교로 찾아갔다.

지금까지 김동원 감독,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등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막 독립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아직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은 젊은 독립영화인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와 한독협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 ‘매점에서 빵 먹다’ 캐스팅되어 독립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배우 서영주를 만나봤다. 서영주는 2003년부터 꾸준히 <잘돼가? 무엇이든>,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 <은하해방전선> 등 장․단편 독립영화에 출연해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또 <친절한 금자씨>, <괴물>, <미쓰 홍당무> 등 충무로영화에서도 간간히 그녀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직접 만나본 배우 서영주는 잘 웃고, 열정적인, 20대의 에너지와 고민들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좋은 질문들 해 줘서 고맙다, 나에게는 이게 인터뷰가 아니라 대화였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던 그녀에게서 발전적인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그 전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한 독립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를 가졌다. 중요한 건 ‘지금 같은 시대’에 꿈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움직인다는 게, 새삼스럽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몰라도 이것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10주년은 참 클 거다. 그리고 문득 사람들이 어떻게 날 독립영화인으로 보게 됐을까 돌아보게 됐다.

‘어떻게’에 대한 답이 나왔나.

음, 글쎄.(웃음) 요점은 꿈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독협이 계속 잘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언제 배우로 데뷔했나.

2003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또 학교에 들어왔다고 해서 신입생이 바로 연기를 한다거나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배우가 된 계기는 1학기 다니고 휴학을 했는데, 영상원 친구들에게 캐스팅이 됐다. 그 때 매점에서 빵을 먹고 있었다.(웃음)

길거리 캐스팅은 들어봤어도, 학교 매점 캐스팅은 처음이다.(웃음)

영상원 친구들의 졸업 작품을 찍으면서 배우로서의 경험을 하게 됐고, 영화들이 영화제 등에 알려지게 되니까 장편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1 ,2년이 지나고 장편 <은하해방전선>에 출연했다. 돌아보니 단편영화를 10여 편 정도 찍었더라. 연극은 올해 처음 해 봤다.(웃음)

연기를 시작해보니 어떤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배우의 직업 정신이라든가 배우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나름 얼굴이 알려졌다. 그게 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아직 ‘시작했나?’ 하는 의문을 계속 갖고 있다.

그 전에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영화배우가 되어야지’ 하는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영화는 관객으로서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럼 독립영화도 많이 접해보지 못했겠다.

그렇다. 실험영상물에는 좀 익숙했다. 스토리가 없는 영상물. 주변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부담을 느껴야 한다

그래도 2003년부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남들이 보기엔 꾸준히, 내가 보기엔 그냥 되는 대로 출연한 거다.(웃음) 별 부담 없이 ‘하고 싶으면 하고’ 이런 식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작품이 ‘좋고 싫고’가 아니라 시간이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영화를 찍었다. ‘난 독립영화를 찍어야 돼, 단편영화를 찍어야 돼’ 이런 생각을 갖고 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뭉뚱그려서 보니까 ‘저 사람은 영화를 하는 사람’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작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좀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나.

좀 더 책임감 있게 되었고 무게를 가지고 결정하게 되었다. 나름 부담도 갖게 되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더 생각 하게 되었고. 그때는 ‘배우로서’ 보다는 ‘경험’ 이었다.

맞다, 서영주 씨는 한독협이 추천한 독립영화 여배우다. 부담을 가져야할 것 같다.(웃음)

지금 정답을 말했다. ‘부담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작년 말까지 작업을 하고 올 초부터는 연극을 하면서 올해는 작업을 하나도 안했다. 작은 역할이지만 들어온 드라마도 안했다. 올해는 ‘연극을 하는 해’로 잡았다. 그렇지만 영화는 자기만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영화가 계속 움직인다니.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 오늘도 ‘오! 인디풀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이렇게 독립영화 행사에 계속 연락을 받는데 내가 예전에 빵 먹다가 우연찮게 시작한 자세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좀 더 들여다 봐야 할 거 같다. 이를테면 배우관을 정확히 갖는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모호하게 될 것 같다.

고민이 많겠다.

지금은 좀 정리해야 하는 시기 같다. 정리가 되면 좀 더 명료해 질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이게 이미지나 직관적으로는 명료한데 실제로 현실에서 맞닿는 부분이 모호하다. 없는 걸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웃음)

"지금은 좀 정리해야 하는 시기 같다. 정리가 되면 좀 더 명료해 질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


경험과 연기, 그 사이에 서서

‘독립영화 배우’라는 타이틀이 갖고 있는 정체성의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배우면 배우지, 독립영화 배우는 뭘까’ 하는 혼란을 겪지는 않나.

좋은 질문이다.(웃음) 지금껏 내가 선택을 했지만 ‘내가 정말 선택한 적이 있었나’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영화들에 출연했나 생각해 보면 ‘받아들임’이었던 것 같다. 열어놓고 있었다. 놀았다고 볼 수도 있고. 탐구가 있는 놀이. 그러다 보니 혼동을 겪기도 했지만 그 혼동을 달갑게 생각 했다. 그러나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앞으로는 ‘받아들임’은 아니지 않을까.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다른 배우들과 ‘독립영화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본적 있나.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나쁘게 보면 모호하고, 좋게 말하면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뭔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정체성의 문제다. 내가 아직 결코 열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구나 하는 걸 대화를 하다 발견한다. 많은 배우들이 하는 일반적인 고민은 가치관의 혼란은 기본이고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 차이가 뭘까.

