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2 10:49

쓴다는 것과 달린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역, 문학사상, 2009.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역, 문학사상, 2009.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냉장고를 열었더니 김치와 양파와 계란 하나뿐이다. 근사한 만찬을 기대하고 연 냉장고는 아니지만 눈앞에 차려지고 있는 초라한 밥상은 눈을 감고 먹는 한이 있더라도 끝끝내 외면하고만 싶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삼십대 초반 하루키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위대한 소설가는 못 되더라도 좀더 재능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다분히 그의 기준으로) 부족한 재능이 소진되는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 위해 그는 달리기를 선택한 것이다. 긴 금발을 뒤로 묶고 늘씬한 다리로 자신을 추월해 가는 20대 여성처럼 뒷사람에게 발자국 대신 자부심을 남기고 가는 러너는 끝내 못 되었지만,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타고난 재능도 재능을 이끌어낼 능력도, 특별날 것 없는 재료들이 그나마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냉장고 속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느낀다면 우리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남은 재료를 한데 섞어 부족한 대로 미지의 요리를 만들어 볼 것인가, 개중 가장 정붙일만한 재료에 집중할 것인가, 냉장고 문을 부술 듯 닫아 버리고 곡기를 끊을 것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원고지를 처음 구입한 날부터 10여 권의 장편 소설을 낸 세계적 작가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처음 운동화를 구입한 날로부터 스물여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앞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쓰기 위해 달리고 달린 것을 써내려갔다. 부족한 재료로 끼니를 연명해야 할 군상들에게 하루키의 문학여정이 전해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역, 문학사상, 값 12,000원.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지난 100년 동안의 문학 용어들을 집대성한 이 사전은 근대문학 용어 사전이자, 남북한 및 해외에서 각기 발전해 온 모국어 전체를 포괄하는 ‘통일 문학’ 용어 사전이다. 문학 용어뿐만 아니라 원고, 초판 등의 출판과 문화 일반 용어, 벽소설, 말다듬기 사업 등의 북한 문학 용어, 붐 소설, 팬픽 등 제3세계 문학의 용례, 여항문학, 칙릿 등 고전에서 최신 현대 문학용어까지 아우르고 있다.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실전용, 보급용, 문학 입문자 용 사전을 표방한 실용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아시아, 값 38,000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옛날 노예의 자식들과 노예 주인의 자식들이 형제애라는 테이블에 함께 앉는,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에 의해 평가되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흑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이 백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는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의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는 인권 역사 이야기인 이 책은 동화의 수준으로 쓰였기에 인권이라고 하면 어렵사리 전인권 정도밖에 떠올릴 줄 모르는 이 나라 정부 봉급자들의 지적 수준에 딱 알맞게 쓰였다. 프리덤라이더스 운동을 촉발한 로자파크스 사건에서부터 히로시마 원폭 피해로 백혈병을 얻어 죽어가던 사다코가 종이학에 담은 평화의 염원까지 저마다 인권 실천을 위한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김주희 글 · 신민재 그림, 길벗스쿨, 값 9,000원.




이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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