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3 11:22

우리모두가 미네르바다!

[편집자가 독자에게]인터넷 글쓰기, 위험에 빠지다
안태호 편집장

꼭 지금 정부를 빌란에, 미네르바를 히어로에 빗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이 조금도 환상적으로 보이질 않거든요.
▲ 꼭 지금 정부를 빌란에, 미네르바를 히어로에 빗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이 조금도 환상적으로 보이질 않거든요.

주말을 미네르바 관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보냈습니다. 결국 많은 이들의 바램과 탄원과 한숨을 뒤로 한 채 그는 구속되어 버렸더군요. 눈이 벌개지도록 미네르바 관련 기사와 게시판 글을 따라잡으며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혹시 <저스티스>라는 미국의 그래픽 노블을 아시는지요? 이 만화에서 세계의 위기를 구하는 것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을 비롯한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들이 아니라 루터, 리들러, 포이즌 아이비, 브레이니악 등 이름도 생소한 슈퍼빌란(악당)들입니다. 이들은 걷지 못하게 된 이들을 걷게 해주고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듭니다.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의 기아와 빈곤을 해결하는 데 인류 최고의 악당들이 솔선해서 나서는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사이, 슈퍼히어로들은 하나 둘씩 빌란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세계의 진짜 위기가 찾아옵니다. 결국, 악당은 악당이었던 거죠.

꼭 지금 정부를 빌란에, 미네르바를 히어로에 빗대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이 조금도 환상적으로 보이질 않거든요. 물론, 그들이 달콤하게 내뱉는 말들이 많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원인은 대개 과거에 있는 법이지요.

어쨌든 미네르바의 체포와 구속은 몇 가지 쟁점, 혹은 생각할 지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먼저 언론의 보도행태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방에서 강타를 당했습니다. 학벌과 직업(30대 백수)에 대한 과장된 표현들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간판에 대해 얼마나 완고한 문턱과 고집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시켜 줍니다. 진중권 씨가 참 재밌는 말을 했는데요, "언론에서 추측하던 그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외려 비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언젠가 박노자 씨가 고려대의 ‘이명박 라운지’를 보면서 “'삼성관'들을 쉽게 유치할 수 있는 서울 소재 '명문대'보다 오히려 학벌주의 구조에서 계속 불이익을 받는 지방대학들에서 저항의 흐름이 점차 강해질 것 같다.”고 이야기한 말이 씁쓸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와중에 참으로 한심해 보였던 것이 마치 미네르바를 연쇄살인범 다루듯이 하는 보도들이었습니다. 주변인과 가족을 무차별적으로 인터뷰하고 거주지를 공개하는 등 개인의 신상 노출에 대한 우려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물론, 언론 문제를 언급하면서 신동아를 빼놓으면 그야말로 섭섭하지요. 신동아는 지난 12월 미네르바의 절필선언 이후 최초로 미네르바와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에 체포된 미네르바는 신동아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네요. 신동아는 미네르바를 사칭한 이에게 '낚인' 걸까요, 아니면 특종의 압박으로 인해 '작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걸까요. 신동아 측의 솔직하고도 빠른 해명을 기대해 봅니다.

이번에 밝혀진 참으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경제전망에 대해 정부가 하나하나 간섭했다는 사실입니다. 외신에는 한 경제전문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이 전문가는 “몇 달 전 내가 한 지역신문에 외환보유고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자 한국은행 고위관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언론이 부정적인 견해를 계속해서 보도하면 내가 잠재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황망한 일입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일보에 전화를 하고(관련기사 : 땡전뉴스 원하는 정부) 문화부 대변인은 컬처뉴스에 전화를 하더니(관련기사 : 유인촌 장관님, 억울합니다), 언론사에 전화를 해 논조에 일일이 시비를 거느라 정부 관계자들은 참, 피곤한 일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가 한 경제전문가에게 경고한 내용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건데요, 이는 미네르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많은 논란이 됐던 겁니다. 미네르바가 부정적 예측을 하면 그 부정적 예측에 맞춰 경제주체들이 움직이게 되어 실제로 그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지침처럼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부에서 올 한해 경기전망이 어렵다고 하면 기업이 신규투자를 꺼리거나 가계가 지출을 줄이는 일이 모두 비슷한 일에 해당될 수 있지요. 그런데 검찰에 따르자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짜집기'한 수준에 불과한 일개 네티즌의 글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할만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건 매우 황당한 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가 3천’ 발언이나 ‘747 공약’들은 가히 '자기파괴적 예언'이라 해야 할까요. 네티즌 한명이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의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검찰과 법원의 말에 여러 네티즌들이 " 자! 여러분들 ! 이제 여러분들은 좀 더 분발하면 미국 경제도 뒤집어엎을 수 있습니다! 화이팅!!!"이라는 조롱어린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구속된 미네르바가 그 미네르바가 아닐 거라며 음모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글쎄요, 음모론이라는 게 결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집단적 행위인 까닭에 ‘가짜 미네르바’ 논란도 제법 오래 지속될 것 같습니다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면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인터넷에 쓴 글’로 인해 긴급체포가 되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비하면 신동아의 ‘작문’도 그저 그런 이야깃거리 이상이 아닙니다. 요건은 딱 두 가지입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일 것, 그리고 영향력이 있을 것. 미네르바가 이야기했던 ‘달러매수 금지’가 어느 정도 ‘실체’가 있던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정부에 비판적이면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보유한 개인이나 단체는 이제부터 ‘허위사실 유포’의 올무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비판적’이라거나 ‘영향력’이라는 어휘 자체가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면 인터넷에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미네르바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가능성이 그의 구속과 함께 열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이미 다음에서는 ‘미네르바 닉네임 갖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감수성 밝은 네티즌들이 자신들에게 닥쳐온 위기에 대해 그만큼 절박감을 느낀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미 저들은 루비콘 강을 훌쩍 건넜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네르바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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