‘배우가 돼야지’하고 시작한 배우와 나처럼 ‘경험해 봐야지’하고 시작한 배우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영화를 할 때 받아들이고, 열어놨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열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영주라는 배우가 다음번에 부담을 갖고 풀어야 할 지향점인 것 같다. 결국 말로 푼다기보다는 영화를 찍어서 결과물이나 관객의 평가를 보고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선택했나,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 것을 찾고 싶다는 말이다. 

결국 영화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동안 연기할 때는 어땠나.

연기라는 걸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영화를 했다. 그래서 내 식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랬을 때 재밌었다. 특별히 정말 ‘이건 나야’라고 했던 건 잘 기억이 안 난다. 매순간 매 역할이 나였고 소중했다. 근데 캐릭터와 교감한 거라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복잡하게 얘기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선택의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한다. 정말 교감을 하고 싶으니까. 정말 교감을 할 거 아니면 이제는 받아들이는 건 그만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배우가 ‘교감을 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하는 건 굉장한 용기다.(웃음)

그러니까 이게 인터뷰가 아니라 나한테는 대화다.(웃음) 왜냐면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있다. 근데 그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이상하게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정리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복잡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에이 까발려 버렸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독립영화, 누구냐 넌?!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면 답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맞다. 그게 답인 것 같다.(웃음) 얘길 하다 보니 너무 복잡해졌다. 내가 독립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 할 말이 있어서 이 얘기를 굳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그 질문이 반가웠던 것이 이게 비단 배우라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독립영화계 얘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독립영화 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을 거다.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 좀 더 부담을 갖고 명료해 지고 싶은 거다.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면 독립영화라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본질을 봐야 선택을 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봤을 때는 독립영화나 한독협이 현상일 뿐일 수 있다는 거다. 의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립영화, 한독협에 대한 생각들을 낯설게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독립영화가 현상이라니.

독립영화는 수 만개의 특징이 있다. 무엇이 독립영화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독립영화를 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계기가 생겨서 영화를 찍은 거고, 독립영화와 가까워진 거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난 가끔 이렇게 인터뷰를 할 때 그 순간 독립영화 배우가 된다.(웃음)

그럼 현상으로서 한국 독립영화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에서 독립영화는 작품 퀄리티로서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자본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데 한독협은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대가 붕괴되면, 진정으로 독립하게 될까.(웃음)

독립영화에 대한 회의는 없었나.

있었다. ‘충무로 가기 위해 만드는 거 아니야? 뭐가 달라?’, ‘이 사람 영화에 어떤 생명을 불어 넣은 거야?’, ‘이 영화 만든 사람의 꿈은 뭐야?’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영화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면 된 것 같은 그런 영화. 내 기준으로만 보는 건데, 편협하고 정말 나쁜 거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기운도 없는 이 현대 사회에서 더 기운 빠진다.(웃음)

그렇다면 반대로 독립영화의 매력은.

음, 진짜 짧고, 기술적으로도 정말 못 찍었고, 한마디로 영화가 ‘꼬졌는데’ 그 안에 ‘빛’이 보이는 영화가 있다. 그런 게 독립영화의 포인트가 아닐까. 지금 시대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독립영화는 존재해야 한다.

충무로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독립영화계와 차이가 있나.

출연료 말고 말인가?(웃음) 충무로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아직 많이 하지 않았다. 어, 근데 독립영화에 대해서는 쉽게 말했네.(웃음)

"한독협, 힘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
각난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힘든 게 좋아!

영화를 하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나.

힘든 게 제일 좋았다. 안 힘들면 별로였다.(웃음) 근데 생각보다 힘든 게 별로 없었다. 독립영화 장편 찍었을 때, <은하해방전선>을 처음 찍었는데, 찍을 때는 너무 맘 편하게 찍었다. 근데 찍고 나서의 책임감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꼈다. 개봉하고 나서 훨씬 많은 활동을 했다.

힘든 게 좋다니...(웃음)

<미확인 미행물체>란 작품에서 비구니로 나왔는데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11월인가, 밤새도록 옷 하나도 안 입고 폭포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 자세히 보면 너무 추워서 물을 조금씩 끼얹는 게 보인다. 근데 지금 보면 되게 기쁘다. 더 힘든 거 하고 싶다.(웃음)

그동안 출연한 작품들에 만족하나?

옛날 작품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좋다. 근데 영화를 찍을 때에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마음에 들기는커녕 내 모습이 다 이상하기만 했다. 최근에 한 영화제에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많이 상영했다. 그 영화들을 보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너무 흐뭇했다. 처음으로 그런 맘이 들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럼 배우로서의 재미를 느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나.

맞다. 사실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이 날 배우로 봤다고 해도 내 스스로는 배우가 아니었다. 내 기준으로는 아직까지도 내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정체성을 찾게 될 것 같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난 지금 그 과정에 서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미래상은.

처음 얘기하는 건데 러브 스토리 찍고 싶다. 사랑에 빠지는 역할.(웃음) 영화든 연극이든 내러티브 안에서 진짜 살고 싶다. 그런 건 변하지 않는다. ‘연기는 행동이다’라고 배웠고,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건 ‘똥배우’라고 배웠다. 그게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연기를 해 보고 싶은 이유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고, 빠지고 싶은 거다.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나 자신과 만났던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역할을 더 찾고 싶다. 그 극 안에 진짜 빠져서 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독립영화계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한독협에 대한 제언을 해달라.

힘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필름온 안효원 기자, 컬처뉴스 김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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