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4 09:06

사소한 독서 습관이 안내한 특별한 작가

레이먼드 카버,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이주호 기자
레이먼드 카버,『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8, 값 9,500원),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개정판)』(집사재, 2009, 값 11,000원)
▲ 레이먼드 카버,『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8, 값 9,500원),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개정판)』(집사재, 2009, 값 11,000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포석으로 깔아 놓고 남은 칸들을 채워가듯 다른 책을 섞어 가는 게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내 나름의 독서 방식이다. 내게 책이란 하루키가 지은 책들과 하루키 이외의 작가가 지은 책으로 구분되어 있다. 점에서 점에 이르는 선은 하루키가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작가, 작품들로 채워 넣는다. 스콧 피츠제럴드, 트루먼 카포티, 토니 모리슨 등의 현대 미국작가에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의 근대 일본작가, 칸트, 헤겔의 철학서까지 작가의 실제 경험치가 작가가 형상화하는 소설의 모든 소재를 포괄할 수 없으므로 작가의 독서경험을 따라 가는 것이야말로 한 소설가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구절은 이 책에서, 이런 생각은 이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았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다 보면 읽을수록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무서운 영화> 유의 짜깁기 패러디 영화를 볼 때 각 장면, 장면이 어떤 영화에서 빌려온 것인지를 알면 한층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카버는 1939년 미국 태생의 작가로 작가로서 원숙기에 접어들 시기인 49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등의 단편집과 다수의 에세이, 시집을 출간했다. 종종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이름을 보긴 했지만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하루키의 근작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사, 2009)를 읽은 직후다. 이 책의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 단편집의 원제인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서 따 왔다. 이 책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8)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개정판)』(집사재, 2009)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 이 제목은 한석규, 김지수가 출연했던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란 영화의 제목과도 비슷해 사랑에 관한 마음 따뜻한 에세이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낭만적이지 않은 묘사 때문에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며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사랑에 관한 이 영화의 시선은 레이먼드 카버가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과 많은 부분 겹친다. 재혼하거나 이혼하고 각자 살아가는 부부, 서로에 무관심하거나 바람난 부부 등 그가 설정한 가정의 모습은 한 결 같이, 평탄하다는 뭉뚱그린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것이 미국 사회의 보편적 가정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하더라도 미국 사회의 보편이 결혼관에 대한 여타 문화의 보편마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므로 가족관계의 한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대개의 주인공은 직업이 불안정하다. 혹 부부 관계가 원만하고 직업이 안정되어 있는 경우 알코올 의존성이 강하거나 가족 중 하나가 처한 경제적, 신체적 결함을 일정 부분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는, 그보다 협소하게는, 누구든 자기만의 문제를 하나씩 갖고 있기 마련이라는 보편적 인간관을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적이라 할 만한 상황 설정 하나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해 간다. 극적 상황이 거의 배제되어 있기에 사실적 묘사는 오히려 극단의 불행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봉과 대출이자, 쪼들리는 생활비, 원만하지 못한 남녀관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관되게 유지되는 불행한 일상들은 작가가 지나치게 세상을 냉소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현실이란 다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철저한 비관주의가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살면서 삶의 별다른 질적 변화는 기대하지 말라는 듯 숨 막히는 일상 속으로 속도감 있게 걸어들어 간다. 머뭇거림 없이, 감정 낭비 없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분노인지 체념인지 모를 표정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발버둥 쳐 봤자 일상은 달라질 게 없다. 주인공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들의 가계부나 장래 계획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구원의 손길을 만나는 것이다. 획기적인 만큼 구원의 손길은 전적으로 우연에 기대야만 한다.

우연한 구원이라니, 카버는 불행 말고는 보여주는 게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사람들은 기어이 구원을 보고 만다. 작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읽는 이 역시 냉소와 불안 속에서 근근이 하루를 버텨가지만 그렇다고 삶을 구원시킬 수 있는 희망마저 놓고 사는 건 아니다. 어떤 극적인 사건이 벌어져 작중 인물들이 구원돼야 한다는 일종의 의지를 품게 됨으로써 나를 내 삶 속에서 구해내고 싶어진다. 누가 품은 희망이 누구에게 투영되었는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인물과 독자의 공동 운명체는 보잘 것 없는 삶 속에서 사소하나마 도움이 되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친구 집을 방문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기도 한다. 누군가의 전화, 달콤한 사탕 한 알, 공복의 우유 한 잔. 사소한 구원이 이어지면서 삶은 지속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소한 한 가지를 잃을 때 삶은 전체적으로 규형을 잃는 건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카버는 다른 누구와 대체될 수 없는 작가다. 작풍이나 세계관, 냉소와 구원의 줄타기, 카버의 단명이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 레이먼드 카버는 하루키와 하루키 아닌 작가와는 별개로 레이먼드 카버의 영역으로 둬야 할 것 같다. 사소한 독서 습관 하나로 특별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면 이건 분명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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